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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73/180311]와우-, 환상의‘코딱지’(코타 키나발루)여행!
소가 되새김질하듯, 4박5일 환상여행 더듬기
소(牛)의 되새김질(反芻)을 천천히 보신 적이 있으신가? ‘추’는 ‘소가 먹는 꼴’을 말한다.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면 더럽기까지 하지만, 되새김질을 왜 할까 생각해 보자. 소는 초식동물로 착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춘원은 ‘우덕송(牛德頌)’을 읊었을까? 위(胃)가 네 개인데, 미지의 공격자에 대비해 일단 배 터지게 풀을 뜯어먹은 후 숨돌릴만하면 꼴을 ‘게워내어’ 긴 혀를 휘휘 돌려가며 참 맛있게도 먹는다. 우리집은 농사짓는 집이니 당연히 소를 키웠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쇠전에 내다팔아 형들의 대학 등록금을 댔고, 망태에 넣은 돼지새끼는 자전거로 십 리를 달려가 팔아 나를 비롯한 동생들 중고교 등록금을 댔다. 왕방울만한, 순박하기만 한 소의 눈을 본 적이 있으실 거다. 나는 유난히 소를 좋아했다. 쇠죽 끓이는 것도 좋아했고, 그 구수한 맛이라니? 냄새도 좋아했다. 구유에 퍼담은 쇠죽을 잘 안먹으면 몽근 겨를 뿌려주곤 했다. 그런 소를 아버지가 파신다고 했다. 얼마나 슬펐는지, 대문 밖까지 맨발로 뛰어가 “제발 팔지 말라”며 울던 기억이 떠오른다. 진짜로 눈과 눈물이 왕방울만했다. 소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작별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선다. 느닷없이 웬 소 이야기, 소타령이냐고?
다름 아니라. 지난달 2월 22일(목)부터 27일(화)까지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를 4박 6일 휴양차 다녀왔다. 아내와 같이 간 것도 좋은 일이지만, 정말 환상은 두 살 터울 여동생 셋과 동갑내기 매제가 같이 한 것.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의 장점을 아시리라. 보름도 더 지난 지금, 그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그날들을, 하나씩 되뇌다 보니, 왕년에(벌써 50년도 더 전이다) 우리집 잘 생겼던 암소(일소)가 생각난 것. 오늘은 마침 일요일, 완연한 봄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볼 생각이다.
# 먼저 ‘코타 키나발루’를 ‘코딱지’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사연을 적는다. 유난히 영어 단어가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프라이버시(privacy)를 습관적으로 ‘프라이시버’라 말한다. 하도 자주 사용하기에 어쩔 때에는 프라이시버가 맞는가? 갸우뚱하기도 한다. 아이러니(irony)는 ‘아이노니’로, 프로그램(program)은 ‘프노그냄’으로, 노이로제(noinose)는 ‘논이노제’라고 하는데, 결코 일부러 하는 게 아니다. 맨처처음 영어 단어가 입력될 때 잘 안된 것이다. 그만큼 영어 단어가 낯설을까? 희한한 일이다. 전직장 팀장도, 나의 매제도, 심지어 나도 그렇다. 우아한 커피샵에서 ‘아메리카노’를 느닷없이 ‘아프리카노’라고 말해 창피한 적도 있었으니, 영어를 10년간 배운 영문학도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문제는 지난 겨울 ‘우리 코타 키나발루를 가자’고 했더니, 누구였을까? 이 땅이름이 입력이 안되고 불쑥 ‘뭐? 코딱지?’라고 하여 좌중이 배꼽을 잡은 것. 그래서 그 섬은 단숨에 ‘코딱지’가 되었다. 넉 달 전쯤 날짜를 잡아놓았는데, 어느새 출발날이 다가왔다. 22일 오후 2시쯤 전남 광양에서, 충남 논산에서, 경기 여주에서, 판교에서, 서울 구기동에서 리무진으로, 승용차로, 공항철도로 모여들었다. 늘 그렇듯 만난 적이 얼마 안되는데도 6인은 제각기 “아가씨” “새언니” “0서방” “형님”하며 수다가 쏟아진다. 오후 6시 탑승. 5시간 30분이 걸린다. ‘진에어’는 최근 약소한 저녁도 나온다. 289명 만석. 새벽 12시 30분 도착. ‘밍 가든’ 호텔에서 모시러 나왔다. 김씨 성을 ‘Gim’으로 표기한 안내판을 발견, 공항에서 20여분 거리. 우리의 ‘옥(玉)가이드’(자유여행을 리드하는 아내의 애칭)가 몇 마디 영어로 방 열쇠를 가져온다. 일단 눈부터 붙이자.
에머럴드빛 바다… 형형색색 물고기…환상의 스노쿨링
# 첫날 아침 8시. 마음에 드는 호텔 뷔페다. 무엇보다 중국처럼 희한한 향(香)이 없고, 한국탕(된장국)까지 있으니 만족이다. 모두 좋아하며 외국에서 느긋하게 첫날 아침식사를 즐기다. 흠이라면 새벽 5시, 인근 이슬람사원에서 예배를 드리는지, 웅웅하는 기도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종교는 자유라지만 이슬람교가 70%을 넘는다 한다. 곳곳에 천주교교당도 많이 보인다). 패키지여행은 꽉 짜인 일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유여행은 그럴 필요가 없어 좋다. 오늘은 섬 투어. 투어라기보다는 섬에 짐을 풀고 하루종일 스노쿨링 등 물놀이를 하며 노는 것이다. 셔틀버스도 있지만, 그렇게 비싸지 않은(바가지요금이 걱정없는) 택시를 타고 젤센톤항구에 가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화페는 ‘RM’(링키트 말레이시아의 약자․1RM=280원정도)으로 표기한다.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는 약칭이 ‘KK’이다. KK의 중심지역, 섬으로 떠나는 터미널. 우리의 목표는 사피 아일랜드(사피섬)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30여분만에 도착한 사피섬. 날씨 한번 좋다. 온통 에머럴드빛 드넓은 남태평양, 한 가운데 아담한 섬 해안가엔 울긋불긋, 세계 각나라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대만사람이 가장 많이 온다한다).
아찔한 바나나보트…남태평양 가운데 “퐁당퐁당”
# 바나나보트를 타보자. 풍선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발리에서, 태국에서 해보았으니. 섬 인근에서 하는 게 아니고 배를 타고 제법 바다를 나간다. 조금 무섭고 기대된다. 우리는 한 팀이므로 6명이 같이 탔는데, 중간에 보트를 엎는 게 있다고 한다. 그냥 달려도 무서운데, 바다 한가운데서 보트가 뒤집어진다고 상상해 보라. 가이드의 한국말이 재밌다. “퐁당퐁당?” 뒤집어엎어도 되겠냐는 말이다. 동생들은 일제히 “노”, 나와 매제는 “오케이”. 10여분쯤 즐기다 순식간에 엎었다. 이것 정말 장난 아니다. 보트와 떨어지지 않으려 고리를 꽉 잡고 있는데, 그만 매제는 놓쳤는지, 일부러 놓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생은 과부되는 줄 알고 신랑이 없다며 비명을 지른다. 배 뒤편에서 소리에 들리기에 안도를 했다. 나는 안경이 바다에 빠진 줄 알고 엄청 놀랐는데, 가방 안에 넣어둔 것을 깜빡했다. 아마도 일정 중 이 놀이가 가장 재밌었던 것같다. 안전에 위험한 일을 하겠는가? 하란대로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이 즐길 수 있다.
# 서울은, 우리나라는 겨울이건만, 여기는 완전 여름. 바캉스가 따로 없다. 구명조끼를 입었기에 둥둥 뜨므로 물에 빠져 허우적댈 일이 없는데도 비명을 지른다. 수영을 못해도 상관없는 일. 동생이 가져온 스노쿨링(snorkeling)으로 바닷속을 보기도 하고 형형색색 물고기들을 쫓아보기도 했다. 무게 잡을 필요없다. 스노쿨링 한번 해보시라. 호흡법도 아주 간단한다. 아주 색다른 재미다. 쾌청한 하늘을 바라보며 발을 동당거리지 않아도 빠질 염려없이 하염없이 즐길 수 있다. 팔뚝만한 도마뱀이 어슬렁거린다. 물뱀인가 기겁을 했더니 안전요원은 뱀장어(eel)이란다. 두어 시간 노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두 재미있어 연신 환호성이다. 바다에 떠있는 6인의 가족. 이토록 한가하다. 눈이 절로 감긴다. 이 햇살도 좋고, 이 여유도 좋다. 힐링이 별 것인가. 이것이 완벽한 힐링. 어른이 되어 이렇게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한 것이 언제였던가. 우리 아이들 어릴 적, 대천해수욕장 두어 번 간 이후 처음이다.
세련된 여성 신발 1켤레에 1만원 “쇼핑 횡재”
# 오후 3시. 약간의 간식을 했지만 때가 넘었기에 시장하다. 물 속에서 논다는 건 힘드는 일이다. 무엇을 먹을까? 부두 근처 식당들은 지저분하고 메뉴도 잘 모르니 답답할 일. 마침 한국식당을 발견, 안심이다. 어제 먹은 된장찌개이건만 왜 이리 반가운지. 정말 못말리는 전북 임실 촌사람들이다. 한 그릇 30링기트. 9천원꼴이면 봐줄만하다. 맛있는 점심 후 인근 ‘수리아 사바’가 유명한 쇼핑몰이란다. 매제와 나는 스타박스에서 커피 한 잔으로 킬링타임하는 사이, 여자들은 쇼핑에 나섰다. 여성신발들을 반드시 사가야 한단다. 세련된 게 싸기까지 하니(하나에 1만원에서 1만5천원), ‘웬 횡재인가’ 싶어 한 집에 두세 켤레씩 샀다. 쇼핑 대만족. 이런 것을 보고 ‘가성비’라고 한대나. 마음까지 흡족하니 ‘가심비’라고 한대나. 호텔까지 5km정도 되니 걸어보자, 택시나 셔틀버스를 타자, 설왕설래하다 결국 택시로 이마고라는 대형 마트를 찾았다. 저녁 먹을거리로 과일(망고스틴, 석류, 꼬마바나나 등)과 맥주 몇 병을 사 돌아오다(이 나라, 이상한 게 하나 있다. 횡단보도가 없는 것, 사람들은 대충대충 알아서 건넌다. 너무 위험하다. 더구나 밤길, 호텔이 바로 눈앞인데, 무단으로 건널 수밖에 없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모든 도로가 일방통행이란다. 도리어 교통사고가 덜 났다는데, 할 말이 없다. 운전석은 일본 등과 같이 오른쪽이다). 저녁은 ‘본부(큰동생방)’에서 모여 컵라면이다. 햇반도 있고, 걱정이 하나도 없다. “하오하오(好好)” 방송대 중문과에 편입한 동생이 연신 중국어로 외친다. 물놀이를 한지라 힘들다. 오늘은 모두 일찍 잡시다. 신랑들이 부득이 오지 못한 동생 둘은 낮에 한 물놀이사진을 카톡으로 보내기에 바쁘다. 동생들아, 좋은 꿈꾸며 잘 자라.
해발 4095m 코타 키나발루山…700m 폭포 장관
# 둘째날. 아침 8시, 키나발루산 하이킹(우리는 트레킹이나트레일이라고 한다) 가이드를 호텔 앞에서 만나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4095.2m의 산. 시내에서 2시간여를 달리는데, 산이 엄청 크다. 구름에 가린 정상이 경이롭다. 차 속에서 봤는데, 700m 길이의 폭포가 눈에 띈다. 전망 좋은 중간휴게소에서 촬칵! 과일가게에서 풍기는 두리안 냄새, 머리골치가 지끈거린다. 저 과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두리안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쳐다보기도 싫다. 그 자리에서 잘라주는 파인애플은 맛도 좋고 값도 싸다. 3RM. 말레이시아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인 키나발루산을 등정하려면 3000m 지점에서 반드시 1박을 해야 하고, 가이드가 없으면 올라갈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여행사 가이드가 알선해줘 오전-오후 5시간여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9km쯤 걸었다던가? 건기여서 비가 오지않아 다행이다. 안내자와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몇 코스를 함께 걷는데, 이끼긴 바위틈에서 새알이 들어있는 새집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러 나무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한다. 점심은 산중턱, 중국식으로 지친 우리의 허기를 채워줬다. 제법 힘이 들었지만, 언제 우리가 키나발루산 중턱에서 트레킹을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가. 걷는 데 제법 힘들었지만 보람찬 하루였다.
세계 3대 일몰지(sunset) 탄중아루 “황홀한 석양을 품다”
# 황홀한 석양을 품은 천혜의 휴양지 코타 키나발루. 이곳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어깨를 나란히 안다는 세계 3대 일몰지(the most famous sunset place of the world))라는 ‘탄중 아루’ 해안을 다녀오자. 흔히 ‘백만불짜리 일몰’이라고 한단다. 시내에서 6km쯤 떨어져 있다. 호텔서 간단한 샤워를 하고 큰택시 1대 60RM. 십리가 넘게 보이는 해안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다. 일몰시간 6시 40분. 족히 5천명은 되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해넘이를 보려고 서성이고 있다. 불행히 구름이 가려 하늘에 불이 난 듯 시시각각 붉게 물들이며 변하는 드라마틱한 장관은 볼 수 없었지만, 맛보기는 한 셈. 노천시장의 두리안 등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디를 가나 그 지독한 썩은 냄새가 따라 다니는 것같다. 오늘 저녁도 ‘참깨라면’에 햇반, 과일파티를 하고 푹 쉬다.
# 셋째 날, 일요일이다. ‘가나 스트리트’라는 곳에 일요일마다 열리는 ‘선데이마켓’이 볼만한단다. 셔틀버스로 가는데, 호텔에서부터 한국인 중년남성 5명이 말을 붙인다. 패키지여행 겸 자유여행인데, 하루 온종일 일행에서 빠졌단다. 직장에서 위로휴가를 받았다는데, 친절하게 몇 가지를 알려주다. 선데이마켓은 완전히 만물상 시장으로 점포가 몇 백개는 듯하다. 물건들은 조잡스러운 듯하지만,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게 보인다. 엄청나게 붐비는 인파로 발 딛기도 힘들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 아이쇼핑에 그치고, 우리는 싸고 잘 한다는 ‘자스민 마사지샵’을 찾아나섰다. 발을 비롯한 전신마사지 2시간. 1인 4만원정도이니 싸기도 하고, 깨끗한 시설(태국이나 중국의 마사지샵과 확실히 다르다)이 마음에 든다. 그곳 대기실에서 발견한 영문잡지 ‘SEOUL’은 나와 인연이 깊은 한국의 출판사 ‘서울셀렉션’에서 만드는 월간지이다. 해외 모든 문화원 등에 배포한다는데, 2011년 10월호이다. 반갑다. 나의 첫 번째 에세이집 ‘백수의 월요병’을 내준 곳이기도 하다. 표지를 들고 찍은 사진을 출판사 대표에게 보내주자 무척 신기해 했다.
웰컴! 시푸드 레스토랑 “대박”…랍스터 & 킹크랩, 갑오징어튀김…
#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할 판. 국내에서 사갖고 온 작은 여행책자의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 ‘웰컴 시푸드 레스토랑’이다. 랍스터, 킹크랩, 갑오징어튀김, 새우 등 인기 해산물들 먹는 데까지 먹어보자. 정말 맛있게, 싸게 잘 먹었다. 토탈 14만여원. 1인 3만도 안된다. 아아- 셋째형님이 밥이라도 한 끼 먹으라고 20만원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편의점 1, 2호로 눈코뜰새없는 형님네가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되레 후원금을 주시다니. 지난 1월 제주 2박3일 가족여행 후원에도 미안하고 고마웠는데. ㅎㅎ. 그럼 오늘 점심값은 형과 오빠가 주신 후원금으로 하는 걸로. 대신 형수와 새언니 선물을 제법 빵빵한 것으로 사가기로. 짝짝짝! 이 시푸드식당,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가고 싶은곳. 아시아시티 콤플렉스라는 건물 1층 중간에 있다. 지도를 보고, 헤매면 또 떠듬떠뜸 영어로 물어보며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 호텔룸 횡재. 당초에 두 밤은 프리미어룸으로, 그 다음 두 밤은 딜럭스룸으로 예약했다. 키나발루산 등산을 목적으로 하다 그리 된 것인데, 프리미어룸이 딜럭스룸보다 훨씬 비싸다. 나흘째, 딜럭스룸으로 옮겨야 하는데, 집을 싸고 번거롭지 않은가. 그래도 비싸서 옮기겠다고 돼먹지 않은 영어로 말하자, 호텔리어들이 귀찮은 때문인지 그냥 프리미어룸을 사용하라고 한다. “노 프라브럼” 잘된 일이다. 혹시 바가지를 쓸까봐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Are you okay?” 일본은 영어가 잘 안되는데, 이곳은 어지간하면 영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도 안되면 ‘스마일(smile)이라는 세계 공통 언어가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일상 영어는 좀 배워, 써먹어볼 일이다. ’아프리카노‘라고 말하는 나는 말할 형편은 안되지만 ’옥가이드‘로 불리는 우리의 자유여행 리더는 제법 하는 듯하니, 모두 믿고 따라오지 않았는가.
“영어 안되어도 오케이”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의 차이는?
# 호텔내 4층에 있는 자유수영장. 이틀을 그저 9층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이제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가보자. 1년내내 평균기온이 30도를 웃돈다던데, 그때는 제법 바람이 불었다. 비교적 비가 고르게 내린다지만, 10월에서 2월에 집중된다한다. 비도 내리지 않고 사흘내내 날씨는 덥지도 습하지 않고 정말 좋았다. 수영장 옆에는 체력단련실도 있다. 10층에는 프리미어룸 손님들에게만 저녁에 공짜로 제공하는 간이식당이 있었다. 첫날 프론트에서 ’프리 차지(free charge)’ 어쩌고 했는데, 그것을 몰랐던 ‘큰 실수’. 샌드위치는 물론 맥주나 음료수도 공짜로 주는 것을. 뒤늦게나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 프리미어 라운지’라는 안내를 보고 엊그제 ‘프리차지’라 했던 것을 기억, 하루라도 이용할 수 있어도 다행. 뭘 알아야 통반장이라도 한다는 말이 생각나 쓴웃음을 짓다. 이왕이면 새벽이나 밤늦게 피트니스룸도 이용할 것을.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내일은 짐을 싸갖고 가야 한다.
“패밀리 돛단배의 추억” 키울루강의 7km 리프팅
# 마지막 날. 월요일. 참, 시차는 우리보다 1시간 빠르다. 서울이 8시면 여기는 7시. 우리는 키울루강에서 래프팅을 하기로 했다. 시내에서 1시간 30여분만에 래프팅 출발지에 도착했다. 한 동생은 동강에서 래프팅을 해봤다지만, 우리는 처음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강은 너비도 제법 넓고 길었다. 우리가 타는 거리는 7km. 1시간 40여분 걸린다. 강 양쪽으로 펼쳐진 숲을 보니, 아프리카 어디를 온 것도 같다. 강은 비교적 잔잔했지만, 물살이 약간 거센 곳도 있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다이빙으로 몇 번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릴을 만끽하는 재미가 있었으니. 깊은 줄 알았던 곳이 허리에도 못미치는 데 그리 놀라고 비명을 질러댔으니. 동생들은 영월 동강이나 인제 내린천 리프팅보다 훨씬 안전하고 흥미가 있다고 흡족해 했다. 강가에서 먹는, 어설픈 점심은, 또 한국의 마늘고추장을 떠올리게 했지만, 물속에서 논 만큼 시장끼는 때웠다. 인터넷에서 가족에 대한 시를 찾았더니 정연복 시인의 '가족의 노래'가 눈에 띄인다. 전문을 옮긴다. <삶이 기쁘고 행복할 때/힘들고 괴로울 때도//우리는 한 목소리로/마음 합하여 노래해요//끝없이 넓은 세상/수많은 사람들 중에//가족이라는 이름의/돛단배에 함께 타고서//인생살이의 바다를/항해하는 우리//때로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서로의 지혜와 용기를 똘똘 모아/힘차게 노 저어 가요> 사뭇, 그럴 듯하지 않은가.
# 이제 월요일 오후 마지막 일정. 그 유명하다는 반딧불이 관광이다. 만타나니섬와 반딧불이 투어가 더 유명하다지만 시내에서 너무 멀어 클리아스섬 해넘이와 반딧불이 투어를 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악어농장에 들렀다. 애기악어를 직접 들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한 입에 먹는 악어들이 득시글득시글했다. 징그럽고 무섭다. 어떻게 저런 동물을 조련시킬까. 반딧불이야 우리 어릴 적 시골에 흔하디 흔했다. 한 마리씩 잡아 바카스병에 넣는 놀이도 했는데, 이젠 꿈도 못꿀 일. 그래서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고사성어도 나오지 않았는가. 정말 옛날 사람들은 반딧불이 불빛과 하얀 눈빛 아래 책을 읽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무주 구천동 어디선가 반딧불이 축제를 한다고 한다. 1급수 물가나 개울에 사는데, 우리는 개똥벌레라 부른다. 영어로는 firefly나 lightning bug라 불리는 반딧불이는 이끼나 물가물숲에 알을낳는데, 1개월정도면 애벌레가 되어 1주일쯤 뒤 성충이 되는데, 짝짓기를 하면 죽는다. 살아 활동하는 기간은 길어야 보름 정도. 낮이면 나뭇잎 뒤나 풀에 앉아 쉬다가 깜깜한 밤엔 암컷을 찾아 찍짓기를 한 후 곧 죽는다고 한다.
반딧불이와 맹그로브숲…“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 민타나니섬과 클리아스섬에는 ‘산소의 공장’ 맹글로브나무가 가득 하다. 얼마나 많으면 보르네오섬의 맹그로브숲에서 뿜어내는 산소량이 전세계의 46%라는데 믿어지기가 않는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강 유역에서는 52%을 생산한다던가. 바닷물이 완전 뿌옇다. 저런 물이 어떻게 1급수일까 싶어 물었더니 맹그로부나무 진액 때문이나 10cm만 들어가도 바닥이 환하게 보일 정도로 맑다고 한다. 맹그로브나무 뿌리는 바닷물을 흡수하여 98%의 정수(淨水)효과를 보인다하니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가는 도중 해안의 해넘이도 탄중아루 못지않게 장관이라고 하는데, 운좋게 그 광경을 보았다. 더구나 해안가 바닷물 속에 한없이 서있는 잘 생긴 말 2마리는 우리의 모델까지 되어줘, 동생들을 졸지에 ‘애마부인’을 만들어줬다. 반딧불이 불빛은 숨을 쉬면서 받아들인 산소와 빛을 내는 물질이 서로 합하여 생긴다고 한다. 나뭇잎 뒤에 숨어 있는 반딧불이를 유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배머리에서 손전등 앞면에 새겨진 암컷 반딧불이 무늬를 깜빡깜빡하면 수컷들이 배까지 날오는 데, 달이 뜨거나 주변이 소란하면 나오지 않는다 한다. 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반딧불이들이 꽁무니에서 일제히 빛을 발하자 크리스마스 트리가 따로 없다. 날아오는 수컷들은 대개 10일이 넘어 죽을 때가 가까운 것들이라는데, 종족 번식의 본능은 미물도 한결같은 모양이다. 어릴 적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반딧불이(개똥벌레)를 멀리 타국에서 한밤중에 집단적으로 구경할 줄을 어찌 알았을까? 이색 관광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흠이 하나 있었다. 모기들의 극성이 바로 그것으로, 약을 발라도 별로 효과가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 귀국 후 가려워 장딴지를 보니 온통 모기가 물어 상처가 볼만도 안했다.
4성급 호텔 100m 거리 “목불인견” 수상가옥
# 빈부 격차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인가. 밍가이든 호텔 바로 옆에 강이 있는데, 거기에 게딱지처럼 붙어있는 수많은 수상가옥들. 차마 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바로 옆에는 무궁화 4개의 화려한 호텔이 있고. 다큐물에서 메콩강 등의 수상가옥을 많이 받을 터. 전염병은 없을까? 대소변 처리는 어떻게 하는가? 태풍이나 홍수가 몰아치면 어떻게 할까?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 근처를 조심스레 가보았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열살쯤의 남자아이들이 뱀을 잡아 놀고 있다. 이상한, 지독한 냄새까지 코를 찌른다. 금방이라도 발길질 몇 번에 허물어질 것같은 나무로 지은 집들. 그쪽에서는 그쪽 나름의 가정과 생활이 있으리라.
수컷 반딧불이를 유혹하는 램프빛을 깜빡이는 아르바이트 아이는 열두 살이라던가. 돈이 생기면 놀러를 간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아이들이 학교를 기피한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가난한 부모님 모시기 바쁘다 한다. 교육부에서는 학기초 학부모들에게 제발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도 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슬람문화의 한 특징은 남자들은 수염을기르고, 여자들은 투동이라는 긴 두건을 머리에 쓰고 팔다리를 가린 긴옷을 입는다. 아버지가 허락하면 일곱 살 때까지는 투동을 안해도 된다고 한다. 또 하나 큰 특징으로는 '할랄(halal)'이 있다. 할랄은 종교적 절차에 따라 도살된 고기 또는 그 재료를 말한다. 할랄 마크가 없으면 절대로 먹지 않으며, 식당에도 할랄 마크가 없으면 들어가지 않는다한다. 고기 뿐만아니라 빵, 우유, 시리얼같은 식품(커피빈마저 할랄업소라애 한다니)에도 엄격히 적용되는 게 할랄이다. 참 유별한 나라이다. 말레이사는 영국령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고 연합군의 공습으로 괴멸시켰으며, 1947년 싱가포르와 보르네오섬의 코타 키나발루중 한 곳을 선택하라고 했는데, 싱가포르를 포기했다고 한다.보르네오는 세계에서 3번째 큰 섬으로,인도네시아와 독립국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 3국이 공존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자기들을 선택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도 말레이시아와 감정이 좋지 않아 사사건건 대립한다고 한다.
“힐링잔치는 끝나더라” …형제애(兄弟愛)가 쌓은 추억의 탑
# 4박 5일 환상의 일정이 다 끝났다. 조금 일찍 도착한 KK공항에서 기다렸다 11시 30분 비행기만 타면 다음날(27일)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하리라. 내일 출근도 해야는데 눈을 붙이자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지난 나흘간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한마디로 좋았다. 좋지 않을 이유가 어디 하나라도 있는가. 새벽부터 바쁘다. 나는 직장으로 직행, 광양동생은 5시간을, 논산동생은 3시간을, 여주동생은 주차장에서 내 아내까지 태워 6일 전에 나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또 한번 ‘가족여행 추억의 탑’에 돌을 하나 더 올려놓았다. 지난해 5월 5쌍의 제주여행은 아담한 소책자로 꾸며저 글과 사진으로 앨범처럼 남았다. 지난해 1월에는 아버지 구순을 기념해 일본 오사카-교토-나라 4박5일 가족여행(4,6,7번 가족이 아버지를 모셨다)을 했었는데, 생각이 짧아 앨범 만들 생각을 못했었던 게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동생들에게 사진을 곁들인 책자를 만들어 선물을 할까? 내년 가족여행은 이미 예약이 되었다. 새삼 아버지,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렇게 다복하게 형제들(4남3녀)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셔, 남 부럽지 않게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 되어 대가족의 행복을 꾸려 가게 해주셨음에랴. 1월중순 베트남 다낭 4박5일. 이번에 부득이 오지 못한 셋째형님네와 두 매제(5번, 7번)도 꼭 같이 오자. 그날이 기다려진다. 우리 모두 늘 그렇게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광객 중 가족팀들이 대부분이다. 완전 왔다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