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명삼보(歸命三寶) / 청화 큰스님
<귀명삼보(歸命三寶)>
지금 세상도 거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 당시에도 역시 거친 대중(大衆)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군비구(六群比丘)라,
비구승(比丘僧) 가운데도 육군비구는 굉장히 거칠고
요새 말로 하면 깡패 중인 셈이지요.
비구승뿐만 아니라 비구니(比丘尼) 가운데도
육군비구니(六群比丘尼)라.
왈패 같은 비구니가 있어서 큰스님들한테도
행패를 부리고는 했습니다.
그런 깡패 중 가운데도 차익비구(車匿比丘) 같은 비구가
가장 거친 사람이었겠지요.
누구 충고도 안 듣고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실 때에
아난(阿難)존자가 부처님한테 말씀드리기를
“차익비구 같은 그런 사람들이 행패를 부릴 때에
어떻게 제도 합니까?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범단(梵檀)지법[묵빈(黙擯)·범법(梵法)]으로 다스려라.”
범단지법은 무엇인가하면 범천(梵天)사람들이,
범천은 색계(色界)에 있습니다.
우리는 욕계(欲界)에 사는데 색계에 범천이 있습니다.
색계는 욕계의 욕심(慾心)을 떠난 경계(境界)란 말씀입니다.
색계는 사람 같은 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명신(光明身)이라,
몸이 광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은 말을 하려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생각하는 그것이 광명 따라서 그 사람한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해집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다고 하면 입을 열지 않더라도
뜻이, 말이 통해집니다.
따라서 범단지법으로 다스리라는 말은,
말하지 않고서 무언(無言)중에 대치(對治)하라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씀드리면 상대(相對)를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부할 때에 묵언(黙言)이 참 굉장히 중요합니다.
잡다한 말보다는 가만히 있으면 권위(權威)가 섭니다.
우리가 이런 회의(會議)를 집행할 때도
잘 모르면 가만히 절만 몇 번 하면 됩니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좀 잘못되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렇기 그러면 위신(威信)도 서고
동시에 보다 더 우리 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선(參禪)공부를 해왔는데,
참선 공부 이것은 불법(佛法)의 정수(精髓)인 동시에 지름길인지라,
생략 생략해서 자꾸만 건너뛰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공부를 별로 안했습니다.
본래 참선이라 하는 것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배운 다음에, 길목을 안 다음에 한다는 것인데,
길목도 미처 모르는데 참선하는 공부만 역설(力說)을 해놓으니까,
더러 붕 뜨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물론 사제법문(四諦法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
그런 법문이야 불교(佛敎)에 막 들어가면 다 아는 법문인데
새삼스럽게 뭘 하려고 하는가?
그러실는지 모르지만 부처님 법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법화경(法華經)이나 무슨 경전이나 어려운 경전을 말씀할 때마다
이런 가장 쉬운 법문(法門)을 곁들여서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불자(佛子)라 하면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런 기본적인 법문은
꼭 외워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만이 그때그때 번뇌망상(煩惱妄想)이 나올 때
번뇌(煩惱)를 대치(對治)해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불교가 중국(中國)을 거쳐 와서
중국물이 많이 들어 버렸습니다.
인도(印度)의 부처님당시에
순수(純粹)한 불법(佛法)이 그마만치 많이 흐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불교(佛敎)학자 분들은
근본불교(根本佛敎)가 무엇인가?
부처님 당시에 불법은 어떻게 돼있는 것인가?
이런 것을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은 중국 것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좋다고 하는 사대근성 때문에,
원래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고
한국은 속국으로 주변국으로 자처해 와서,
그러한 우리 사대근성 때문에 중국에서 하는 식을
그대로 모방(模倣)해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데서 더러는 좋은 것들이 있으나
더러는 부처님 당시의 소중한 순수한 불법을
많이 흐리는 감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점을 생각해서,
부처님 당시는 어떠한 법을 주로 했던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나온 법은 모두가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그런 점에서 순수 (純粹)한 불법,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불법,
부처님의 육성 그대로의 불법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원래 포살일(布薩日)은 대체로 계행(戒行)을 주로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만,
계행이야 여러분들은 청정(淸淨)한 분들이니까 잘 지키실 것이고,
이런 것이 보다 더 나을 것 같아서 이 시간을 이렇게 했습니다.
<삼보: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보배 아닙니까.
보배 가운데서 제일 좋은 보배가 소위 셋입니다.
삼보 이것은 부처 불(佛)자, 보배 보(寶)자,불보(佛寶)와,
법 법(法)자, 보배 보(寶)자, 법보(法寶)와,
또 중 승(僧)자, 보배 보(寶)자 승보(僧寶)와
세 가지가 가장 위대한 보배입니다.
금은보화나 그런 것은 유한 상대(有限相對)의
있다가 없어지는 무상(無常)한 것이고,
영생불멸(永生不滅)한 참다운 보배는,
부처라는 보배, 또는 부처의 법이라는 보배,
부처의 법을 그대로 실천하는 중, 중은 우리 출가한 분이나
부처님 법을 믿는 분들은 다 중입니다.
집안에 계시는 부처님 제자는 재가승(在家僧)이요,
우리 같은 출가한 스님들은 출가승(出家僧)입니다.
차이 뿐인 것이지 다 똑같은 중입니다.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배가 삼보라,
세 가지 보배인데 부처라는 보배,
부처의 법이라는 보배,
부처의 법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중, 승보 이것이 삼보입니다.
<불보(佛寶)>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
맨 처음에 부처라는 보배 이것은 어떠한 것인가?
이것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입니다.
이런 것도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논의가 분분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가장 간략하고 골수(骨髓)적인 것만 뽑았습니다.
물론 부처라는 보배,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생명을 다해서
거기에 나아가고자 하는 부처님인지라
부처님에 대한 인식을 그르쳐 버리면
우리 공부도 막대한 손해를 봅니다.
우리는 부처님에 대한 견해(見解), 인식(認識)을 바로 해야 합니다.
대체로 부처란 무엇인가?
우리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 신명(身命)을 바치고 있는 셈입니다만
부처가 무엇인가?
이 문제만 바르게 알면 공부도 순탄하고
나아갈 길도 평탄한 길로 나아갈 수가 있단 말씀입니다.
부처란 오직 말로도 표현도 못하고 글자로도 표현도 못하고
우리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그 무엇을 중생(衆生)이 잘 모르니까
이렇게 저렇게 말씀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중생이라는 것은 아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서 별것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한되지 않은 절대적(絶對的)인 영원적(永遠的)인 것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1)법신(法身)
따라서 무제한적(無制限的)인 영원적인 것,
언제나 변치 않는 부처님을 그때그때 중생이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을 붙였단 말입니다. 그
러한 부처님의 속성 가운데서 부처님의 본체(本體),
본모습보고 법신 (法身)그럽니다.
2)보신(報身)
부처님의 본체 본모습 가운데 들어있는 모든 공덕(功德)말입니다.
자비(慈悲)나 지혜(知慧)나 능력(能力)이나
안락스러운 행복(幸福)이나, 부처님의 법신(法身) 가운데
몸 가운데 들어있는 모든 공덕(功德)보고 보신(報身) 그럽니다.
3)화신(化身)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일체현상,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해서
더러는 사람모양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고
더러는 짐승모양도 나타내게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한 것을 비롯해서 일체(一切) 현상계(現象界)가
화신(化身)인 것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
우리는 부처님을 생각할 때에 나의 밖에 나라는 것에 상대해서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와 너와 모두를 다 포함해서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이것을 똑바로 우리가 알아야 만이
거기에서 혼돈(混沌)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와 너를 포함해서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의 하나의 덩어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부처님인데,
부처님의 몸, 부처님의 전체 몸
이것 보고 법신(法身)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부처님 가운데 들어있는 모든 공덕,
모든 기능(機能)이나 자비(慈悲)나 지혜(智慧)나
그러한 것보고 보신(報身) 그러는 것이고,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나나 너나 천지(天地)
일체만물을 가리켜서 화신(化身)은 따로 있는 것인가?
따로 있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몸인 것입니다.
법신 가운데 보신·화신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동시에 화신 가운데 법신·보신이 들어 있는 것이고,
보신 가운데 법신·화신이 들어 있고, 이것이 하나입니다.
다만 아까 말씀처럼 전체를 한 번에 표현 할 때는
법신 그러는 것이고,
부처님 가운데 들어있는 공덕을 의미할 때는 보신 그러는 것이고,
현상적(現象的)으로 우주만유(宇宙萬有)를 나투고
일체모두를 생성하는 그런 면에서는 화신 그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법신은 체(體)라고 말하고,
보신은 상(相)이라고 말하고,
즉 말하자면 일체 공덕상을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또 화신은 용(用), 활용(活用) 이것은 활동한단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둘이 아니고 셋이 아니니까 합해서 말할 때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비단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부처님뿐만 아니라
어떤 부처님이나 삼신(三身)을 겸해 있습니다.
그러면 가령 컵 이것은 무엇인가?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바로 부처일 바에는
컵도 부처 가운데 들어 있어야 합니다.
강도나 누구나 티끌 하나도 부처 가운데 안 들어 있으면
참다운 부처가 못됩니다.
한 물건도 버릴 것도 없고 한 물건도 취할 것도 없습니다.
컵 이것도 모양은 컵이지만은 저 깊이 들어가면
끄트머리는 보신·법신이 나옵니다.
화신에 있어서 컵이요, 마이크요 뭣이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내용에 있어서는 똑같이 보신·법신입니다.
개미 한 마리나 독사 한 마리나, 독사도 역시 파 들어가면
그 본질(本質)은 역시 보신·법신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문제가 근본적(根本的)으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불타관(佛陀觀)>
따라서 우리는 불타관(佛陀觀),부처가 무엇인가?
불관(佛觀)하는 이와 같이 우리 영상에다가 못 박아 두어야 합니다.
나까지 포함해서 너까지 포함해서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부처의 몸을 한 번에 말할 때 법신인 것이고
법신 가운데 들어있는 모든 공덕이 보신인 것이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일체 현상이 화신이란 말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첫댓글 육군비구는 굉장히 거칠고 요새 말로 하면 깡패 중인 셈이다.~
삼보: 불(佛)·법(法)·승(僧)이라~
귀명삼보(歸命三寶) / 청화 큰스님~ 감사합니다.^
삼보님께 각 3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