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약자복지를 주요 복지정책의 방향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도 지난해 민선 8기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면서 약자동행을 서울시정의 주요 가치로 삼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약자복지가 무엇인지? 누구를 약자로 정의하고,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을까?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나 덜 발전된 국가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약자를 보호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단지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약자를 정의하는 바가 다르고, 그들을 지원하는 수단과 방법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2023년 대한민국의 약자는 누구인가? 우리나라는 2017년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진입했고, 지난 20년간 보편복지 기초하에서 사회보장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고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기존 복지제도로는 대처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위험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위험에 취약한 계층들이 대거 복지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지만 제도가 미비하여 사회보장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집단과 실업이나 폐업, 부채 등으로 급격히 취약 상태로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차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고령화, 불안정 고용 확산 등 새로운 사회위험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소극적인 접근으로 복합적이고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각지대 발굴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약자가 누구인지를 재정립하고,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다차원적 취약성
장기간의 코로나19로 인해 고용불안정, 소득감소, 삶의 질 하락, 우울 증가 등 전반적으로 생활을 위협하는 요인이 커졌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위험은 취약한 계층일수록 더 혹독하게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염병과 경제 위기가 각각의 인구 집단에 서로 다른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미 높은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에 직면하고 있는 청년층, 사회보장제도 접근성이 낮은 여성, 자영업자, 임시고용 근로자,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보호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코로나 19 사태의 취약계층으로 규정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고물가와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경제적 한계치에 달한 한계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이들이 직면한 위험을 완충해줄 사회보장제도는 없다.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2012년 153.9%에서 2020년 200.7%로 지속 증가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미국(101.1%), 스페인(106.8%), 프랑스(127.2%), 영국(147.7%) 등 OECD 주요 국가들 중 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높은 편이다. 2021년 서울시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서울연구원의 ‘2022년 서울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간 가처분소득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가구가 16.1%, 여기에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는 4.6%로 조사됐다. 특히 DSR이 40% 초과한 가구 중 연소득 5000만~1억 원 미만인 가구가 45%나 되는데 이들은 소득 측면으로만 볼 때는 중위소득 100% 이상 가구로 통상적인 취약계층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경제적 취약상태에 있는 것이다.
개인이나 가구가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돌봄, 주거 등으로 점점 확장되면서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인 가구들은 위기 직면 시 공적지원 대신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높고, 과거 경제·정서적 측면에서 일차적인 충격흡수 역할을 해왔던 가족 영역이 축소되면서 중산층까지 다차원적인 사회적 위험에서 취약한 계층이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사회이동성이 약화되고 빈곤과 불평등의 고착화가 심화되는 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7∼2015년 평균 빈곤진입률이 7.06%인데 비해 빈곤탈출률이 6.81%에 불과하고, 빈곤유지율은 86.13%나 된다. 이는 빈곤상태에 빠진 가구가 다시 재기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은 소득획득 기회의 측면에서 개천용불평등이 커지고 있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OECD 사회이동 보고서’에서 경고한 ‘끈적끈적한 바닥(sticky floors), 끈적끈적한 천장(sticky ceilings)’ 문제가 우리 사회에도 깊이 반영되고 있다. sticky floors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계층 사다리를 오르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sticky ceilings은 최상위 계층 집단이 기회 사재기 등을 동원하여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약자를 정의하는 것은 더 많이 취약한 사람을 찾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에 ‘취약성’을 밝히고, 현행 사회보장제도가 포용하지 못하는 계층을 촘촘하게 진단하는 작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정부가, 공공이 나를 약자라고 규정하고 돕겠다고 하면 반길 수 있을까? ‘약자=요보호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사회적 약자’라는 용어에 대중은 낙인감을 느낀다. 약자복지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로 약자와 비(非)약자 이분화, 수급자 낙인화, 복지 대상 축소 또는 선별복지로의 회귀 등에 대한 비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 약자복지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새롭게 개념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누구나 생애의 특정 시점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는 ‘보편성’과 ‘연대’를 강조하는 철학적·이론적 근거하에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과 사회적 위험에 대한 취약성을 우선 밝혀나가야 한다.
약자에 대한 재정의와 약자복지정책의 방향
현재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재정의는 과거 ‘구 사회적 위험(old social risks)’과 ‘신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에 대한 논의와 같은 접근방식이 요구된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생계비관형 사건을 진단해보면, 전통적 경제 취약계층은 아니지만 가정 내 건강·돌봄 욕구, 부채 등 복합적인 문제가 결합되면서 발생한다. 따라서 노인, 장애인, 아동 등 대상적 범주화보다 ‘욕구에 따른 범주화’로 정의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위험 요인은 표준화된 제도 틀로 새로운 사회적 약자를 대상화하기 어렵고, 새로운 약자 대상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위험하에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연대적 관점으로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취약성을 인정하고, 누구라도 곤궁·배제되지 않도록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전 생애에 걸쳐서 촘촘하게 구성하는 것이 약자복지의 정책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약자에 대한 지원을 두텁게 하면서 최근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취약성을 지닌 ‘새로운 약자’로의 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약자복지의 정책프레임으로 하여 약자를 발굴하고, 지원방안을 모색해 보자. 즉, 누구나 언제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기조 아래 다차원적 위험에 포괄적으로 접근하되, 지원은 통합적·개인 맞춤형으로 접근하여 약자복지를 실현해 가는 것이다.
약자복지의 대상은 기존 제도 내 사각지대와 기존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제도 밖 약자 또는 경제적 한계가구들, 경제적 취약계층이 아니더라도 다차원적 욕구로 지원이 필요한 대상, 일상적으로 자립해서 살아왔으나 특정한 상황에 놓여 긴급 지원이 필요해진 이들을 약자복지 정책의 우선적 대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최근의 사회적 위험과 취약계층을 몇 가지 유형으로 정의해 보면, 경제적 변화에 취약한 한계가구들로 특히 물가상승과 공공인상 요금 등으로 부채부담이 크게 늘어난 가구들, 생계형 과다채무자들이다. 가족구조 변화와 돌봄, 경제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가족돌봄 청년, 자립준비 청년, 1인가구와 독거노인, 은둔·고립층과 같은 고립 집단의 문제이다. 그리고 기존 취약계층으로 정의되지만 제도 경계에 있어서 지원이 안 되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사회보장체계에 적용되지 못하거나 포괄되지 못하는 집단,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제도가 대처하지 못해 위기에 쉽게 노출되는 취약계층을 포착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약자복지의 추진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복지타임즈(http://www.bokji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