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때도 그랬겠지만 오늘(서울로 돌아온 토요일)따라 유난히,
집에 돌아가면 냉장고 안에 있는 수박을 먹어야지. 여행 내내 그토록 목이 타게 먹고 싶었던 수박을 세상에서 제일 시원하게 먹어야지! 하는 기대감과 어서 빨리 도착하고 싶은 조급증에 그리 많은 시간이라고 할 수 없는(군산에서 서울까지 기껏해야 2시간 40분 버스 거리)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런 내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은 웬일인지(교통사고가 난 건지, 앰블란스가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등),
‘용인’ ‘수지’를 지나면서 차가 서 있다시피 하더니 평소보다 40여 분 늦게 서울 강남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물론 군산에서도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까지 돌아올 생각도 해보았지만, 바쁜 마음에 그리고 피곤했던 몸이라, 더구나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자전거를 지하철에 태울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연착 시간만큼이나 초조하게 바로 지하철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타긴 했는데,
여행 중 가방(개나리 봇짐)을 자전거 뒤에 실었던 것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거워서 지하철 선반(맨 끝 칸, 끝 부분)에 내려놓은 게 실수였다.
3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 ‘약수’역에서 6호선으로 바꿔 타려고 내린 뒤,
거기 승강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통로에 내린 뒤 이제 다시 계단을 자전거를 들고 내려가려는데,
어? 하고 놀랐던 건,
내 등이 가벼웠고 손을 대보는 순간,
아이고! 하며, 짐가방을 지하철에 놓고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하철을 바꿔타는 것만을 신경 썼지, 그래서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에서 내린 것만을 신경 쓴 게, 거기 선반에 올려놓았던 가방은 잊어버렸던 것으로,
그 옆에 있던 ‘만쥬’가게에,
아줌마, 여기 역무원실이 어디죠? 하면서, 제가 방금 타고 온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려서 그걸 신고해야 하는데, 이 자전거 여기다 좀 놓고 갔다 와도 됩니까? 하고 급하게 묻자,
여기다 놓고 가시면 안 돼요! 하면서도, 요 옆이에요, 바로 조금만 가면! 하고 가르쳐 줘서,
자전거를 끌고 역무원실에 갔다.
거기 노크를 했더니, 두어 차례 노크를 해서야 나온 한 50대 직원에게,
제가 조금 전 떠난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요. 하고 급하게 얘길 하자,
일단 들어오세요! 하며 문을 열어줘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좀 더 자세하게 묻기에,
예, 맨 뒤 칸인 10-4(자전거를 끌고 오느라 거기 자전거 표시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칸 맨 뒷자리 선반에, 붉은색 가방인데요...... 하자,
무슨 가방요?
백 팩요! 하고 알려주었더니,
그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그 얘기를 했고, (언뜻 듣기에, ‘독립문’ 역이라고도 했고),
그 쪽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하기에 그 옆의 탁자가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나는 멀뚱하게 그 탁자에 있던 신문을 넘기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오는가 싶더니, 뭔가 잘못 된 듯 그가 또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고,
근데, 왜 나에겐 그 어떤 설명도 안 해준다지? 하는 불평이 일었지만, 꾹 참고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다가,
제가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하고 묻자,
아까 전화를 걸었던 지하철엔 그 가방이 없다고 해서, 그 전에 지나간 지하철에 다시 전화를 걸었으니, 거기서 그 가방을 발견할 건지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하니 좀 더 기다리세요. 하고 그제야 가르쳐 주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나는,
진작에 가르쳐주었다면, 일단 내가 그 지하철을 바로 뒤 쫓아갔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어차피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뒤 나갔다면, 나는 지금쯤 그 지하철을 쫓아가고 있을 테고, 그들이 발견만 한다면 어느 역에서 내리라는 말만 해도, 그만큼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하는 나 편리할 대로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초조했던 시간이 더 지나고 다른 전화가 왔는데,
전화를 받던 그가,
‘녹번’역이라고요? 하기에,
벌써?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를 끊던 그가,
지금 그 가방을 ‘녹번’역에서 찾아서 거기 역무원실에 갖다 놓겠다고 했는데, 지금 당장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찾아가시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지금 당장 가야지요! 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세요. 했는데,
그럼, 이 자전거는요? 하면서, 제가 어차피 이 역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가져가야 하니, 여기다 좀 맡겨놓고 가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더니,
그건 안 되는데요! 하는 걸로는, 굳이 그런 책임감을 지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어서,
인정머리 없는 것들! 하는 불만을 하면서도,
예,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남기면서 그 역무원실을 나왔다.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다시 걸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그 다음에 도착한 지하철 맨 뒤칸으로 간 뒤(그러면서 한 대를 그냥 보냈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린 뒤에 타게 되었다.
아이, 이게 무슨 꼴이람! 하는 자책이 아니 들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말이다. 다 내 탓이고, 나이 먹어가는 탓이니! 하면서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지하철 역을 세어 보니 딱 열 정거장이었다.
빨리 가기도 했네! 하면서도,
그나마 이렇게라도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지하철의 시스템’에 감사를 드리기도 하면서,
길기만 했던 열 정거장의 지하철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녹번’ 역에 도착해, 자전거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타는 곳에 오르니,
거기에 한 노인(자원봉사자)이 앉아 있기에,
여기 역무원실이 어딥니까? 제가, 지하철에 물건을 놓고 내려서 찾으러 왔는데요...... 하자,
그 자전거는 거기다 세워놓고 몸만 나오세요. 조금 있다 다시 들어가면 될 테니까요. 하면서 나를 안내해주었다.
그래서 일단 개찰구를 나갔고,
그 길로 역무원실에 갔더니,
들어가자마자 거기 분실물 놓은 곳에 내 자줏색 백 팩이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네요! 하고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거기 ‘공익근무원’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가방을 꺼내주면서,
내 전화번호와 신분증을 요구해서 그걸 보여주고는, 가방을 찾아 이번에는 등에 메고 그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반대편의 지하철을 타고, ‘약수’역에 내려 아까 분실물 신고를 했던 역무원실을 지나,
긴 계단을 자전거를 들고 걸어내려(에스컬레이터에 탈 수는 없었다.) 두 계단을 내려, 6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2시가 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두 시간 정도를 지하철을 타고 헤매다가 겨우 도착했던 것으로,
그 시간에 아예 강남 터미널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 둔치를 달려 돌아왔던 것과 거의 같은 시간을 잡아먹힌 뒤의 귀가였던 것이다.
아이, 시간을 아낀다는 것이 결국은 이런 꼴이 되었구나! 하면서,
그제야 점심을 짓기 위한 쌀을 물에 담가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목을 태우며 기다렸던 수박은, 그 바로 즉시는 먹을 수가 없어서,
짐 정리를 대충 끝내고 점심을 해서 먹은 뒤에야 입에 넣을 수 있었는데,
1주일 여 냉장고 안에 방치돼 있던 것이라서 그런지 약간 신 맛이 느껴지는(완전히 상한 건 아니었지만 뭔가 그런 조짐이 있는) 상태였다.
- 후유증 -
그렇게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통째로 집에서 쉬기만 했다.
그런데 물론 다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욱 더(나이 탓이겠지만), 그 후유증이 심한 것 같다.
얼굴이 팅팅 부은 건 기본이고, 몸이 부대껴서 깊은 잠을 잘 수 없고,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무슨 놈의 꿈을 그리 꾸어대는지(어딘가 자전거를 타고 멀리 떠나가는),
두세 시간 만에 깨어난 잠으로 몇 차례 깨어났다 다시 잠을 청하곤 하는 잠시간을 보내면서도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가 않아 천근만근이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다녔던(운동의?) 효과인지, 허리의 근육이 좀 보강된 느낌은 없지 않아,
의외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의 허리 통증보다는 상당히 가벼운 몸놀림을 하고 있는 나다.
첫댓글 나이 탓입니다. 앞으로 지하철을 탈 때는 절대 선반에 물건을 올리지 마세요.
나도 한 번 당하고 부터는 선반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큰 일이에요.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