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올린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 ‘서문’을 읽고 생각나는 것이 있어 몇 글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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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도덕, 주체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의 그와 같은 요청에 도덕성으로 응답할 수 있지만 그 도덕성이 인간에게 내재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조건이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그 현실적인 조건은 생존을 위한 경제 문제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도덕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낳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자본가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 토대의 문제다. 이윤을 낳아야 생존할 수 있기에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경제 토대에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기보다 수단화하는 감각과 의식은 자본가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감각과 의식에 의해 형성되는 상부구조(도덕 법 정치 과학 예술 관념)의 성격을 규정하거나 결정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도덕적인 인간들이 현실에 존재한다고 혹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경제 토대가 그럼에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경제와 의식의 불균등한 발전이나 그에 따른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 상부구조의 반작용이라는 감각이나 의식의 능동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한 의식의 능동성에 의해 가능한 도덕성도 관념이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든 도덕성이 경제적 토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이하 가라타니)이 “도덕성의 계기는 교환양식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상부구조의 능동성이라는 관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공동체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증여의 교환양식’이라는 경제 토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가 세계공화국이나 국가연방과 같은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겠다. 가라타니가 주장하는 자본=네이처(공동체)=국가(스테이트)의 관계를 상호작용하는 지양의 관계로 그러해야 할 관계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가라타니 자신도 묻고 있듯이 ‘강대국의 군사적 주권의 증여 가능성’ 문제를 비롯해 네이처와 국가가 자본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지양의 관계일 수 있는 조건은 ‘증여의 교환양식’일 텐데 그 ‘증여의 교환양식’으로 자본 및 국가와 상호작용하는 지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자본이 무한 이윤 증식 운동을 하다 이윤율의 저하를 극복하려 전쟁으로 붕괴하거나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소수의 인간만이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도래를 예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의 의식적인 반작용에 의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조금 늦추거나 인간들이 받을 고통을 조금 완화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들의 반작용에는 가라타니가 주장하는 ‘증여의 교환양식’에 기반해 세계공화국이나 국가연방을 세우는 것도 있겠다. 그와 같은 교환이나 분배의 문제를 넘어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적 대립이 없는 국가를 지구 곳곳에 세워나갈 수도 있겠다. 그럴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으로서의 도덕성이 ‘증여의 교환양식’에도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태를 인식하고 지양하려는 능동적인 행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26.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