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1일 문장만들기
1. 고드름
치맛단에 장신구처럼
지붕아래 늘어진 고드름
시간되면 사라지는
신데렐라의 옷인가
햇빛이 깨는 마법에
속절없이 물이 되고 마는
수정 고드름
2. 고백
꽃반지를 만들었습니다
지천에 토끼풀 꽃 많지만
탐스럽고 깨끗한 것으로 골랐어요
당신은 초록
꽃반지의 주인
나는 초록이 기대는
언덕이 되고 싶어요
3. 빵조각
빵조각을 비둘기에게 던진다
냅다 달려드는 비둘기
나도 비둘기처럼 떨어진 빵조각을
덥석 무는 때가 있다
무분별한 정보를 흘려보내는 매체들
나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간사한 자들
초콜릿처럼 달콤한 유혹들
곳곳에서 빵조각들이
나의 어리석음을 기다리고 있다
4. 안개와 바람
도로에 자욱한 안개
어스름 속의 사냥꾼처럼
붉은 눈을 켠 차들
지독한 근시의 세계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안개를 휘젓는 바람
새벽이 열린다
5. 영혼이 돌아오는 소리
새벽에 눈을 뜬다
미물들이 깨지 않은 고요한 시간
밤새 앓던 당신의 고요가
순간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어두운 우물 속에 두레박 내리듯
당신의 깊은 숨을 엿본다
흐읍 후 흐읍 후
고른 숨소리
세상과 연결된 두레박을
단단히 붙잡고
영혼이 돌아오는 소리
6. 앞마당
마루에서 대문까지 삼십 보
대문 옆의 목련에 맺힌 꽃망울
목련꽃 피는 것은
앞마당 삼십 보가
봄으로 채워지는 것
꽃단장한 봄 처녀
사뿐이 마당 건너오는 것
7. 염불소리
영산강변의 갈대
바람에 모로 눕는다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승려처럼
가을바람의 설법에
수많은 승려가 머리를 조아리고
햇살은 환한 빛을
머리에 쏟아 붓는다
챠르르사사삭 몸을 비비는
갈대의 염불소리
합장하는 승려들이
일시에 울리는 답가
8.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가 낮다
켜켜이 쌓인 시루떡의 아랫단처럼
목소리가 짓눌려 사라질 것 같다
간밤에 못된 망상에 시달린 것인지
뼈마디를 쑤시는 시름에 잠 못 든 것인지
목소리가 당신의 몸을 담고
내 고막에 상(像)을 그린다
눈가와 이마에 주름을 잡고
허리를 숙인 채 바닥을 보고 있을
9. 트럭들
고속도로를 트럭이 달린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처럼
물건들을 싣고 달리는 트럭
콘테이너를 싣고 항구로 가고
배추를 싣고 도시로 간다
날쌔게 달리는 승용차가
트럭을 앞질러 간다
태어나자마자 품에 품고 달려
저 살 곳을 트럭이 데려다 준줄
기억도 못하고
물류의 기저가 된 트럭들
적혈구처럼
도로를 붉게 수놓는다
10. 눈망울
국화꽃을 보고 있네요
이른 첫눈에 채 다 못핀
노란 국화
기도를 멈춘 소녀처럼
떨고 있는 그대
노란 눈망울에 아직
흰 눈을 담지 말아요
그대 눈망울의 경계가
선명히 빛나도록
양지를 끌어올 테니까
11. 엿가락
일요일 창밖에 눈이 내리고
점심을 마친 배부른 네 식구
바닥에 이불을 펴고 엿가락처럼
늘어질 대로 늘어진다
TV는 계속 채널이 바뀌고
엿가락들은 나란히 키재기를 한다
12. 얼음 부서지는 소리
얼음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려면
정을 들고 망치질을 하면 된다
만약 당신이
마음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려면
입을 열어 본질을 깨우치는
말을 하면 된다
얼음 부서져 아름다운 조각이 되듯
마음이 깨져야 열리는
새로운 세계
13. 눈 내리는 골짜기
눈 내리는 골짜기에
찾아온 손님
쌓이는 눈에
잃어버린 발자국
사라진 길
졸졸졸 골짜기 물에
목을 축이고
새 길을 나서는
산에서 온 손님들
14. 노을녘
아버지 경운기 소리가 들리면
황구는 짖으며 동구 밖으로 달려간다
서산에 해가 기울고 엄마 손은 바쁘다
15. 비행기가 날아가던 자리
언덕에 올라 밤하늘을 바라본다
어린 시절 하늘 가득했던 별들
어디로 갔나
반짝이던 별을 대신하듯
불빛을 깜박이며 비행기가 날아가고
그 자리 어둠으로 되돌아간다
어둠 건너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건만
16. 단단한 당신
북을 치며
사철가를 부른다
백발성성한 당신이
어화 세상 벗님네들에게
따르는 술 한 잔
당신의 세월이
고봉으로 차오르고
단단한 당신이
내 목을 적신다
17. 잔물결이 다가온다
호수 가운데에서 시작된 물결이
호숫가까지 잔물결 일듯
군중 속의 촛불 하나
우리들 가슴에 불을 켠다
상전벽해의 시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자
뒤집어 버릴 태풍을 끌고
잔물결이 다가온다
18. 오래된 문서
너는 오래된 문서
나의 과거를 기록하고
현재를 같이하며
묵은 향을 쌓는다
힘든 날이 오면
서로 곁을 지키고
좋은 날에는 아낌없이
서로를 축하할
넌 나의 오랜 친구
19. 저울질
사람의 가치를 잰다
전당포의 주인처럼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손익의 분기점을 놓고
수없이 해대는 저울질
아무리 귀한 마음도
돈 한 장 해볼 수 없다
나도 저울질 한다
누구나 같은 무게로 시작된
그의 시간과 역사를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편견의 시작점이다
20. 내 껍데기
산을 오른다
어제의 나를 만나고 싶었던 나는
접점이 엇갈렸다
나를 두고 내려온다
어느 날 나를 찾을 너를 위해
수많은 접점에서
순간 마주칠 수 있기를
이제 나는 껍데기
다시 산에 올라 나를 찾기까지
나인 척 최선을 다할 내 껍데기
카페 게시글
회원 과제물 방
1월 11일 과제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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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2
21.01.18 01:4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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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