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국기 중국 오성기(오성홍기)
중국국기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36조에 의거하여 '오성홍기(五星紅旗)'
라고 부릅니다. 빨간 바탕에 있는 큰 노란 별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및
중국공산당을 나타내며 작은 별은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당시 노동자, 농민,
지식계급, 애국적 자본가의 4계급으로 성립된 국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성기(오성홍기)의 빨간색은 혁명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색갈이고 별의
노란색은 중국 인종인 황인종을 나타냅니다.
오성기(오성홍기)는 가로 세로 비율이 3:2 입니다.
오성기(오성홍기) 공모당시 약 3000점의 도안 중에서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현재의 기를
국기로 선정하여 10월 1일 제정하였습니다.
중국 국기인 오성기(오성홍기)도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처럼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겪으면서 아픔이 많지만
중국도 아편전쟁 및 외세침략으로 아픔이 많아 국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많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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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기는 오성홍기(五星紅旗)이다.
붉은 바탕에 노란색의 큰 별 하나와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작은 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의 큰
별은 중국 공산당을 상징하고 나머지 네 개의 별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있는 노동자, 농민, 도시 소자산 계급, 민족자산 계급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의 유래에 대해 마오쩌둥이 1949년 중국공산당 창당28돌을 기념하여 인민일보에 기고한 인민민주독재를 논함이라는 논문에서
프로레타리아 계급이 중국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네 계급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국정경문화원]--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석연치 않은 해석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부르주아 계급으로 타도의 대상이지 결코 연합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성기(五星旗)에
들어있는 별의 개수에 맞추기 위해 지어진 억지 해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래 중국의 오성홍기의 유래는 현재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대륙을 광범위하게 지배하던 고대 환웅천황(桓熊天皇)시대 환웅(桓熊)을 우두머리로 하고 그 아래 네 개의 부서와 5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던 우리민족의 통치체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것을 중국이 별 다섯 개에 맞추기 위해 공산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자본가
계급을 포함시켜가며 현재의 중국 상징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대 우리민족의 통치체계에 대해서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진본으로 인정을 받은, 조선시대 숙종(肅宗) 2년 을묘(乙卯) 3월에 북애(北崖)라는 노인에 의해서 쓰여진, 상고사(上古史) 책인
규원사화(揆園史話)의 태시기(太始記)에는 환웅(桓熊)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이름을 신시씨(神市氏)로 하였으며,
치우씨(蚩尤氏)에게 초목과 금수, 벌레, 물고기 등을 다스리게 하였고, 고시씨(高矢氏)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일 즉 곡식을 주관하는 일을 맡도록
하였으며, 불을 얻어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전하였다.
그리고 신지씨(神誌氏)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였으며, 주인씨(朱因氏)로 하여금 남녀간에
장가들고 시집가는 법을 정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후세에 치우씨·고시씨·신지씨의 후예들이 가장 번창하여 융성하였다.
치우씨의 부족은 서남의 땅에 자리를 잡았고, 신지씨의 부족은 북동의 땅에 많이 정착하였는데, 오로지 고시씨의 후예들만이 동남쪽에 넓게 거처하다가
더욱더 이동하여 변진(辰弁)의 뭇 부족들이 되었으니, 후에 삼한(三韓)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모두 그의 후손들이다.”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주인씨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북서쪽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으로 보아 그곳이 주인씨의 후예들이 다스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규원사화의
이와 같은 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고대 환웅시대의 통치체계가 신시를 중심으로 하여 환웅천황 즉 신시씨를 우두머리로 치우씨, 고시씨, 신지씨,
주인씨 등의 성인(聖人)들이 중요 직책을 맡아 다스림과 동시에 각 지역의 제후(諸侯)로써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환웅천황시대는
관직체계도 신시씨를 중심으로 4개의 부서체계와 지역도 신시와 각 제후들이 다스리는 4개의 지역 즉 5개의 연방국가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바로 오성의 상징체계이다.
중국의 오성홍기가 상징하는 별이 중국인들이 말할 때는 노동자, 농민, 소자본 계급,
민족자본 계급이라고는 하지만 원래의 유래는 대륙을 광범위하게 지배하던 환웅천황시대의 통치체계를 모방하여 오성홍기를 창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오성기의 통치체계는 장차 또 다시 우리민족의 통치체계가 될 것으로, 현재 대륙에 광벙위하게 흩어져 있는 우리민족 즉
몽고반점 민족(몽골리안)이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합이 이루어진 후의 국가의 구성체계가 될 것이다.
우리민족 즉 몽골리안의 통일이 이루어져 5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를 이루어 대륙을 광범위하게 지배할 때 몽골리안 연방국가의 상징기로써 오성의 체계를 갖춘 국기가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규원사화가 한단고기와 같은 위서가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단고기는 필사하여
전해진 책만이 있을 뿐 진본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서여부를 문제를 삼을 수 있지만, 규원사화는 현재까지 여러 종류의 필사본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숙종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인정을 받은 상고사 책입니다.
그럼에도 위서여부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사서도 사학계에서 설자리가 없을 것이며 일제시대에 왜곡된 반도사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민족의 상고사에 대한 사료가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침략을 받으며 거의 유실되었지만, 중국은 우리민족 고대사의
주무대이기도 하였으며 우리의 고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들이 지금까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