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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다니엘 6:1-15】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말씀 선포: 들어가는 말】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는 직장 생활에서도 예외 없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미국 젊은층 사이에서 '조용한 그만두기'(Quiet Quitting)가 새로운 직장 생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업무 성과에 매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내 몫 만큼만' 일하겠다는 것으로,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저녁이 있는 삶’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그만두기'는 직장을 아예 떠나는 퇴사부터, 소극적인 근무를 통해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유형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직무 범위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정시 출·퇴근을 하고, 점심시간 내 온전한 휴식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현 사회에서 내가 맡은 필수 업무를 등한시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가 어릴 적에 들은 설교 중에 세상의 일은 악하고 교회의 일은 선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등한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심한 경우 회사일은 최소한의 노력만 보이고 교회일은 열심을 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무척이나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행동이 믿음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자랑하기까지 했으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잘못한 줄도, 미안해 할 줄도 모르는 이 한 사람으로 인해서 주변의 직장 동료들은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회사 일이 때로는 급한 일로 인해서 퇴근 시간 이후에도 해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열심인 사람은 회사일은 나 몰라라 팽개쳐 놓고 교회로 향합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요즘 떠오르는 '조용한 그만두기'(Quiet Quitting)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경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높은 이 시대 타인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언행을 지속한다면 자신은 신앙의 만족함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직장동료들을 전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또는 학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자세로 생활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복음을 전할 때도 마음을 열어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신앙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장애물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학생인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친구와 한 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조 모임 과제를 하다 말고 교회 갈 시간이라고 벌떡 일어나 가버립니다. 나머지 친구들이 이 사람이 해야 할 몫까지 마무리하여 조 모임 과제를 제출하였습니다. 과제를 제출하면서 다른 학생들은 과제하다가 말고 간 친구의 이름을 꼭 넣어야 하냐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번번이 만들어 낸 그 학생이 친구들에게 우리 교회 목장 모임에 가자고 한다면 그 초청에 응답할 친구가 있겠습니까?
나 때문에 교회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족시키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상의 삶과 신앙생활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번 주에 나눈 것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일상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표현하였습니다(롬12:1).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린 후 세상으로 나가면, 예배드리던 나와는 다른 또 다른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삶으로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일상이 예배가 되는 성결한 삶을 결단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는 예배자의 일상은 얼마나 흠이 없는지 대적들이 흠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도 충성되게 수행하여 그가 근무하는 동안 태만이나 게으름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4절에 보면,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청렴결백한 삶은 대적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총리들은 왕의 권한을 가지고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주 업무는 자신이 맡은 행정구역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들여 왕에게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그가 가진 권력으로 얼마든지 치부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일절 착취하지 않았으며 그의 삶에서 그 어떤 부패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을 수행하는 역량도 뛰어났습니다.
그의 능력은 왕이 인정하여 바벨론 세 명의 총리들 중에서 으뜸으로 세웠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갈대아 왕 벨사살이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임명할 정도였으며, 바벨론의 온 지방을 다스리며 모든 지혜자의 어른으로 활동하였던 다니엘은 메대 왕국에서도 2인자의 자리에 올라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포로의 몸이었지만 세상의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총리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입니다.
다니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날마다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는 유대 관습에 따라서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을 다 열어 놓고 기도하였는데, 그가 기도하는 방은 지붕 위에 있는 윗방으로서 시야가 트인 방이었습니다. 즉, 외부에서도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 습관이 대적들의 표적이 되었고, 올무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대적들은 30일 동안 왕 이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기도한다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건의하여 왕의 조서를 작성하고 왕의 도장을 찍어서 수정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왕에게 금령을 상기 시키고 다니엘이 하루 세 번 기도한다는 것을 고발하여 왕이 어떤 방법으로도 다니엘을 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총리였기 때문에 왕의 조서에 이러한 글이 기록된 것도 왕의 도장이 찍혀 수정 할 수 없는 금령으로 전파된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드러내 놓고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에 하던 대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서의 기한인 30일만 기도를 멈추었다가 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누가 보이지 않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이 다니엘에게도 분명히 찾아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단호하게 그 유혹을 끊어내고 전에 하던 대로 드러내놓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행동은 미련하고나 무모해서가 아닙니다.
다니엘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포기 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름을 개명당하는 것도 감수했습니다.
고국을 떠나 포로 신세가 되어 타지에서 살아야 하는 아픔도 감수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죄로 이런 저런 치욕과 모욕을 당하는 것도 감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담대하게 실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날마다 세 번 규칙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자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규칙적인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다니엘은 이 기도의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의 통로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음 앞에 담대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이 기도에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기도를 포기하거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 있어서 주일 성수는 성도로서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디를 갔더라도 주일 성수를 위해서 토요일이면 꼭 집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심지어 죽어도 교회에서 죽겠다는 결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급하게 병원을 가야해도 예배를 드리고 가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예배는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우둔해 보일지라도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예배에 대한 열심은 정말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믿음을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여러분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이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회생활하면서 타인과 함께 하는 일하는 과정에서는 내가 양보하고 포기하여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어떤 손해를 감수하도서라도 믿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즉,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을 증거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그 일이 우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경우에 일이 우상이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 하나님 보다 더 신뢰하는 것은 모두 우상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라면 생계나 학업도 우상이 되고, 부모 자식도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내 육신의 안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면, 내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통해서 내 욕심을 이루는 일에 급급하고 그 일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일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함에 있어서 조금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보다 자신의 유익이 먼저라는 증거입니다.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영업자들이 주일에 영업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영업하지 않는 그 시간 동안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영업하지 않음으로 손해 보는 것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재물 외에도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친밀한 관계를 흔드는 것 중의 하나가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을 세우다가 교회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제 아내는 저를 만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아내는 교회 나가기 싫어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그렇더라도 어떻게든지 아내의 기분을 풀어서 교회에 나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미루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내 자신이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혹시라도 가족 중에서 나랑 싸워서 교회를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즉시 가서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과 한 생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내 자존심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우리가 성도로서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우상이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것 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윗방 창문을 활짝 열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하나님과 약속한데로 하루 세 번 기도하였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그 어떤 타협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숨기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다니엘기도회 임선주 찬양선교사가 나와서 간증하는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임선주 찬양선교사가 찬양 할 때 마다 끈질기게 힘들게 하던 어떤 알콜 중독 아저씨가, 2년이 지난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기타 가방에 있는 물티슈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예수 한번 믿어 주쇼!”라고 외쳤던 일을 간증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믿어 달라고 사정하고 다녔는데, 그 아저씨의 당황스러운 당당함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왜 나는 당당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당당하게 “예수 한번 믿어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당당하게 하나님을 자랑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자랑할 수 있습니까?
다니엘이 기도함으로 인해 사자 굴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민족을 위해 하실 일에 대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간구하고 중보하였습니다. 이러한 중보에는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이 땅의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다니엘은 그의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살던 곳은 지금 현대 병원 인근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곳에서 산을 넘어서 전대 방면으로 나와야 가장 가까운 시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가려면 ‘뽕뽕다리’라고 불렀던, 철제 타공판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묘지 근처를 지나야 했습니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저녁에는 정말 무서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나 아버지랑 함께 걸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의지하면, 세상의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라면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포로의 신분이지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어떤 후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있는 상황이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세상이 나를 향해 미련하다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하나님만은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인해서, 당장 사자 굴에 던져지는 일과 같은 고난이 우리들을 삼킬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 세상 끝날 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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