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행9:3-6)
3 As Saul was coming near the city of Damascus, suddenly a light from the sky flashed around him. 4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ing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5 “Who are you, Lord?” he asked.
“I am Jesus, whom you persecute,” the voice said. 6 “But get up and go into the city, where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목적
한 해가 갑니다.
오다가 보니 콤바인이 논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봄에 모내기할 때 농부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는 것입니다.
봄에 농부가 논에 볍씨를 내다 버렸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 모든 역사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의인으로써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대립
이 예수님을 두고 극심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도 그 사건이 터져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신 후입니다.
그 성자 예수님을 두고 싸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 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죽인 셈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 유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엄청난 대립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립의 근원을 살펴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나라를 사랑해서 내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서 내란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라를 사랑해서 내란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
그런데 벼농사를 보아도 참 이상합니다.
벼를 심어놓으면 왜 꼭 거기에서 피가 자라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것이 벼인지 저것이 피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도 똑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에도 피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짝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을 헷갈리게 하는 마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을 적대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가장 먼저 사실을 속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사흘 후 살아나셨습니다.
무덤에서 주님이 일어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시의 지도자들이 한 일입니다.
11. 여자들이 가는데, 경비병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였다.
12.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집어 주고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마28:11-13)
돈을 주고 없는 가짜 사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미리 주님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대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말이 퍼졌다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돈으로 매수를 했습니다.
마귀들은 먼저 사실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건이 났는데 그 증거를 없애는 자들이 마귀들입니다.
제가 쓰던 폰을 없애 버린 사람들입니다.
제 폰의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증거물을 물청소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첫째 작업입니다.
*바울
오늘 성경 본문에 사울이라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가 보낸 서신들이 신약 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당시 박식한 대학교수였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책을 읽고 그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많은 지식을 가졌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알아보았는데 그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사람도 살리신다는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예수님의 정보를 듣고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대단히 위험한 인물로 판정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해석
그는 예수께서 죽음마저 이기고 다시 사신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전혀 다른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31. 이 때에 유대 사람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요10:30)
그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사울 교수님의 조직신학에 따르자면 육신을 입은 주제에 자신을 조물주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기적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입장에서의 해석은 예수님께서 얄팍한 기적으로 사람을 홀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기적 행위가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속아넘어가는 방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위기 의식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옆 사람 따라서 돌을 들고 치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앞장서서 메가폰을 들고 사람들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정확한 사실을 근거하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바른 해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소명감
그는 예수님을 더 위험한 인물로 알고 소명감을 가지고 믿는 사람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가 기독인들을 핍박하러 갔던 곳은 지금의 다마스커스입니다.
거기에 많은 기독인들이 피신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300km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10여 일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수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핍박
그런데 바울의 길을 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소개한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소개하시겠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분
혹은 하나님의 아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3 As Saul was coming near the city of Damascus, suddenly a light from the sky flashed around him.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4 He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ing to him, “Saul, Saul! Why do you persecute me?”
그런데 사울의 앞을 막고 있던 그 분이 바울을 향해서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죽으셨던 분이 이런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나실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5 “Who are you, Lord?” he asked.
“I am Jesus, whom you persecute,” the voice said.
그래서 다시 주님께 누구시냐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 분은 일관되게 너에게 핍박을 당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사울 앞에 나타나신 분은 나약한 사람에게 핍박당하시는 영적 존재이셨습니다.
여러분이 핍박을 해도 핍박을 당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핍박을 그대로 감수하시는 분입니다.
*관계
세상에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요구할 때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주도에서 목회를 할 때입니다.
한 집사님의 아들이 집을 나가고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어린 자식이 집을 나간 후 10여 년 소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이 혹시 돌아올지 몰라서 이사도 못 갔습니다.
집을 고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에 아들이 유리 창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 어머니
집사님은 아들이 또 집을 나갈까 보아 그것만 걱정했습니다.
돌아와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주님은 이런 분이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인생을 다 보내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하나님은 한 마디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하면 모든 것이 다 ok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핍박을 당하시면서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6 “But get up and go into the city, where you will be told what you must do.”
그렇게 믿는 사람 감옥에 잡아넣으려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울에게 사도들을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과 바울의 대화가 한 5분이나 되었을까?
아니면 더 짧은 시간이었을까?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180°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사울은 자신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러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불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씀을 전하는 이유도 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람에서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과의 그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도 마치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 분은 그 분에게 돌아가면 잔치를 베푸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