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트루사 29차 총회- 문은희 소장님 인사말>
행사 때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는 해도 잘 해봅시다.” 하는 말을 하는 이 마지막 순서에 한 마디 말만 하면 됩니다. 행사를 이만큼 펼쳐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모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얼마나 골치 아프게 바빠야 하는 지 잘 압니다. 그런데 아무도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자원해서 궁리하고, 의논하고, 협력해서 이렇게 번듯이 해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달갑게 애쓴 모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모람들 스스로 자신을 그만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놀랍니다. 엊그제 심리학교실에서 유선희님이 자신의 놀라운 깨달음과 변화를 나만큼 흥분하고, 나만큼 놀랍고, 나만큼 감격하여, 나만큼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 새삼스레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어른들을 만나 뵈면 늘 “이렇게 몰라보게 잘 자랐구나!” 하시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이가 자기는 늘 그 정도라고 자기의 자람과 변화를 모르고 지내지만 오랜만에 보시는 어른들을 몰라보게 훌쩍 컸다고 여기시는 거였을 거니까요.
모람들의 변화에 감격하는 이 늙은이가 모람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미미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람들에게 “아우님들 이렇게 훌쩍 자라고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늙은이가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좀 아팠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응급실로 실려 다니기도 했고 아주아주 아픈데 의사들이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쓸개를 떼어내고 나서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모람들이 힘을 모아 나를 살려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자기 앞가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기 다른 몫을 함께 해내는 모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알트루사는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저마다 다른 모람들이 서로 다른 점을 믿고, 사랑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같이 살아갈 것임을 믿습니다. 점점 더 성숙하고 열심히 잘 해낼 것을 새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모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고 자랐는지 모두의 경우를 다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연구한 사람들이 연구 과정에서 엄마를 더 잘 알게 되면서 자신도 다시 보게 되고, 자신과 엄마의 관계가 바뀌어 간 것을 간단히 보고했습니다. 더 깊고 자세히 글을 쓰게 되면 아마도 읽는 이들이 더욱 감격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전달이 아쉽습니다. 앞에 유선희 이야기를 했기에 보기를 들어 조금이나마 더 생생하게 들리도록 늙은이 노릇 해 볼까 합니다. 늙은이 헛소리가 될지 걱정이지만...
오래전 유선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아주 단단한 대리석 조각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아주 완강했습니다. 그 생각이 단단한 만큼 바늘 구멍 만큼도 들어갈 수 없고, 다른 생각은 곧 튕겨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는 더더욱 낳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기 머리속에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엄마에게 받았다고 자기 나름으로 생각하는 그 ‘엄마의 영향’에 치를 떨었습니다. 소아 우울증으로 괴로웠고, 엄마가 자기에게 기대하는 길을 걷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엄마를 떠나 살기로 했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진짜 엄마가 기대하신 것이라기 보다 ‘엄마가 기대하신 거라고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려 했지만 실은 자기의 어린이답게 어리고 좁은 판단으로 설정한 자기 ‘머리 속 엄마’에 대한 헛발질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돈 벌어 술 마시고, 멋대로 논다고 자기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알트루사에 왔습니다. 그나마 자기로 제대로 건강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소망이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한 면으로만 치우쳐 엄마를 보느라고 자기도 모르고 부정해 왔지만, 실은 엄마와의 좋은 관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건강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 엄마와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를 연구하면서 같이 모여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풀어내면, 자기 혼자 생각한 엄마와 다른 모습을 모람들이 찾아내 보여주었습니다. “선희 엄마 너무 재미있는 분이다” “아주 적극적인 분이다” “큰집에 대한 비교 때문에 주눅 든 것 같지만, 엄마도 아이들도 모두 외가에서 재미있게 지낸 것을 보면, 엄마에게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돈 타령하시는 것 같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 것이라 여기셨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자꾸 들으면서 선희의 기억은 잊었던 역사를 새롭게 재생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일류대학가서 좋은 집에 시집가야한다”는 말만 하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보다 더 많은 다른 면을 보여주셨는데 그 말에 매인 것은 선희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말에만 매달려 엄마와 가졌던 다른 삶의 역사는 다 잊어버리고, 가리고, 깊이 묻었던 것입니다. 기억 하지 못하도록 아주 깊이 묻어버린 겁니다.
고만고만한 세 자매의 맏이인 선희는 엄마와 같이 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동생들은 잠을 자도 엄마와 끝까지 남아 도배도 하고 천개씩 빚는 만두도 엄마와 같이 만들기를 즐겼습니다. 엄마가 좋아서 엄마 마음에 들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엄마와 팀이 되어 움직이는 그 삶 자체를 좋아했습니다. 부지런한 엄마와 같아서 처음 알트루사에 와서 앞에 놓인 상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지금도 고만고만한 세 남매을 두고도 언제나 써야할 글도 열심히 먼저 써오는 모람입니다. 아기 안고 일인시위도 하고, 사회운동 참여도 아기 데리고 어디든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열심히 잡으러 다닌 사울이 마음을 바꾸고는 예수를 전하기에 목숨을 바친 바울이 됩니다. 엄마의 부지런하고 활기찬 삶을 닮은 선희가 술 마시고 놀기만 하는 것이 성에 찾겠습니까? 제왕절개해서 아이 낳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이 낳기도 셋으로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한 동안 엄마와 왕래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차츰 꿈에 부드러운 엄마를 보기도 하더니, 엄마 집으로 왕래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고, 엄마 마음의 판도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동화 동연이가 자기들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나도 어렸을 때 내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어머니가 그런 게 아니라고 오해를 풀어주시며 살지 않았을까?” 아쉬워합니다. 아이들에게 오해를 만들지 않게 하려는 엄마가 된 겁니다.
오늘은 선희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다른 모람들도 다 자기 이야기를 한마당 펼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의 맏딸 윤미도, 제선도 있고, 엄마와 같은 항렬이라도 되는 양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자란 가현도 있고, 엄마만큼 건강하지도 못하면서 잘난척하는 줄도 모르고 잘난 척 한 양미도 있습니다. 엄마 문제를 대신 해결하려 앞장서 나서서 설레발 한문순도 있고, 불편한 부모님 사이에서 애쓰며 나서 버릇한 (이)지영도 있습니다. 할아버지 무릎을 독차지 한 첫 손녀로 일찌감치 서울로 보내진 소외를 표현하지 못하고 엄마와 서먹해진 맏이 지연은 밀착 관계를 주저합니다. 떨어져 사시는 부모님 사이에서 무기력해진 막내 주영이 있는가 하면, 고생하신 어머니를 드러내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다며 늘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놓여나지 못한 미형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중요해서 어머니의 삶에 관심도 두지 않은 혜경이는 자기 자신에게도 무심한 것을 느끼게 되고, 훌륭하게 평생을 자기답게 사신 엄마를 알아볼 안목을 새록새록 가지게 된 윤정의 깨달음이 귀합니다. 아버지와의 치우친 관계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부모님에게서 균형된 관계를 보게 되면서 자신의 부부됨을 되찾는 은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삶의 무대의 주인공인 집에서 아프신 엄마에 관심을 찾으려는 희영과, 희미한 아버지를 건너 현실의 어머니 곁을 맴도는 자신을 보며 거리두기를 하는 선영도 보입니다. 이미 세상을 뜨신 엄마도 마음에 살아계시니 편견과 오해를 풀고 새롭게 기억을 가다듬는 미리와 은선이 있습니다. 자신의 고집을 버리지 못해 바뀜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지은, 어머니에 대한 편견을 깨우치는 (민)지영도 있습니다. 늘 곁에 계셨는데, 새삼 어머니 음성을 알아듣게 된 재오, 자기 머릿속 틀로 자를 삼아 엄마에게 들여밀었던 자신을 알고 풀어지는 혜민은 이제 둘째를 낳아 물렁한 엄마가 됩니다.
그 밖에도 모두들 자기답게 바뀌고 자라며 건강하게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취하는 것에만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과 이웃의 마음에 열심히 귀기울이고 함께 살아가는 데도 부지런해야 하겠습니다. 알트루사는 그렇게 또 한해를 보낼 것입니다.
2017년 12월 8일
ㅁㅇㅎ
첫댓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변화들이 이리고 소중하고 귀하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만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 마당이 펼쳐지잖아요. 선생님, 저도 그 매력을 알아버렸어요.ㅎㅎ 내년에도 마음을 더 넓히고 생각을 더 넓히고 귀를 더 열면서 같이 살아볼께요. 총회 못 갔더니 이런 기록이 참 소중합니다.
몸져 누어 있으니 답답하겠지만 마음은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지요? 난 완전히 좋아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왔어요. 게으를 핑계가 살아졌으니 움직여야지요. 빨리 좋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