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원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69·사진)은 이색 경력이 두 줄 늘었다. '국전(國展)'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문인화로 입선했고,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 오체상을 수상한 것.
연구원, 전무, 사장, 이사, 대표, 부회장, 고문 등의 직함을 지나왔고 2016년까지 금통위원까지 역임하며 남부럽지 않은 자리를 오르내렸지만 의외로 그는 "붓을 든 이유는 나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서울 답십리 '구지화실'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나이가 들면서 '난 누구인가' '무엇을 했던 사람인가'란 생각이 들곤 해요. 그림에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 박사 학위를 받은 정순원 전 위원은 현대경제연구원 창설 멤버였다. 그는 현대차 사장, 로템 부회장, 위아 부회장, 삼천리 대표 등으로 일하며 한국경제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늘 '목마름'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금통위원 임기를 채우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건 아닌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기회가 되어 국전에 출품도 했습니다만, 상(賞)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고요. 종이 위에서 펼쳐지는 먹의 농담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수묵화를 처음 만난 건 주변 권유로 가본 한 수묵화교실이었다. 구암 황영배 선생을 만났고, 그 길로 제자가 됐다. 답십리 구지화실에 매주 2회 '출근'해 수십 명의 구암 선생 제자들의 틈바구니 맨끝자리에서 혼자 먹을 갈아 수십 장 화선지에 선을 긋는다. "그릴수록 묵의 색을 다루는 일이 어렵다"고 그는 소회한다.
"서양화의 물감색은 수백 가지인데, 먹은 같은 검은색으로 그 색을 표현해야 하니 어렵죠. 먹이 어디로 번질지를 예측하려니 절대 쉽지 않아요. 전 이제 고작 3년이고, 10년은 그려야죠."
가슴 울리는 시구나 표현을 붓으로 메모해둔 화선지 묶음이 화실 개인 서랍장에 백여 장쯤 된다. 조선 중기 문신 신흠의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桐千年老 恒藏曲, 梅一生寒 不賣香)'이란 문장을 아낀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선비의 기개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좋은 글이 있을까요."
수묵화에 심취하는 사이, 오래 전 땀흘리며 수고한 기억도 난다. 현대로템 부회장 시절 단행한 구조조정의 어느 날 기억에 아직 선하다. "퇴직하는 직원 전원에게 새 일자리 구해주려 주변 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녔어요. 어제처럼 생생한데 15년도 지났네요."
'왕(王) 회장님(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화도 자주 기억난다. 한 번은 현대그룹 임원진에게 세계경제동향을 브리핑하던 때였다. "매달 경제 강연을 했어요. 정 회장님께서 무엇을 쓰시나 해서 슬쩍 봤더니, 제가 말씀드린 키워드를 정자체 한자로 또박또박 적고 계시더라고요. 사실 그 위치에 계신 분은 잘 안 들으실 수도 있거든요. 참 대단한 분이다 싶었습니다."
수묵으로 매난국죽을 그리고, 손에 흙 묻혀 가며 텃밭도 가꾸는 정순원 전 위원은 "그림도 텃밭 가꾸기도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미"라고 말한다.
"산업현장이든 경제분석 현장이든 제가 걸어온 길은 이성의 세계였잖아요. 이성이 충만한 세계에서 감성 세계와 접촉을 넓히고 이를 깊게 파 정서적 균형을 되찾고자 합니다. 앞만 보게 되는 세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삶도 돌아보며 사시길 권합니다."
첫댓글 우리화실 정순원 선생....
그리공하는 자세도 젊은이 못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