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우수업일지_4회차_2023.2.14.
우리 모두 독백을 하나씩 선택해 왔을 터이다. 선생님께서는 독백을 대하는 자세, 독백 연습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는 곧 연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 독백(연습)을 할 때, 한 단어씩 쪼개서 천천히 발화하라.
* 그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 인물이 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야 한다는 강박으로 눌리면 오히려 그 인물이 될 수 없겠구나.)
* 내가 그 인물에 대해 아는 만큼, 느낀 만큼, 그 인물의 경험 중 내가 경험한 만큼, 그래서 이해하는 만큼, 이에 더해 나의 상상력을 이용해 가져올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렇다! 느끼지도, 알지도 못 하면서 느끼는 척, 이해하는 척 할 때,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어색해지고, 불편해지는 거다.)
여러 배우와 지도자, 그들의 저서를 언급하셨다.
* <Shakespeare in Love>의 Judy Dench_주디 덴취
* <Deer Hunter>의 Chris Walken_크리스 월킨
* Lee Strasberg_리 스트라스버그: <배우수업>, <성격구축>, <역할창조>, <연기의 방법을 찾아서>
* Uta Hagen_우타 하겐: <Respect for Acting>_<산연기>
* Sanford Meisner_샌포드 마이즈너
* Stella Adler_스텔라 애들러
* Peter Brook_피터 브룩: <Empty Space>_<빈 공간>
이 책들 함께 읽고 세미나, 독서모임 하면 재밌겠다. 이런 책은 아고라 도서관에서 대여 또는 구입할 수 없나? 같이 읽을 사람들 여기 모여라!
1. Substitution (대체)
Substitution, ‘대체’란 무엇일까,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한 참가자의 대답: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 되는 것, 즉 배우가 그 인물로 대체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를 바꾸는 것, 극 중 인물을 나로 혹은 나를 극 중 인물로 대체시키는 능력이 배우가 갖추어야 할 역량 중 하나, ‘대체’ 아닌가? 땡! 아니다.
‘대체’란, 나의 상대 배우, 내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을 나의 목적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해보자. 상대방 배우를 사랑하는 연인으로 대체해야 한다. 상대 배우에게서 그 어느 하나 (얼굴에 있는 점 하나) 라도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면을 발견하거나, 상상력을 통해 내가 사랑했던 대상을 상대 배우에게 입힘으로써 그를 나의 연인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그러다 정말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정말? 아,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작품 속 상대 배우와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결혼도 하는 거구나. 정말 그러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면, 대체의 과정을 통해 재창조한 상대 인물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현실의 실제 그 사람과의 간극은? 내가 재창조한 인물인 그와 실제의 그, 그 둘을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내가 극을 위해 창조한 인물을 향한 감정이 현실계의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극과 현실이 뒤엉킨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발생한 감정이 진짜일까? 진짜 사랑일까? ‘진짜 사랑’이라고? 그럼 ‘가짜 사랑’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나 지금? 진짜든 가짜든, 사랑에 빠진 둘이 알아서 할 일을... 너무 딴 데로 빠졌다.)
그렇다면, 배우는 ‘대체’를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게 될까? ‘대체’는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을 바탕으로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도서, 공연, 영화, 미술작품 등을 통해 많은 스토리를 접하고, 시각적, 정서적 경험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면? 이런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고 스텔라 애들러가 말했다고 하셨다. 애들러가 제시한 이 ‘상상력’이 바로, 기억, 내면 중심의 스트라스버그식 메소드와의 차별점이다.
2. 독백 훈련
한 사람씩 나와서 자신이 선택한 독백을 연기한다. 선생님께서 “지금 느낌이 어때?” “왜 거기서 손을 올렸지? 왜 손동작이 나왔다고 생각해?” 등의 질문을 던지시며 순간순간 배우가 어떻게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게 하셨다. 물론, “에너지가 있어,” “충분히 잘 할 수 있어”라는 격려도 잊지 않으시고 건네시면서.
배우들은, 순간순간 선생님께서 제시하시는 포인트에 준해 몇 번이고 독백을 반복했다. 매번 놀랄 정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 이렇게 해가는 거구나. 정말 좋아질 수 있구나. 할 수 있겠구나. 연기의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 중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지만, 1:1 독백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따로 질문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포인트와 내가 이해하기 어려워 질문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한 참가자의 손동작에 대해 “취해서 손이 나오는데, 안 돼. 그게 연기가 아니야.”
- 동작은 (나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취해서 나오는 동작과 자연스러운 동작은 다른 건가? 취해서 나오는 동작은 뭘 가리켜 하시는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다.
2. “목소리 톤으로 연기하지 마라.”
- 목소리 톤으로 연기한다는 건 뭘 가리키시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목소리 톤은 어떤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그 인물의 특징이 아니던가? 목소리 톤을 이용해 인물을 표현하면 안 된다는 말씀인가. 특정한 목소리 톤을 의도하면 안 된다는 말씀인가.
3. “분위기를 연기하지 마라.”
- 이렇게 하라,가 아니라, 하지 마라,가 더 많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다. “분위기를 연기하지 마라.” 분위기를 연기한다는 건 뭘 가리키고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다.
4. “지문의 포로가 되지 마라.”
- 연극을 관람할 때 종종, 배우의 특정 동작이 정말 어색해 보이고 그 동작을 보기가 불편할 때가 있다. 배우가, 극본의 지문에 표시된 지시에 따라 복종(그렇다, 복종, 나의 감정,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취하게 되는 행위 말이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였던 것 같다.
5. “한 단어, 한 단어씩, 단어의 단위로 말하라.”
- 대사를 문장 단위로가 아닌, 단어(최소 단위의 의미 음절) 단위로 발화하라. 한 단어, 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단어가 갖는 또한 전달하는 의미, 감정, 상징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그 단어를 소리로 내라는 것이다.
6. “하나의 독백 안에서도 전혀 다른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숨이 바뀌는 순간이다.”
- 자칫 지루해지거나, 집중력을 잃게 하는 독백이 될 수 있다. 하나의 독백 안에는 반드시 전환, 변화의 순간이 있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다. 숨이 바뀌는 순간이다. 선생님께서 분명 “목소리 톤으로 연기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숨이 바뀌면 목소리 톤도 바뀌는 것 아닌지... 그런데 톤으로 연기하지 마라고 하셨고... 잘 모르겠다.
7. “내 대사가 내 것이 될 때까지 기다려라. Trust your talent!”
- 기다림, 인내는 첫 수업 시간부터 등장했던 김진근 마스터 클래스의 주제어 중 하나이다. 이는 한 편의 연극 탄생의 전 과정을 통해 작품 관계자, 즉 연출, 스태프, 배우 모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열심히, 기다리기를 연습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내 대사가 내 것이 될 수 있겠나. 뭘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건가.
[나의 폭망 독백일지]
무척 흥미롭고 놀랍게도 다른 배우와 내가 선택한 독백이 동일했다. <벗꽃동산>의 라넵스까야. 나와는 다르게, 그는, “라넵스까야를 해보면 어때, 잘 어울릴 것 같은데...”라는 지인들의 추천이 있었을 정도로 이 극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역시나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독백을 편안하게 선보였다. 선생님의 피드백은 동일한 독백을 선택한 나에게 주시는 피드백이기도 하여 더 깊이 와닿았다. 계속 이어가면 좋을 듯하여, 나는 다음 순서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보기 좋게 망했다. 그것도 아주 폭삭. 선생님의 <하지마라!> 리스트에 들어있는 모든 항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냈다. 독백이 끝나고 선생님의, 이러이러하게 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듣는 내내에도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선생님을 비롯, 모두들 얼마나 당황했을지... 정말 죄송합니다.
“왜 눈물이 났어요?” “슬퍼서요.” 처음에 나는, 라넵스까야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그에 대한 연민과 슬픔 때문에 흐른 눈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더라. 라넵스까야의 독백이 나의 목소리를 타고 내 귀로 들어오면서 하나하나 대입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사건과 내 과거의 순간들이 선명하게 소환되었고,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억울함, 분함, 슬픔에 휩싸였던 것 같다, 아니 잡아먹힌 것 같다. 그렇게 라넵스까야가 되기는 포기한 상태에 빠졌고, 내 설움에 복받쳐 소리만 내지 않았지, 그야말로 통곡 수준으로 민폐를, 그것도 단단히 끼친 것이다. 늘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은 오늘 따라 왜 주머니 안에 없나... 누구 하나 휴지 한 장 건네주지를 않는군...
너무 창피하다. 독백을 하라고 했는데, 고해성사를 하다니. 제 설움에 못 이겨 통곡을 하다니. 나, 다음 수업에 올 수 있을까? 와도 되는 건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수업이 마무리 되자, 나는 화장실로 직행. 여전히 쏟아지는 야속한 눈물과 콧물을 닦아댔다. 한참만에야 극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몇 몇 동료들이 남아서 다음 수업에 대해, 독백 연습에 대해, 전달 사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놓친 게 뭐예요? 무슨 말씀 있었어요?” 창피를 무릅쓰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나는 한 동료에게 겨우 말을 걸었다.
그의 대답: “잘 모르겠어요, 저도. 뭐 별로...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근데... 지금까지 연기하시는 거, 저는, 다 좋게 봤어요.”
하도 울어서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순간, 나는 공중으로 부양하고, 공간은 음소거 상태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의 목소리만 들린다. 천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천사의 목소리.
오늘 수업 일지의 제목을 고쳐 쓴다. [나의 폭망 독백 연습, 그래서 일어난 천사의 강림] 하, 너무 거창했나? (하지만, 내겐 실로 거대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울어댔는데,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내 눈물 닦아준 천사를 만났으니까.) 그럼 이 정도로 고쳐보자: [폭망한 나의 첫 번째 독백 연습, 오히려 오늘의 하이라이트!]
그래, 괜찮다. 실패해도 된다. 아니, 실패해서 더 좋았다. 그렇게 망한 덕분에 천사가 내게 날아와 주었으니까. 이렇듯 서로의 다정함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앞으로도 많으리라. 기대어 힘을 낸다. 또 해보는 거다. 같이 가보는 거다. 우리는 오늘도 극장으로 간다.
첫댓글 글 잘읽었습니다. 많이 또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