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으로 곱게 치장한 다보록한 봄이다. 치맛자락 흔들며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로 산으로 제 세상인 양 간드러지는 기운이 상큼하다. 가슴과 발바닥이 덩달아 간지럽고 발길 닿는 곳마다 머잖아 꽃 폭죽이 터질 지경이다. 보도블록 틈새마다 키가 깡똥한 풀꽃들이 까치발로 따라 나설 자태다.
올해로 엄마의 삶이 백 년하고도 한 해를 더 보탰다. 삶의 희로애락을 떨쳐두고라도 육신은 잿불 같은 삭정이다. 그런 노모를 보면서 언뜻 나 자신의 나이테를 들여다본다.
엄마는 자식들의 피난처다. 이우걸 시조시인의 「어머니」가 똬리를 튼다. 아직 내 사랑의/주거래 은행이다/ 목마르면 대출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고/갚다가/ 대출받다가/ 대출받다가/ 갚다가… 전문
어머니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굳센 힘의 원천이다. 당신 목숨의 최후 순간까지 자식들의 희생양이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생각하면 엄마만큼 곱게 나잇값을 할 자신이 없다. 우선 건강이 허락할지 의문이고, 집안 대소사의 소소한 기억들까지 줄줄이 엮어낼 수도 없다.
슬며시 주름 하나 더 터를 잡는다. 거울보기가 뜸해진다. 즐거워야 할 육신은 이미 저만치 손 흔들며 떠나가는 현실감. 아무도 모를 누군가에게 치맛단이 잡혀 세월의 풍상 속으로 빨려드는 자연스러움을 어찌 거부하겠는가.
백수白壽를 넘긴 엄마는 해 저문 노곤한 늦겨울이다. 그런대로 별 탈 없는 모습으로 계시니 고맙기도 하지만 하루하루가 예측 불허다. 고향에서 당신 혼자서 삼시세끼 챙기는 일상은 늘 죄스럽고 짠하다. 자식은 어쩌면 가장 가깝고 정답게 사랑하면서도 때론 가장 먼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열 자식은 거느려도 한 부모는 못 거느린다는 말처럼….
하루하루가 천금 같은 시간이다. 내년 봄은 기약도 할 수도 없다. 옷깃만 슬쩍 스치는 바람에도 꺼져갈 잿불 같은 목숨 줄이다. 마당에 키우는 꽃은 싫어하지만 나들이삼아 산천 구경은 좋아한다. 늘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새 생명의 눈부신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말풍선을 불었다.
“집에서 먼 산을 쳐다보면 되지, 나가면 뭐 별건가?” 작년까지만 해도 나들이 가자면 먼저 차려입고 나서지 않았던가. 칼로 무 자르듯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무르춤하고 말았다. “진짜로 꽃구경 가는 것 맞나?” “진짜라니…?” 어깃장 부리듯 완강한 물음에 잠시 멍해졌다. ‘노인정에서 해괴한 말들이 많이들 오고갔구나.’ 싸한 느낌에 대문도 없는 울타리를 치고 말았다.
억세게 돌아가는 세상의 바퀴에 자식도 못 믿는 나락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또래와 주위로부터 공허함과 불신을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당하고 있는 현실이니 혹여 내 자식들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부모가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나의 주선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당신의 고집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작정 차를 태워 맛난 것 먹여놓고, 좋은 구경시키고 난 뒤 죽어도 싫다는 요양원 앞에 내려놓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더라.” ‘없ㆍ다ㆍ더ㆍ라’ 라는 말은 ‘너는 그렇지 않겠지’ 생뚱맞은 말꼬리에 어처구니가 없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도 못 믿을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엄마 마음을 불안하게 한 내 행동을 펼쳐보았다. 인간의 고로쇠로 먹여 키워서 꼬까신까지 신겨서 세상의 희망만을 채운 숨결이었는데…. 칭칭 동여맨 부모의 가슴앓이를 노을 같은 불길에다 무심코 던지려 했던 소소한 말투에 이리 충격과 불신을 품을 줄 몰랐다.
말문에 잠시 고리를 걸었다. 이 상황에서 변명이라고 내뱉으면 어떤 오해가 생길지 몰라 세월에 무르녹은 쇠잔한 손을 미쁜 듯 잡았다. “니는 안 그럴 줄 안다!” 병 주고 약 주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목적지도 묻지 않고 청려장을 앞세워 조심스럽게 차에 오른다. 자식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엄마의 가벼워진 육신이 재차 다짐을 한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자.” 다소 풀어진 듯 했지만 여전히 샐쭉한 말투다.
봉오리 몽실몽실 참 예쁜 꽃이었지
백수를 넘긴 오늘 가파른 주름 꽃을 보네
자식은 애물단지로 빚만 지는 채무자
졸시-「1세기에 한 살을 더 보탠」 전문
어디를 어떻게 가서 무얼 구경할 것인지 묵은 찐쌀을 곱씹듯 물어댄다. 가는 길과 목적지를 대여섯 번을 일러주었건만 처음인 양 운전대를 잡고 있는 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되묻는다. 몇 번을 물어도 곱게 대답을 해야 한다는 속다짐을 하고 했건만 울컥 치미는 붉덩물을 지장수로 바꾸어야 한다는 다짐의 둑이 무너질 지경이다.
봄꽃들로 야단법석인 신작로로 들어서자 차창을 내리며 운전하는 딸이 듣든지 말든지 “나도 꽃봉오리 시절이 있었는데!“ 봄놀이에 푹 빠진 천진한 아기의 모습이다. 그러다 불쑥 “낯선 곳으로 가다 길을 잃으면 우짤기고….” 너무 먼 곳으로 가지 말라며 다짐을 또 놓는다.
아기가 엄마 손을 놓쳐 길을 잃어 울먹이는 그런 표정이다. 꽃구경이라는 쓰나미로 불안함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움이 눅진하게 자리를 잡는다. 엄마의 방파제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는 일이다. 떼 지어 스쳐가는 연둣빛 세상이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맵고 쓰리다.
봄이지만 아직은 냉기 가득한 햇살이 등에 업힌다. 자신 외에는 믿을 곳이 없는지 집으로 돌아와서야 팽팽하게 부푼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긴 한 숨을 길게 내뱉는다. 종일 불안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딸마저도 오달진 구석이 없는 애물단지가 확실하다.
첫댓글 모녀의 외출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아름답고도 슬픈 봄 날.
어머님이 더 건강히 새 봄을 또 맞이하시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