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에서 강과 동무 되었다.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면...’
노랫말대로 설렘을 안고 낙동강을 찾았다. 처음 찾은 상주보에는 주변에 그 많던 모래는 보이지 않고, 물길을 막아 놓은 거대한 구조물, 보가 눈앞에 들어왔다. 그 아래 흐르는 물은 검푸른 색깔이고 거품까지 떠내려 오고 있다.
보이지 않던 모래는 자세히 보니 저 멀리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강변 둔치 풀밭 위에서는 운동을 하는 이들이 보인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상주시내에서 가깝고 경천대가 워낙 유명하기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강물에 멀리서 보이던 거품이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더 심하다.
낙동강을 찾아 제주부터 남도 경상 서울 경기에서 온 이들이 상주보를 뒤로하고 같이 자리했다. 빠진 이들도 있다. 상주보에서 영주댐까지 먼 길을 같이 해야 할 길동무들이다.
4대강사업 훨씬 이전부터 경천대 아래에는 드라마 ‘상도’ 촬영지로 초가집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옆에 위용을 자랑하는 여러 채의 기와집을 지어놓았다. 경천대 주변에는 놀이시설과 박물관 등 여러 볼거리들을 조성해 놓고 있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길들이 새로이 생겼으나 인터넷 지도와 다르고, 막아 놓은 곳이 많아 헤매게 되고, 멀리 돌아가게 한다.
경천대를 지나 각동강 칠백리 길을 가는 도중 경북농업기술원이 이전해 오는 것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문전옥답을 잃기에는 보상금이 미흡한 듯하다. 지난 봄 울진의 한울발전소 앞이나, 삼척에서도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을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보게 된다.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천자락을 돌고, 수만의 하천과 어울러 이곳에서 비로소 강다운 모습을 갖추어 낙동강 700리 길이 시작된단다. 낙동강 표지석은 공사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꿋꿋이 강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자연을 해치더라도.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태백산에서 시작되는 내성천, 문경의 금천이 만나는 삼강, 나루터에 보부상이나 길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삼강주막이 있다. 자그마한 초가집 주막, 찾는 이들이 없어 문을 닫았었는데, 이제는 주위를 개발하고 커다란 집들을 여러 채 지어 상가화 되어있다. 시간이 늦어 막걸리 한사발도 마시지 못하고 나오는 우리에게 군밤장수는 밤을 사라고 권한다.
예상보다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날이 어두워지려 한다. 바쁜 걸음으로 회룡포를 향하다 용궁면에서 유명하다는 순대집으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식사와 안동소주를 한잔씩 했다. 단골집,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고 별관까지 있다. 음식도 푸짐하고 맛있으며 값도 비싸지 않다. 회룡포 섬 안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돌담을 쌓았고, 마을 안에 있는 황토민박집에 하루를 보내게 된다.
가을이 시작되는 시원한 9월 초순의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곳곳에서 준비해 온 먹을거리로 주안상을 차린다. 경상도에서 사과 복숭아, 남도에서 전복과 새우 그리고 오징어 문어, 밭에서 갓 캐고 따온 오이 토마토 고구마와, 상주의 ‘은자골탁배기’와 제주의 ‘한라산’... 우리의 밤 시간은 항상 푸짐하다. 은자골탁배기는 정읍의 송명섭, 해남의 해창과 함께 지역에서 농사한 쌀로 빚는 막걸리다.
회룡포에서 강을 가까이 만나 동무되어 본다. 강 깊숙이까지 다가가 강의 부름에 화답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도가 여성이 더 큰가 보다. 우리는 이제껏 이렇게 가까이에서 강과 교감해 보지 못했다. 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나 사람들이 지금껏 가까이하지 않았다.
유명한 회룡포의 뽕뽕다리다. 지금은 다리가 둘이어서 제1, 제2의 뽕뽕다리라고 부른다. 장안사 절 쪽으로 올라 전망대에서 회룡포를 조망하려고 뽕뽕다리를 건너 가고 있다. 그 아래 강물은 천천히 흐르고 모래가 곱다. 강물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면 모래가 흘러내려 가면서 발아래 모래가 빠져 나가면서 발바닥에 간지러운 느낌과 함께 차츰차츰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예전 한겨울에 얼음이 꽁꽁 얼었는데도 강물에 들어가 발이 시린 정도를 넘어, 아파서 발을 동동거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의 뽕뽕다리 모습이다. 나중에 놓은 다리에는 시멘트를 깔아 놓았지만 이 다리는 철판 그대로다. 다리 아래에 피리와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 떼들이 여유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평화가 어떤 것인지 알 듯하다.
영주댐이 막히면서 내성천으로 흐르는 물의 양은 줄어들어 강변 모래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육지화 되어 가고 있다. 지난 가을 새만금 바다에서 보았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회룡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을지 걱정된다.
2010년 회룡포를 갔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회룡포를 비교해 본다. 첫 번째 사진은 2010년 겨울이고, 두 번째는 지금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이는 모습이다. 전망대에 오를 때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아 며칠 후 레베카 선생이 회룡포를 찾아 찍은 사진을 얼숲에서 옮겨본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공사가 끝난 지금은 4대강사업을 말하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환경을 말하는 이들이 4대강사업을 되돌려야 한다고 말해야 할 텐데, 도리어 대통령이 재자연화를 말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4대강사업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이들이 회룡포 강변에다가 땅을 마련해서 4대강사업 기록관을 지어놓았다. 지난해 가을 새만금에서 철새를 모니터링을 하고 장승을 새로 세우는 이들을 만났듯이. 아직 미완성이며 기록물을 전시해 놓고 있지는 못하다.
영주댐 아래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다. 이곳은 회룡포보다 물살이 더 세다. 그러기에 강바닥의 모래는 자갈까지 떠 내려와 거칠다. 물이 검푸름은 물론 거품까지 떠내려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룡포에서도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강물이 맑은 깨끗하다고 한다. 미처 말하지는 못했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맑은 물이 아니고, 강바닥이 투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강을 처음 만나 강과 동무되어 즐겁게 노는 이들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기에 말을 아꼈다.
어린 아이들이 물속에 텀벙 빠져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인데, 이런 광경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얼마 전 영주댐에 물을 채우기 전에는 지율스님의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에서 보듯이 이곳 내성천의 물이 맑아 여름에는 캠프를 많이 열었는데... 70년대 서울에서도 여의도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한강에서 수영을 했으니.
이곳도 회룡포와 마찬가지로 영주댐을 막은 후로 풀이 나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은 휴일 무섬마을에는 차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 갔을 때에는 장애인 수십 명이 이곳을 찾았다. 무섬마을에서 경상도 음식인 배추적(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잔씩 한다. 처음 경상도 음식을 대하는 남도 사람들은 생소해 하고, 젓갈이 안 들어가고 양념이 적은 열무김치에 고개를 절래 흔든다. 내 입에는 고향의 맛인데.
이제 마지막으로 찾은 영주댐이다. 댐 관리사무소 앞으로 가서 댐을 바라보려고 하니, 금방 관리 직원이 나와서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단다. 군사시설이란다. 얼마간 실랑이를 하다가 반대편 쪽으로 가서 댐을 바라보았다.
듣던대로 댐에는 물을 가두었고, 댐의 물은 푸른빛이 눈에 훤하게 보인다. 댐 가운데 곳곳에 하얀 물체가 떠있고 그 주위로 물결이 일고 있다. 바닷가에 사는 이가 단박에 말한다. 양어장에서 사용하는 ‘수차’라고. 갇혀 있는 물을 조금이라도 맑게 하려고 가동하고 있다. 댐 아래로 물을 내려 보내는 곳에는 더 강력한 수차가 돌아가고 있다. 자료집에 인용한대로 영주댐은 ‘녹조배양소’였다. 그러기에 댐을 찾아오는 이들을 즉각적으로 막아서고 있다.
군사시설보호법으로 촬영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에 말이 안 나온다. 이것이 4대강사업의 실태이고, 지금의 낙동강 모습이다. 이번 낙동강 발걸음 마지막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우리가 다녀온 다음날도 이곳을 찾은 이들이 있고, 그 뒤를 이어 찾은 이들도 있다. 망가진 강을 되돌려야 한다는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다. 아직은 소수다. 더 많은 이들이 찾았으면 좋겠다.
뒤이어 영주댐을 찾은 이들이 댐을 부수거나 해체해야 한다는 마음을 담아 펼침막을 준비하기도 하고, 망치를 들고 “영주댐, 뿌셔뿌셔!” “영주댐, 빨랑 뿌셔!”하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번 낙동강을 찾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런 행동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이행하지는 못하게 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으로는 이번 녹색바람의 발걸음이 더 푸짐하여 진행된 듯하여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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