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50]‘김학철문학상’과 작가 방현석
페북을 이리저리 보던 두세 달 전 어느날 새벽, 작가 방현석이 쓴 듯한 ‘김학철문학상’ 제정 취지를 읽고 가슴이 뛰었다. 솔직히 80-90년대 노동문학의 한 가운데 방현석 작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필이 꽂힌 것은 ‘김학철’ 이름 석 자 때문. 김학철이 누구인가? 모르시는가? 나는 오래 전에 그분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을 읽으며, 그의 투철한 사상과 일관된 강철의지에 혀를 내둘렀었다. 우리가 꼭 잊으면 안되는, 경배하지 않으면 안될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이다. 그러기에 2001년 돌아가신 지 사반세기 만에 여러 사람의 힘으로 ‘김학철문학상’을 제정한 한국의 소설가 방현석 작가의 갸륵한 뜻이 너무 고마웠다. 알고 보니, 방 작가는 ‘항일무장투쟁역사학교’ 교장으로서 뜻있는 분들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무장투쟁 발자취를 찾아다니는 역사문화탐방을 열 번도 넘게 해오고 있다고 한다. ‘범도루트’가 그것인데, 잘 아시는 홍범도 장군의 삶과 무장투쟁을 집대성한 <범도> 1,2권을 그 결과물로 2023년 펴냈다고 한다. 과문(寡聞)했던 게 부끄러웠다.
먼저, 불세출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 김학철 선생에 대해 간략히나마 알아야 한다. 1916년 원산에서 태어나 29년(13세) 서울의 보성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입센의 <민주의 적>을 읽고 항일무장투쟁을 결심한다. 32년에 윤봉길의사의 의거에 큰 충격을 받고, 35년 나이 19세에 상해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했다. 37년 황포군관학교에 입학, 다음해 10월 조선의용대(총대장 김원봉)의 창립멤버가 되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다. 41년 <조선의용군 추도가>를 작사하고, 태항산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총상을 입고 잡혔다. 일본형무소에서 전향을 거부하여 썩어들어가는 왼쪽 다리를 절단, 외다리가 되었다(구더기를 나무젓가락으로 한 마리씩 집어냈다고 한다). 해방이후 남한에서 단편소설을 쓰며 작품활동을 하던 중, 46년 이승만정권의 사회주의자 탄압으로 북한으로 가다. 47년 로동신문 기자를 하면서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하다. 한국전쟁중 중국으로 가 북경의 중앙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57년 41세에 반동분자로 몰려 24년간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문화대혁명 홍위병들에 의해 고문과 폭행을 당하다. 모택동과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신랄하게 비판한 소설을 쓴 혐의로 7년간 유치장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75년 인민재판을 받고 반혁명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77년 출옥했으나 반혁명분자로 지내다. 80년 64세에 복권돼 25년만에 창작활동을 재개한 후 <항전별곡> <격정시대> <혜란강아 말하라> 등을 짓다. 73세인 89년 43년만에 서울을 방문하고, 94년 78세때 KBS해외동포상을 받았다. 작가 조정래의 부인 김초혜 시인이 친아버지처럼 모셨다고 한다. 95년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을 출판하고, 98년 <자랑스런 보성인상>을 수상하다. 2001년 85세때 서울에서 의료사고를 당하고 연길로 귀국한 후 21일의 단식 끝에 존엄사를 하다. 2005년 중국 하북성 호가장 전적지에 <김학철 항일문학비>가 건립됐다.
이 간단한 연보에서 보듯, 김학철 작가는 젊은 시절 항일투쟁에 온몸을 바쳤으며, 이후 글로써 북한 김일성과 중국 모택동의 개인숭배를 비판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한번도 당신의 신념을 꺾지 않은 불굴의 ‘문학전사’였다. 혹자는 ‘한국의 체 게바라’라 불렀다. 나는 그분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전사(戰士)를 자처한 김남주 시인이 김선생의 현신이라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이름없이 죽어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분들을 기리는 대한민국의 뜻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대부분 가난한 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김학철문학상 지원단’을 구성했고, 독자투표인단에서 2026년 제1회 김학철문학상 대상을 선정, 엊그제(7월 30일) 수상작품집을 펴냈다. 황정은 <문제없는, 하루>, 최진영 <울루루-카타추타>, 전춘화 <웰컴 투 빌라> 등 세 작품이 뽑혔고, 김학철 실록소설 <맹진나루>도 함께 실었다.
김학철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그리고 일관된 문학 등 ‘김학철 정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교훈은 범인은 범접하기조차 어렵다는 데 있다. 독립전쟁기 조선과 해방된 남한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에서 80년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섰던, 외다리에 힘을 주고 형형한 눈빛으로 죽어간 동지들을 잊지 않고 기리던 그의 마지막은 친필 유서로 더욱 빛이 났다. “혼미상태에 들어간 후에도 절대로 의사를 부르거나 주사를 놓지 마라. 고통을 인위적으로 연장하지 말라. 내 아들(김해양)답게 용감하고 성실하게 처사하라. 조용히 가게 해달라”며 21일간 단식을 하면서, 조선의용대 창립기념사진을 아들에게 가져오게 해 90여명의 전우 이름과 별명, 원적들을 불러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그들을 기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을 염려한 때문. 부고도 내지 말고, 추도식도 하지 말고, 부조금도 일체 받지 말라며, <조선의용군 추도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화장하여 종이박스에 유골을 담아 고향 원산 앞바다로 띄어 보내라던 김학철 선생. 두만강에서 출발했으니 지금쯤 고향바다에 도착했을까. 그가 지은 노랫말을 보라. <사나운 비바람이 치는 길가에/다 못가고 쓰러진 너의 뜻을/이어서 이룰 것을 맹세하노니/진리의 그늘 밑에 길이 길이/잠들어라 불멸의 영령>.
방현석 작가는 <김학철문학상을 시작하며>라는 글에서 '친일문학인'들에게 대해 말합니다. 민족을 배반하고 모국어를 배신한 자들의 문학이 어떻게 한국문학일 수 있느냐고? 김학철의 <격정시대>를 읽어보시라고. 대한민국이 프랑스였다면 총살을 당해야 마땅할 민족반역자들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주고, 그 상을 자랑스럽게 받는 나라라는 걸 통탄하며, 김학철 문학이 설 자리가 없는 현실에 분통을 터트립니다. 하여, 범도루트 대원 100명이 뜻을 모아 이 작은 문학상을 만들게 됐다고 고백합니다(상금이라야 대상이 500만원이지만, 5천만원보다 더 몇 배 더 값집니다). 김학철 선생의 삶과 문학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기억하려는 작은 마음들이지요. 이들은 경멸해야 할 것을 경멸할 줄 알고, 존중해야 할 것을 존중할 줄 아는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아-, 저도 ‘범도루트’에 곧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홍범도 선생의 길을 따라가며, 김학철 선생의 묘에서도 절하는 날이 오겠지요. 참 우습지요.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장군상을 없애는 나라이니 말입니다. 그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 상은 모국어의 정신을 가장 빛나게 갱신해 나가며 김학철의 문학을 이어가는 작가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문학상이 되겠지요. 응원합니다. '김학철 정신'과 '김학철문학상'이 세세년년 이어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