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언인가? 복음서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미리 예언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역사 통찰에서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복음서 기록대로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언이었다는 관점과 다른 하나는 예루살레 멸망 직후 사도와 제자들이 생전에 예수의 말씀 중에서 예루살렘과 관련된 말씀을 벌어진 사건에 맞추어 각색되었다는 관점이다. 현재 복음서 기록시기를 살펴 볼 때 원 복음서라 할 수 있는 마가 복음이 기원 70년 직후에 기록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후 예언일 가능성이 높지만, 미리 예언된 기록이라 가정한다면 이 예언이 예측 가능했던 사건인지 아니면 초자연적 예언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예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다. 역사적·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은 기원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하는 역사적 선례였다고 볼 수 있다. 1. 두 사건은 매우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586년경, 유다 왕국은 강대국 바빌론에 맞섰다. 이것은 국제 정세의 판단 실패, 반복적인 반바빌론 정책, 내부적 정치의 분열, 바빌론의 군사력에 대한 과소평가 등이 겹친 결과였다. 결국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예루살렘 함락 → 성전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약 650년 뒤, 기원 70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상대가 바빌론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었다. 유대 사회 내부에는 로마에 타협하려는 세력,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 무장 저항 세력, 종교적 종말론을 가진 시계탑류의 집단 등이 존재했다. 기원 66년에 유대 반란이 일어났고, 로마는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예루살렘 포위 → 함락 → 성전 파괴 → 유대 사회의 대규모 붕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구조적으로 보면 바빌론 시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2. 따라서 과거를 알고 있었다면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당연히 바빌론에 의한 첫 번째 성전 파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대 민족의 집단 기억에서 가장 큰 재앙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과거에도 강대국과 충돌하여 예루살렘과 성전을 잃었다.” “이번에도 로마와 전면전을 벌이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실제로 기원 1세기 유대 사회에도 무장 반란을 비판하거나 로마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현실적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도 그들 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70년의 파괴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은 아니었다. 3. 멸망의 원인: “성전은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다”는 생각 두 시대에는 공통된 문제가 있었다. 바빌론 시대의 일부 사람들은 성전이 존재한다 = 하느님이 어떤 정치 체제든 예루살렘을 무조건 보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은 믿음의 부족때문에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런 생각을 강하게 비판했다. 로마 시대에 두 번째 성전 역시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은 심리적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전을 로마인에게 완전히 넘기실 리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이미 바빌론 시대에 한 번 깨진 믿음이었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했다면, “성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군사적 파괴를 막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에서 기원전 586년의 경험은 기원 70년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4. 예수의 예언도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예고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성전을 보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기독교 해석에서는 이것을 예수의 예언이 실제로 기원 70년에 성취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역사비평적 관점에서는 다른 의문도 제기된다. 이 말이 실제로 예수 시대에 한 말인가?, 아니면 70년 이후 성전 파괴의 경험이 복음서 기록 과정에 반영된 것인가? 하지만 어느 경우든 중요한 점은 성전 파괴가 역사적으로 완전히 비현실적인 예측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예루살렘 파괴라는 선례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5. 이것은 “예언”이라기보다 역사적 패턴의 인식일 가능성이 많다 이를 현대적으로 비유하면 이러하다. 어떤 나라가 과거에 강대국과 무리하게 전쟁하다가 수도가 파괴되고 국가가 붕괴되는 사건을 경험했다면 수백 년 뒤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동일한 예측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초자연적 예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역사와 현실을 읽는 능력만으로도 가능한 예측이다. 물론 두 사건은 단순히 같은 사건의 반복은 아니다. 차이도 있다. 따라서 정확히 같은 역사적 사건이 반복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대국과의 충돌 → 예루살렘 포위 → 성전 파괴 → 사회적·종교적 재편이라는 큰 구조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으로 이해할 때도 신앙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 이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해석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나 예수 같은 예언자의 메시지를 역사적으로 보면, 단순히 신비한 미래 예측이라기보다 현재의 정치·사회·도덕적 현실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보고 그 결과를 경고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원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바빌론 시대의 비극이 역사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다시 반복될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6. 결론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예측의 성취와 관련해서 예수의 또 다른 예언인 '노아 홍수'의 패턴이다. 예수는 노아 홍수의 예를 들면서 이 세상이 또 한번 그와 같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 보장이 없다는 점을 말씀한 것이지 반드시 일어난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삶은 언제든지 자연의 대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 계획과 관련하여 정해진 종말의 패턴이 아니라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 재난은 언제라도 올 수 있으므로 그에 대비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