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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는 계속해서 르네의 몸을 탐닉했다.
항문을 절개하고 그것들을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냄새가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입 속에 있던 그것들을 밖으로 뱉어냈다.
대신 그것들을 튀기려고 했다.
그러나 냄새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
그는 포기하고 몸통으로 되돌아갔다.
24시간이 지났다.
목욕탕 안에는 파리 떼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사가와는 그것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금방 다시 돌아왔다.
파리 떼들은 르네의 얼굴 위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본 사가와는 르네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가와는 조각난 르네가 더 이상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답은 금방 나왔다.
사가와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찾은 답은 "그녀는 멀리 가버렸다"였다.
* 사가와 잇세이는 식인에 관련된 인물입니다.
혹시 그에 대한 정보가 없이 들어오신 분이라면,
특히 이번 글은 내용이 역겹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사건 관련 희생자 사진들은 불쾌해 하실 분들이 있으실 줄 모르는 관계로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넷상에 많이 퍼진 사진이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조금만
수고하시다보면 쉽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佐川一政 03
마치 가지고 놀다가 싫증난 자기 장난감을 부서뜨리는 어린 아이처럼
.. 사가와 잇세이는 계속해서 르네 하르트벨트를 조각냈다.
사가와는 전동칼을 사용해
그녀의 몸을 자르려 했지만,
큰소리만 낼 뿐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자 자귀를 사용했다.
무자비하게 르네의 몸을 조각내면서,
사가와는 그녀가 살아서 느낄 수 있었다면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마침내, 르네의 넓적다리가 그녀의 몸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사가와는 마치 닭다리를 뜯는 것과 같이 그것들을 물어 뜯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팔들을 잘랐다.
그것은 넓적다리보다 좀 더 어려웠다.
사가와는 다시 전동칼을 사용했다.
전동칼은 날카로운 소리를 냈는데, 사가와는
그 소리가 르네의 날카로운 목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사가와는 르네의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그때까지도 반지와 팔찌가 착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들은,
또 다른 자극을 느끼게 하면서 그를 흥분시켰다.
사가와는 그녀의 손을 이용해 자위를 했다.
그것이 끝났을 때, 사가와는 그녀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었다.
실망한 그는 잘라낸 그녀의 손목들을 먼저 잘라낸 발목들과 함께
플라스틱 가방 안에 넣었다.
사가와 잇세이는, 계속해서 조용하기만 했던 르네 하르트벨트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자그마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그
리고 달콤한 입술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사가와는 그것들을 무척이나 물어뜯고 싶어 했었다.
이제 그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코를 무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었다.
그녀의 코를 씹으면서, 그는 코 속의 연골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가와는 르네의 입술을 잘라내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보관했다.
그다음 그녀의 혀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것을 입 속에 넣었고, 거울을 통해,
소리가 나도록 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혀와 르네의 혀가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가와는 그녀의 눈까지 먹으려 했다.
그는 그곳이 그녀의 얼굴부분에서 가장 쉬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쉽사리 그녀의 눈에 칼질을 하지 못했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것을 하고 만다.
두 눈이 파여 내진 르네 하르베르트의 얼굴은
사가와 잇세이에게 거의 해골처럼 보였다.
사가와는 르네의 위를 꺼내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배꼽 아래 약간 통통한 부분에 칼질을 했을 때,
그는 지방 아래쪽에 있던 빨간 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끄집어 낸 다음, 얇게 썰어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사가와는 다시 르네의 뱃속을 칼질했다. 내장이 나타났고,
그 주위에 있던 회색빛 자루를 발견했다.
그것은 방광이었다.
사가와는 르네의 몸통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자루가 있었다.
그것은 자궁이었다.
사가와는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그녀는 그 자궁으로 아기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잠시 동안 그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가와는 르네의 배속에 있던 내장들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이제 사가와는 마지막으로 남은 일을 해야 했다.
반지 팔찌와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목걸이를 걸고 있던 르네의 목을 잘라야 했다.
그렇게 해서 르네의 머리를 몸통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했다.
그는 그것이 자기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가와는 우선 뼈가 보일 때까지 그녀의 목 부분에 붙어있던 살점들을 베어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목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전동칼을 사용하려 했지만 단지 날카로운 소리만 날 뿐,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귀를 사용했다.
사가와는 기요틴 위에 있는 자기 자신을 상상했다.
그리고 르네의 머리를 잘라냈는데,
그것은 사가와 자신이 놀라우리만치 쉬운 일이었다.
머리를 떼어냄으로서,
사가와는 르네의 육체가 이제는 단지 고깃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흔들었다.
르네 하르트벨트의 얼굴은 사가와 잇세이의 얼굴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식인자라는 사실을.
사가와는 조각낸 르네를 분리해 플라스틱 백에 나눠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슈트케이스에 넣고 잠갔다.
사가와가 자기 아파트 안에서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끝냈을 무렵,
두 번째 날 깊은 밤이 되어 있었다.
그는 택시를 불렀다.
이윽고 사가와는 프랑스 파리 서부에 있는
삼림공원인 \'Bois de Boulogne\'(불로뉴의 숲)에 도착했다.
그는 들고 온 슈트케이스를 호수 속으로 던져 넣으려 했다.
그는 그곳이 그녀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그마한 몸집을 가진 그에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무거운 짐 탓에 어려워 해야 했다.
게다가 허둥대던 그의 모습은 어느 중년 커플에 의해 목격이 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는 걸 알게 된 사가와는 겁이 났다.
그는 슈트케이스를 그냥 내 던지고 도망쳐 버렸다.
그렇게 해서 사가와 잇세이의 허니문은 끝이 났다.
사가와 잇세이는 다시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켜고 냉장고를 열어 르네의 조각들을 꺼냈다.
접시들을 꺼내 유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조각들을 스토브 위에 올려놓고 튀겼다.
그때 그는 그 조각들이 르네의 엉덩이 부분이라든지 넓적다리 부분이 라든지를
알 수 있었다.
사가와는 테이블 위에 머스터드, 소금 후추, 소스 등을 놓았다.
접시 옆에는 르네의 속옷을 놓았다.
그것의 냄새를 맡으며, 잡지 속에 있는 발가벗은 여자들을 보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며,
사가와는 자기 입 속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조각이 어느 부분인가를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는 자기 입 속으로 들어간 르네의 조각들을
단지 고기 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가와 잇세이는 계속해서 르네 하르트벨트의 육체를 먹었다.
어떤 날의 르네의 살들은 좀 더 부드러웠고,
어떤 날은 좀 더 달콤하고 맛이 났다고 한다.
훗날 그는 그때의 시간이 더욱 달콤한 시간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전으로 돌아가서,
사가와가 공원에서 르네의 시체를 처리하려고 할 때
그를 목격했던 중년 커플은 그가 허둥지둥 도망가면서
남기고 간 슈트케이스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곧 피 묻은 슈트케이스 밖으로
여성의 손이 밖으로 튀어 나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 온 경찰은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 있던 토막 난 사체를 발견했다.
수사를 통해 토막살해를 당한 르네 하르트벨트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경찰은 살인자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목격자들에게서 들은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이 피해자인 르네의 주위에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가택수색영장을 들고 살인자의 아파트를 찾아왔을 때,
사가와는 자신의 아파트 안에 있었다.
그의 집 냉장고 안에서 피해자의 입술을 비롯한 몸통 부분을
발견했던 경찰은 프라이팬에 남아있던 고기까지도 인간의
그것인 것을 확인하면서 더욱 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1981년 6월 15일 사가와 잇세이는 체포가 된다.
르네 하르트벨트를 죽이고 4일이 지난 후였다.
체포 되었을 당시, 경찰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살인자인 사가와 잇세이의 양손에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팔목이 워낙 가늘었던 탓에 수갑은 그냥 쑥 빠져 버렸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아주 작은 남자였다.
그리고 그때 그를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키 작은 남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사가와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자기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육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신체적 콤플렉스나 자라난 내력 따위와는 상관없이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환상에 의해 살인과 식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들은 오히려 듣고 있던 사람들을 슬프게 했다.
사람들은 그가 신체적인 약점으로 인해,
엄청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짝사랑을 하고 있던 르네에게 고백을 하고 거절을 당하자,
비뚤어진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살인과 식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건직후 여러 매스컴에서 보도했던 것은 그런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발적인 것이든, 아니면 치밀한 계획 하에 하는 것이든,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사람까지는 먹지 않았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은 그에 대한 답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佐川一政 04
사가와 아키라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던 아버지였다.
그에 못지않게 자기의 사랑을 확실하게 확인 시켜줄 능력도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풍부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던 그가 곤경에 처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아들을
가만히 앉아서 두고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비싼 비용이 드는 변호사를 고용했다.
사가와 잇세이는 순순히 자기의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가 한 짓들을 털어놓았다.
노골적으로 모든 것을 까발리던 그의 입에서 나온 것들은 거의 외설에 가까웠다.
덧붙여 그는 자신이 정신병으로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는 말도 했다.
담당 판사는 일본까지 날아가, 그의 부모님과 독일인 여성의 집을 불법 침입했을 때,
그를 진단했던 정신과 의사를 만나기도 했다.
그에게 사가와 잇세이의 모습은 분명 망상에 휩싸여 있던 인물로 생각되어졌다.
게다가, 사가와 아키라에게 고액의 금전을 지불받은 우수한 변호사가
열심히 노력도 한 결과, 결국 사가와 잇세이는 재판을 받기에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사가와 잇세이는 감옥 대신 정신병 치료를 위해
\'Villejuif\'에 있는 \'Henri Colin\' 정신병 치료 시설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사가와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정신과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았다.
그를 진찰했던 의사들은 모두, 사가와 잇세이가 가지고 있던 비정상적인
환상은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사가와는 자기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일본인 학자들과 서신 교환을 한다.
그들은 사가와에게 여러 식인자들에 관한 책들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가와는 자기 자신이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체포되지 않는 범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웠다는 말도 했다.
사가와가 배웠다는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자여야 한다.
아니면 사가와 잇세이처럼 대신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사가와 잇세이는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또한 기한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를 정신병원에 수용하고,
그의 남은 인생을 치료를 받으며 지내게 하는 데에는
프랑스 국민이 낸 세금이 사용되어야 했다.
적당한 이유들을 찾아낸 사가와 아키라는 거래를 성사시킨다.
1985년, 사가와 잇세이는 국외 추방 형식으로 자신의 나라 일본으로 송환이 된다.
일본에 도착한 직후, 사가와 잇세이는 도쿄에 있는 마츄자와 도립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원장인 카네고 츄구오는 자기가 최고 책임자로 있는
그곳은 사가와가 있을 곳이 아니라면서, 그가 있을 곳은 감옥이라는 말을 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사가와 잇세이는 제정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원의 최고 책임자에게 정상인이란 소리를 들은 사가와가
정신 병원에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사가와는 그곳에서 단지 15개월 머물렀다.
1986년 8월 12일, 사가와 잇세이는 퇴원을 하면서,
자기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고,
자기에게 정상이라고 코멘트를 날려준 병원의 최고 책임자에게도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다.
일본의 형사 재판에서 해외에서의 재판 결과는 국내의 소추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한때, 일본 검찰은 사가와 잇세이의 기소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재판했던 프랑스의 담당 판사가 증거 제출을 거부했고, 결국 기소는 보류되었다.
사가와 잇세이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독일로 가는 여권을 허가 받기조차 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키라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있다.
법적인 허점을 이용한 사가와 아키라의 술수에 의해
그의 아들인 사가와 잇세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별다른 처벌 없이
약간의 형식적인 시간만을 보낸 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사가와 잇세이는 다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었다.
도쿄에 도착했을 때, 그는 유명한 식인 살인자를 기다리고 있던
미디어와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둘러싸여졌던 적이 있었다.
사가와 잇세이는 자기가 르네 하르트벨트를 죽인 이야기를
프랑스의 정신병원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문학을 전공했던 그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있었다. 그때 그가 쓰려고 했던 글들이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참회의 글이 아니었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밝혀진다.
그때 그는 몹시도 열심히 썼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병원 측에 새벽 3시까지 자기의 병실 전등을 끄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발 빠르게 썼다고 한다.
(사가와 잇세이는 일본의 정신병원에서는
환자에게 강한 약물을 주입한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쓴 사가와 잇세이의 글들은,
83년 9월, 그가 프랑스의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霧の中 (In The Fog)\'라는 제목을 붙여 출판된다.
사가와는 르네 하르베르트를 죽이고 4일간에 걸쳐서 먹었다.
그 사이사이 그는 르네의 시체와 섹스를 하고 무자비하게 토막을 내는 등
여러 엽기적인 짓도 함께 했었다.
霧の中은 사가와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기억을 되살려 가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쓴 책이었다.
24 페이지에 걸쳐 기술하고서도 그것이 모자르다며,
그는 적어도 두 배의 페이지 수가 필요하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霧の中\'은 20만권이 넘게 팔려나가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결국 그것은 불길에 부채질하는 것이 되었다.
그의 명성을 높이 더 높이 올라가게 한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이없게도 높아만 가는 명성으로 인해,
적어도 사람들의 느낌에서, 그는 무자비한 식인자로 취급당하던 것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었다.
일본으로 송환이 돼 도립 마츄자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가와에게 영화사가 접근해 온 적이 있었다.
그의 살인 사건을 영화로 만들기로 이야기가 오고갔다.
각본을 맡은 가라 주로는 3개월여에 걸쳐 사가와와 편지 왕래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정리한 글을 출판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가와는 자기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
소설화는 그만두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가라 주로는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사가와의 부탁은 쉽게 들어줄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가라 주로가 쓴 \'사가와 군으로부터의 편지\'는 출판이 되었고,
그에게 아쿠다가와 상까지 안겨주었다.
사가와 잇세이 본인의 말로는 그 전에 출판된 霧の中도 무단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사가와 잇세이를 더욱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이코 킬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 쾌감을 느꼈다.
사가와 잇세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먹었던 르네의 살만큼이나 달콤했을지도 모른다.
\'Jeffrey Dahmer\'가 가장 명백한 예를 보여주었기는 했지만,
식인자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만으로도 아주 빠르게 명성을 얻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가와 잇세이 역시 빠른 시간 안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사가와 잇세이는 더욱 명성을 쌓기 위해 노력까지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노력하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다.
\'霧の中\'의 성공과 그 밖에 여러 가지를 통해,
사가와 잇세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몹시도 궁금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사가와가 알게 된 그것을 시청률에 목을 매고 있던
(이건 비단 일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내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이 모를 리 없었다.
1989년,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욕을 가지고 있던 변태
\'미야자키 츄토무\'가 사가와 잇세이에게 기회를 준다.
그는 자신의 변태성욕으로 인해 여러 명의 여자아이들을 연쇄살해했는데,
식인에도 관련돼 있었다.
그의 출현은 사가와 잇세이를 살인범죄 해설자로 일본 방송에 등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사가와 잇세이를 사람들 곁으로 본격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사가와가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면서
그를 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조금씩 없애주게 한 결과를 낳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게 되면서 사가와 잇세이는
더욱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죽이고 먹고 하던 사가와 잇세이는 (霧の中은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단지 5년 정도가 지난 후부터 거침없이 사회에 말할 수 있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예 토크쇼의 게스트가 되어 가면서까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가 저지른 짓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행복해 했다.
그는 죄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의 명성은 여자를 먹었거나 또 다른 여자를 먹는 것을 쓰게 되면서 멈출 줄 몰랐다.
슬슬 사가와 잇세이를 친근하고 활기찬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난다.
어느새 그는 인기인이 된 것이다.
인기인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때문에, 이건 인간들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인기인과 친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에게 포르노 필름의 제작자들이 접근했다.
그 후 사람들은 핑크 무비를 통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 \'The Silence of the Lambs\'에서 \'Hannibal Lecter\'가
갇혀있던 감방에는 요리책이 있었다.
그건 픽션 속에 흔하게 등장할 수 있는 일종의 유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인간의 고기를 먹었던 사가와는 일본 요리 잡지 커버에 등장하기도 했다.
\'Rolling Stones\'는 사가와의 유혈 낭자한 행위에 대해, 노래를 만들고 레코드로 제작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아주 적절한 제목을 붙인 "Too much Blood"를 부르짖었다.
출처-http://blog.naver.com/mydido/20023074062
첫댓글 이런건좀..
공지 지켜주세요 - 다시보니 캐혐오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우웩 무서워요
헐......
와 식인자가 인기인까지.. 방송까지? 진짜 미친나라구나..
미쳤다...토할 것 같애..어지러워...우웩
일본이 이렇지..
이거 진짜에요??;;;;;;;;;;;믿을 수 없어요...
헐.......
하여튼 정상인이없어 미친일본나라 ㅄ.
일본미친건가 돌은건가
미친 나라ㄷㄷ 이 사람 얘기 유명하다규.. ㄷㄷㄷ
미친나라에 미친자식. 일본 진짜 토나온다.
일본 미친 개또라이네 저새끼는 미친놈이고 일본이란 나라는 개미친썡또라이네
아 쏠려서 못읽겟네..
아 쏠려서 못읽겟네..
팬미팅하다가 다 죽어버리길 ㄱ- ;;
미친나라..-_-
이거 알고있었지만.. 참... 볼때마다 ;;
역시 이나라는 답이안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