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그리움
"어이, 우리랑 놀자니까?"
"이거놔!!!"
"여기서 일하면서 웬 내숭? 자꾸 앙탈 부릴래?!"
내 손목을 붙잡은 손을 있는 힘껏 떨쳐 내보지만 소용없다.
날 둘러싸고 음흉한 눈으로 보는 녀석들.
이런 녀석들 가끔 있다.
술집에서 일한다고 몸 파는 그런 걸레 년으로 생각하는 남자들 말이다.
무슨 말도 무기력 할 뿐 오히려 그 남자들의 신경을 건드려 날 거칠게 다룰 뿐이다.
"웃기지마! 누가 니들이랑!"
"뭐?!"
"아줌마!!!"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턱 하니 나타난 아이.
내 손목을 붙잡은 그 남자의 팔을 덥석 하고 잡는다.
그 남자는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 거리더니만 이내 내 손목을 놓는다.
남자는 그 아이를 가만 냅두지 않을 거다.
이 아이에 의해서 그 남자들에게 빠져 나온 나는 술집으로 들어가려 발걸음을 떼본다.
그 남자와 한패인 그 녀석들도 이 아이도 신경쓸 거 없다.
날 구해준 건 감사한 일이겠지만 난 착하지 못하다.
"아줌마, 숨지 말고 기다려! 내가 멋지게 물리치는 모습 꼭 보고가!"
움찔, 아이의 말은 날 황당케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나중에 지말 안 들었다고 투정부릴 그 아이를 생각하니 저절로 우뚝 서질 수 밖에.
그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바라봤다.
그 아이가 그 녀석들에게 주먹을 날리는 솜씨도
그 아이의 주먹에 나가 떨어지는 그 녀석들도
그 날쌘 주먹의 소리도
어느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언제 끝날까 하는 지루한 소리만 해본다.
그리고 코피를 흘리고 눈이 밤탱이가 되어 저멀리 뛰어가 버리는 그 남자들.
왜 맞았는 지도 모를만큼 잽싸게 사라져 버렸다.
말도 안되는 소리만 잔뜩 한 채 말이다.
근데 아쉬운 건 그 녀석들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맞았다는 것,
왜 확실히 처리하지 않은 거야?!
"어때? 나 멋있었지?"
그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무심코 주머니에 손이 간다.
담배를 꺼내기 위한 행동이다.
"무시하지마, 아줌마!"
".."
"무시하지 말래니까?
근데! 내가 그랬잖아! 여기 다니지 말라고.
내가 딴데 소개시켜 준다는데 왜 그래?"
".."
"쳇! 또 이런일 생겼네...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 휙 하고 고갤 옆으로 돌려 버리고 라이터를 켜본다.
불이 확 일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니
그 아이의 손이 냉큼 내 담배를 뺏어간다.
뭐야 라는 띠꺼운 눈빛으로 그 아이를 쳐다보니
내가 그 담배를 다시 돌려 받기도 전에
땅에 툭 떨어뜨리고 밟아 버린다.
그 아이는 속 시원한다는 듯 손을 툭툭 털더니 흐믓하게 웃는다.
아... 말도 안되서 표정이 확 일그러지는 데...
웃긴 건 아이는 꺼졌나 확인까지 하더니만 이번에는 만족스런 얼굴을 한다.
미친, 담배값이 얼만데!
"담배피지 말고 내 눈 똑바로 봐! 아줌마, 벙어리야? 왜 말을 안해"
화가 나서 열나는데 내 턱을 끌을 자신을 보게 만드는 아이.
눈이 마주친다.
"니가 뭔 상관이야"
무표정으로 한마디 하자 잠시 고민에 빠지는 아이다. 곧
"신경쓰이잖아. 아줌마가 눈에 거슬려"
란 그 아이의 말에 내가 할 말이 없어진다.
너무 당당하게 자신있게 말해서 할 말이 없어져 버린 거였다.
"이거놔"
괜히 당황한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그 아이의 엄청 큰 목소리에 술집에 들어간 나는 문밖을 봤다.
"아줌마!!! 담배피지 말아. 약속하는 거다?
거기 하마 언니 물리치는 거 도와줄 테니까 내일 도망치는 거다?
아줌마가 아무말도 안했으니까 나 계속 신경쓸거야.
매일 여기와서 얼굴도장 찍을게!"
투명한 문으로 보이는 그 아이를 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피식 새어 나왔다.
"아줌마 바이"
주머니에 양 손을 쑤셔 넣은 채 나즈막히 말하는 그 아이, 곧 사라져 버렸다.
"일월이 일 안해?"
하마 언니라고 칭하는 새미 언니에 의해
계속 시선이 갔던 그 아이가 서있던 곳에서 눈을 떼고 대걸레질을 해본다.
예전을 돌아보면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게 생각난다.
이주일 전인가? 아무튼 그 쯤 한창 바쁠 때였어.
8시 이후에 고등학생 손님이 떼를 지어 온거야.
새미언니는 아는 애가 있다며 괜찮다고 당부했지만 솔직히 그런건 다 필요없어.
이 많은 애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하고 걱정만 앞선거야.
18살정도 되보이는 그들은 술을 셀 수도 없이 시켰고
그걸 옮기는 게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 핑계로 새미언니에게 맡겼어.
새미언니는 잘생긴 놈들을 찾아 보겠다며 혼자 신나서 난리였어.
난 그것마저도 귀찮았던 것 같아.
"오~ 미쓰손!"
걸쭉한 목소리였어.
흠칫하고 내 등 뒤로 오한이 느껴지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주무르는 아저씨였어.
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올려진 그 주름진 꺼먼 손을 치워 버렸어.
역겨워서 목구멍으로 따끔 따끔거리는 토가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어.
"일단 앉으세요... 뭘 드시겠어요?"
그 아저씨는 느끼하게 술을 달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건 느끼한 정도가 아냐, 더 심해.
술 3병을 식탁에 얹으려 하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거야.
생각하기도 싫은 짓을 그 아저씨는 웃으면서 해버린거지.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것도 아닌 주무르면서
"어유~ 토실토실한데?"
라고 말하는 그 아저씨의 면상을 술병으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엉덩이 하나 잃었다 생각하고 그냥 충고만 해주는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어.
괜한 소동은 화를 불러 일으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 아저씨!!! 내 꺼 만지지 마요!"
이상한 소릴 해대며 다가오는 술에 쩔은 고딩이 한 말은 참으로 기가 막혔지.
아저씨의 표정도 가관이었어. 욹그락 붉그락한 얼굴 참 볼만했어.
"아저씨, 내 말 껌이야? 왜 씹어먹고 제랄이야~
이거 내.꺼.니깐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그 고딩은 아저씨의 이마를 툭툭 쳐가며 아저씨의 신경을 건드렸고
아저씨는 이윽고 내 엉덩이에서 손을 뗐어.
하... 난 내 엉덩이를 마저 지킨 게 다행이라 여기며 기뻐하기만 했지.
"이게 어디서 입을 나불거려! 어린게 까불고 있어!!!
아주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니 어미가 그렇게 가르치던?"
"왜 니 입에서 우리 엄마가 나와. 니가 먼저 내꺼 손댔으니까 그런거 아냐아!"
"뭐라?!!"
아저씨는 손이 올라갔고 고딩은 그 손을 막으며 밀어 버렸어.
아저씨는 쉽게 뒤로 나가 떨어졌고 고딩은 브이자를 그려 보이며 해맑게 웃어 보였지.
날향해 그리 웃는 것 같았어.
"켁켁... 이 새끼가!!"
헛기침을 해가며 일으킨 몸은 엉망진창.
이미 아저씬 게임 오버였지만 도통 포기할 줄 모를더군.
고딩이 끈질기다며 주먹까지 날렸으니깐 말야.
그 주먹에 큰 코 다친 아저씨는 식탁에 얹어진 술병에 몸을 내던졌어.
살펴보니 기절한 것 같지 않아. 그저 이 상황이 매우 쪽팔린게 문제지.
뭐, 치울필요도 없이 누가 안보는 사이에 사라져 영영 보이지 않을 테지만.
"아줌마, 아줌마 이름 뭐야!"
정말 술에 잔뜩 취했나봐, 나보고 아줌마라 칭하는 걸 보니.
난 어린애 말장난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 깨진 병조각을 줍기 시작했어.
"아줌마 내 말 장난아냐"
내 속마음을 읽은 줄 알고 흠칫 놀랐어.
너무 놀란 탓일까 잡고 있던 깨진 조각에 손이 베였어.
"아줌마 피나..."
내가 신경쓰기도 전에 그 아이는 내 손을 낚아채 입속에다 넣어 버렸어.
쪽쪽 잘도 빨더니 피가 안나는 걸 확인하고는 침을 박박 지 옷에다 닦는 거야.
아주 박박 문질르더니 또 웃어.
"소독했으니까 마데카숄 바르고 데이밴드 꼭 붙여"
막 혼자 심각해지고 혼자 뭐가 좋은지 웃어 버리고...
알 수가 없는 앤데 나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려했어.
"피식"
"아! 웃네!!! 그게 훨씬 이뻐!
웃겼으니까 이름 알려줘"
"손일월"
왜 알려줬는지 아직까지 그 이율 몰라.
하지만 난 그때 바보같은 짓을 해버린 건 확실해.
"손일월? 이름이 그럼 일월이야? 우와~ 우리 인연인가봐!"
"왜 인연인데"
"내 이름 신이월이거든. 킥, 우리 천생연분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잊을 수 없어. 그 이름. 그 말. 그 행동.
신이월... 이월... 이월......
여느때처럼 한가로이 담밸피고 있을때면
여느때처럼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내 담밸 낚아채 짓눌러 버리는 아이.
한숨을 쉬는 것도 이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왜 난 이 아이가 뻔히 이러는 거 알면서 막지 못할까? 아,아.. 이 아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 휴-
"담배피지 말라고 했잖아. 또 피면 확 뽀뽀해 버린다?"
이 아인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아줌마, 우리 놀러 갈까?"
내가 미쳤냐?!
"아줌마~ 놀러 가자~"
"싫어"
"아줌마, 요즘에 나 상대해준다, 그치?"
내가 그랬었나.. 아니지, 상대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내가 또 말 안하면 아무말 안한다고 지혼자 떠들어 대면서 날 끌고 갈테니까.
아무말 안하는 게 승낙하는 줄 아는 거지, 이 아이는.
"근데 궁금한 게 있어"
"뭐!? 나한테 궁금한 것도 있어?"
헉.. 괜히 물은 것 같다.
"좀 많은 데 하나만 물어 볼게"
"아냐, 아줌마는 다 물어 봐도 돼!"
"니 왜 나한테 아줌마라고 불러?"
잠시 고민에 빠지는 아이.
이유를 생각할라고 그러는 거... 첨부터 이유가 없었던 걸지도 몰라.
"그야 아줌마니까"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만데"
나 화났다, 아주 약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
그럼 니는 제멋대로 하는 장난꾸러기로 밖에 안보여!
"나보다 나이 많잖아"
"나 겨우 22살 밖에 안됬어!"
또 흥분....
"겨우라니~ 난 18살인데?"
그래서 4살밖에 차이 안나는데 아줌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야?
"이런 얘기 많이 하면 아줌마 더 아줌마라고 느낄거야. 우리 빨랑 놀러나 가자"
"됐어, 안가"
"아줌마 삐졌구나? 그럼 뭐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는 데?"
"4살이나 차이나니까 누나라고 불러"
"너무하다~ 그건 너무 닭살 돋아"
"안가"
"킥, 누나소리 듣고 싶어? 나 쪽팔린데..."
뺨을 붉히며 수줍은 듯 몸을 베베 꼬는 아이.
아이야 솔직히 내 주변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애가 없어서 꽤나 듣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부끄러워 하는 데 꼭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라고 머릿 속에서만 맴도는 얘기들.
진짜 하고 싶은데 이제 와서 하기에는 저 아이 너무 좋아하고 있어.
꽤나 부담스럽게 말이지.
"누...나.. 일월 누나~"
난 누나란 소릴 들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더 싫어, 당장 죽고 싶다.
닭살이 왕창 돋아나고 있어, 새싹처럼!
"그냥 아줌마라고 불러"
"엑~! 시켜 놓고선!!! 얼굴 찡그리지 말란 말야!"
내 양볼을 쭈욱 늘리는 아이. 내 볼이 너무 아퍼서 벌게 지는 것도 안보이는 거냐!
"나아...(놔!)"
"내가 그 소리하면서 얼마나 떨렸는 줄 알아? 아줌마 진짜 너무해!"
아이가 내 말에 바로 손을 놓았지만
아이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난 내 볼을 문지르기에 바뻤다.
"아줌마가 오늘 점심 사줘!"
"절대 싫어"
"아줌마 거지야?"
"그런 문제가 아냐, 너랑 먹기 싫어"
"시내가자. 시내가서 내가 아는 집에 가서 떡볶이 먹고 스티커 사진 찍자"
"싫다고 했어"
"내가 사줄게"
이 아이, 내가 거진 줄 아나... 하지만 뭐, 공짜라는 데 사양하기엔 너무 아까워.
이거 너무 욕심나.
"니가 사준다고 했다?"
"걱정마, 오늘 돈 진짜 많이 가지고 왔어~"
난 정말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이 아인 믿을 게 못된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어.
"아줌마 우리 사진부터 찍자"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지맘대로 스티커 사진찍는 곳으로 밀어 버리는 아이.
5000원을 내고 아이는 포즈를 잡기 시작한다.
"아줌마도 빨리 포즈 잡어~"
그런데 어떻게 잡을까 허둥지둥 하는 사이 사진이 찍혀 버렸다.
"내가 빨리 하랬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말구 옆으로 와"
슬금슬금 옆으로 가니 내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는 브이자를 그린다. 이 아이의 상징은 브이자다.
사진이 바로 찍혔다.
"아줌마 좀 웃어"
하, 이렇게 해야만 하나...
조금씩 유치함을 느끼고 있는데 내 어깨에 올려 졌던 손이 금새 아래로 내려와 내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아, 으.... 간지..러..워어... 그, 그.. 만.."
난 간지럼을 잘 타기에 참을 수 없었다. 이건 내 최대의 약점이야, 정말 싫은 약점.
"아! 웃어!"
그 소리에 밝게도 웃고만 나.
겨우 찍은 사진을 훑어 보니 나 너무 웃는 것 같아 부끄럽다.
아이가 알아서 사진을 꾸미더니 뽑은 사진을 준다.
"내 얼굴 잘나온 건 아줌마가 가져. 난 이거 가질래~"
아이가 가진 걸 보니 헉... 내가 너무 밝게 웃는 거다.
"그거 말고 딴거 가져!"
아이의 손에 쥔 그 사진을 빼앗으려 하니 더 높이 높이 사진을 올려 버리는 미운 아이.
그 아이의 왼팔을 붙잡고 그 사진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본다.
오른손에 쥐어진 사진은 정말 잡힐 줄을 모른다.
"으,으... 그거 내놔.."
"어머~ 저기봐요~ 남자애가 여자애 약올리네, 후후.."
"요즘애들은 저렇게 노나~"
"아유, 귀엽기도 하지~"
헉...@ 재빨리 떨어졌다.
시내 한복판에서 이러고 있으니 눈에 안띄는 게 더 이상하지.
그리고 이 아이라면 더 눈에 띄는 게 당연해.
"아줌마 할머니들이 우리 쳐다보는 거 싫다. 밥 먹으러 가자~"
날 이끄는 아이의 손에 의해 난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휴-
아이는 날 어느 외진 분식집에 데리고 갔다.
그 곳에 들어서자마자 식당주인과 아는 척을 하더니 날 의자에 앉힌다.
식당주인은 우릴 보며 계속 웃기만 해서 내 기분이 좀 꺼리칙했다.
아는 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아줌마 떡볶이 좋지? 그럼 그거! 아줌마아!!! 떡볶이 3인분 주세요!!!"
3인분씩이나... 난 매운 건 질색인데.
근데 내 대답은 또 듣지도 않아, 기분 나빠질라 하네.
곧 등장한 벌건 떡볶이.
너무 벌게서 먹을 맛이 오히려 안난다.
공짜라도 이런 건 별로란 기분이 새삼 든다.
하지만 내 앞에서 열심히 떡볶이를 먹는 이 아일 보면 문득 바보같은 생각이 든다.
보면 이 아인 그런 거 상관 안하는 것 같아서.
"깨작깨작 먹지말고 좀 팍팍먹어!"
"응, 먹고 있어"
다른 걸 시켰으면 팍팍 먹을라 했지, 이건 다 니 때문이잖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일 보니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이었다.
신경쓰고 있지 않아 모르고 있었는 데 이 아인 무지 잘생겼다...
근데 말을 안하면 멋있는 외몬데 말을 하면 귀여움으로 탈바꿈한다.
아무튼 간에 바람에 휘날리면 멋있는 밤색빛의 부드러운 머릿결에
속눈썹도 무지 길고 코도 날카롭고 눈도 크고 입술도 작고 빨간데다 피부도 하얗고
어디하나 안빠지는 데가 없다.
괜히 신경질이 나서 젓가락을 내팽개쳤다.
"에잇! 국물이 얼굴에 튀었잖아"
이런... 괜스레 짜증을 내다 저 아이에게까지 피해를 줬다.
벌건 떡볶이 소스가 눈 밑에 묻었다.
"아.. 미안"
조심스레 휴지로 닦아주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살피는 아이.
왜... 왜지?
그러더니 내 손목을 잡아서 자신의 입쪽으로 이끈다.
"아줌마 이왕이면 입도 닦아주는 게 어때?"
어린애스럽게 입에까지 묻히고 먹는 구나.
왠지 딱 어울린다는 생각에 또 웃었다. 피식 피식 하고
"아줌마 나 때문에 웃는 거지, 맞지?
히히.. 기분 좋다.."
이 아인 장난이었겠지만 난 그 말에 또 웃게 된다. 피식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웃어 본다.
"근데... 아줌마, 나 돈 잃어버린 것 같다..."
...!!... 황당함에 쓰러질 뻔했다...
아아아아악! 믿고 싶지 않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거지... 으.. 또 쌩돈 나가게 생겼어...
사실 지난번에 저 녀석이 그 아저씨를 때려 눕힌 이후로 장사도 안되고
술 3병도 내 돈으로 내고... 또 그 아저씬 새미 언니에게 뭐라 해서 내 월급만 싹 빠져 나갔지...
"아줌마 거지 아니라고 했어. 그니깐 오늘은 아줌마가 내요, 응?.."
왜 존댓말은 섞고 그래?.... 저게 다 작전일지도 모르지만 난 결국 속아서 내고 말았다...
신이월... 존나 싫어..
또 그 소리 들을까봐 미리 담밸 꺼버리게 되었다.
그 아이와의 모든 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레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킥, 담배 안피네? 착하지~ 좋았어! 이렇게 안 쓴 담배값으로 우리 결혼하자!"
뭐...라는 거야.....
황당한 말에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설레게 된다..
들키지 않으려고 마냥 비웃듯 웃어 버린다. 그렇게 웃어버려...
하지만...
가끔 이런 엉뚱한 말로 사람을 놀래키지만 이제 더이상 그리 놀라진 않아..
금방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아줌마 오늘은 내가 거하게 쏠게"
"어떤거"
지난번 일이 아직 맘에 남아 있어 내키지는 않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는 아일 보니 대답 안해줄 수가 없다.
"술!"
"됐어, 많이 먹고 있어"
"에잇~ 아줌마 혼자 홀짝홀짝 하지?~
그런 거 말고 나랑 둘이서 먹는 거야! 기분 째지게!!"
"먹고 싶으면 혼자 먹어라?"
"그러지 말구~ 가요~ 아줌마 드가요~"
"아!... 싫다니까...ㄴ"
내 몸을 떠미는 아이. 그 바람에 술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미 언닌 우릴 보더니 풋 하고 웃어 버리고 난 한숨만 내쉰다.
"여기 많이 주세요!!~"
술을 엄청 마시는 나.
먹지 않겠다고 우겨댔지만 결국엔 내가 더 먹고 있다.
함께 술한잔이나 하자며 지가 알아서 시키던 아이는 안주 가지고 장난을 쳐본다.
그걸 보면서 뭔가 꺼림칙했지만 왠지 이 취하고 싶은 기분은 뭔지...
아이는 장난치던 오징어랑 과일이랑 오징어땅콩과자를
내 술에다 넣더니
원샷하라고 소릴 지르고..
난 취해서 그런지 화도 안내고 벌컥벌컥 무조건 다 들이키기만 했다.
아이는 내가 약간 무방비상태라는 걸 알고 더욱 더 그랬고
생각해보니 내가 이 아이의 장난을 부추긴 거 밖에 안된 거였다.
한참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렵단다, 내 아랫배가.
으.... 몸이 무거운데... 일으키는 게 힘들다.
"신이월, 나 화장실..."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는 눈빛으로 얘기하니
곧 알아챈 아이는 날 일으켜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도와주까?"
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아이.
난 얼굴을 붉혔으며 무시해야 할 것을 나도 모르게
"나혼자 할 수 있어!"
하고 반응해 버렸고 아이는 마냥 웃어 넘긴다. 심하게도 웃는다.
급하게 볼일을 보고 문을 나오니 벽에 기댄채 고갤 푹 숙이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내가 취해 있지 않았다면 바로 팔을 흔들며 깨웠을텐데,
이때 볼까지 빨개져 가지곤 엄청 취해 있었던 터라
잠자나 하고 밑에서 올려다 보았다...
술에 취하며 가끔 이런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읍!"
자연스레 이런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짓을 한 아이.
그 아이의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 아니, 이건 덥친거다.
나를 휘젓는 그 아이의 달콤함에
입술에 닿은 그 말랑함에 숨을 쉬지 못할만큼 촉각이 곤두선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곧 이건 아니겠다 싶어 밀쳐 냈다....
그리고 쉬지 못해 거칠어진 숨을 고르게 쉬어본다...
이 아이가 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가 입을 연다.
"아줌마 속았지롱~"
마지막까지 혀를 멜롱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
얼굴이 마치 화상입은 것처럼 새빨개져 오더니
불규칙한 심장 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하는...
이 불규칙한 쿵쾅 소리에 가슴을 메만져 본다.
"하.... 저리가...
나갈래, 잘거야"
나 지금 이상한 핑계거리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여태 이렇게 날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 또 있을까.
난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줌마아 내 첫키스 돌려줘. 그렇게 뿌리칠거면 다시 내놔..
다시 내놓으란 말야... 다시 내놔아"
이 아이의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리고
난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와 버렸다.
더이상 그 곳에서 서있을 자신이 없었고 주저 앉을 뻔했지만
주저 앉으면 그 아이가 내게 다가올 것 같아 미친 듯 뛰었다.
따라오지 않는 아이가 나에겐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이젠 그 아일 보고 싶지 않다.
그 아이가 다가설수록 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 아이도 그걸 느낄테지, 근데 난 그 아이에게 상처밖에 줄 게 없어.
난 그 아이가 상처 받는 게 너무 싫다.... 너무 싫어... 하...
근데 난 역시 여자였나보다....
난 아줌마가 아니라 여자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날밤 괜히 설레어 빨갱이눈으로 밤을 지샜다는 거 아냐
여전히 이 시간에 왔던 아이가 안보인다.
그 아인 보이지 않는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
근데 나 그 아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여, 손일월!"
날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갤 들어 확인하니 오빠다...
바로 고개가 숙여져 버린다...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그 아이가 아닐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아니니까 이렇게 실망하고 있는 것 봐, 나 무지 이기적인 애야.
"뭐냐! 내가 안 반가워?!"
"아냐.."
어색한 미소지만 한번 지어 보이며 오빠를 맞이했다.
"근데 왠일이야?"
"어이~ 무슨 섭한 말씀을~ 나 여기 당골이잖아!"
"당골은 무슨.. 난 한번도 못 봤다"
"큭, 근데 너 또 담배폈냐?"
"어? 냄새나?"
"무지 나는데.."
"그래...?"
"바닥에 담배가 깔려 있는데 다 알지~"
"킥... 그렇구나.."
그래... 그런거였어.. 그 아이 왜 그랬냐?..
왜 날 속였니..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면 안되냐? 우리 놀자~"
"왜 오빠 맘대로 정해"
"너 여기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서 살라면 벌어야지..."
"오늘은 빠지자~ 너 아무때나 빠져도 상관없잖아~"
"오빠 맘대로 하는 거 고치랬지!.."
"그런거 좋아하면서 뭘 그래~ 너 이런 사람 만나야 된다니깐.. 혼자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런 사람, 오빠같은 사람, 지맘대로 날 다루는 사람
만났어, 만나봤는 데 역시 나한텐 안돼... 오빠보다 내게 더 힘든 사람이야
"빨리 옷 갈아 입고 가자!"
"후.."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치지!~ 한숨 쉬는 거 안 좋아!"
철저히 무시하며 술집 뒤편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
사실 이 곳은 새미 언니의 집이다...
한칸밖에 없지만 성격 좋은 새미 언니는 나를 받아 들여 주었고
난 불평 한번 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오고 있다.
뭐, 불평하면 너무 이기적인 거 밖에 안된다, 얹혀사는 데 뭘 더 바라겠는가
역시 오랜만에 오빨 만나는 거니까 샅샅이 찾아 본다.
구석에 숨겨 놓은 거라든지 처박혀 놔서 눈에 띄지 못했던 거라든지.
여기서 살아오면서부터 꾸미는 걸 안하게 되었기에
옷들이 다 이모양 이꼴이지, 옷들은 주인 잘못 만나 불쌍하지만 해..
거울을 보며 한껏 뽐내본다.
도월이 오빠에게 보여줄 내모습.. 왠지 참 처량하다...
과연 오빤 내 모습을 어떻게 볼까나.. 불쌍하게 볼지도 몰라..
"아아아!!! 그만들 해요!!!"
이게 다 뭐야...?.... 지금 뭣들 하는 거냐...
"오빠!!!!!"
순간 외친 내 목소리에 오빠와 지지고 볶던 아이의 몸이 떼어진다.
"일월아..."
"..."
지금 그 아이랑 왜 싸우고 있었던거야?...
"아줌마 옷 참 이쁘다.."
오빨 향하던 내 눈이 그 아이를 다시 본다.
"아줌마 옷 참 이쁘다고"
"손일월 아는 얘냐?.. 왜 갑자기 주먹을 휘둘르고 그러냐.. 씨발..."
난 어딜 쳐다봐야할지 헷갈리지 않았다.
그건 아마 쓰러져 앉아 있는 그 아이의 옆에 어떤 여자가 있었기 때문일지 몰라.
아까 소릴 지르며
아이의 옆에서 아일 지키는 그 여자가 있었기 때문에
난 그 아이에게서 눈을 돌리게 된건지도 몰라.
그래서 난 오빠에게 다가간 건지도 몰라.
"오빠... 괜찮아?
나 저 애 몰라..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린 걸거야"
"아줌마 너무하다..."
그 소리에 또다시 그 아일 보게 되고 입술을 살짝 무는 그 아이.
난 다시 눈을 돌려 버려... 그냥 궁금해서 쳐다본 것처럼.. 마냥 그런 것 뿐인 것처럼..
"아줌마 너무하다고!"
"오빠... 병원가자.. 얼굴에 상처 많이 났어..."
"쟤 왜 너보면서 저러냐.. 존나 짜증나게 만들어.."
오빠의 얼굴을 날 향해 돌렸다.
계속 오빤 그 아일 향해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오빠를 끌어 병원을 향한 발걸음을 떼는 데,
"이월아, 너 왜 그랬어? 왜 싸웠냐구~ 저 아줌만 누군데 자꾸 불러? 응?"
그 아이의 옆에서 그 아일 걱정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손일월... 손일월... 손.. 일월!.... 손일월!!!!!"
날 연신 불러대는 그 아이를 무시했다.
난 나쁜 여자야.. 아주 나빠서 구렁텅이에 빠져도 살아나올 여자지...
근데.. 근데!
근데 참말로 다행이야... 그 아이 옆에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있어서..
나는 안되는 거잖아.. 난 안될 거였잖아...
저렇게 이쁘고 귀여운 여자애가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다..
난 그날 저녁 엄청 울어댔다.
오빠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방에 처박혀서 울기만 했다.
옆에서 새미 언닌 날 다독거려 주면서 같이 아파해 줬다...
후회다... 후회하는 거다, 나 지금..
이 바보천치...
바로 후회할거면서 왜 그랬니
바로 후회할거면서 나 왜 그랬니
뭣때문에 이렇게 후회하는 건지 모른다.
뭣때문에 이렇게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건지도 모른다.
어제 그렇게 보내버려서,
익숙해져버린 내 것을 그 여자애에게 줘버려서 샘이 난 것 뿐인지,
아님 날 애타게 부르던 그 아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깨달은 것인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만약 아주 만약에 그 아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거라면 익숙하게 그걸 잊으면 돼..
잊는 거 많이 익숙해졌잖아? 잊는 것도 익숙해졌으니까 자연스레 저절로 잊어버리자...
아이가 오지 않는다.
어제 뭣때문에 싸웠는지는 모르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나에게 화나서 무엇때문에 화나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때문만은 확실하다.
근데 왜 화를 냈을까..? 내가 아이의 얘기 안들어서?
그건 아니다... 그런거라면 정말 어이없을테지..
그럼.. 혹시... 아,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스칠쯔음 내 얼굴에 하얀 손목이 바짝 다가와 있다.
움찔하며 놀란 난 멍하니 그 손목을 응시한다.
"아줌마.. 내가 담배피지 말랬지!.."
내 입에 걸려 있던 담배를 쏙 빼내더니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린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거라서 아무렇지 않다. 그저 더이상 익숙해질까봐 두렵기만 할뿐.
"아줌마.. 아줌만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야.."
피곤한 스타일... 맞아, 난 내가봐도 지겨워..
"근데 아줌마 꺼 피곤한 거 옮아?"
"신이월, 너 가"
"이상하다.. 나한테 피곤한 스타일이 전염됬어.."
"너 오지마"
"첨엔 아줌마 꺼를 짜증나서 없앨라 그랬는데 점점 옮는 거야.."
"너 오지말라고"
"킥, 아줌마랑 나랑 궁합 딱 좋다.."
"너 오지 말라니까, 내 얘기 들어!"
아이가 내 말에 동요한다. 양손으로 내 어깰 다급하게 붙잡더니 꽉 하고 힘을 준다.
날 아예 가둔다...
"아줌마도 내 얘기 안들었잖아!"
내게 울분을 터뜨리는 아이다..
아이의 눈에서 반짝 하고 빛이 난다. 눈물이 반짝 거린다..
살짝 고여있는 눈물이 빛을 낸다. 살짝 톡 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아 무척 조마조마하다.
"아줌마... 어제 왜 갔어... 어제 왜 그냥 갔어?.. 왜 나 혼자 남겨두고 그냥 가버렸어..."
아무말도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나 말하는 거 힘들어..
"아줌마.. 아줌마야...
옆에 있던 여자때문에 그런거지? 그렇지?... 질투잖아, 그거....
근데 나 걔 몰라. 모르는 얘야. 그니깐 아줌마 더이상 그러지마라. 나 무시하지마....
아줌마가 무시하니까 아프잖아. 나 여기 너무 아프잖아.
제발, 손일월.. 나 미치게 하지마... 심장이 터져 버리게 하지 말란 말야..
하루에도 니 생각에 들떠서 여기 너보러 오고, 니가 없으면 걱정되서 여기 맴돌면서 기다려..
너가 안보이면 너무 많이 아파와서 죽을 것 같아.. 미친듯 혼자 이상한 생각하고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가라고 날 밀어낼까봐 잠도 설쳐...
아줌마 제발 나 버리지마.. 손일월... 제발 버리지마.."
"..."
"나 버리지마... 아줌마.."
뭐야... 정말.. 난 아주 나쁜 사람인데 왜 다가오는 거야..
난 또 나쁜 여자가 됐잖아.... 또 나쁜 짓을 해버렸어..
근데... 더이상 이런 거 하기 싫어.. 이렇게 착한 아이 괴롭히는 거 나 질렸어...
나도 나쁜사람 더이상 하기 싫어, 나쁜사람 안할래.. 그만 둘래...
"신이월... 좋아해.."
"근데 그 새끼 누구야? 씨... 내 얼굴 존나 망가뜨리고 아줌마 낚아채 간 새끼!"
"알고 싶어?"
"응! 쥐도새도 모르게 뭉개버릴거야"
"친척오빠"
"아아아아아아악~!!!!! 왜 진작 얘기 안했어! 이제 곧!"
"응?"
"이제 곧 결혼할건데 결혼방해하면 어떡해.."
"뭐?!"
"결혼을 반대하면 어떡하지?.. 응?.."
"미쳤어?!"
"자기는 결혼안할거야..? 그럼 쪽쪽 빨아먹고 내다 버릴거야?!"
"뭔 소리야..!"
"아줌마는 봉잡는거야.. 이렇게 순수하고 멋있는 남학생을 꼬셔가지고"
"순수하지는 않다, 뭐.."
"멋있긴 하고?~"
날 향해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아이.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 같다..
기분이 너무 좋다... 나 정말 좋아하나봐, 이 아일.
"왜... 왜 안오는 거야.. 이것봐... 나 많이도 모았잖아.."
오지 않는 아일 여전히 기다린다.
벌써 3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그때 이후로 두번 다시 모습을 비추지 않은 아이다.
그때 이럴 줄 알았으면 붙잡았을텐데..
옷깃이라도 붙잡고선 매달려 봤을텐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애원했을텐데..
눈물이라도 흘려 봤을텐데..
너 앞에서 눈물이라도 흘리면 혹시나 가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그때는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
아침부터 비가 내려 온 동네를 다 적셨고
그날따라 기분은 울적지근해서 축 처져 있었지.
밖에서 담배를 필 수도 없었고 항상 널 기다리는 행동도 할 수 없었어.
그런데 그 날 너가 내게 온거야.
그것도 아주 빨리 빠른 시간에 내게 달려온 너.
나는 비를 다 맞고 뛰어온 너의 온 몸을 수건으로 감싸고 물기를 툭툭 털어 내며
걱정스러운데 이런 행동을 보인 너에게 야단을 치듯 재잘거리며 잔소리를 했지.
너는 내 잔소리에 웃고만 있었지만 난 그 미소가 너무 슬퍼서 더이상 아무 소리도 못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찬 입술을 내게 들이밀며 입맞춘 넌 총총총 사라졌어.
빗속에서 연신 손을 흔들어 대며 웃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떠나보냈어.
나는 너의 웃음에 안심해 버리고 말아 그렇게 가버리는 널 놓을 수 있었던 거야.
넌 절대 슬픈 웃음따윈 흘리지 않을 거라고 처음에 슬픈 웃음을 지은 건 잘못 본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믿으면서 그 웃음의 의미를 그만 떨쳐내 버리고 말았는데 난 역시나 바보였던 걸까?
바보라서
또 실수를 해버리고
또 잘못을 해버리고
또 후회를 해버리고..
너가 없어서 숨쉬기가 힘들어.. 살아있을 이유가 또 다시 사라져 버렸어.
가지말지 그랬어. 제발 그러지 말지 그랬어..
거짓말쟁이야... 내가 없으면 안된다면서 왜 갔니. 날 두고 왜 갔어..!..
잊을 수 없어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나는 바보처럼 기다리게 되었고 천천히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됐다.
엄마, 아빠가 죽었을 때도 겨우 참아 이겨냈는데 지독하게도 살아왔는데
두번이나 시련이 닥쳐오면 나도 견디기 힘든거 왜 몰라?..
난!.. 난 무조건 강하다고 누가 그렇게 정했어!...
세상이 왜 이렇게 씨발이야... 세상이 왜 그렇게 엿같아..
엄마, 아빠 죽인 것도 다 내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래, 내 탓이야... 내가 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테지..
근데 모두 나만 나쁜년 만들어 버리고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았어..
하느님이란 새끼도 나한테 몹쓸 것만 주고! 아픔만 주고!
하루에도 죽을 생각만 하고..
그 아이가 없었으면 그 녀석, 이월.. 신이월만 없었으면 벌써 죽었어...
근데 그 아이가 없어.. 내게 더이상 없어... 떠났어.. 날 두고 멀리 갔어
나만, 나만 혼자 만들고 모두 날 홀로 두고 다 어디간거야..
익숙한 그리움으로 세월을 보내..
익숙해진 그리움으로 시간을 보내...
몇 년이 지나도 떨칠 수 없는 이 그리운 맘으로 하루를 보내..
아주 조금의 희망을 갖고 살아..
너가.. 신이월, 너가 돌아올거라 꼭 올거라 믿으면서 그렇게 살아...
이 엿같은 세상, 씨발같은 세상을 그거 하나가지고 산다..
너도 거짓말쟁이 되는 건 싫지?... 그니깐 빨리 돌아와..
이제 돌아와도 용서해줄테니까 돌아와....
말도 안되는 핑계라도 다 들어줄테니까 제발 돌아와..
아줌마란 소릴해도 화안낼테니까
말 안하는 거랑 짧게 얘기 하는 거 안하고 하나하나 꼬박꼬박 대답해줄테니까
너랑 놀기 싫다는 것도 다 뻥이니까
담배도 끊고 그 담배값 모으고 있으니까
너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줄테니까
제발.... 제발.. 돌아와..
이월아... 나 울게 할거야?.. 나 울보되는 거 좋아?...
신이월... 신이월.. 신이월..
이월아... 이월아.. 이월..아...
하아.. 하아.. 하아...
숨이 턱턱 막혀 온다..
목이 메어서 눈물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못해..
손은 병신같은 게 되버리고 다리는 조금도 이 곳에서 떼내지를 못해..
온 몸은 약해빠져서 매일 콜록 대고 시름시름 앓기만 해..
그러니까 신이월.. 올꺼지?
비가 주륵주륵...
그 자리에서
내가 쓰라린 아픔에 담배를 펴댔던 그 자리에서
너가 항상 담배핀다고 혼냈던 그 자리에서
널 항상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너의 장난에 맞장구 한번 쳐주지 못했던 그 자리에서
항상 귀엽게 웃으며 날 즐겁게 해줬던 그 자리에서
익숙한 그리움에 희망을 꽉 부여잡고 움크려 앉아 있는 내가 그 자리에서
계속 비만 온다?...
내가 기다렸던 건 이런게 아닌데...
하는 서운한 소리만이 감돈다..
비야... 오늘은 올거야.. 그 아이가 그 사람이 그 남자가 올거야...
이월이라는 애가 올거야... 잔인하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남자가 올거야..
오늘은 그 남자가 떠난 날과 비슷하니까...
오늘처럼 이렇게 비만 내렸으니까..
내 온 몸이 다 젖어도 들어가면 안돼..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그 남자가 잠깐 왔다 갈수 있잖아...
그러니까 절대로 안돼... 여기서 내가 사라지면 안돼....
풀썩-
"일월아..!.. 손일월!.. 일어나..!. 정신 차려!"
.... 눈을 뜨니 방이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멈출 기세가 안보인다.
볼을 타고 눈물이 베개를 적신다.
"어?... 일월아... 왜 울어!?"
"흐윽... 흐윽.... 흡.."
"왜그래..."
"어떡해!... 여기다 데려다 놓으면 어떡하냐고!!.."
"일월아.."
"신이월! 이월이 봐야 되는데 나 여기다 냅두면 어떡해!!...
언니... 이월이 그냥 갔으면 어떡해?.. 나, 나.. 나 어떡해.. 어떡하냔 말야.."
언니가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문을 향한다.
울부짖는 내게 이 한마디만 던져 놓고...
"신이월인가 뭔가하는.. 걔 왔어.. 나 방해될 것 같으니까 나갈게"
그 말을 끝으로 누군가가 들어온다..
그렇게 그리던 그가 말야..
"아줌마..."
울고 싶다.. 이 애 앞에서 엄청나게 품고 있던 눈물을 뿜어내고 싶다..
근데 왜 이 애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하지?.. 내가 원하는 거 하나도 할 수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아줌마, 왜 대답이 없어?~"
".."
"아줌마, 하나도 안 변했다..."
"..."
"나는 많이 달라졌는데.. 이것봐!.. 상처도 생기고 수염도 나고..
아!.. 수염난 남자는 싫어해? 그럼 빨리 깎을게!
여기 면도기 어딨어?..
맞다아~ 여긴 남잔 안살지!"
"..."
"근데 나.. 아줌마 행복하게 해줄라고 돈모와 왔어"
".. 누가 돈같은 거 모으래?!"
"히.. 이제 대답하네.. 그럴때는 그러는 게 아니지...
칭찬해줘야지.. 아줌마가 머리쓰다듬으면서 그래야 되는거야.."
"하..!.. 내가 왜?.."
"나 안 잘했어?.. 나 안보고 싶었나?.. 표정이 왜 그래.. 자꾸 그렇게 찡그리지마..."
"신이월.."
"응.. 일월누나 왜?.."
"니맘대로 가버렸으면서 이제 돌아오면 누가 너 반겨준데?.. 나 너 때문에 이 몰골이야..
니가 이렇게 만들어 버린거 알아?.. 니가, 니가! 말도 안되는 소리로 나 가지고 놀아서 이 꼴이라고!"
"아줌마, 그래서 싫어?"
"뭐?!"
"손일월.. 그래서 내가 싫냐고"
뭐라 얘기 할 수 없어... 싫어졌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게 아니니까... 이거 단순한 투정일 뿐이니까...
진지하게 묻는 너에게 난 뭘 얘기 할 수 있겠니.. 하지만 말야...
가끔 너에게 휘말리는 나를 보면서 당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는 내모습을 봐..
입술을 꼬옥 깨물어 본다. 깨문 곳에 피가 나지 않을까 하는 바보스런 조바심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내 그 무표정한 표정하나 흐트러 뜨리지 않고 잔인하게 말해본다.
"어.. 싫어.. 너 같은 애 무지 싫어"
나의 말에 순간 당황한 빛을 뿜어내는 아이.
하지만 곧 넌 아무렇지 않는 듯 얼굴색이 변해.. 다시 돌아와..
알고 있어.. 내가 널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근데 난 그걸 알면서도 꼭 이래.
"그래도 상관없어..
내가 아줌마 좋아하니까... 꼭 붙어 있을게.. 꼭 옆에 있을거야...
다신 안가.. 나도 미치는 줄 알았어.
아줌마 없으니까 죽을 것 같아.."
....
"손일월... 일월아.. 사랑해"
이 말을 기다려 왔던거야.. 내게 한번도 이 말을 해주지 않았잖아, 그지?..
그래서 나 힘들었던 거야... 이 한마디면 난 괜찮은데 숨이라도 쉴 수 있었는데..
이 말이 없어서 너무 간절해져 버린 이 말이 없어서 그런거야...
나도 사랑해.. 신이월.. 나 너 사랑한다고..
사랑해서 미쳐버렸고 사랑해서 화가났고 사랑해서 살아왔어..
꼬옥 껴안는 이월... 그의 품에 안겨 울어 본다.
애타는 내 사랑아.. 이젠 괜찮아.. 맘껏 울어봐, 소리내어 펑펑
솔직히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다...
하면 거짓말일테지만 사실 이 녀석 내게 미안하단 소리 요만큼도 안했다.
코딱지만큼도 안해서 미워 죽겠다. 너무 얄미워 죽겠어..
사랑해란 말에 그만 용서해버린 나도 싫지만 이 녀석이 더 싫다.. 정말 싫어...
내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아줌마, 몸이 약해빠졌어!.."
"니 탓"
"..미안해.. 아줌마 아프게 해서 미안.."
헉... 이렇게 해서 미안하단 소릴 듣고 만거야?..
근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기분이 드는 거야!
"흥! 됐어. 그만해..."
내 말에 기분 나쁘게 피식거리며 쪼개는 녀석.
기분이 꿀꿀하다. 이 녀석 일부러 그런거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입이 불쑥 나온다. 나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본다.
"왜그래~ 그런 표정은 하면 안돼~"
"지맘대로 끝내버리고... 분해.."
"표정 그만!.. 그럼 내 입술에다가 분풀이해.. 지금 이거 아줌마 욕구불만이라서 그런거야."
"웃기지마!.."
"킥, 아줌마 표정 바꼈다~ 계속 그 표정했으면 뽀뽀할라 그랬어"
이 녀석 장난감 아줌마.. 신이월 장난감 손일월..
휴-
딱한 나..
아냐, 이런 녀석을 사랑해버린 내가 바보지..
"근데 이젠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돼?.."
"어?"
"자기야?.. 여봉? 당신? 어떤게 좋아? 이왕이면 끈적한 걸?"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입을 조물락거리는 녀석.
아악! 싫어!
"싫어, 그만!"
-끝.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쫌 긴 내용이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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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머머♥] #담배맛#-일월, 이월 이야기
어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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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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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잘읽었어요! 재밌었고.... 건필하세요~~~~~~~~~
쥬렌님 정말 고마워요!!!~
와우~내용이 긴데도..집중이 잘되가지고 길게 느껴지지않고 재미있었어요~ㅎㅎ
하늘빛 무지개님! 처음짓는 거라서 좀 이상했는데 괜찮았나요.. ㅎ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