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키다-상 [조인스]
DNA로 풀어보는 고대 미스터리
김형근 칼럼니스트
최근 유전공학이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과학윤리와 도덕적인 문제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는 학자들이 던지는 말이 있다. “인류에게 종말이 온다면 그것은 핵물리학이 아니라 생명공학에서다.”
왜 그런가? 물론 한 가지를 두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극단적인 대답을 하자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것도 자연적인 발생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면역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인체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극단적으로 이는 인류의 전멸(全滅)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멸망은 핵이 아니라 조작된 바이러스에 의해”
미국 과학자들이 부활시킨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증식과 파괴력이 대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 넣은 병이라면 당연히 쥐벼룩이 옮기는 흑사병 페스트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호열자로 알려진 콜레라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병들은 그 동안 의학의 발달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세기 들어 인간이 자랑스러워 하는 의학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색하게 한 질병은 바로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다. 유럽을 휩쓸었고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중국도 강타했다. 한국에도 상륙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는 기록이 나왔다.
1차 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로 시작되어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으로 그 배경을 따지자면 1900년경의 소위 제국주의가 개막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그러나 일부 전쟁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종식시킨 것이 연합군의 전술에서의 승리라기보다 적과 아군을 가릴 것 없이 전쟁터를 완전히 쑥밭으로 만든 스페인 독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차대전이 끝나게 된 게 너나 할 것 없이 스페인 독감이라는 괴질에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어쨌든 1918년에 불어 닥쳐 2년여에 걸쳐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은 페스트에 이어 가장 많은 유럽 인구를 앗아간 질병으로 통한다. 사실 사망자에 대한 통계가 없어서 그렇지 페스트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전쟁의 폐허, 숱한 사망자… 정부의 통제가 여의치 않은 시기다.
기록에 따라 3천만~5천만 명이 죽어
기록에 따라 사망자가 3천만 명에서 무려 7천 명까지 오르내리는 이 병은 최근 조류독감이 대단히 심각한 위협적인 질병으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조류독감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과학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 바이러스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서 스페인 독감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살리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소 어느 한 구석 깊숙한 곳에 병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는 언제든지 방출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실험용으로만 쓰이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생물학 무기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아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그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적진을 교란시키기에 좋은 무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발견한 바이러스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아주 비슷합니다. 이제 인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자연에서 과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으며, 이러한 경우 자연은 아주 무서운 테러리스트입니다.”
미국육군병리학연구소의 토벤버거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스페인 독감바이러스 유전자배열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미국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인디언 여성 스페인독감 희생자의 폐 조직을 채취한 뒤 여기서 이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 미육군병리학연구소(The Armed Forces Institute of Pathology)의 제프리 토벤버거(Jeffery Taubenberger) 박사가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와의 회견에서 한 말이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팀을 이끈 토벤버거 박사는 연구논문 작성의 수석 책임자(lead author)이다. 그래서 2007년 10월 네이처가 특별 리포트로 다룬 ‘1918년 독감 바이러스 부활(The 1918 flu virus is resurrected)’ 기사보도 이후 중요한 인물이 됐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거의 같아
토벤버거 박사의 유전정보를 전달 받은 뉴욕의 한 의과대학이 이를 토대로 실험실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를 만들어내 미국 국립질병통제센터(CDC)로 보냈다. CDC는 이를 인간의 신장세포에 넣어 87년간 동면 상태에 있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재생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주입 받은 생쥐들은 3~6일 만에 모두 죽었다. 주로 동물의 폐에 기생하는 이 바이러스는 생쥐의 폐에서 4일 만에 3만9천 배로 증식하는 엄청난 괴력(?)을 과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간 독감 바이러스와 달리 닭의 배아세포도 파괴했다. 최근 조류 독감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조류 독감바이러스는 대부분 인체에는 무해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에서도 조류독감 환자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재생된 이 바이러스가 현재 확산중인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실질적으로 입증했다. 조류에 존재하는 독감 바이러스가 변형돼 인간에 적응하는 바이러스로 진화했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끼리도 전염된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 다시 등장”
스페인 독감이 최근 퍼지고 있는 조류독감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자 유럽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가 등장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서만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고 다른 동물 사이에만 전염되는 바이러스도 진화와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전염이 가능한 바이러스로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는 놀라운 충격을 준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 고양이나 개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이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역으로 인간에게만 고유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다른 동물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좀 더 확장하면 조류, 곤충류, 심지어 파충류, 어류의 특정한 생명체에만 특유하게 나타나는 질병이 언젠가 인간에게도 감염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토벤버거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바이러스의 형질을 변형시키는 것은 인간의 기술로도 가능한 일로 다만 어떤 형질이 인간에게 적용되는지는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등지에서 파악되고 있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 아주 유사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스페인 독감을 경험했던 유럽과 미국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스페인 독감으로 당시 미국은 6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가 다시 등장했다.
[e칼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키다-중 [조인스]
DNA로 풀어보는 고대 미스터리 <7>
1970년대 인기리에 상영된 스릴러 영화 가운데 카산드라 크로싱(Cassandra Crosing)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연구소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우연한 사고로 외부에 노출되는 끔찍한 경우를 연상케 한다.
영화 ‘카산드라 크로싱’이 현실화 될 수도 있어
1970년대 상영된 스릴러 ‘카산드라 크로싱’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세균이 노출돼 발생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 건강기구에 세 명의 테러리스트가 침입한다. 치명적인 세균이 보관돼 있는 출입금지 구역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한 명은 사살된다. 그러나 총격전으로 세균 보관유리병이 깨진다. 전염성 강한 치명적인 병균에 노출된 한 명이 그 곳을 빠져 나와 기차에 탑승한다.
이 기차는 1천여 명의 승객을 태운 대륙종단 초특급 열차다. 스위스를 출발해서 종착역인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기차다.
이로 인해 미 국방부 정보국에 비상이 걸린다. 맥켄지 대령(버트 랭카스터 역)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미국의 가공할 세균 개발 실험이 알려지면 엄청난 국제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의 임무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세균이 퍼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
맥켄지와의 무선 연락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세균학자 챔버레인 박사(리차드 해리스 역)은 그 기차에 탄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맥켄지에게 협조한다.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열차 안의 승객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하고 기차는 원래 목적지가 아니라 격리 시설이 있다는 야노프로 선로(線路)를 바꾼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려면 ‘카산드라 크로싱’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나치 히틀러 이후 폐기된 다리다. 그래서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된 철교(鐵橋)로 그 다리를 건너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안 챔버레인 박사는 맥켄지가 열차 전체를 생매장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공할만한 생물학 무기
세균전은 화학전과 함께 원자폭탄의 방사능전을 능가하는 참혹한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보도는 바이오 안보(bio-security)라는 말을 새롭게 등장시켰다. CDC(미국 국립질병통제센터) 실험실에서 재생된 독감 바이러스가 고의 또는 실수로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과 테러리스트가 이 바이러스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사실 그 동안 계속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 사스(SARS) 바이러스가 2003년과 2004년 2년간 모두 3차례에 걸쳐 싱가포르와 중국 실험실에서 유출됐다. 그리고 두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킨 것은 대단한 과학적 업적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지도 모를 그 바이러스를 재생한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공방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이제까지 알려진 가장 가공할 만한 생물학 무기를 생산해 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 극비에 진행된 스페인 조류독감 바이러스 재생에 대한 논문 공개와 관련해 보안담당기관과 과학계의 쌍두마차인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誌 간에 밀고 당기는 실랑이도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안보문제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테러리스트
일부 세균학자들조차도 논문공개는 얻는 이익보다 위험성이 더 많다고 지적하면서 비공개를 주장했다고 한다. 특히 토벤버거 박사가 연구한 유전자배열을 공개하면 테러그룹이 이 바이러스를 생산할 수 있는 결정적 정보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학술지는 “아는 것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미국의 바이오안보자문위원회(NSABB)는 두 과학잡지에 대해 “연구는 공중보건에 대단히 중요하며 아주 안전하게 진행됐다”는 내용을 꼭 넣어줄 것을 전제로 보도를 허락했다고 한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번 연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성을 보였다가 얼음 속에서 동면하고 있는 재앙을 깨운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독감 바이러스 백신과 약 개발에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토벤버거 박사의 경고처럼 안전에 대한 절대적인 보장은 없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젊은이만 좋아한 스페인 독감
스페인 독감은 최근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조류독감과 비슷하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이상하게도 젊은이들의 목숨을 많이 앗아갔다. 당시 이 독감으로 사망한 5천여만 명의 희생자 가운데 70% 이상이 25-35세 사이의 건장한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지난 90여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의학과 생명과학도 이에 대한 대답을 못 내리고 있다.
세균에 대해 저항력이 가장 강한 시기의 젊은이들이 왜 허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보다 사망률이 더 높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그리고 조만간 그 해답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전염병 역사연구가들은 전염병은 1백 년, 또는 2백 년을 주기로 발생해 면역체계 무방비 상태의 인류를 공격한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 수가 1차대전의 희생자 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스페인 독감은 어린이도 노약자도 아닌 건강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노렸을까?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원래 전염병의 희생자는 어린이와 노약자다.
해답을 전쟁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전쟁 중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다. 못 먹어서 영양이 부족하고 위생시설이 좋지 않아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폐렴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페인 독감은 일반 독감과 달리 폐를 공격해 폐렴을 일으킨다. 치사율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폐렴도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회복도 빠르다.
전쟁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맞지 않아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환자들이 수용소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 전쟁 중에는 대부분의 나라는 동원체제이기 때문에 최고의 의료진과 의약품도 군에 있었고 특별히 고립된 상황인 경우를 제외하면 민간인들보다 보다 더 나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최신 의학연구는 대부분 대학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신의 의료기술은 군 병원에서 나온다. 특히 육군병원의 의료기술은 대단하다. 워싱턴에 있는 월터 리드 육군병원(Walter Reed Army Medical Center)의 의료기술은 명성이 자자하다. 학문적 연구는 대학의 몫이지만 기술은 단연 군 병원의 몫이다.
그래서 열악한 환경이나 의료시설 부족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미국은 1차 대전 참전국이지만 본토에는 아무런 전쟁이 없었다. 당시 미국은 6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의 3분의 1이다. 그러나 어린이나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이 죽었다.
당시 이렇다 할 정보전달 체계가 없었고 1차 대전이 막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전쟁 중에 사망한 젊은이들까지 독감 희생자에 포함됐을 거라는 의문은 있다. 어쨌든 통계수치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면역체계 부족’도 설득력 없어
다른 주장도 있다. 병력(病歷)은 저항력을 키운다. 노인들은 병약하지만 독감을 수십 차례 겪으면서 면역 능력이 생겼고 젊은이들은 독감에 별로 걸린 적이 없기 때문에 면역능력이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의학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과 생활을 함께 한 노인들의 면역능력이 나이가 30년 정도 많다고 해서 특별히 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진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등 생물인 바이러스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아마 몇 초 간격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화하고 있는 수많은 바이러스 가운데는 젊은이만 공격하는 바이러스도 생길 수 있다”. ?미국 사이언스 위크-
미국의 어느 실험실 유리관 속에는 90여 년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위험천만의 독감 바이러스가 실질적으로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요즘 아시아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한다.
[e칼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키다-하 [조인스]
DNA로 풀어보는 고대 미스터리 <8>
스페인 독감은 언제든지 돌아 올 수 있다.
토벤버거 박사는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해서 알래스카 얼음 속에 묻힌 인디언으로부터 독감 바이러스를 부활시켰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제프리 토벤버거 박사는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에서는 항상 변이가 일어나며, 인간의 면역체계를 무력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문은 또 생긴다. 그러면 하등생물의 진화는 왜 그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바이러스도 생존을 위해 부단한 혁신을 하고 있다는 거다. 과학을 앞세운 페니실린과 항생제와 같은 인간의 ‘잔인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혁신은 개인, 기업, 그리고 국가만이 추구하는 명제가 아니다. 진화가 혁신이고, 혁신 또한 진화다. 찰스 다윈의 주장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진리다.
더러운 질병에는 미워하는 나라 이름이 붙어
그런데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진 것일까? 전통적으로 더러운 질병의 이름은 보통 그 병을 전파한 지역이나 나라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 나라에 대한 적개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는 페스트를 징기스칸의 몽고가 옮긴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유럽을 휩쓴 아시아 몽고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해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들이 우습게 생각했으며 한동안 식민지나 다름 없었던 아시아에 크게 다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또한 성병 임질도 잔인한 몽고 침략자들이 옮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독을 ‘프렌치 디지즈’(French Disease)라고 부른다. 프랑스가 한때 전쟁을 일으켜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수많은 여자를 강간하고 성접촉을 통해 퍼트린 병이라는 것이다.
조류독감의 진원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많은 학자들이 아시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고 진원지를 중국의 남부 광둥(廣東)성으로 지목한다. 이곳에서는 가축과 인간과의 개념이 따로 없다. 개나 돼지, 닭 등이 인간과 함께 생활한다. 당연히 닭과 접촉이 많아지고, 닭이 갖고 있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치 않다. 질병의 진원지를 지목하는 경우 대부분 그 진원지 국가를 못마땅해서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의 진원지를 아프리카 원숭이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아프리카 원숭이에서도 에이즈바이러스가 발견됐다. 그러나 인간에게 직접 전염되는 바이러스는 아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원숭이와 수간(獸奸)을 하는 과정에서 원숭이 에이즈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주장이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이론으로 생각됐다.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인류의 발상지가 아프리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나쁘게 생각하면 아프리카를 에이즈를 퍼트린 악의 축으로 생각하려는 의도도 된다.
독감을 보도한 스페인 방송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 돼
그러면 스페인 독감은 어떠한가?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스페인은 정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 최근 조류독감이 스페인 독감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일자 스페인 당국은 UN보건당국에다 앞으로 ‘스페인 독감’이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을 공식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1차 대전은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스페인은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스페인은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방역과 구제사업에 충실할 수 있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은 바로 스페인 방송이었다. 대부분 방송들은 전시체제여서 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국가의 언론통제가 심했지만 스페인 방송은 예외였다. 전쟁상황을 정확하게 보도했다.
스페인 방송들은 당시 유럽을 강타한 독감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심한 폐렴을 동반한 독감으로 쓰러지고, 시체가 되고 있는 동료들이 바로 스페인 방송이 보도한 독감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군인들은 이 독감을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이 이름으로 고정돼 버렸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거주했던 한 영국 선교사가 스페인의 의학 학술지인 자마(JAMA)에 실린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18년 9월부터 1919년 1월까지 무려 740만 명이 독감에 감염돼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것.
우리나라 740만 명 걸려, 14만 명 사망
스페인 독감은 미국도 강타했다. 191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적십자사 요원들이 환자들을 구급차에 싣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당시에 발생한 독감과 스페인 독감과의 정확한 관련성을 밝혀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독감 환자를 몸소 치료했던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박사는 스페인 의학 학술지에 이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의 독감과 스페인 독감의 유사성에 무게를 둔 것은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역대 질병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현재 없고 당시 백신이 없었던 시절 독감은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물론 당시 한국은 세균학에 대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독감은 해마다 가을과 겨울철 4~5개월간 성행해 노약자와 어린이들의 목숨을 많이 빼앗아 간 전염병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립보건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당시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 특히 일본과 한국은 다소 안전했던 지역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의학수준이 높았던 일본을 비롯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독감이 스페인 독감이든 아니든 간에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독감과 아주 비슷해”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징기스칸의 몽고군인들이 옮겼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한편 자마 학술지에 ‘특별한 고찰이 필요한 한국의 유행성 독감(Pandemic Influenza in Korea with Special Reference to its Etiology)’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A4용지 9매 분량의 이 연구 리포트는 “1918년 9월 한국에 첫 모습을 드러낸 유해성이 대단한 이 독감은 시베리아를 경유해 유럽에서 전파된 전염병이라는 데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라는 말로 첫 문장을 시작했다.
“이 병은 북에서 남으로 남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급격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전염병을 접하게 된 것은 9월 말로 10월 중순 감염자와 희생자 수가 최고에 달했다. 조선인들의 비위생적인 생활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아마 한국 전체인구의 4분의 1 내지 반수가 이 병에 감염됐으며 학교를 비롯해 많은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왜냐하면 선생들이 독감에 걸려 수업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에 병의 규모나 희생자 수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이 독감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독감에 걸린 사람은 열이 급작스럽게 오른다. 열이 104-105도(화씨)가 된다. 24시간이 지나 열이 정상적으로 내린 사람은 생존하지만 기관지염이나 폐렴을 동반하게 되면 많이 죽는다. 치사율이 대단하다”
시기적으로나 전염속도는 비슷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실험에서 한국의 독감이 스페인 독감과 같다는 결정적 단서는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급속한 전염속도나 치사율 등을 고려하고, 또 타이밍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이 높다는 심증이 많이 갔다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 독감이 조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다는 주장은 거의 없었던 시기다.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 독감과 스페인 독감에 주로 나타나는 파이퍼 바실러스(Pfeiffer Bachilus)와의 관련성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 원인 규명을 하지 못했다. 그는 또 보체고정(Complement Fixation), 혈청진단법(Agglutination Test), 피부 시험(Skin Test)을 비롯해 검역방법(Animal Inoculation) 등 여러 가지 시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제한적인 연구’로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그 중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한국의 독감 원인을 규명할 수 없으며, 한국의 독감과 파이퍼 바실러스와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증거수집이 필요하다. 또한 환자의 혈액(filtered blood)과 분비물(secretion)에 대해 더 많은 실험들이 선행돼야 한다.”
스코필드 박사는 누구?
스코필드 박사(한국이름, 石好必)는 1888년 영국에서 태어나 19살 되던 해에 캐나다로 건너 가서 토론토 대학에서 수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19년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수가 됐다. 그는 소아마비로 불편한 몸이었지만 3.1운동이 발발하자 일본의 탄압상을 사진으로 찍어 세계 언론에 보내는 등 한국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그는 82세 되던 해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독립 후 그는 한국의 부정부패 척결을 자주 외치면서 이에 대항해 용감하게 싸우는 국민이 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지적처럼 “인간의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역사는 그야말로 바이러스와의 끊임 없는 투쟁”이다.
스페인 독감으로 희생된 환자의 독감 바이러스를 재생시킨 것을 보면 우리는 언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스페인 독감뿐만이 아니다. 치명적인 질병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