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범위도, 방식도 ‘셀프 결정’ 하는 국회
현행 소선거구제는 전국을 254개 선거구로 나눠 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 1명을 뽑는다. 9∼12대 총선을 제외하면 1948년 제헌국회부터 21대 총선까지 이 제도로 총선이 치러졌다. 단순하고, 유권자들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총선이 거듭될수록 소선거구제로 인한 문제가 커졌다. 1등만 뽑는 탓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완전히 굳어졌다. 또 각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한 선명성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도·온건 성향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친윤(친윤석열) 일색의 국민의힘과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이 장악한 민주당이 그 단적인 예다.
또 2020년 총선에서 실시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손질이 불가피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초유의 꼼수를 선보이면서 정당의 실제 득표율을 의석수에 반영한다는 애초의 취지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이 커지자 국회는 30일부터 299명(전북 전주을 제외)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 전원(全員)이 참여해 토론을 벌이고 의결하는 전원위는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 논의 이후 20년 만이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전원위가 막을 올리기 전부터 이미 회의적이다. “의원들의 생사(生死)가 달린 문제인데 몇 번 토론한다고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실제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각 당은 물론이고 개별 의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원위는 양당의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의 한 원외 인사는 “여야가 ‘전원위까지 했지만 결론을 못 냈다’며 현행 제도에서 조금만 손보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전원위에서 격론 끝에 결론을 내린다 해도 선거제도와 선거구, 의원정수 등을 모두 국회의원들이 ‘셀프 결정’하는 게 맞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각 선거구의 경계, 시도별 선거구 수 등을 정한다. 하지만 정작 국회 입법 과정에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이 아닌 여야가 입맛대로 바꿔버린 안이 처리된다.
시험 방식에 해당하는 선거제 역시 오로지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뜻만 담아 결정된다. 오죽하면 여야 젊은 정치인들의 모임인 ‘정치개혁 2050’도 “플레이어(국회의원)들만이 게임 규칙을 정하는 이 구조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할 정도다.
말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현역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리도 없고, 밥그릇을 선뜻 줄일 리도 없다. 그러나 수험생 격인 의원들이 시험 범위는 물론이고 시험 방식까지 정하다 보니 총선 규칙과 관련된 논란은 4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만약 선거제 개편이 이번에도 땜질 처방에 그친다면, 이런 국회의원들의 ‘셀프 결정’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