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후 쏭아이링은 산시성의 부자 공상희와 결혼하였습다. 이때 쏭칭링은 위슬리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쑨원의 비서직은 쏭칭링에게 돌아갔습니다 쏭칭링은 쑨원선생에게 제가 필요하다면 선생님과 함께 혁명 과업을 이루겠다고 말하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1918년 쏭지아슈는 위암으로 죽기전에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계속 쑨원 선생을 따라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그가 민주공화국을 세울수 있도록 돕거라. 1921년 4월에 쑨원은 광주에서 비상회의를 열어 중화민국 정부를 수립해 임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쏭칭링은 후방에서 군사활동을 도왔고 각계 인사들을 동원하고 모금활동 및 위문단 조직등을 했습니다. 그러나 1922년 진형명이 반란을 일으켰고 반란군은 대통령 관저를 포위하여 상황이 위급했습니다. 당시 임신중이던 쏭칭링은 단잠에 빠져있을때 쑨원이 그녀를 깨웠습니다. 쏭칭링이 쑨원에게 먼저 가세요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발각되기 쉬워요. 조국은 나 없이도 괜찮지만 당신이 없으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