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슬레지와 그의 참전기 '해병 1사단과 함께 (With the Old Breed)'
퍼시픽이 종방되고 나서 이런저런 자투리 기사들을 읽어보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주역들중의 한 명이었던 유진 슬레지의 아들이 돌아가신 부친에 대해 회고하는 짧막한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역전의 해병이었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군대 타입은 아니었다는 점.
교수였던만큼 학구적이고 온화한 분이었으며 새를 관찰하길 좋아하는 자연 애호가였고 모짜르트와 클래식 기타를 즐겼던 분이라는 점을 회고하고, 전투의 와중에 포켓 성경에다 짬짬이 적었놓았던 메모가 25년간의 세월동안 1천 페이지로 불어나자 모친이 타자기로 이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참전 수기를 출판시켰다는 얘기를 하구요.
방송 전 HBO의 초대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자신은 리얼했던 전투씬들 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전쟁의 상흔을 한가득 안고 귀향한 부친이 소년 시절부터 즐겨왔던 사냥 여행에 나섰다가 이제는 더 이상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겠다고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는 장면을 재현했던 부분에 그만 가슴이 절절해지면서 더 이상 보지를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고 하더군요.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진 슬레지가 해병 1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펠렐리우섬 상륙작전 때 미 해병은 총 7천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냈고 작전 첫날에만 해안에서 상륙용 장갑차(LVT)들이 줄줄이 격파당하면서 1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는데요.
아들의 말로는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되어 히트를 칠 때 정작 부친은 이 영화를 보러가길 거절했다고 합니다. 아마 유혈낭자하고 처절을 극했던 상륙전을 그린 영화를 뭇 사람들이 흥행 오락물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이 부친에겐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랬던 아버지의 참전기를 스필버그가 영상으로 재현했다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랍니다.
그렇죠.
실제 전장의 참상을 직접 몸으로 체득한 노병들에게 "전쟁"이란 표현하기 힘든 남다른 그 무엇이었겠지요.
1983년, 밀워키에서 있었던 美 해병 1사단 모임에서 재회한 左 스내푸옹, 中 전우, 右 슬레지해머옹
에필로그에서 나오듯 35년이 지나 다시 상봉한 후, 스내푸 옹이 타계하자 유진옹이 운구를 맡아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합니다.
덧1.
껄렁껄렁, 느물느물, 시니컬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주변을 잘 챙기는 "스내푸" 메리엘 쉘튼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분 들이 많던데요. 유진 슬레지는 펠렐리우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자신과 단짝이 된 스내푸가 전투경험이 있는 고참이 었다는 사실에 무척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사선을 함께 넘으면서 꽤 의지를 했던 모양이에요.
실제로 유진옹은 자신의 참전기에서 스내푸와 함께 했던 사실에 대해 '하나님에게 감사드린다'고까지 써놨더군요.
덧2.
한 참호를 썼던 스내푸와 슬레지해머옹은 야음을 타서 끊임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일본군에 맞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고 눈을 붙였는데요. 다음 순번이 되면 동료의 귀에 대고 서로의 이름을 속삭이며 깨우곤 했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모친이 스내푸가 그랬듯 잠자던 부친의 귓가에 대고 군 시절 별명인 '슬레지해머~'를 나직하게 귓가에다 속삭이면 부친은 조건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고 합니다. ~ㅎ
하긴 타계하기 전까지도 악몽에 시달리던 노병들이 많았다니까요. 다시 생각해보면 웃을 일은 아니군요.
덧3.
군 경험이 일천하거나 아니면 아예 없음에도 불구하고 입만 열면 노상 강경책이나 군사적인 조치를 부르짖는 분들을 일컫는 말이 있죠.
"치킨호크 (Chickenhawk)"
소시적에 체중과다, 또는 폐가 약해서 기타 등등등의 이유로 군역을 필하지 못하셨던 우리 높은신 나으리들. (특히 모 유명 언론사주 어르신들), 요 근간 유사시 전쟁 불사론을 외치시는 모습을 보며 으스러지게 안아드리고 싶은 충동을 불끈~하고 느끼게 되는군효~
첫댓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그나마 다행?인게 독일의 정예부대는 동부전선에 빨려 들어 가서,2선급 이하 부대들과 싸웠다는 게 아닐런지...그것도 작전 오판으로 희생자가 늘긴 했지만요.
그래도 쪽국보다 덕국이 진국이었지요. 까놓고 말해서 서부전선에 비하면 태평양 전쟁은 개같은 지형과 기후가 좀 안습이었습네다.
저도 퍼시픽 마지막화 넘 인상깊게 봤습니다...특히 위에 나오듯이 유진이 제대후 꿩사냥에서 방아쇠를 못당기고 흐느끼는
장면이 넘 기억에 남더군요...전역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진을 보며 어머니는 애같은 짓한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인상깊죠...'우리가 애라고 생각했던 저런 애들이 모여 어떤 일을 해냈는지 기억해야 한다'
마눌하님의 자비심 없는 모닝콜
ㄷㄷㄷㄷ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전쟁이나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동계훈련 때였습니다. 고지에서 텐트 생활을 하는데 눈은 많이 오고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년 전 군화는 항상 물이 샜습니다. 아~ 그 추운날 발까지 얼고 정말 힘들었어요.
전 예비군훈련... 세상에 저때 쓰던 칼빈을 줍니다. 전쟁나면 이거줄테니 싸우래요.
저도 예비군 훈련 때, 칼빈 받았습니다. -_-;
세상에 20년전의 군생활하셨다니.. 전설의 쌍팔년 군번이셨군요!! 전 03군번이었지만 전투화에 물 새는 것은 여전하지 말입니다.
전 그 칼빈가지고 사격을 하는데 제가 쏘던 칼빈이 한 발 쏠 때마다 계속 탄이 걸리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