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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게시판 스크랩 한국인의 효(孝) 사상 고찰
우석 추천 0 조회 238 19.08.08 10: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인의 효(孝) 사상 고찰


경기도교육청 원로장학관 송 석 안


   Ⅰ.여는 글

 한국인의 효 사상(孝 思想)은 중국(中國)에서 유교사상(儒敎思想)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민족을 지켰던 중심사상(中心思想)이었다.
 양친부모(兩親父母)를 끔찍이 섬기고 조상(祖上)을 신(神)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은 우리민족의 원시(原始) 정령신앙(animism)의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효 사상은 샤마님즘(shamanism)에 근원(根源)을 둔 일종의 민족신앙(民族信仰)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불교(佛敎), 유교(儒敎)와 접합하여 더욱 세련(洗鍊)되고 체계화(體系化)되면서 우리민족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삶의 정신과 사상을 이루게 되었다.
 근대(近代)에 와서는 서양의 기독교(基督敎)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전통적 효 사상과 접합하면서 이화(異化)와 동화(同化)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는 새로운 패러다임(prardigm)의 효 사상이 정립되어 가고 있다.
 효 사상이 우리민족 5천년 역사 가운데 얼마나 중요한 윤리의 핵심이었나 는 신라의 화랑도(花郞道 : 世俗五戒와 三德)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인의 독특한 심정을 대변하는 효녀 심청 이야기까지의 고전소설(古典小說)의 얼이 아직도 우리를 감동(感動)시키는 것은 우리민족이 확실히 세계 어느 민족보다 효를 중시하고 있다는 반증(反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통적 효 사상이 계승 발전되어 현대의 한국인들도 우리민족 고유의 가족제도 안에서 효의 중요성을 대체적으로 잘 인식(認識)하고 있으며, 효행(孝行)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회적(社會的) 가치관(價値觀)을 갖고 있음이 여러 사회학적(社會學的) 조사들에서 보고되고 있다.
 일 예로 우리국민의 92.2%는 효가 아직까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덕목(德目)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주변에서 경로사상(敬老思想)을 훼손(毁損)하거나 패륜(悖倫) 행위(行爲)를 목격했을 때 취할 행동으로는 전체의 40.5%가 적극 말리겠다, 21.7%는 경찰에 신고하겠다, 17%는 다른 사람이 나서면 같이 나서겠다, 16.5%는 남의 일이니 간섭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현대의 젊은이들도 부모와 자식간의 의견이 다를 경우 부모의 의견에 따르겠다가 83%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효는 아직도 우리민족을 지배하는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해외동포들과 공산치하의 북한동포들의 가치관은 어떻게 다를지 모르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 서양의 개인주의(個人主義) 가치관이 들어왔고, 불효(不孝)의 종교라고 오해하는 기독교(基督敎)가 전파(傳播)되어 오늘날에는 우리 남한민족의 30%이상이 기독교인이 된 이즈음 우리민족의 효 사상은 새로운 형태의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인 효 사상은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효의 정체성(identity) 효의 본질(essence)은 변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자긍(自矜)할 일이다.
 본론(本論)에서는 한국인의 효 사상의 실체(實體)를 고찰(考察)함으로써 사랑하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계기(契機)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본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교육계(敎育界)의 후배(後輩)들에게 2세 교육의 참고자료(參考資料)로 제시한다.
 모쪼록 본 자료가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Ⅱ. 효(孝)의 의미

 국어사전에는 ‘孝란 어버이를 잘 섬기는 일’ 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옥편(玉篇)에는 ‘孝를 효도할 효, 상복 입을 효’ 자로 표기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상복(喪服)을 입고 부모님 묘(墓)를 지켜드리는 것이 효라고 한자(漢字)에서 의미하고 있다.
 효도(孝道)란 선사부모(善事父母) 즉, 부모님 앞에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을 효도로 보고 있다.
 禮記(예기)에는 孝를 孝子畜也順於道(효자축야순어도) 不逆於倫之謂(불역어륜지위)라 하였다.

※효자는 순리의 도를 쌓는 것이요, 인륜에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효를 filial piety 라 하여 자식으로서의 경건한 행위(신앙심)를 효도로 보았다.
 유교(儒敎)에서는 부모공경(父母恭敬)과 형제우애(兄弟友愛), 동기간(同氣間)의 우애(友愛)를 孝悌(효제 : filial piety and politeness))라 하여 효(孝)와 제(悌 : 공경할 제, 善 兄弟)를 분리하지 않았다.
 성경(聖經)에서는 ‘부모에게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신약성경 315p 에베소서 6장 1절)을 효라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공경(恭敬)을 바탕으로 한 자녀의 행위, 효행(孝行). 이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며 인륜의 중요한 덕목(德目)이다.
 19세기 이전의 중국(中國)은 천재(天災)와 끊임없는 난세(亂世)의 폭정(暴政)으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혈족(血族)이 동거(同居)하여 가부장제(家父長制) 가족을 구성하였고, 이런 구성원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祖上)에게 봉 제사(奉 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 사상이 사회규범(社會規範)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중국사회를 유지하는 근본규범으로 독특한 내용과 특성을 가졌다.    공자(孔子)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며, 예(禮)로서 제사를 받들 것을 설(說) 하였고,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이것을 확고히 정착 시켰다.
 이 사상은 맹자(孟子)에서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  대(漢 代)에 이르러 《효경(孝經) :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의 효를 나누어 논술하고 효가 덕(德)의 근본임을 밝혔다.》에서는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형이상화(形而上化)되고 절대복종(絶對服從)이 명문(明文)화 되었다.
 《효경(孝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천자(天子)가 되어야 비로소 지극한 효를 할 수 있고, 효를 실천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자연의 이 법(理 法)에 따라야 한다는 전개로 국가가 효 윤리를 권장․강요하여 중국사회의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시켜간 것이다.
 한국에서의 효 사상은 이미 고구려의 태학(太學)이나 신라의 국학(國學)에서 교육하였고, 신라《삼국사기(三國史記)》에 효녀 지은(知恩 : 어머니에 대한 효성), 향덕(向德 : 병든 부모봉양), 설씨녀(薛氏女 : 아버지에 대한 효도) 등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논어(論語)》,《효경(孝經)》을 기초로 한 유교적 효 사상이 지식인들의 기본교양이 되었다.
 고려말기 권부(權溥)의 《효행록(孝行錄 : 고려 후기에 효자 62명의 전기를 모아 엮은 책.)》, 조선시대의 《효행록(孝行錄)》, 세종13년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조선 세종 때 엮어진 도덕서(道德書)》의 《효자도(孝子圖)》는 효행담(孝行談)을 집대성(集大成)한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효행편(孝行篇)에는 효도에 대한 많은 글이 있는바 그 중에 한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太公(태공)이 曰孝於親(왈효어친)이면, 子亦孝之(자역효지)하나니.
 身旣不孝(신기불효)면, 子何孝焉(자하효언)이리오.’
 ※태공이 말하기를, “내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할 것인가?”라고 하셨다.
 ※나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그것을 본받아서 나에게 효도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시어머니 나오미(Naomi)에게 효도하여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가계족보에 오른 룻(Ruth)에 대한 기사가 있다(구약성경 룻기).

 ※효 사상은 시대와 이념에 따라 그 내용이 다소 변화되기는 하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을 받들어 섬기며 봉양(奉養)한다는 본질(本質)에서는 차이가 없으며, 인륜(人倫)의 가장 으뜸이 되는 덕목(德目)이라 하겠다.

   Ⅲ. 효(孝) 사상의 역사적 고찰

 효라 함은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말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인간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하여 인륜(人倫)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효는 부모와 자식간에 형성된 원초적인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 관계를 원만하고 올바르게 지키고 보존하는 질서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효 사상은 가족윤리를 근거로 발달하였다.
 따라서 한국인의 효는 백행지원(孝是百行之源)이라 하여 모든 윤리의 기초로 삼은 덕목이다.
  1. 고조선의 효 사상
『규원사화(揆園史話 : 역사로 기록된 고조선 이야기)』에는 부모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고 부모는 하늘에서 왔으니, 부모를 공경하고 하늘을 공경하여 온 나라에 미치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2. 삼국시대의 효 사상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효경(孝經)』을 필수 교양과목으로 택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불교설화들은 효행에 관한 일화가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효가 민간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침투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은 삼국시대에 『국학(國學 : 신라시대에 비롯된 오늘날의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 세워지고 유학교육이 이루어질 무렵 이미 유교적 효 사상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
 6세기 경 신라의 승려 원광(圓光)이 설법(說法)한 세속오계(世俗五界 : 事君以忠․事親以孝․ 交友以信․臨戰無退․殺生有擇) 가운데 둘째 항목이 ‘사친이효(事親以孝)’이다.
 이것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덕적 의무를 ‘효’ 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국학(國學)』에서는 『논어(論語)』와 함께『효경(孝經)』을 기초적인 교과목으로 설정함으로써 유교적 효 사상은 지식인들의 기본교양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의 가족제도는 중국의 가족제도와 다르고, 전통적인 조상숭배 신앙으로부터 발전한 가족윤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유교적 효 사상에 대한 지식이 곧 유교적 효 윤리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윤리(家族倫理)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오히려 불교 효 사상이었다.
  3. 고려시대의 효 사상
 『국자감(國子監 : 고려시대 중앙의 최고교육기관)』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가르쳤다. 그 중 『論語』와 『孝經』을 필수 과목으로 한 것은 유교적 충효 사상이 중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비록 고려는 유교교육을 강화하고, 정표정책(旌表政策)을 통해 효행자(孝行者)들을 표창함으로써 유교적 효 윤리의 실천을 권장했으나, 서민들은 물론이고 지배층에서도 일반적으로 불교식 상제례(喪祭禮)를 행했다.
 그러나 고려 성종(成宗 :고려 제6대왕 재위 981~997) 무렵에 유교정치사상(儒敎政治思想)이 지배적 정치이념으로 확립되고 그 정치이념에 『孝經』의 사상이 그대로 채택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유교적 효 사상은 정치이념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불교적 효 사상은 가족생활 속에서 실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에는 성리학(性理學 : 유교에 철학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교를 심성수양의 도리로 확립한 새로운 학풍)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식인들은 유교적 효 사상을 정치이념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족생활에서도 실천하려고 했다.
 그들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유교적 효 사상을 담은 효행담(孝行談)을 편찬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 : 주자가 유가(儒家)의 예법의장(禮法儀章)에 관하여 상술한 책)』를 보급했다.
 고려말기에는 권부(權溥 : 1280년(충렬왕6) 문과에 급제)에 의해 『효행록(孝行錄 : 효자 38명의 전기를 엮은 책 )』이 편찬되었다.
  4. 조선시대의 효 사상
 조선왕조는 다른 어떤 왕조보다 특히 효를 통치 사상의 근간으로 삼았다.    즉,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까닭은 어버이와 자녀의 도리가 지켜지고 어버이와 자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있다는 사상을 통치에 적용했고, 효도가 충실히 지킴으로써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도 『효행록』이 몇 차례 간행(刊行)되고, 개찬(改撰) 되기도 했다. 이러한 효행담을 집대성하여 만든 것이 세종(世宗) 대(代)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조선 세종 때 엮어진 도덕서(道德書)』 가운데 『효자도(孝子圖)』이다. 그리고 효행담의 편찬과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을 통해 불교적(佛敎的) 상제례(喪祭禮)가 유교적(儒敎的) 상제례(喪祭禮)로 바뀌었는데,(崇儒抑佛策) 이는 유교적 효 사상이 가족생활 내에까지 정착되는 기반이 되었다.『孝子圖』에는 중국인과 우리나라 사람을 합해서 모두 110명에 달하는 효자들의 행실 사례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효행과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행으로 나눌 수 있고, 또 각각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효행으로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한 사례, 부모가 병이 낫을 때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한 사례, 부모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부모를 구한 사례들을 들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행으로는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거나 항거한 사례, 부모의 유해(遺骸)를 마치 살아 계실 때처럼 정성스럽게 모신 사례,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애틋하게 사모하거나 행동을 근신한 사례들이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효 사상을 살펴보면, 효 윤리는 자식이 항상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부모를 섬겨야 하고, 부모에 대해서는 순종해야 하며, 또 부모를 위해서라면 자기 희생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효행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뿐만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어야 하며, 이 경우 효행은 상제례(喪祭禮), 특히 『朱子家禮』에 따른 예제(禮制)의 실천이 주된 내용이었다.
  5. 현대의 효 사상
 조선시대 이후 서구문명이 들어오고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격변(激變) 되었으며, 특히 기독교 문화가 급격히 전파되었으며,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으며, 그로발(global) 시대의 지구촌 화 된 시대가 되면서, 동양(東洋)의 가족주의(家族主義)와 서양(西洋)의 개인주의(個人主義)가 충돌하면서 현대(現代)의 우리나라의 효 사상은 다원화(多元化) 혼재(混在)상태라 하겠다.
 전통 우리민족의 정령신앙(精靈信仰)과 불교, 유교, 기독교의 효 사상이 갈등(葛藤) 속에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다.
 동양의 유교에 바탕을 둔 효 사상은 부모가 생존시 공경하는 것 보다 사후 봉제사(奉祭祀)에 치중하는 듯 하고, 서양의 기독교에 바탕을 둔 효 사상은 부모 사후의 봉제사 보다는 생존시에 효도하는 일에 치중하는 듯 하다.
 한 가족간에도 종교가 달라 부모의 제사문제로 형제간에 우애가 깨지는 사례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지만, 가족 상호간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조화롭게 효도를 하는 가정도 근간에는 많아졌다.

   Ⅳ. 효(孝) 사상의 종교적 고찰

 한국인의 대표적 종교는 유불선(儒佛仙)의 삼교(유교, 불교, 기독교)와 우리민족의 전통신앙인 정령신앙(精靈信仰 : animism)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정령신앙인 무속신앙은 유불선에 동화(同化)되어 별도의 효 사상을 고찰할 수가 없다(유불선의 종교가 무속신앙에 동화되면 처음엔 발전하나 나중에는 유불선의 종교는 무속신앙에 동화되어 쇠퇴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샤머니즘(shamanism : 祈福信仰)화 되면 기독교는 처음에는 부흥되나 나중에는 기독교의 본질도 잃고 쇠퇴된다. 불교, 유교도 마찬가지다.).
  1.유교 사상과 효
 공자(孔子)는 “군자(君子)는 근본(根本)에 힘쓰나니 근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 효도(孝道)와 공경(恭敬)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 하여 효를 인격(人格) 형성(形成)의 근본으로 여겼다.
 유교(儒敎)의 효(孝) 사상(思想)은 보편적(普遍的) 도덕(道德)의 원리(原理)로서 모든 덕목(德目)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
 효성스럽고 공손(恭遜)한 것은 부모자녀와 형제자매 사이에서 형성되는 윤리(倫理)이지만, 이러한 윤리에 의하여 인품(人品)이 형성된 사람이라면 사회에 나가서도 효제(孝悌)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함부로 윗사람을 범(犯)하거나 난(亂 : confuse)을 짓지 않는다.
 유교에 나타나는 효 사상을 유목화(類目化) 하면 다음과 같다.
  ① 보신(保身)하는 효
 자기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감히 훼손해서는 안되며, 귀중한 자기 몸을 안전하게 지키고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천수(天壽)를 누리는
일.
  ② 시봉(侍奉)의 효
 부모님을 가까이서 잘 받들어 모시는 일.
  ③ 공경(恭敬)하는 효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지극하게 섬기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보양(保養)만 하는 것은 효가 아니다.
  ④ 순종(順從)하는 효
 화순(和順)하고 즐거운 기색으로 부모의 뜻과 말씀을 잘 듣고 명심(銘心)하여 실행하는 일.
  ⑤ 봉양(奉養)하는 효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거처(居處)를 편안하게 하고 의복에 유의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일.
  ⑥ 간언(諫言) 드리는 효
 부모님이 혹시 그릇된 일을 하실 경우 충직(忠直)한 언사로 간청하며 매질을 해도 아파하지 않고 훗날 다시 간(諫)하여 부모님이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는 일.
  ⑦ 양친(揚親)하는 효(입신행도(立身行道)의 효)
 하늘과 땅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자신과 가문(家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빛나게 하는 일.
  ⑧ 양지(養志)하는 효
 생전시 부모님의 소망과 덕행을 기억하고, 유지(遺志)를 받들어 일상생활에서 정성껏 실천해 나가는 일.
  ⑨ 봉사(奉祀)하는 효
 부모님 돌아가신 후 부모님과 조상(祖上)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일.

 유교(儒敎)는 인륜(人倫)의 도(道)를 설(說) 한 것으로 오륜(五倫)과 오상(五常)의 도(道)라 할 수 있다.
 오륜(五倫)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형제(兄弟), 붕우(朋友) 간의 윤리(倫理)이고, 오상(五常)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말한다. 이 오륜과 오상이 서로 배합해서 사람의 도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 오상 이야말로 유교의 중심사상이다.
 더구나 이 오상은 처음의 인(仁) 한 자에 귀결되는 것으로 유교는 이 한 자로서 닦아진다고 말해진다.
 仁이란 글자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한다. 『說文解字 : 중국 최초의 자전』에는 ‘仁이란 親(애정)이고 사람 둘이 따른다.’라고 하였다. 『禮記』에서는 ‘仁으로써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였고, 『論語 學而篇』에서는 ‘孝悌는 仁의 根本이다.’고 하였으며, 『孟子 告子』에서도 ‘어버이를 사랑하며 아끼는 것이 仁이다.’라고 하였다. 유교의 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친애(親愛)의 정(情)이 仁이며, 이 친애의 정은 ‘부모와 자식의 애정에서 시작된다.’ 고 하였다. 이것이 孝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하는 친애의 정이 바로 孝라고 하였다.
  2. 불교 사상과 효
 불교의 실천윤리는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 :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교육자.)는 “원시불교 경전 가운데는 선인(善人)은 은혜(恩惠)를 알고 은혜를 느끼는 자 이어야한다고 말하고, 부모에 대한 보은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의 아쇼카(Asoka)왕은 “아무리 광대(廣大)한 보시(布施)를 행하더라도 극기(克己), 마음의 청정(淸淨), 보은(報恩)에 대한 견고(堅固)하고 깊은 믿음이 없다면 그는 천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인도불교 보은 사상이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불교의 은혜와 보은 사상으로 전개해 나갔다.
 참으로 은혜를 아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불교의 효는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행위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애의 반사작용이 보은이라고 하였다.
 부모의 자애(慈愛)가 그대로 자식에게 통하는 곳에 효도(孝道)로써 봉양(奉養)하는 행위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불교의 효 사상을 나타낸 경전(經典)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전은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경전이다.
 이 경전 내용은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준 은혜, 해산 때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받아 먹이는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 젖을 먹여 기르는 은혜,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는 은혜, 먼길을 떠났을 때 걱정해 주는 은혜,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당하는 은혜,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의 10대 은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 몸에 실어 보호해주신 은혜.
 여러 겁 내려오는 인연(因緣)이 지중(至重)하여 금생(今生)에 어머님의 태(胎)중에 들었어라, 달수가 차갈수록 오장(五臟)이 생기었고, 일곱 달 접어들며 육근(六根 : 眼根, 耳根, 鼻根, 舌根, 身根, 意根)을 이루었네. 태(胎)안에 아기 배어 열 달이 다가 오니 순산(順産)이 언제련가. 손꼽아 기다리네. 나날이 기운이 없어 중병 든 사람 같고. 무섭고 두려움을 이루 다 말로 하랴. 눈물만 시름없이 옷깃을 적신다.
  ②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 나를 낳으실 때 고통을 마다 않으신 은혜.
 어지신 어머님이 이내 몸 낳으실 때 오장(五臟 :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을 육부(六腑 : 대장, 소장, 위, 담, 방광, 삼초)까지 찢기고 어기는 듯 정신이 혼미하고 몸 마저 무너지니 끝없이 흐르는 피, 소와 양을 잡았는듯. 나로 하여 겪으신 그 고통 어디에 비길 건가.
  ③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 자식 낳은 뒤 모든 근심 고통을 잊어버리시는 은혜.
 출산하고 아기가 충실하단 말을 들을 땐 반갑고 기쁜 마음 비길 대 없었건만. 기쁨이 진정되니 슬픈 마음 다시 나며 아프고 괴로움이 온몸에 사무치네. 부모의 깊은 은혜 바다로 비유하랴. 귀엽게 사랑하심 한땐들 어길 건가.
  ④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 좋은 것만 찾아 먹여주신 은혜.
 단것은 모두 뱉아 아기를 먹이시고 쓴 것만 삼키시면 서도 얼굴도 찡그리지 않으시네. 사랑이 깊으시니 참을 길이 없고 은공(恩功)이 높으시매 슬픔이 몇곱일쎄. 어머님의 일편단심 아기배 부르고져 사흘을 굶으신 들 어찌
마다하랴. 
  ⑤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신 은혜.
 아기는 어느 때나 마른 데 눕히시며 찬바람 쏘일세라 소매로 가리우네.
 아기를 돌보노라 잠 한번 편안히 주무시랴. 둥둥실 둥둥실 끌어안아 놀리시니 아기만 편하다면 무언들 사양하며. 어머님 이내 몸이야 어떤들 어떠하리. 어머니 크신 은혜 하늘, 땅에 견줄까?
  ⑥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 젖먹이고 길러주신 은혜.
 두 젖을 번 갈아서 아이 배 불리시는 어머니 크신 은혜 땅에나 견줄까.
 아버님 높은 공덕 하늘에 비기리까. 높고 큰 부모 은덕 천지(天地)와 같사오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뜻 다를 소냐 온 종일 사랑하시는 그 정성 아기를 기르시네.
  ⑦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 언제나 깨끗이 닦아주신 은혜.
 은혜가 깊을수록 얼굴은 야위었고 기저귀 빠느라고 손발이 거치렸네.
 아들딸 기르느니 라고 고생은 말로 다하랴. 어머니의 꽃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었네.
  ⑧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 먼길 떠나면 돌아오도록 걱정해주시는 은혜.
 자식이 집을 떠나 타향에 가게되면 부모의 슬픔마음 그곳을 따라가네 이 맘은 밤낮으로 자식을 생각하고 흐르는 두 눈물이 천(千) 줄기 만(萬) 줄기라 자식이 괴로우면 부모 맘 편치 않아 자식이 길을 떠나 먼 곳에 간다하면 밤이면 추울세라. 자식을 생각는 마음 잠시인들 쉬오리까.
  ⑨ 위조악업은(爲造惡嶪恩) - 자식을 위해서는 마다 않으신 은혜.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江山)같이 중(重)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恩德)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그리하여 자식을 위(爲)하여는 악업(惡業)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부모님 이셔라.
  ⑩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 자식을 위한 은정(恩情)은 끝이 없으신 은혜.
 늙으신 부모 나이 백살이 되어서도 여든 된 아들딸을 행여나 걱정하네 부모의 깊은 은정(恩情) 언제나 끊길 건가. 이 몸 다한 뒤에도 남아 있으리.

 『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부모에게 효순(孝順) 하는 자는 내생(來生)엔 천상(天上)에 태어나 온갖 낙(樂)을 받을 것이나 그 은혜는 가히 다 갚지 못하리... 이 경전은 아버지 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더욱 강조하였고, 효경(孝經)이 효(孝)를 강조한데 비해 은혜(恩惠)를 강조하고 있다.

 『父母恩重經』과 같은 맥락(脈絡)에 부모은덕(父母恩德)이란 시(詩)가 있다. 작자는 미상이나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父母恩德(부모은덕)

父母恩德 如何報(부모은덕 여하보)
淚水沾流 草茅濡(루수첨류 초모유)
夙夜夢寐 哀哭泣(숙야몽매 애곡읍)
昊天罔極 親渺然(호천망극 친묘연)

부모님의 은덕을 어떻게 갚을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이 흐르고 흘러 띠풀을 적시는 구나.
밤늦도록 잠 못 이루고 슬퍼 흐느끼지만.
하늘같은 은혜의 부모님은 간 곳이 없네.

 불교(佛敎)는 원래 어머니 중심사상이고 자아(自我)를 부정(否定)하고, 가족성이 부족한 (승려의 출가)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종교여서 유교와 충돌(衝突)하였다.
 유교(儒敎)는 불교가 인륜의 도를 공(空)으로써 부정한다고 생각하였다.
 유교는 불교 승려(僧侶)가 출가(出家)하여 독신(獨身)으로 지냄으로 부모를 부양(扶養)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출가함으로써 가문이 끊기게 하는 큰 불효를 범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가 전파 된지 오랜 세월 가운데 불교의 유교화(儒敎化)로 동화(同化) 되었다. 불교에서의 효의 주장은, 유교의 오륜(五倫) 오상(五常)을 인정하기보다는 불교의 제일의(第一義)인 오계(五戒)로써 오상(五常)과의 일치를 설(說)하고, 그 위에 효(孝)에 관한 경전(經典)을 만들어서 불교윤리(佛敎倫理)로서의 효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나아가 불효(不孝)라고 비난(非難)과 공격(攻擊)을 받는 출가(出家)도, 출가야말로 부모를 성불(成佛)시키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으로써 효 가운데 효이고 큰 효(大孝)라고 주장하여 이 비난에 답하였다.
  3. 기독교 사상과 효
  ① 효의 대상 : 영적 스승의 측면
 성경에서 효의 대상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영적(靈的) 스승의 측면이고, 둘째는 혈통적(血統的) 부모의 측면이다. 공자는 충효(忠孝)의 대상을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로 하였지만, 기독교에서는 임금(君) 대신 하나님(神)으로 대치시켰다. 즉, 하나님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이다(神師父一體).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과 랍비(Rabbi)와 아버지가 제일의 공경의 대상이며 순종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랍비와 아버지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한 말씀(律法 : Torah)을 받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 공경 대상의 순서가 하나님 다음으로 왜 아버지보다도 랍비인가? 탈무드(Talmud : 나라 잃은 유태 민족에게 5000년에 걸쳐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온 생활 규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랍비와 아버지가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랍비’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랍비는 말씀 맡은 자의 우선 순위에 있어 아버지 보다 앞선다. 랍비는 여러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랍비가 개인의 아버지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신 영적 스승도 아버지(Father)라고 불렀다. 즉, 영적 아버지라는 듯이다. 구약성경에 엘리사(Elisha)가 그의 스승 엘리야(Elijah)를 아버지라고 불렀다(열왕기 하 2장 12절). 신약의 디모데(Timothy)가 그의 영적 스승 바울(Paul)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디모데 전서 1장 2절). 이처럼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육(肉)의 혈통보다 영적 혈통을 더 중요시하였다.
 예수 님(Jesus)도 자신의 어머니가 찾아왔을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나의 형제요 자매라고 말하였다(마가복음 3장 31절~35절).
 따라서 기독교의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아야 한다고 하고, 그리고 그 이후에 육적인 부모의 형통적 측면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효의 대상 : 혈통적 측면
 유대인이 말하는 ‘부모 공경’에는 공경의 대상이 단지 부모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부모 공경’이란 용어의 원 뜻에도 웃어른들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장인, 장모, 큰형, 큰형수, 삼촌, 사촌, 오촌,...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공동체 속에서 웃어른들에게 배우며 그들을 공경하고 섬기도록 되어 있다. 가령 딸만 가진 장인 장모에게 아들이 없어 그 분들을 모실 자녀가 없을 경우 마땅히 사위와 외손자가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정통파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Paul)은 자녀뿐만 아니라 손자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가르쳤고(디모데전서 5장 4절), 친족 중에 돌볼 자손이 없을 경우 가까운 친족들이 그들을 돌보도록 가르쳤다(디모데전서 5장 8절). 유대인의 자녀들은 집안의 친척 웃어른들에게서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유대인의 역사와 여호와(Jehovah)의 율례(律例)와 법도(法度)를 물어서 배우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후대책에도 세밀한 관심을 갖고 돌보도록 교육받고 자란다. 따라서 그들의 혈통적 친족의 단결력은 대단히 강하다.
  ③ 구약성경에 나타난 효
 구약성경에 나타난 효의 계명은 십계명(十誡命) 중 제 5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honour)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 12절)고 하였다.
 효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늘의 아버지께 절대 복종했던 아브라함(Abraham)과 자신의 생명보다 아버지를 중요시했던 이삭(Isaac)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창세기 22장).
 구약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효에 대한 말씀을 찾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출애굽기 21장 15절)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명기 27장 16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언 30장 17절)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장 25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 12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명기 5장 16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레위기 19장 3절) “효도하는 자식처럼 아껴 주리라.”(말라기 3장 17절 공동번역)
 “이스라엘은 죽을 날을 앞두고,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놓고 일렀다. 네가 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할 생각이 있으면,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고, 네가 인애(仁愛)와 성심으로 나의 뜻을 받들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여라. 나를 이집트에 묻지 말아라.”(창세기 47장 29절 표준번역) “ 악아, 야훼께 복을 받아라" 하고 보아즈(Boaz)는 말했다. 너는 돈이야 있든 없든 젊은 사람을 따라 감직한 데 그러지 아니하고 이렇게까지 효성을 다하니, 이것은 지난날의 효성보다도 더 갸륵하구나.”(룻기 3장 10절 공동번역)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나이 많은 노인을 공경하여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여라. 나는 야훼이다.”(레위기 19장 32절 공동번역) 는 등의 말씀이다.
 특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효의 전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구약성경의 효부(孝婦) 룻(Ruth)의 미담(美談)을 지적 할 수 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유대인의 한 가정이 타국(이방)에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방 여자들을 며느리로 맞이했다. 그 후 그 집은 패망하고 시어머니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며느리를 불러 각각 좋은 데로 개가(改嫁)할 것을 권했다. 그 때 맏며느리인 룻은 울면서 “어머니 묻히는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어머니의 친척은 나의 친척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를 버리고 내가 어디로 가오리까?” 하며 시어머니를 따랐다.   그리하여 그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보양(保養)함으로 마침내 패망한 가정을 새로 일으키고, 그의 후손 가운데서 유대나라의 유명한 중흥왕(中興王) 다윗(David) 임금과 예수그리스도(Jesus Christ)가 탄생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효에 대한 계명인 십계명 중 제5계명(출애굽기 20장 12절)은 첫 번째 석판에 새긴 계명으로서 기독교의 효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④ 신약성경에 나타난 효
 신약성경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思想)은 하나님과 예수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장 19절, 22장 39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류를 위한 속죄(贖罪)의 제물(祭物)이 된다. 신약성경에 예수 님의 효에 말씀은 188구절이나 나온다.
 물론 예수 님의 효에 대한 말씀은 영적 부모(요한복음8장 42절)와 육신의 부모(누가복음 2장 51절)에 대한 말씀이 포함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자녀가 지켜야 할 도리로 순종과 공경을 강조하고 있다.
 부모님께 대한 죄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불순종이다. 존경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효에 대한 말씀을 찾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主)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장 1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主)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로새서 3장 20절)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Nazareth)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누가복음 2장 51절 공동번역) “그 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디모데후서 3장 2절 공동번역)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태복음 19장 19절)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遺傳)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마태복음 15장 6절)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마가복음 7장 10절)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마태복음 15장 4절)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8장 20절)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마가복음 10장 19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에베소서 6장 2절 공동번역) “우리가 육신의 부모도 우리를 훈련하는 분으로 모시고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히브리서 12장 9절 표준번역)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主)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장 1절)는 등의 말씀이다.
 기독교의 효 사상은 유교의 효 사상과 양립할 수 없는 종교이다.
 동양 유교는 혈연에 의한 종교이다. 동양인에게는 직접 피를 분급(分給)한 자가 부모요 형제요 친척이다. 그 외는 전부 남이다.
 결국 혈연을 토대로 한 가족제도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가르치는 바는 우리의 진정한 부모나 형제는 나와의 혈연관계이기에 앞서 나의 생명의 주님을 모시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중심은 육이 아니고, 영혼(靈魂)과 인격(人格)에 있기 때문이다.
 육(肉)은 부모에게서 받았지만 영혼(靈魂)과 인격(人格)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영혼의 관계는 육신의 관계보다 일층 더 깊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육신의 부모에게 효하기에 앞서 먼저 영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효 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 바른 관계를 가진 자라야 육신의 부모에게 진정한 효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운명(殞命)하시기 직전에 어머니에게 취한 태도는 명백히 이 사실을 증명한다.
 만민(萬民)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음을 택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순종(順從)이요 효의 절정(絶頂)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한 것은 육신의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의 절정이라고 본다(요한복음 19장 25절~27절).
 결론으로 기독교는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효를 육신의 부모에게 하는 효에 선행(先行)시킨다.

   Ⅴ. 효(孝) 사상의 종교적 갈등

 고대 한국인의 인생관(人生觀), 생사관(生死觀), 효제관(孝悌觀)은 무속신앙(巫俗信仰)에 뿌리를 둔 정령사상(精靈思想 : 모든 존재는 형체와 영으로 구성됨을 믿으며, 죽은 자의 혼과 자연의 신을 숭배하는 사상)이다.
 이 무속적(巫俗的) 입장에서 보면 제사(祭祀)는 선조(先祖)의 혼백(魂魄)이 하감(下瞰)하셔 후손(後孫)들의 제물(祭物)을 흠향(歆饗)하는 일로 보며, 후손들은 선조의 혼백이 후손들을 축복해 주는 것으로 믿기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효를 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유교입장에서는 제사는 부모와 조상이 마치 살아 계시 듯 모시는 것이 효의 표시로 믿는다.
 유교에서의 제사는 <죽어- 살아있어-아직도 우리와 더불어 사는 분>과의 관계맺음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으로 보았다.
 제사(祭祀)에는 축문(祝文)을 쓴다. 축문이란 제사를 받드는 자손이 제사를 받는 조상에게 제사의 연유와 정성스러운 감회, 그리고 간략하나마 마련한 제수(祭需)를 권하는 글이다. 특히 기제사(忌祭祀)에서 지방(紙榜)을 붙이면 축문을 읽는 것이 원칙이다. 살아 계신 어른에게 색다른 음식을 올릴 때 의당 권하는 말씀을 올리는 것처럼, 조상에게도 제수를 올리면서 그 연유를 고하는 축문을 작성한다. 축문의 예문(禮文)에는, 유(維 : '이제' 라는 뜻.) 세차(歲次 : '해의 차례가 이어져 온다'.) 감소고우(敢昭告于 : '삼가 밝게 고함'.) 부군(府君 : 높여서 하는 말.) 세서천역(歲序遷易 : '해가 바뀌었다'는 뜻.) 휘일부림(諱日復臨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라는 뜻.) 추원감시(追遠感時 :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각이 난다'는 뜻.) 호천망극(昊天罔極 : 흠모하거나 공손함이 클 때.) 부모의 경우에만 쓴다. 근이(勤以 : '삼가'라는 뜻.) 청작서수(淸酌庶羞 :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이라는 뜻.) 공신전헌(恭伸奠獻 :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린다'는 뜻.) 상향(尙饗 : '흠향하십시오'의 뜻.) 등으로 되어있다. 위의 예문을 근거로 축문을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님 제사의 축문 예
維유
歲세次차 甲갑戌술五오月월丁정未미朔삭初초七칠日일癸계丑축
孝효子자吉길童동 敢감昭소告고于우 顯현考고學학生생府부君군 顯현妣비孺유人인密밀陽양朴박氏씨 歲세序서遷천易역 顯현考고學학生생府부君군
諱휘日일復부臨림 追추遠원感감時시 昊호天천罔망極극 謹근以이
淸청酌작庶서羞수 恭공伸신奠전獻헌 尙상
饗향
                         【 뜻   풀   이 】
갑술년 오월 칠일 효자 길동은 삼가 고하나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버님
(또는 어머님)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니,
하늘과 같이 크고 넓으신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드리오니,
흠향(歆饗 : 공경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음식을 잡수시다) 하여 주시옵소서.

 불교입장에서의 효 사상은 부모님의 은덕(恩德)에 감사하며 공경(恭敬)하여야 한다는 기본믿음이나, 원래 불교는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내면(內面的) 진리(眞理)를 탐구(探究)하여 득도(得道)하는 인간상(人間像)의 절대완성을 지향(指向)하는 출세간도(出世間道 :속계(俗界)를 떠난 보리(菩提 :  Bodhi)리의 세계)의 종교이다.
 기독교(Christianity)의 효 사상은 살아 계신 부모님께 주(主) 안에서 효를 행하는 것을 중시하는 믿음이다.
 이러한 무속(巫俗), 불교(佛敎), 유교(儒敎), 기독교(基督敎)의 효 사상은 그 가치관(價値觀) 이념(理念)이 서로 달라 이들 종교간에 서로 갈등(葛藤)과 충돌(衝突)을 일으킨다.
 실제로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효 사상이 서로 타협하며 조화를 이루기까지는 2천여 년이 흘렀다.
 특히 조상(祖上)에 대한 효의 구체적 실천 행위인 제사문제(祭祀問題)로 천주교(Catholic Church)가 우리 나라에 전파된 후 불효(不孝)의 종교(宗敎)라 해서 대원군(興宣 大院君 [1820~1898])의 박해(迫害)를 받았다.
 제사문제로 무속과 불교와 유교는 수 천년이 흘러온 후 상호 조화와 타협으로 샤머니즘(shamanism)화 되어 그 종교(宗敎)의 본질(本質 : essence)이 변형되었지만, 기독교만은 아직도 유교와 충돌하고 있다.
 최근에는 천주교에서 제사문제를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니라 해서 로마 교황청에서 허용(許容)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 천주교인들이 2백 여 년 전 제사문제로 박해(辛酉迫害 : 1801년 순조 1년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irony)하다. 가정을 지탱하는 사랑의 근거는 바로 효 사상이다.
 효 사상의 근간에 기독교 사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인(儒敎人)들은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 비난한다. 그것은 바로 제사문제 때문이다.
 이 제사문제를 유교와 기독교의 효 사상 관점에서 살펴보자.
  ① 제사(祭祀)문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사가 우리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니 어찌 함부로 버릴 수 있느냐고 말한다.
 추석(秋夕)이나 설에 차례(茶禮)를 지내는 제삿날은 우리민족의 대 이동인 귀향의 날(Home-coming day)로 흩어져 있던 자손들이 함께 모이며, 가족, 친척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정을 나누는 만남과 사귐의 기회가 주어지는 날로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느끼면서 혈연의 정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원래 중국에서도 죽은 왕에게만 제사하다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 숭배 사상이 보편화되었다.
 AD 1천2백년쯤 송(宋) 나라 주자(朱子)에 의해 제사의식이 체계화되었고, 나중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에 무속신앙(巫俗信仰)의식에 의한 천신(天神)에 대해 제사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었다.
 이것이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등 제사의식으로 발전되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행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조상에 대한 제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상숭배 사상이 생겨난 것은 고려 말엽 성리학(性理學)이 전래되고부터 이다.
 이어 조선 태조왕 이성계(朝鮮 太祖王 李成桂)가 조선을 세울 때 성리학을 국가통치(國家統治) 이념(理念)으로 삼아 조상제사는 차츰 보편화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삼국시대(三國時代)나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종교는 불교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고로 조상 제사가 우리의 고유(固有) 풍속(風俗)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 가운데 조상제사를 지낸 기간은 5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유교적 전통인 제사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봉헌(奉獻)하는 효도의 형태이다. 원래 제사는 ‘신명(神明)을 받들어 복을 비는 의례(儀禮)’라는 뜻으로 중국의 예서(禮書)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지(天地), 일월(日月), 성신(星辰)을 비롯하여 풍사(風師), 우사(雨師), 사직(社稷 : 土神과 穀神), 산악(山岳), 강천(江天)과 선왕(先王), 선조(先祖), 선사(先師)를 대상으로 지내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조상에 대한 것으로 축소되었다.
 지방(紙榜)을 보면, 아버지일 경우 〔현고모관부군신위(顯考某官府君神位 : 무슨 벼슬을 지내신 아버님 신위라는 뜻)〕라 하여 신격화하였다.
 기독교에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애굽기 20장 3절)는 십계명을 지키려면 조상숭배는 불가능하다.
 유교에서는 돌아가신 어른을 위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효를 한다고 보고, 기독교에서는 살아서 효를 강조하고 돌아가시면 추도예배를 드림으로 돌아가신 조상들을 추모한다.
 천주교회에서는 현재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해 시작된 천주교회는 처음에 제사를 반대해, 이로 인해 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받아 죽기까지 했다(辛酉迫害 : 1801년, 金大建 [1822 ~ 1846〕신부 순교 : 1846년〔헌종 12년〕7월). 1939년 로마 교황청은 제사를 허용하는 교서(敎書)를 발표했다.
 이후 제사는 조상숭배 의식이기 때문에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여 허용하였다. 유교적 전통도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다.
 지금은 유교인들 조차 부모님이 돌아 가셔도 3년 상(喪)을 치르지 않고, 궤연(几筵)을 차리고, 삭망제(朔望祭)를 드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필자는 9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상청을 차리고 초하루 보름날 정성껏 제사를 드렸으며 3년 상을 드렸다.)
 조상 제사 문제에 대한 크리스천(christian)들의 자세는 어떠한가?
 기독교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효를 실천하는 바른 도리가 아니라고 한다.
 돌아가신 분은 인격체(人格體)가 아니기 때문에 효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돌아가신 후 진수성찬(珍羞盛饌)을 차려 제사하기 보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 뵙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한번이라도 더 대접해드리고, 노년을 기쁘고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참된 효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집안의 어른들이나 가족들과 합의하여 제사 대신 추모(추도)예배를 드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추모(추도)예배는 또 다른 형태의 제사가 아니라고 한다.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서 고인의 유덕(遺德)을 기려서 자손들이 이어 받고, 또 가족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게 주목적이다.
 가족 중 믿지 않는 사람이 있어 추모(추도)예배를 반대할 경우, 크리스천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족 중 믿는 사람이 있어 제사를 반대할 경우,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크리스천은 아예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를 본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간의 화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제사 참석 자체를 거부할 경우, 크리스천들은 조상이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 욕먹게 되고, 또 불신 가족을 전도(傳道)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추모(추도)예배가 불가능할 경우에도 일단 제사에 참석하되, 절하지 말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무엇보다도 불신가족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② 장묘(葬墓) 문화
 자연환경 조건이 생활의 전 영역에 영향을 끼쳤던 선사시대(先史時代)에는 시체(屍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죽은 사람이 다시 활동할 수 없도록 시체를 묻은 뒤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자연물인 거대한 돌로 덮어 이 바위를 이용,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지내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무속신앙(巫俗信仰)이 제시하는 생사관(生死觀)에 의해 시신(屍身)의 지하장법(地下藏法)인 매장문화(埋葬文化)가 생겨나게 되었다.
 지금처럼 매장(埋葬)을 하는 유교적(儒敎的) 장례의식(葬禮儀式)은 우리민족 고유(固有)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은 아니다.
 민족고유의 선사사상(先祀思想)이나 삼국시대(三國時代) 이래의 불교(佛敎)가 융성(隆盛)해 기층민중(基層民衆)에는 유교적(儒敎的) 의례(儀禮)가 퍼져 있지 않았으며, 이는 고려 태조 때 ‘훈요십조(訓要十條 : 고려 태조(943)가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10가지의 遺訓)’의 불교가 통치이념으로 권장됐지만 마찬가지였다.
 고려(高麗)시대(時代)의 기록들을 보면 화장(火葬)을 하고 1년 후 매장(埋葬)하는 등 화장이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 :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가 『주자가례(朱子家禮) : 관(冠)․혼(婚)․상(喪)․제(祭) 사례(四禮)에 관한 예제(禮制)』에 따를 것을 주장한 이래 조선중기(朝鮮中期) 성종(成宗) 때에 와서야 『주자가례 』에 따라 시신(屍身)을 염(殮)한 뒤 관(棺)에 넣고, 매장(埋葬)하는 유교식(儒敎式) 장례(葬禮)가 국가의 기틀로 확립되었다.
 유교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생활규범(生活規範)을 넘어서서 통치이념(統治理念)으로 스스로 국가 종교화하는 가운데,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가문(家門)과 부모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효(孝)라는 사상과 유교적(儒敎的) 숙명론(宿命論)이 대두(擡頭)되어 풍수(風水)에 의한 매장문화를 확립시켰다.
 예기(禮記)에 의해 망자(亡者)의 지위(地位)와 부(富)에 따라 관(棺)이나 분묘(墳墓)의 크기가 형식화(形式化)되었다.
 기독교가 들어오면서도 효 사상과 숙명론(宿命論), 부활론(復活論)이 기복적(祈福的) 차원과 결합하여 매장문화를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지금의 한국식 매장풍습은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것 보다 산자의 출세(出世)와 양명(揚名)을 위한 주술적(呪術的) 기복(祈福)이 효 사상이라는 봉건적(封建的) 미풍양속(美風良俗)의 탈을 쓰고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가 매장문화라면, 불교는 화장문화이고, 기독교는 매장이든 화장이든 성경 상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 비본질적(非本質的)인 문제이지만, 서구기독교 문화는 교회주변에 시신을 매장 처리하는 매장문화이다.
 윤동철 교수(성결대학교․조직신학․전통장례문화와 기독교장례문화)는 『장례문제에 대한 정신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먼저 관습이나 의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서 타당한 범주 안에서 개혁을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매장제도가 지속될 수 있다면 지속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적 윤리의 측면에서 타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이교도(異敎徒)의 화장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화장은 신중하게, 매장방식(埋葬方式)은 호화분묘(豪華墳墓)가 아닌 친환경적(親環境的) 분묘(墳墓)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셉나(Shebna)의 지나친 묘지 치장을 하나님은 이사야(Isaiah)를 통해 신랄히 정죄(定罪) 했음 : 이사야 22장 15절~25절).

   Ⅵ. 맺는 글

 지금까지 한국인(韓國人)의 효(孝) 사상(思想)을 고찰(考察)해 보았다.
 한국인의 효 사상은 유교(儒敎)의 효제사상(孝悌思想), 불교(佛敎)의 보은사상(報恩思想), 기독교(基督敎)의 경애사상(敬愛思想)을 터 하여 무속(巫俗)의 샤마니즘적(shamanism) 기복사상(祈福思想)이 조화(調和)된 한국고유(韓國固有)의 효 사상이라 하겠다.
 21세기의 디지털(digital) 지구촌 시대에 사는 한국인들의 효 사상은 젊은이들 세대에서 급격히 변하고 있다.
동양의 수직문화와 서양의 수평문화의 혼재, 보수세대와 진보세대간의 갈등, 전통적 가치관과 진보적 가치관간의 충돌 등으로 한국인의 효 사상은 흔들리고 있다.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 물질주의(物質主義), 개인주의적(個人主義的) 젊은 세대는 자기 희생적(自己 犧牲的) 효제(孝悌), 보은(報恩), 경애사상(敬愛思想)은 점차 퇴색(退色)되어가고 현실주의(現實主義) 합리주의(合理主義) 상호주의적(相互主義的) 효 사상으로 변혁(變革)되어가고 있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21세기에 사는 그로발(Global) 한국인(韓國人)들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本質的)인 효 사상은, 종교(宗敎)간의 대화(對話)와 조화(調和)와 화합(和合)속에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의 효 사상이 정립(鼎立)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천애인(敬天愛人), 충효효제(忠孝孝悌), 보은순종(報恩順從)은 한국인이 정립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효 사상(孝 思想)이 되어야 한다고 감히 제언(提言)한다.

講  師   紹  介

宋    錫    安(1940年 生)

서울大學校 師範大學 敎育行政硏修院 修了
仁川敎育大學校 敎育大學院 卒業(敎育學碩士)
仁荷大學校 社會敎育院 修了(原語民 英語)
朱安監理敎會 三位一體 聖書硏究院 卒業(神學, 聖書課程)
敎  師(23.10年) 伊作, 三木, 蘇萊, 富川北, 富川南, 吉祥初等學校
校  監(6.0年) 雲潭, 永北, 富元初等學校
專門職(4.0年) 驪州, 軍浦, 富川敎育廳 獎學士
校  長(9.6年) 楊平東, 安山元谷, 安山中央, 君西初等學校
               君西初等學校 招聘校長 停年退職(2002年 8月)
長  老(20.0年) 仁川朱安監理敎會 始務(敎育部長)
한국보이스카우트 군포지구연합회 사무장
한국보이스카우트 안산지구연합회 명예위원
韓國敎育者 宣敎會 富川地域會長
韓國敎員團體 總聯合會 中央代議員
京畿道敎育廳 元老 獎學官-京畿道內 初等學校 巡廻講師
E-mail: songseak@hanmail.net
Home-page : www.weteacher.com/songseak
Tel(032)866-1974. C․P 016-9380-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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