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성
선배님께서 발성, 발음 훈련에 좋은 문장들을 정리해서 나눠주셨다. 독립선언문을 비롯한 그 비슷한 시기의 문장들이 주류였고 제시된 발성과 호흡에 맞춰 문장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을 아래로 내리면서 저 멀리 있는 벽의 한 점에 꽂는 듯한 느낌으로, 턱을 당기고 자세를 똑바로 하여 발성을 하다보니 자세가 흐트러질 때와 바를 때의 차이 역시 느껴졌다. 다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흘러 주에 세 번은 연습실에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백
일호씨의 연기는 볼 때마다 보는 힘이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호씨의 연기를 보고 선배님께서 너무 계획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배님께서 줄곧 말씀해주신 나쁜 연출의 나쁜 지시가 녹아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일호씨께 일호씨가 할 때 편안한 걸로 다시 골라보자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코스챠가 편하다기 보다는 누구나 해보고 싶은 코스챠고 나 역시 해보고 싶었기에 고른 감이 있어 얼른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호씨가 고르실 독백이 궁금해졌다.
명규씨의 코스챠 보며 손에 계속 시선이 뺏긴다는 걸 느꼈다. 나도 2년 전에 연기를 배울 때 손을 가만두지 못해서 한 선생님께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연기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어 저 움직임의 출처를 알기에 속으로 편안해지라고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선배님께서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앉아서 시작 하는 것도 왜 앉아있는지에 대해 이유가 있어야 하고 시선이 돌려질 때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인물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없는 행동이 없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졌다. 이유없는 행동은 인물이 아닌 배우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는 게 맞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시면서 집중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집중 역시, 당연한 말이겠지만 정말 연기하는 배우는 물론이고 보는 이 역시 집중하게 만드니 중요하구나.
상하씨의 아스트로 역시 나는 볼 때 불편함이라던가 졸린다던가 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다들 졸렸다고 해서 좀 놀랐다. 상하씨가 천천히 드라이리딩을 할 때에 점점 있지도 않은 유모가 바닥을 걸레질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달빛이 창문을 통해 새어 나오며 아스트로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전쟁터가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해 또 놀랐다. 선배님께서 전사에 대한 강력함을 설명해주셨고 나 역시 내가 다시 고를 독백의 전사를 탄탄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극장 밖에서 어떤 소리가 났는데 선배님께서 이런 외부적인 뜻밖의 요소들도 극장안에 들렸다면 활용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면 아이씨 윗 집 또 싸우네 하고 흘려버리는 것 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는 방향이 같은 상하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남자가 통화를 하며 화를 내고 지나가는 걸 동시에 보고는 저게 진짜 살아있는 거라고 감탄했다. 정말 꾸미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저렇게 감정을 내비친다는 게 대부분 착한 아이로 자라기를 가스라이팅 당하며 유년기를 보내게 되는 우리나라에서 참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갈매기를 읽는데 1막 1장의 메드베젠꼬가 내 시신경을 장악했다. 그냥 나였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뚝딱대며 우물쭈물하는 내가 거기있는 것 같았다. 이걸로 하자 하고 바로 집 벽에 마카로 찍어놓은 점 세 개를 보며 드라이리딩을 나름 진행했고 대사 역시 다 외웠다. 다만 전사를 쌓거나 분석을 하지는 못 해 명확한 목표 하나만 가지고 내일 해보자는 생각에 여러 목표들을 나열해두고 한 가지를 골랐다. 오늘 어떻게든 마샤를 넘어오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