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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단법인한국시조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신웅순
초정 김상옥 편
석야 신웅순
가을은 시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시까지 낭송하면 더욱 안성맞춤이다. 운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경서나 사기를 곁들여 읽어도 좋다. 시심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지는 잎새를 바라보노라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짐을 떨쿠는 잎새에서 인생과 삶을 문득 배울 수 있다.
나는 통영에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초정 선생님을 생각했다. 가신지 13년이나 되었다. 지난 날 몇 번 뵈었을 뿐 선생님과는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선생님과는 이상하게도 비껴갔다. 아쉬움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야 절실해지는 법이다.
첫시집 『초적』을 펼쳤다.
초정 김상옥(1920-2004)의 출발은 시였다. 시지 『맥』동인으로 그 3집(1938.10)에서 「모래알」 을 4집(1938.12)에서 「다방」을 보여준 바 있다.문단의 공인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는 시조를 사용 했다. 동아일보가 공모한 제 2회 시조모집에서 「낙엽」이 이병기 고선으로 당선 발표되었 다.(1939.11.15.) 이 때 초정은 청진에 있었다. 이 무렵『문장』(1/9,1939.10.)을 통해 「봉선화」가 역시 가람에 의해 추천되었다.(임선묵의 노트,「초정과 초적」,2002)
「봉선화」는 김상옥의 19세 때 발표된 실질적인 문단 등단작이다. 1947년 첫 시조 시집 『초적(草笛)』에 수록되었으며 가람 이병기에 의해 국어 국정 교과서에도 실렸다. 작곡가 윤이상은 이 시조에 곡을 붙여 1950년「봉선화」를「편지」로 수정해 자신의 작곡집『달무리』에 실었다. 2007년에는 통영의 납방산 산책로에「봉선화」시비가 건립되었다.
비 오자 장독대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 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봉선화」전문
「봉선화」는 총 3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그리움의 보편적 정서를 애틋하고 정감있는 언어로 표현했다. 첫째 수는 장독대에 피어나는 봉선화를 보며, 시집간 누님을 떠올렸고 둘째 수는 자신의 편지를 받게 될 누님의 마음을 상상하며 그리고 있다. 셋째 수는 누님과 마주 앉아 봉선화에 꽃물을 들이던 옛날 어린 날의 장면을 회상하고 있다.
꽃은 아름다운 것이다. 꽃은 착하고, 꽃은 또 참된 것이다. 누구나 과거가 아무리 괴롭고 슬펐다 하더라도, 그가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다.
-「꽃이 용으로 화한 이야기」에서
꽃은 아름답고 착하고 참되다고 했다. 그에게서 꽃은 이상향이요, 화엄 세계요, 차라리 경전이다. 봉선화는 유년의 꽃을 현재에 와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꽃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이 작품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 꽃은/작은 싸리꽃/ 아 산들한 가을이었다.//봄 여름/가리지 않고/언제나 가을이었다.//말라서 /바스라져도/향기 남은 가을이었다.//’ 그 작은 싸리꽃이 죽어서도 그 꽃에서 향기가 남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에게서 꽃은 이리도 진실하면서도 경건한 것이다.
임선묵 교수는 그의 시어는 맵서나 독하지 않고, 원한에 사무치거나 비통에 몸부림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일체의 세속적 왜곡이 배제되고 논리도 자성도 봉선화에 때를 묻힐 수는 없으며 그의 순수 서정의 근거를 봉선화에서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연현은 초정의 일면을 동심에 가깝도록 소박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규정하기도 했다.(임선묵의 노트,「초정과 초적」,2002) 이쯤이면 초정의 시세계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감성은 천생적이요 문장은 가히 천재적이다.
『문장』에서 가람 이병기는 「시조를 뽑고」라는 선후평을 통해서 「봉선화」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봉선화-이 꽃을 보고 누님을 생각하고 누님과 함께 자라나던 옛날을 생각한 것이 또한 봉선화 모양으로 연연하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서글프기도 하다.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하는 것이 얼마나 그립고 놀라운 일이 냐. 이런 정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마는, 이런 표현만은 할 이가 그리 많지 못할 것이다. 타고난 시인이 아니고는 아니 될 것이다. 쓰는 말법도 남달리 익숙한 바, “삼삼이는”과 같은 말을 쓴 건 그 묘미를 얻은 것이다. 항용 말을 휘몰아 잘 쓰기도 어려운 바, 한층 더 나아가 새로운 말법-우 리 어감, 어례(語例)를 새롭게 살리는 말법을 쓰는 것이 더욱 용하다.
김동리의 술회에 의하면 초정은 열열한 민족주의자였다고 한다. 고향인 통영에서 쫒겨 함흥으로 원산으로 다시 삼천포로 전전 유랑했다. 뒤에는 항상 외경이 추적하고 있어 샘솟는 그의 시혼마저 괴나리 보따리 속에서 햇빛을 볼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첫시조집 『초적』의 첫 번째 수록된 그의 유랑 시절에 썼음직한「사향」에서 그의 시세계의 단초를 읽어볼 수 있다. 이는 당시 그의 민족주의 이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평화롭고 정겨운 고향 같은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초창기 국정 교과서에 수록된 전형적인 향토 서정 시조이다. 어마씨는 예스러운 말 ‘어머니’의 사투리이고 꽃지짐은 꽃으로 지져 부친 음식, 화전을 말한다. 멧남새는 산나물이다. 고향 마을의 전경과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눈 감으면 내 사립 가린 초가가 보인다. 어머니의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끼니마다 봄나물 씹고 사는 마을, 눈을 뜨면 그 마음 도로 애젓하다는 그리움의 서정이 비길 데 없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의 고향의 이미지는 자체가 그리움이자 결국엔 그가 바라는 유토피아일지 모르겠다.
그의「청자부」,「백자부」,「항아리」,「백자」등의 그릇 이미지들은 초정의 시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들이다.「백자부」는 그 중 단연 압권이다. 초정은 시·서·화, 골동품· 인각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소양과 판별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시조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 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봉선화」와 함께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된 시조이다. 1960년대 후반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조이다. 여기에는 원본의 둘째 수가 빠져 있다.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에서 '그 술' 의 대목 때문이다. 미성년자들에게 적합지 않다는 당시 국정교과서 편수관들의 판정이었다고 한다. 둘째 연에 대한 선생님의 후담이다.
「백자부」는 백자의 고결하고 순박한 아름다움을 시각적 이미지와 역설적 표현을 통해 예찬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백자를 앞에 두고 감상하고 있다. 바람 이는 ‘소나무’. 깃을 접는 ‘백학 한쌍’, 돋아나는 ‘불로초’, 비껴나는 ‘채운’, 뛰어나는 ‘사슴’ 등 백자의 미적 구성을 위해 십장생을 등장시켜 고유한 백자의 맛을 한결 더해주고 있다.
백자는 이미 정물이다. ‘흙 속에 잃은 그 날’ 은 실질적으로 불에 구어져 흙이 백자로 탄생한 날을 말한다. 도공의 시혼이요, 지난날의 발자취요, 유구한 역사요, 조상의 문화이다. 그런데 이제 막 흙에서 구어낸 것처럼 과거의 정물에서 현재의 동적인 상태로 재현되고 있으니 ‘무기교의 기교’로 이리도 격조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 속에 구어내도 얼음 같이 하얀 살결’ 불과 얼음이 역설적 대비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상상을 뛰어넘는 신의 언어이다.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는 말은 일체의 결함 없는 완전무결을 뜻한다. 우리 민족의 예술에 대한 우수성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과거가 현재에 와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흙 속에서 잃은 그 날의 깊이가 이리도 순박하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은 초정을 모든 사물을 볼 때마다 거기 살다가 죽어간 옛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넋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우리 시인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눈을 가진 선수라하고 칭송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옥저(玉笛)」을 곁들여 읽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옥저는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옥으로 만든 일종의 피리를 말한다.『삼국유사』에 전해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옥적이 아닌가도 추측하기도 한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은하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천년을 머금은 채
따스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 망정 뜻을 달리 하리요
끝없이 맑은 소리 천년을 머금은 채 그 소리 은하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그냥 읽어서 느끼면 되는 것, 여기에 무슨 사족을 더 붙이랴. 더는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1938년 김용호‧함윤수 등과 함께 『맥』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1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광복되기까지 사상범으로 여러 차례 영어생활을 겪었다. 1946년 이후 마산고, 부산여고, 경남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시집으로 『초적』(1947), 『먹을 갈다가』(1980) 등이 있으며 노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그러미 바라본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 「어느날」전문
새구두를 신겨 주고 저만치 가는 뒷모습을 물그러미 바라보면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쉽게 간다니 시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시간과 공간에 비할 수 없음이요, 우주의 끝을 알 수 없음이요 인생의 처음과 끝도 알 수 없음이다. 한 생애 사무친 일이 저런 사소한 일이었을까. 생각하면 인생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 생애 살아온 것들이 딸아이의 뒷모습으로 저리 쉽게 가는 것이다. 인생의 사무친 일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 살아온 삶이란 이리도 허무한 것인가.
나란히 읽어도 좋은 시조가 있다. 그의 꽃과 삶에 대해 사색해 볼 수 있는 시조이다.
늙은 두보처럼
꽃 위에 눈물도 뿌리고,
멋있는
젊음과 사귀다가
일부러 가는 귀도 먹고,
떠날 땐
푸른 반딧불
먼 별처럼 사라졌으면…
-「소망」
두보처럼 꽃 위에 눈물을 뿌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무엇일까. 젊음과 사귀다가 귀를 먹는 것은 그에게는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알 수 없는 궁금증만, 더 이상의 생각만 사족을 붙일 뿐이다. 느낌 그대로 읽으면 되리라.
그는 1995년에 발표한 김상옥 시인이 쓴 「나의 삶, 나의 고백」에서 "시가 무엇이며, 시인이 무엇이며, 보람이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권력, 어떤 재화, 어떤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슬픈 종교의 삼위일체다." 라고 말 한 바 있다. 왜 그는 시를, 시인을 슬픈 권력, 슬픈 재화, 슬픈 명예’의 삼위일체라고 했을까. 권력도 재화도 명예도 시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이것이 그의 시정신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1966년 경(시조문학 14집)부터 시조와 삼행시, 삼연시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으려는 그의 시도가 있었다. 시조는 ‘장(章)’의 개념이지 ‘행(行)’의 개념이 아니다. 시조는 음악과 문학의 개념으로 오랫동안 관습에 의해 굳어진 명칭이다. 시조는 읽는 시의 개념으로 시조시의 현대적인 혁신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였으리라 생각된다.
이 가을날에 주옥 같은 세련된 시들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혹자들은 그를 일컬어 이은상의 관념적 특성과 이병기의 청신한 감각성을 융합한 경지를 보여준다고들 말한다.
초정은 소소한 것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대답을 찾아내고 슬픔을 우려낸다. 무엇을 찾기도 하고 무엇을 일구기도 하고 무엇을 지우기도 한다. 세상의 소소한 것들이 그의 세공 과정을 거치면 위대한 우주가 탄생되고 일상이 그의 손길을 거치면 위대한 발명품이 된다.
초정의 시들은 가을도 머뭇대며 가을도 시 한 수쯤 읽고 간다. 귀뚜라미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가을에 시들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가을엔 초정의 시 앞에서 모든 것들이 기웃대다 간다. 무슨 말찬사가 더는 필요하랴.
그것은
한 가지 질문이었다
- 두엄 곁에 핀 달개비꽃도
그것은
애틋한 대답이었다.
- 풀잎을 기는 딱정벌레도
참으로
뭉클한 슬픔이었다
-가까이 들리던 먼 귀울림!
-「주변에서」전문
저 덩굴
얼룩진 그늘
넌 거기서 무얼 생각하느냐
바람에
살랑대는 잎새
머언 늪에 물무늬 일구고
마침내
시나브로 지는 꽃
세상에 흔적 하나 지운다
-「흔적」전문
- 신웅순,서예문인화,2017.11.107-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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