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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살아가고 있다.'기보단,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것 같은 빡빡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 50을 넘어선 고교친구들과의 일탈을 함께 할수 있음은 언젠가 부터 내가 지닐수 있는 몇 안되는 행복중 단연 으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자리에서 나는 지금의 이 행복만큼은 절대로 앗아가지 말아달라고, 나의 조그만 욕심만큼은 지닐수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소망한다.
지난 토요일(2.25)은 겨우내 고대해왔던 속초여행 가는 날 이었다. 1월초 '대포항'건설의 책임을 맡고 있는 영원한 토쟁이 현우의 속초로의 초대는 작년 가을 불굴의 한의사 호영이의 익산 초대에서 뭉클했던 감동과 환희의 여울에 다시금 커다란 물결을 일게하였다. 노가리 조금 보태서 그 날이후 출발하는 오늘까지 제발 아무일 없기를 날마다 기도하였다.
기도빨이 통했는지 봄을 시샘하는 2월의 입김은 서서히 이삿짐을 꾸렷고, 요며칠 숨조이던 목통증도 많이 엷어져 있었다. 의사가 물리치료와 약을 먹어야 하는 월요일까지 절대로 커피와 술은 먹지 말라 했는데 오늘 속초여행의 달콤함 만큼은 꼭 담고 싶었기에 나의 인내심에 배임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로인한 피해는 철저히 내가 감수 하리라 다짐하였다.
'안전운행을 위해 차량 내에서의 음주가무를 지양.' 하라는 명성이와 '속초는 지금 눈이 오고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 오라.'는 현우의 염려섞인 목소리로 36.5도의 체온이 조금씩 데펴짐을 느꼈다. 유행 지났다며 신발장에 박제해 놓은 아들놈 운동화를 집어들며 작았던 아들놈의 신발이 내게 딱 맞을 정도로 아들놈이 큰 것인지, 내가 늙은 것인지 모를 에메한 서글픔과 보람이 운동화 끈을 메는 손에 힘이 들게 하였다.
서둘러 집을 나서 봉일천에서 준수와 만난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준수의 소탈한 웃음은 언제나 상대를 웃고야 말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소탈함이 준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끓이질 앉게 하는것 같았고 나도 그 중에 한 명인 것이 참 흐믓했다. 가는 길에 먹고 마실 알콜과 그 부속물을 준비하기 위해 대형 마트로 가려 했으나 '동네 구멍가게를 살려야 한다.'는 준수의 착한 의지로 인해 인근의 작은 구엉가게를 찾았다.
당초 이슬은 한 상자를 사려했으나 현우와 명성이의 염려도 있고 해서 반 상자로 줄이고 맥주 두 상자, 오징어, 땅콩, 생수등을 차에 실을 때 왜 그리 따뜻했는지, 지금도 구멍가게 아줌마의 준수를 닮은 소박한 웃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 구멍가게가 내 어릴적 나를 감싸줬고 품어줬던 따뜻했던 정(情)들도 희미하게 하는 아련함일듯 하였다.
조리읍 사무소에 먼져 와있던 아티스트 기혁이와 언제나 조용한 기성이의 정감 넘친 악수로 안부를 주고 받으며 설레임의 박차를 가할 때 카키색의 사각모자가 잘 어울리는 두현이가 멋진 세단에서 몸을 내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두현이 특유의 굵고 명랑한 '우~화화~'하는 웃음소리가 집을 나설때 보다 푸르러진 하늘 위로 상큼한 콜라색의 동심원을 수놓으며 퍼져 올랐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 했던가? 두현이를 닮은 밝고 쾌활한 이미지의 두현이 마난님이 35년만에 수학여행 떠나는 남편과 친구들을 위해 정성스레 마련해온 귀한 초란과 음료수를 한 보따리 건네며 "조심해 다녀 오시란" 말과 함께 수줍게 인사 하였다. 두현이 말마따나 친구를 넘어 진한 동지인 듯한 동갑내기 두현이 부부의 넉넉한 모습이 가뜩이나 부푼 마음에 한 없이 파고 들었다.
뭔지 알듯 좋은 예감으로 들떠있는 마음들과 정(情)을 실은 산뜻한 노랑색 미니버스는 통일로변을 미끄러지듯 달려 나가며 잠시후 마주칠 또 다른 반가움들과의 상면을 재촉하였다. 차창 너머로 다가올 봄을 맞이 하려는 마른 가로수들의 때 이른 기지개를 지나치며 길고 지루했던 겨울과도 이젠 서서히 작별을 준비해야 하지만 미련의 여운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약속시간인 2시10분에 맞추어 삼송역 5번 출구 앞에 이르렀을때는 이미 도착해 있던 광식이, 민수, 명화, 태연이, 영준이, 성인이, 준식이, 윤구, 영대, 재철이, 상일후배등 모두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이리 쉽게 만날수 있는데, 조금만 더 신경쓰면 이리 맑게 웃을수 있는데, 나의 이기심만 좀 내려 놓으면 이리 따뜻한 손을 잡을수 있는데... 새삼 나의 무심했던 시간들에 연민의 습기가 내려 앉았다.
멀리 마산에서 올라온 멋진 목소리의 광식이, 올 1월달에야 처음 손을 잡은 준식이, 영대, 지난한 역경을 이겨낸 태연이, 명화, 마당발이 빛나는 민수, 중요한 입찰건으로 새벽까지 잠못 이룬 영준이, 35년전의 추억을 더듬으며 삶은계란과 떡을 실고온 성인이, 순수한 영혼을 지녓을 미술가 재철이, 삶의 무게에 맞서고자 멋진 은발을 내려놓은 윤구, 후배지만 편한 선배같은 상일후배, 이들의 화사한 체온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속 습기를 걷어주었다.
함께 가기로 했지만 최근 어머니의 수술과 친척어른의 갑작스런 상(喪)으로 부득이 아쉬움으로 대신해야 했던 진제와 병긍이의 빈자리가 유난히 넓어 보였다. 2시 30분 삼송역을 출발해 와곽순환로를 달리던 버스는 수락IC에서 영선이의 합류로 비로소 예정인원을 모두 채웠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작년 봄 사위를 봤으나 아직 늦둥이 중학생 아들을 둔 영선이의 한결같은 묵묵한 '자기절제'는 참 닮고 싶은 부분이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밀리지 않는 도로의 상쾌함이 여행의 흥을 돋구었다. 우리는 옹기종기 차 안에 몰려앉아 살아온 시간들, 기억의 조각들을 끄집어 내고 짜맞추며 35년전 처음으로 집 떠난 수학여행의 그 날처럼 모든 것 내려놓고 넉넉한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에 생각들을 적시고 말리면서 목적지인 속초까지 거리를 좁혀나갔다.
안전운행을 염려하는 명성이의 바램으로 차량 내 가무는 삼가했지만 음주까지 물리치기엔 지천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듯 하였다. 가운데 보조의자를 펼쳐 마음 편한 주안상을 만든후 봉일천 구멍가게에서 구입해온 준비물로 서로의 술고픈 입술을 적시고 두현이와 성인이의 정(情)이 스며있는 삶은 초란과 계란, 떡을 곁들이며 깊은 웃음으로 안전운행을 고사지냈다.
얼떨결에 앞 자리에서 안전운행의 중책을 맡은 내가 등 뒤로 전해오는 분위기의 달콤함을 물리치기엔 좁쌀 만한 내가슴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초코파이만한 준수의 가슴에 내 작은 이기심을 기대고 종이컵에 담겨진 투명한 이슬로 좁쌀 크기의 가슴이 초코파이만해 질때가지 채워 나가며 나이든 세월의 향기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지금의 아들녀석 나이 였을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나서며 35년후 이렇게 스스럼없이 만나서 웃고 즐길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 싱싱하던 풋풋함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치기어린 객기들은 다 어디로 증발해 버렸을까? 그 시절 아버지의 밤잠을 설치게했던 그 맹랑함은 다 어디로 이민을 가버렸을까? 겁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각진 눈은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
정없는 세월이었을 것이다. 강가의 돌멩이가 수많은 세월의 아픔을 거쳐 결국 모난 곳이 모두 닳아 구슬 처럼 둥글어진 것처럼 우리가 지나온 세월이 그 시절 지녔던 풋풋함, 객기, 맹랑함, 각진 눈을 한 없이 닳게하여 이 나이, 모두들 하나 같이 구슬 모양의 둥근 가슴을 가질수 있었고 서로에게 거리낌없이 다가설수 있게한 세월이 '정없는 것만은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출발후 2시간에 걸쳐 숨가쁘게 달려온 여정은 용대리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골랐다. 준비해온 10명의 소주는 이미 앵꼬됐고 안주도 바닥을 드러냈기에 소양호 겨울특산물인 빙어튀김과 성인이가 즐겨먹는 맛짱구 대(大)자 2봉지, 소량의 참이슬을 보충후 갈 길 바쁜 여정을 서둘렀다. 그 와중에도 빙어 튀기는 아줌마와 인연을 엮으려는 민수와 기혁이의 끈적한 눈길이 참 담백해 보였다.
떠나 오면서 부터 줄곧 높고 파랗던 하늘은 용대리휴게소를 벗어 나면서 조금씩 잿빛으로 흐려 지더니 작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차량의 간격이 서서히 좁혀지고 차창 밖 풍경들은 빠르게 흰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했다. 목적지 속초와의 거리가 짧아 질수록 굵어지는 눈발은 앞 차의 선명하던 바퀴자국도 급하게 지워 나갔다.
미시령길은 이미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꾸불 꾸불 진부령으로 올랐다. 손에 닿을듯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침묵한채 토해내는 눈송이가 외투 잃은 나무들의 시린 손목을 감싸주었고 차가운 발목을 덮어주었다. 새소리 멈춰진 적막한 겨울산이 고은 눈옷을 걸치자 떠나간 새들의 부지런한 기지개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모두들 풍경에 취했는지 차 안을 계속 달궈왔던 열기는 입에서 눈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옯겨져 감탄사 외엔 말이 없었다. 분주한 일상에서 가져보지 못한 소소한 감탄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그 풍경들을 서둘러 담게 하였다. 진부령고개를 넘어와 평지를 달리는 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입구로 들어서는듯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온통 하얗다 못해 비취빛으로 시야를 덮쳤다. 방금 전 지나왔던 풍경들 보다 묵직하고 엄숙한 위엄이 서린듯 했다. 그 장엄함에 끌린 우리는 아무리 갈 길이 지체 됐어도 그대로 지나칠순 없었기에 잠시 내려 수컷의 영역표시(?)를 한 후, 어스름이 깃든 희미한 저녁 벌판에 평생 기억될 발자국을 세겨놓고 지체된 길을 재촉하였다.
일정상 으로는 오후 6시에 현우의 '쌍용건설 대포항현장'에 도착 하는 것으로 되있으나 예상치 못한 폭설로 지체되어 바로 '경동횟집'으로 향했다. 내리는 눈보라에 다소 엷어 졌어도 특유의 비릿한 바다향과 검은 파도의 출렁임이 잠시 졸았던 후각과 청각을 두드리며 생기를 불러 일으켰다. 주위는 이미 어둠의 입김이 들어섰으나 줄줄이 늘어선 요란한 횟집 간판들의 위세에 눌려있었다.
저녁 6시 30분, 경동횟집 입구에서 마주한 현우와 명성이, 대모의 환한 미소와 서로의 안부 인사가 다가 올 설레임의 타전소리로 한껏 들뜨게하였다. 때 맟줘 들어서는 종필, 석우, 호영이, 재훈이, 희준이, 재환이와 마주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손 느낌이 들뜬 가슴을 더욱 뜨겁게 두드렸다.
너른 방 안에 모두가 자리 했을때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짚어 보았다. 이리도 멋지고 믿음직스런 친구들과 먼 길을 함께 동행할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뿌듯했고 잔잔한 가슴떨림이 고동을 치기 시작했다. 오늘 만남의 의미를 담은 명성이의 소박한 인사말에 이어 희준이의 통통통 건배제의로 모두들 한 목소리로 '오랫동안 건강하고 먼길 함께 가자'는 보석같은 외침이 아직도 뭉클하게 귓가에 머물러있다.
희준이가 친구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은 독수리상(像)을 현우에게 건넬때,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이리도 뜻깊고 흐믓한 자리를 만들어준 현우에게 정말 '고맙고 수고했단'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아울러 현우의 '대포항'도 지금 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멋지게 비상할수 있기를 기원했다. 문득 현우가 안고있는 독수리와 참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태연이의 지난했던 날들의 회상은 치열했던 그의 삶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이 악물고 좌절을 딛고 선 그에게 늦게나마 심심한 노고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장고 졸업후 올 1월에 처음 만난 준식이, 영대, 오늘 처음 본 재훈이와 스스럼없이 술잔을 기울일수 있음도 가슴 벅차게 하는 기쁨 이었다. 만약 내가 불혹이었다면 이렇게 벅차 오르는 기쁨을 느낄수 있었을까? 단언컨데 네버!! 절대 아닐것이다.
그 때는 '언제까지 혼자 갈수 있다.'는 자만(自慢)과 허명(虛名)에 길들여 졌었기에 껍질뿐인 진리에만 시선이 머물렀다. 지천명에 접어들며 돋보기와 친해지고 흰머리가 더 이상 새치가 아님을 인정하고 부터,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드는 고립감이 어깨를 시리게 하면서 부터, 혼자 마신 술잔에 눈물과 허무함이 보이고 부터 과거는 흘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는동안 영원히 그리워 하고 껴안아야할 대상이란 사실을 깨치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은 있으나 추억은 너무도 빈약했기에 그 깨우침을 만날때 마다 나는 언제나 가슴 저며오는 흥분의 설레임으로 맞이 하는것이다. 철갑옷처럼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나 다가서 보면 종이 보다도 여린 유리갑옷 한 벌에 의지한채 버텨야 하는 이 나이, 고된 현실을 바꿀수는 없지만 현실을 보는 눈을 바꿀수 있었기에 저리도 해맑고 천진한 미소를 찾을수 있었고, 일상에서는 근엄한 어른 이어야 하지만, 그 때만큼은 스스럼 없이 음담패설에 낄낄대며 서글픈 서로의 고단을 위로하고 위로받을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 정이 넘친 야관문주, 오매락주, 발렌타인, 조니워커가 뒤섞여 생각들이 댄스를 추고 시간들이 장단을 맞췄다. 새우깡 하나 없이 2병의 불량이슬을 마신듯 정신줄이 서서히 황혼녘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흐린 기억에서도 우연히 만난 사촌여동생 친구들과 친해지려는 KH와 MS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바삐 움직이는 걸음이 참 경쾌해 보였다.
삶의 시름을 덜어내듯, 서로의 세월을 보상하듯 장고 시절보다 더욱 더 손 높이 들어올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갈고리촌충, 민촌충의 주문을 외우고 경동횟집을 나선 것은 밤 9시 30분이었다. 각 자의 어깨를 눌러왔던 맷돌의 무게 만큼 시름이 가벼워졌음 인지 몰라도 모두의 얼굴엔 아버지의 경직된 미소보다 그 시절 소년의 싱싱한 웃음으로 졸고있는 속초의 밤하늘에 수를 놓았다.
어느 시인이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라고 노래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울고싶은 사연이 아버지 처럼 많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울 수가 없다. 울면 쪽팔리니까... 그래도 울 수가 있다. 같은 아버지 끼리라면...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록한 조명 아래서 25명의 슬픈 아버지들은 엄청 울어댔다. 아버지가 무거워서... 엄청 웃어댔다. 함께 울 수있는 아버지들이 있어서...
명화의 핸드폰 분실 미수, 숙소를 잘못 알고 파인리조트에 내려준 셔틀버스기사, 숙소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의 '알콜과 라면을 구해오라.'는 전화등등.. 우여곡절의 해프닝을 거쳐 명화, 성인이, 준식이, 재철이, 영선이와 파인리즈리조트에 닿았을 때는 자정에서 1바퀴 넘어서 있었다. 몸이 휘청대고 정신은 가물댔지만 소복한 눈을 뒤집어 쓴 채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풍경들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흐린기억 이었지만 술봉지 들고 몸을 뉘이려 201호로 들어서니 희준이, 재훈이, 석우, 광식이...등이 술 갈증에 시달렸던듯 사막에서 물장수 만난 표정으로 '웰컴'해 주었다. 무거운 눈꺼플이 스르르 감겨 왔으나 라면을 구해오지 못한 미안함에 눈 치켜 뜨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려 했지만 역부족 이었다. 웃는얼굴이 맑은 종필이가 서양술과 보리술을 건넷을때 나는 얼른 마시고 종필이에게 다시 건네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설뿐, 결국 로그아웃 되고 말았다.
...두런 두런대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떤 사연들과 무슨 아쉬움들이 그리도 많은지, 성인이, 석우, 재훈이, 명성이, 호영이는 날 밤을 센것 같았다. 발그레이 상기된 얼굴들은 피곤해 보였어도 표정들은 매우 밝아 보였다. 밤을 길게 세우며 뭔가를 크게 이루어 놓은듯, 흡족하고 경쾌한 미소들이 실내를 파고돌며 모두에게 전염되는것 같았다.
짖눌린 머리와 텁텁한 속쓰림을 호영이의 보약으로 다스리며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고요 속에 타운하우스 형태의 빌라, 귀족풍의 키 큰 소나무, 지천명 삶의 무게 만큼이나 버거울 정원석, 밤새 밖에서 주인 만을 기다렸을 자동차, 서서 잠든 가로등, 차분히 가라앉은 아침공기...등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은 한결같이 백색 유니폼을 두른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언수행중 이었다.
사각 사각 촉감 좋은 눈 밟는 소리와 잔 바람의 흔들림에 맞춰 오르는 엣세연기로 멈춰선 기억상자들을 서서히 로그인 시킨다. 40여년 전 광화문 국제극장에서 맘 조이며 보았던 '러브스토리'의 올리버와 제니퍼가 눈싸움을 하였을 눈 덮인 골프장은 기억상자 아래쪽에 고여있던 젊은날의 아련한 추억을 끄집어내 줄담배를 당긴다. 추억은 나에게 '미안하다' 말할 테지만 나는 추억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것이다. 그것이 '러브'니까...
인생의 먼시간을 지나온 이 나이, 결코 쉽지 않을 '리마인딩 수학여행'의 여독으로 삐친머리에, 눈 비비고 , 입 벌리고 나오는 모두의 얼굴은 시골마을 뒷동산의 오래된 느티나무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룻밤의 인연으로 만리장성을 쌓듯이,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는 잊지 못할 인연이 단단한 동아줄이 되어 앞으로의 인생길을 함께 걷는 뭉클한 동지애로 꽁꽁 묶어 버렸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면 지금의 기억들을 떠올리고저, 삶의 모든 고단함을 내려 놓은채 세월에 머물며 지녔던 표정중 가장 선하고 마일드한 중늙은이의 모습을 인증샷에 남기고 8시 10분 평생 못 잊을 우리들의 밤을 간직한 '파인리즈리조트'의 하얀 품을 벗어났다. 작별의 아쉬움인지 밤 사이 멈춰 섰던 눈발이 눈길 위 선명했던 앞 선 바퀴자국에 다시 하얗게 점으로 내려 앉았다.
'파인리즈리조트'에서 30분을 달려 순두부로 유명한 70년 전통의 '김영애 할머니'집에 도착 했을때 10원 짜리 동전 크기의 눈발은 뻥튀기 기계를 통과 하는듯 초코파이 만하게 부풀어 올라 눈폭탄으로 퍼부었다. 먼길을 온 친구들의 허기진 속을 채워 주려는 현우는 머리에 쌓이는 무거운 눈다발을 아랑곳 없이 분주히 움직이며 우리들에게 혀가 호강하는 맛진 정(情)을 안겨주었다.
그 정(情)에 보답하듯 현우의 마음 만큼이나 부드럽고 담백한 하얀 순두부를 모두들 땀 뻘뻘 흘려 가면서, 서로에게 덜어 주면서 어찌 그리 먹음직스럽게 잘 들 먹던지, 아침에 호영이가 건네준 보약과 인증샷에 남겨진 25개의 느티나무 향기에 더해진 그 정(情)넘쳐 흐르는 모습에 나는 이미 너무 배가 불러 먼저 일어났다. 넉넉해진 배부름과는 관계없이 거침없이 굵어지는 눈발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눈 덮인 길 위로 그나마 존재을 잃지 않던 차량들의 2갈래 발자국도 그 새 지워져 버려, 차량들의 걸음은 주례에게 다가가는 젖은 눈의 새 신부 걸음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오랜시간 속초에서 역사를 만들며 바람과 하늘과 날씨의 움직임에 잘 길들여진 현우는 우선적으로 친구들의 '안전한 귀가'를 염려 했음인지 아쉬운 마음으로 남겨진 일정을 내려놓았다.
하늘을 몰랐던 지난 날은 넘치도록 채움만이 목적이었으나, 하늘을 조금 알 것 같은 지금은 약간의 모자람에서 돌아설때, 과거보다 한 걸음 앞서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되고, 아쉬움과 미련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빈 자리도 지닐수 있기에 하늘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가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는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얘기하면 우리도 언젠간 하늘향기를 지닐수 있기에...
퍼붓는 눈속에서 현우, 명성이, 태연이...와의 평이한 헤어짐이 웃으며 돌아서는 발길에 작은 습기가 번질것 같았다. 올 때보다 넓어진 버글대던 차 안에는 바퀴 구르는 소리와 눈 떨어지는 소리만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정적을 가르며 빠르게 번져갔다. 모두들 눈감고 있었지만 피곤 때문만은 아닌듯 했다. 쿨하게 작별 했지만 가끔씩 쿨하지 않은 신음소리가 눈 떨어지는 소리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햇살의 날카로움으로 눈을 떳을땐 쨍쨍한 도로를 미끄러지면서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미시령 넘어 올 때의 쟂빛하늘은 더 없이 푸르러 있었고, 우리들 일정의 반납이 목적이었을 쏟아 붓던 눈다발은 자신의 임무를 다한듯 이미 거짓뿌렁 처럼 자취를 감췄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쳤으나 그것은 더 이상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싱싱한 저 하늘은 속초를 벗어날 때의 눈바람과 어두운 하늘의 결과일 것이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누르고 그 길을 지나왔기에 푸른하늘을 보면서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수 있는 것이다. 낮 12시 서울에 도착하자 못 다한 일정으로 허전했던 걸음들은 자연스레 잠실의 '금강산 감자탕'집의 뒤풀이로 이어졌다. 속을 채우기 보단 헤어지는 아쉬움을 만져주기 위해 서로의 마음에 점을 찍기로 한 것이다.
어제보다 보다 훨씬 좁혀지고 촘촘해진 서로의 간격에 흐믓해 지면서 나를 한껏 달구고 감동시켰던 1박2일 여행의 끝길에서 기억과 생각이 악수를 한다. 식탁 위의 뜨거운 물잔을 만지며 어제와 오늘 함께 했던 모든 친구들이 '잔 속의 뜨거운 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을 녹이는 뜨거운 물은 사랑이고 배려이고 베풂이고 나눔이고 어울림이고 동행이고 감사이고 기쁨이다.
가기 싫은 겨울은 언제 다시 눈을 내리고 맹추위로 나를 얼게 할지 모르지만 '식을수 없는 뜨거운 물'이 있기에 나는 언제나 봄을 품은채 살 수 있는 것이다. 목마른 세상에서 시원한 술 한잔 할 수 있는 '식을수 없는 뜨거운 물'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밤을 세우며 감사해 하고 있는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온기를 더해 가는 '뜨거운 물'이 있기에 나도 점점 뜨거워 지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야 우리는 그곳에 가로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제 다시 만난 친구들은 그 가로등같은 존재이다. 오십을 넘으면서 내 자신의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항상 움츠려져 있었다. 웃으며 돌아서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움츠려졌던 가슴이 조금씩 펴지는 것 같았다.
나의 54번째 겨울의 끝자락에서 건져 올린 '펴진 가슴'이 작은 희망의 꽃씨를 묻는다. 그리고 기원한다. 우리가 헤어져 있던 만큼 세월이 지나 우리는 다시 속초의 경동횟집과 영애할머니 순두부집, 파인리즈리조트를 몰려 다니며 2012년 2월, 팔팔했던 50대 우리들 가슴을 두드렸던 속초에서의 시간들을 리바이벌 하는 열매를 멪을수 있기를... 그때까지 친구들이여 제발, 무슨일이 있어도 꼭 숨 쉬고 있어야한다!!! 그것을 위하여 이 시간, 졸린 눈에 성냥개피 꽃으며, 줄담배에 의지한채 그대들에게 내 간절한 소망의 타전을 때리는 것이다...
첫댓글 동기들과의 우정 늘 함께하는 모습 부럽네요,좋은 추억 만들고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