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주년을 맞는 12.12 군사 반란 사건의 재조명:(1)
얽힌 榮辱의 세월속에 사라진
하 나 회
글:묵은지
과거 대한민국 육군에는 명예롭지 못한 사실로 한동안 내홍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오로지 국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해야
할 한 나라의 군대가 비록 한때였지만 불과 몇명의 야욕에 찬 군인들에
의해 그들의 私兵으로 전락해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던 어처구니
없는 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군대가 정치 군인에 의해 좌지우지 됐었다
는건 명예로움을 자부해야 하는 군으로써는 치욕적인 역사의 사실이며
돌이킬수 없는 군의 크나큰 오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나라 전체를 마구 흔들어 놓았던 세도
정치 군인들의 모임의 주범은 바로 다름아닌 '하나회'입니다.
'하나회'는 육사11기인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육군의
불법 사조직입니다.
이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선배가 맡았던 군 요직을 다시 후배에게
대물림 해 주는 방식으로 군 요직을 두루 독점하며 군에서 노골적으로
위세를 과시하며 독보적 행세로 스스로를 자처해 왔습니다.
국토 방위에 전력을 쏟아야 할 군이 단지 '하나회'라는 사조직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우스운 꼴로 명예로워야할 군의 체면을 한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던 겁니다.
더군다나 이 하나회에 들지 못한 여타한 군인들은 보직이나 승진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군 내부에서도 반목과 갈등이 생겨 군의 단결력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회'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군의 법을 무시한 불법 집단입니다.
이런 '하나회'의 시초는 전두환이 1951년 육사 생도시절 자신이 육사
4년제 첫 입학 생도라는걸 의식하여 노태우,김복동,최성택,박병하와
'五星會'를 결성하며 그 시초가 되었습니다. ( 이들의 정신상태로 보아
다음에 5년제 육사가 않되길 천만다행 ) 이 후 1963년 '一心會'라는
모임으로 바꾸면서부터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과 몇몇의 영남출신 육사11기 동기들인 노태우,정호영,김복동,
손영길,권익현 등이 일심회 초창기 멤버들입니다.
그 후 일심회에 이어서 다시 '하나회'로 명명되었고 '하나회'의 회원은
육사11기 이후 매 기수별로 10여 명씩 영남 출신 위주의 성적 우수자
들을 포섭하여 가입시켰으며 (예외도 있긴합니다 예를들어 장세동의
출신지는 전남 고흥임) 이들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주요 보직과 인사의
특혜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특기 할 것은
'하나회' 출신 장교들은 대개 권력의 주변인 주요 보직을 선호하다보니
야전 경험이 거의없어 지휘관으로써의 전투 지휘능력이 부족할수 밖에
없는 무능한 집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하나회' 회원으로의 가입은
확실히 보장된 출세의 길과 같은 의미로 여겨왔습니다.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되고 정국이 혼란한 틈을
이용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하는 일에 앞장서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권을 차지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하나회'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겁니다.
특히 5.6공화국 시절의 '하나회'가 절정에 이를때는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이미 하나회 출신이 아니고서는 아예 군에서 주요 보직에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회'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시기는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당시
'쿠데타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보안사령관인 강창성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경사 사령관인 윤필용 소장이 중앙정보부 부장인
이후락과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대권운운 하다가 쿠데타사건에 휘말린
사건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하나회'의 실체가 밝혀지자 보안사령관이
박대통령에게 하나회 제거를 건의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건의를 했던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오히려 다른
곳으로 좌천되는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그많큼 당시 '하나회'의 위상은
박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하나회로부터 미움을 산 강창성은 나중에는 5공 정권이
들어서자 5공 정권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수차례 끌려가 곤욕을 치루다
결국 병들어 죽었고 장군으로써 장군묘지에 조차 묻히지도 못했습니다.
이토록 무지한 파워와 함께 정권까지 거머쥐게된 하나회 무리는 그들의
탄탄한 배경으로 6공까지 무난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됩니다.
그랬던 하나회였지만 5,6공화국을 거치는 중에도 권력의 맛에 빠져들며
파벌과 균열로 이따금씩 흔들리기도 하였습니다.
1공수여단장과 1사단장을 거친 전두환의 1.1땡 라인이란게 있었다면
9공수여단장과 9사단장을 거친 노태우의 9.9땡 라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라인을 지키고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서로의
견제와 갈등으로 외부로 쉽게 자주 노출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군 인사를 휘둘던 이들도 결국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하나회'는 그 대단원의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11일 만에 전격적으로 '하나회'를 해체시키고 군의
주요 보직에 있던 하나회의 정치군인들을 모조리 전역을 시키거나 보직
해임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수 십년 간을 군에서 기생 해왔던 '하나회'는 뿌리째 뽑히며 초라
하게 그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나라 상층부에는 이 하나회 출신들이 정치, 경제
등 전반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으며 심지어는 실세로 행세하며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자인 묵은지도 군 생활을 반란사건의 중심부대인
9사단에서 보냈는데 다행인지 그 이전에 제대를 하여 몹쓸 행태에 이끌
리지 않았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국방의 의무를 떳떳하고 명예
롭게 마쳤다는 자부심을 갖지는 못할 망정 이들의 사욕의 지휘계통에서
명령에 따라야 했던 그래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었을 후배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다시는 이런 권력의 야욕에 눈이 멀어 엉뚱한 망상을 해대는 정치군인이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군은 오로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신성한
국토방위의 대업만을 완수함으로 그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들이 받들어야 할 의무를 우습게 생각치도 말아야 하며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하는 명예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군의
본분이자 사명입니다.
12.12 군사 반란 주요 가담자들
1979년 12월 14일,
이른바 '12.12군사반란'을 성공시킨 반란군 주요 수뇌부들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김기택,김윤호,권정달,우국일,최예섭,조홍,송응섭,남종웅,김호영,심재국,
이상연,이차군은 하나회 출신이 아님에도 12.12 쿠데타시 관련자 이거나
보안사 소속 인물 자격으로 사진 촬영에 들었습니다.
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장택수'가 아니라 '장세동'입니다.(오타)
그리고 백운택은 육사 11기로 전두환, 노태우와 동기인데 사진 촬영 당시
이 자리에 없었지만 백운택 본인이 간절히 원해서 할수없이 합성으로 이
사진에 넣어 줬다고 합니다.
위 사진에 찍힌 12.12군사반란 가담자들의 인적 사항입니다.
괄호안은 거사에 가담하여 성공한 댓가로 누린 출세의 직책입니다.
보안사령관 소장 전두환(대장 예편, 대통령)
9사단장 소장 노태우(보안사령관, 대장 예편,내무부 장관,대통령)
보안사 비서실장 대령 허화평(청와대 정무 제1수석 비서관,국회의원)
보안사 인사처장 대령 허삼수(청와대 사정수석 비서관,국회의원)
수경사 33경비단장 대령 김진영(육군참모총장)
20사단장 소장 박준병(보안사령관,대장예편,국회의원)
1공수여단장 준장 박희도(특전사령관,육군참모총장,대장예편,토지개발공사 이사장)
3공수여단장 준장 최세창(수경사령관,합참의장,대장예편,국방부장관)
5공수여단장 준장 장기오(육군교육사령관,중장예편,총무처장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담당관 대령 고명승(수경사령관,보안사령관,제3야전군사령관,대장예편)
*33헌병대장 중령 최석립(육군헌병감,대통령 경호실장)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중령 신윤희(육군헌병감)
*보안사 대공처장 준장 남웅종(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보안사 감찰실장 대령 이상연(대구시장,안전기획부장)
*보안사 7처장 대령 이차군(5공병여단장,3군사 군수처장)
*9사단 29연대장 대령 이필섭(9사단장,합참의장,대장예편,국방부장관)
*보안사 정보처장 대령 권정달(국회의원,민정당 사무총장,한국자유총연맹 총재,학교법인 장춘학원 이사)
*보안사 보안처장 대령 정도영(사회정화위 위원장,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성업공사 사장)
*30사단 90연대장 대령 송응섭(51사단장,7군단장,합참 제1차장)
*수도군단장 중장 차규헌(참모차장,대장예편,교통부장관)
*국방부 군수차관보 중장 유학성(3군사령관,대장예편,안전기획부장)
*1군단장 중장 황영시(참모총장,대장예편,감사원장)
*육군보병학교장 소장 김윤호(합동참모의장,대장예편,석탄공사 사장,가스공사 사장)
*50사단장 소장 정호영(참모총장,대장예편)
* 특전사 작전참모 대령 장세동(3공수여단장,중장예편,대통령 경호실장,안전기획부장)
*수경사 참모장 준장 김기택(25사단장,국방대학원장,소장예편,(주)제일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
*71방위사단장 준장 백운택(9사단장,정보사령관,1군단장,중장재직시 사망)
*보안사 기획처장 준장 최예섭(준장예편,올림픽 조직위 국내담당차장)
*보안사 참모장 준장 우국일(준장예편,보험공사 부사장)
*30경비단 중령 김택수(17사단장,3사관학교장,소장예편)
*30사단 2기갑여단장 준장 이상규(중장예편)
*육군대령 심재국(조사불능)
*수경사 헌병단장 대령 조 홍(조사불능)
*제2기갑여단 16전차대대장 중령 김호영(조사불능)
*'조사불능'은 불가피한 사항으로 필자의 끈질긴 노력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