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옷
가례(嘉禮) 때 착용하던 조선시대의 여자 예복.
명나라의 장배자가 우리식으로 변모한 옷으로 일명 백화포(白花袍)라고도 한다. 활옷은 붉은색의 겉길에 청색의 안을 넣어 만드는데 이는 남녀와 우주의 음양을 상징한다. 또, 겉길에는 연화·모란·봉황·원앙·나비와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의 문양 등을 수놓아서 대단히 화려하고 좋은 의미를 가진다.
문양수 이외에 이성지합(二姓之合)·만복지원(萬福之源)·수여산(壽如山)·부여해(富如海) 등의 문자를 수놓아 인간의 소망을 표현한다. 이렇게 활옷에 수놓아진 문양이나 문자는 고대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갈망하는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활옷에 자수된 문양 중에서 연꽃은 불가(佛家)에서 귀하게 여기는 꽃으로 건강·장수·불사(不死)·행운·군자를 상징한다. 봉황은 실존하지 않은 새로 서응조(瑞應鳥)라 하여 행운과 권위를 상징하며, 원앙은 다정한 부부의 뜻을 가진다. 나비는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소생(蘇生)의 뜻으로, 십장생은 고귀하고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 활옷은 인생을 새출발하는 신부가 입는 의복으로 사용되고 있다. 활옷의 구성은 뒷길이 길고 앞길이 짧으며(거의 무릎선 내외) 합임(合袵 : 옷깃을 마주 여밈.)으로 깃이 없고 넓은 동정이 달린다. 겉길과 안길 사이에는 두껍게 심을 대는데 과거에는 여러 겹의 종이를 넣었고 근대에는 광목 등으로 심을 둔다.
소매 밑선은 꿰매나 양 옆길은 트인 상태로 둔다. 활옷을 입을 때는 빨강치마에 노랑저고리를 먼저 입고 활옷 위에는 대대(大帶)를 띤다. 머리는 쪽을 찐 뒤 용잠을 꽂고 화관(花冠)을 쓰며, 용잠의 양 끝에는 앞댕기를, 화관 밑의 뒤편에는 큰댕기를 드린다. 착장한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의복이다.
BTS RM이 불지핀 ‘전통문화 사랑’… ‘활옷 만개전’ 큰 인기 [미술전시]
사연 많은 조선시대 웨딩드레스…고궁박물관서 무료 전시
기자명 김연제 서울프레스 기자
기사 입력 2023.09.23 11:30
고궁박물관에서 “매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활옷 만개(滿開)-조선왕실 여성 혼례복’ 특별전이다. 기간은 9월 15일~12월 13일, 입장료는 무료. 9월 29일 추석당일은 휴무다.
지난 18일 낮 전시장을 찾았다. 평소 한적하던 이 곳이 북적였다. 의외로 한국인보다 한복을 빌려 입은 외국인들이 더 많았다. 창덕궁, 경복궁을 거쳐 고궁박물관으로 넘어오는 코스가 생긴 모양이다.
활옷의 아름다움과 IT강국답게 전시장 곳곳을 수놓은 영상기법에 벽안의 관람객들은 탄성을 참지 않았다. 전시장에 틀어놓는 음악도 특별했다. 흔한 백색소음용 전통음악이 아니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정세원 작곡가가 활옷에서 영감을 얻어 <활옷 만개(Blooming Hwarot)>라는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귀로, 눈으로 활옷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가 있었다.
전시품목은 ‘활옷’으로 불린 조선시대 여성 혼례복 9점과 혼례 관련 유물 총 110여 점이다.
◇ 왕실을 넘어 민간에 확산된 혼례복 ‘활옷’
우리가 TV드라마에서 봐온 조선 왕실의 혼례복은 공식명칭이 ‘적의(翟衣)’다. 고려 말 명나라의 관복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조선시대 내내 왕실 최고의 여성 예복이었다. 적의는 왕실의 적통을 잇는 왕비·왕세자빈이 입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적의는 권위와 높은 품격에 초점을 맞춘다.
공주, 옹주, 군부인(왕세자가 아닌 왕자·종친의 부인)이 입는 혼례복은 붉고 긴 겉옷이란 뜻의 ‘홍장삼(紅長衫)’이었다. 형태부터 적의와는 한참 달랐다.
홍장삼이 조선 후기 들어 민간 혼례복으로 확산되면서 활옷이란 새 이름이 붙었다. ‘활’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자는 소매가 넓은 탓에 ‘넓을’ 활(闊)자가 붙었을 것이란 평민적 분석에 공감이 간다.
왕실의 혼례복이 민간에까지 퍼진 것은 혼례에 한하여 자기 신분보다 업그레이드된 신분의 복식을 입을 수 있었던 ‘섭성(攝盛)’ 풍속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활옷은 한국의 전통 복식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장식적이다. 원래 조선은 검박함을 숭상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화려한 자수 복식을 금지했다. 하지만 혼례복만큼은 예외를 허용했다고 한다.
활옷에는 온갖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문자 무늬로는 복을 기원하는 ‘福’(복)과 무병장수하라는 ‘壽’(수)가 빠지지 않는다. 포도나 동자 무늬는 다산을 기원하며 넣었다.
동물 문양도 다양했다. 봉황은 부부의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비는 남녀의 사랑을, 모란 꽃은 부귀영화와 풍요를 상징한다. 소매 끝을 장식하는 색동 무늬는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았다. 상서로운 글자를 새기기도 한다. 길상(吉祥)과 무병장수의 의미를 더했다.
전시장 바닥에도 조선시대 가장 인기를 끌었던 길상문이 LED조명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二姓之合 萬祿之源(이성지합 만록지원)’. 두 성씨가 합하여 만복의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활옷에는 수여해(壽如海), 복여산(福如山) 같은 다양한 길상문자들이 장식되어 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요절한 복온 공주의 활옷…유일하게 착용자 밝혀져
활옷 만개전에서는 3점의 활옷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세월만큼 깊은 사연이 있는 옷들이다.
[복온공주(1818-1823) 홍장삼으로
5대에 걸쳐 혼례복으로 사용되었고
20세기 초 수선되었다고 한다.]
‘복온 공주 활옷’(1830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은 가장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현존하는 활옷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실제 그 옷을 입었던 착용자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복온 공주(福溫公主)는 1818년 11월 24일 순조와 순원왕후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7살 때 공주에 책봉되어, 13살 때인 1830년 5월 20일 안동 김씨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혼인 2년만인 1832년 6월 10일 15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RM 기부로 복원된 미국 미술관 소장 활옷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이 소장하고 있는 활옷은 제작연도 불명으로, 1939년 미술품 수집가 벨라 마버리가 기증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기부한 1억원으로, LACMA 소장 활옷을 가져와 보존처리 작업을 해왔다.
재단측은 이 옷을 LACMA로 되돌려 보내기에 앞서 원래 색깔을 되찾은 모습을 국내에 선보인 것이다.
BTS 리더 RM의 후원으로 보존처리를 완료해
원래 빛깔을 되찾은 활옷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이 소장]
RM은 기부배경에 대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아름답고 우수한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한다.
◇의문의 화재로 소실된 활옷…고 석주선 박사가 복제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선명한 색깔로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활옷은 뜻밖에도 복제품이다. 또한 그 앞에는 불에 타다 남은 천 조각도 전시돼 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1960년 6월 6일 새벽, 창덕궁에 있던 구 황실재산관리총국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삽시간에 목조 2층 청사가 전소됐다. 무엇보다 청사내 보관돼 있던 이왕직(일제강점기 황실재산관리기관)의 황실재산 목록이 적힌 문서들이 모조리 불타 사라졌다.
6월 7일자 동아일보는 ‘농후한 방화 혐의’라는 제목으로 화재사건을 보도했다. 그 당시에 관리 총국 직원들의 황실 재산 부정 유출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화재로 청사에 소장된 조선시대 활옷들까지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잔해더미 속에서 발견된 것은 활옷의 앞길 한 조각뿐이었다.
다행히, 당대 최고의 복식연구가 석주선박사(작고)가 화재가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제자들과 함께 창덕궁에 소장된 활옷의 복제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석 박사는 화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형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활옷 복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故석주선박사가 복제해 되살린 활옷.
[앞에는(원 안)
1960년 황실재산관리총국 화재사건으로
타다남은 활옷 앞길 한 조각이 보인다.]
석박사는 복제품 뒷길 안쪽에 ‘1955 石宙善古典衣裳硏究所藏(석주선고전의상연구소장)’이라고 수놓음으로써 오리지널이 아닌 카피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