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기도 클리닉
언젠가 기도 클리닉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에도 정화 작업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도 아닌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의 주체요 전부이신 주님을 압박하며 밀어붙입니다. 삼라만상을 주관하시고 보살피시는 크신 주님을 너무나 왜소하고 인색한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치는 기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도는 뭔가 간절히 필요할 때 주님께 매달리고 애원하며 결국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좋으신 아버지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가 오로지 나와 우리 가족의 승승장구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심각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에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연륜이 더해갈수록 자신이 바치는 기도의 질, 수준에 대해서 자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청하는 바에 대한 응답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과 주고받는 일상적인 청원은 물론 감사, 찬미, 탄원, 호소, 사랑 고백...등 그 모든 대화가 더욱 중요하며, 그 자체가 기도임을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자상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요란스런 기도, 장황한 기도가 아니라 단순하고 겸손한 기도, 마음이 담긴 기도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기도하는 이의 청을 들어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 하느님께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
뿐만 아닙니다. 기도를 바칠때는 우리의 인간적 생각으로 이렇게 재보고 저렇게 따져보며 바치지 말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녀다운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라 하십니다.
우리는 왜 기도를 바칩니까? 주님께 뭔가를 알려드리거나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주님께 청함으로써 우리가 좀 더 그분과 친밀해지고, 좀 더 그분께로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우리 내면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천사의 무리와 하나 되어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는 듯이 세상의 소란을 모두 잊으십시오. 참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천사들의 손에 들려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기도를 더 빨리 들어주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그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 ”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우리가 청하는 어떤 것을 들어주시기 위한 준비작업처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시며 주님의 기도만 바치면 그 원하는 바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며 특별히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미운 마음이 있는 상태로 기도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들어주시면 그것은 그 미워하는 마음을 긍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암 그들은 이렇게 치유되었다”(Radical Remission: Surviving Cancer Against All Odds)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저자 캘리 터너는 의학 저널에 실린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가 자연치유 된 1,500건 이상의 근본적 치유 사례를 분석하는 한편, 전 세계 수백 명의 암 및 난치병 완치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 포스터라는 여인은 유방암 4기, 살날이 12개월이었지만 365일 매일을 행복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살았더니 암이 완전히 완치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한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자. 답을 알아낼 시간이 365일이나 남아 있어.’ 그리고 나는 매일 행복하기, 자연스러워지기, 감사하기 세 가지를 실천하자고 마음에 새겼고 매일 그것들을 연습했어요.
그 중에서 365일 동안 ‘행복하기’는 365일 동안 ‘그 순간에 존재하기’로 바뀌었네요.
이것은 화가 나거나 울고 싶거나 이불 속에 숨어 세상을 향해 나를 내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그냥 그렇게 했다는 걸 의미해요.
나는 정말로 그 순간에 존재했어요.”
사람들은 마음과 물질이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과 영혼은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영혼이 불안한데 몸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청하는 것은 병의 치유나 어떠한 일이 해결되는 등의 물질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은총은 영적인 세계를 통과해야 물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영적인 막힘을 뚫어주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한 환자도 갑작스러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요법 등을 시도하였지만, 암이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용서의 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지혜롭고 자비로운 대학 교수님과 함께 용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용서해야 할 상대방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분노와 증오를 받아들이고 이를 떨쳐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슬픔과 아픔을 느꼈지만, 이를 극복하고, 용서의 힘으로 인해 건강한 마음과 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자 캘리 터너가 기적의 암 치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10가지 치유 요소’는 이러합니다.
① 식단의 근본적인 변화, ② 자신의 건강을 주도적으로 다스리기, ③ 자신의 직관을 따르기,
④ 허브와 보조제 사용, ⑤ 억눌린 감정 풀어주기, ⑥ 긍정적 감정 키우기, ⑦ 사회적 지지를 받아들이기, ⑧ 영적 연결을 강화하기, ⑨ 살아야 할 강력한 이유 찾기, 그리고 ⑩ 운동입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10가지 요소들 중에 신체와 관련된 것은 식이 요법, 보조제, 운동 세 가지뿐이고 나머지 일곱 가지는 정신적⋅감정적⋅영적인 요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가 몸‒마음‒영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전인적 존재이며, 따라서 병의 치료에 전인적인 접근 방식이 실제로 큰 효과를 발휘함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청을 더 빨리 들어주실까요? 당연합니다.
분명 영과 물질적 세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질적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먼저 더 깊은 영적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세포도 호전됩니다.
이러한 감정을 갖게 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만약 내가 사면장을 주면 그 사람이 아직도 증오심이 남아서 나가서 또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면 어떻게 그 사면장을 줄 수 있을까요? 먼저 감정의 평화가 우선입니다.
그 평화를 얻는 방법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큼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그러니 먼저 주님의 기도로 마음을 평화롭게 합시다.
아니 주님의 기도만 그 뜻을 마음으로 새기며 기도합시다.
그러면 청하지 않은 것도, 청했어야만 하는 것도 모두 알아서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6,7-15: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단순한 말의 나열이나 형식적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다. 바로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이는 단순히 호칭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한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부르게 하셨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귀에 상달되는 것을 확신하기 위함이다.”(De orat. Dom. 9)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기도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9절)라는 청원은 하느님을 더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의 거룩함이 드러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이름은 이미 거룩하시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그 이름이 모독당한다.”(In Matth. Hom. 19,6)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10절) 기도는 단순히 미래의 하늘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것이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된 하느님의 다스림을 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 삶과 역사 속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11절) 여기서 ‘일용할’(ἐπιούσιον)이라는 희귀한 단어는 교부들에게 깊은 묵상의 주제가 되었다. 성 예로니모는 이를 “미래의 빵, 곧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해석했고, 성 치프리아노는 “성체성사, 곧 구원의 양식”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청원은 단순히 물질적 양식만이 아니라,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사순절에 성체와 더 깊이 결합하는 것은 곧 주님의 기도를 사는 길이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12절) 여기서 주님은 우리의 용서와 하느님의 용서를 긴밀히 연결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가? 입술로 드리는 기도가 네 가슴을 때리고 있지 않은가?”(Serm. 58,9)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내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그분의 자비를 내 삶에 흘려보내는 행위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13절) 교부들은 여기서 유혹을 피할 힘과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를 함께 청한다고 보았다. 성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악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을 청하는 겸손의 표현”이라 해석했다. 마지막 청원은 앞선 모든 기도의 요약이다. 하느님을 우리의 보호자로 모시고, 악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암송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신앙의 길이다. 사순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기도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하느님을 참된 아버지로 모시는 삶, 성체 안에서 양식을 얻는 삶,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 악에서 벗어나 거룩함을 지향하는 삶이다. 주님의 기도를 입술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바치는 기도가 될 때, 우리는 부활의 빛을 맞이할 준비가 될 것입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멀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서로 통하고 그래서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과 행동이 모두 낯설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대방의 문제일까요? 상대방이 크게 변한 것일까요?
상대방이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변했을 경우입니다. 주변의 만나는 사람들이 넓어지면서 자기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를 좋은 징조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기의 변화는 전혀 보지 않고 그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탓을 하다 보면 그 거리감은 더 멀어지면서 소중한 만남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주님을 알게 되고 또 주님 안에 머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 이것저것을 청하게 됩니다. 특히 삶의 어려운 문제들, 또 고통과 시련의 문제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청도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으로 살다 보면 주님이 낯설게 됩니다. 나와 함께하는 분이 아닌, 다른 사람과만 함께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불평불만의 탓을 주님께 외치게 되지요. 주님과의 소중한 만남 자체가 사라집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빈말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다른 민족 사람들, 즉 이방인들은 신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거나, 긴 주문을 외우고,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신을 조정하거나 감동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관계 안에서 아버지의 뜻에 나를 맞추는 행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는 거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설득해서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뜻만이 이루어지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때의 기도는 그저 ‘빈말’에 불과합니다. 그런 빈말로는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우리는 정성껏 바쳐야 합니다. 특히 3가지 하느님을 향한 청원과 4가지 우리를 위한 청원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요? 쓸데없는 빈말의 반복이 아닌, 주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룰 수 있도록 주님의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행복한 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미키 기요시)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2.24.화."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신뢰의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관계이며,
관계는 신뢰이며,
신뢰는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무는
우리의 삶입니다.
기도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다스림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중심성이
무너질 때
기도는 욕망이 되고,
하느님 중심성이
회복될 때
기도는 인격적
신뢰가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신뢰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뜻과
자비 안에서
살아가려는
전적인 의탁이며
참된 고백입니다.
우리는 자주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놓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을 주십니다.
오늘 이 은총을
믿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향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뢰의 고백이면서,
세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도의 삶을
믿습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9)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마태6,7-15)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9ㄱ)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입니다. 그밖에 나머지 기도들은 교회가 만들어 놓은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먼저 하느님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를 바치라고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기도 안에 드러나 있는 일곱 개의 청원 중에서 앞에 세 개는 하느님 아버지와 관련된 청원이고, 나머지 네 개는 우리를 위한 청원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수님 말씀처럼 행동이 없는 빈말만 늘어놓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기도 저런기도 등등 많은 기도문을 소리를 내어 바치는 것으로 나는 기도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삶으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기도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주님의 기도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6,14-15)
참되게 기도를 바칩시다!
복음말씀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5,10-11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