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가면 무엇이 제일 유명할까요? 서울에서도 종로는 다른 동네와는 달리 좀 특별합니다. 조선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어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암튼 종로1가에서 창경궁까지 여러번 걸어 보았는데 흥미로운 구경꺼리가 많습니다 그 곳 종로구 관철동 종로 54번지에 보신각이 있습니다.
한양은 도성을 중심으로 8대문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광화문 숭례문 소의문 흥인지문 돈의문 혜화문 숙정문 창의문 입니다 보신각은 그 중심 네거리에 위치하고 있지요 1398년 (태조7년 ) 경기도 광주에서 주조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설치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후 1413년 (태종 13년 )에 종로 한가운데 있던 통운교에 이 층의 종루를 새로 지어 옮깁니다 1458년 ( 세조 7년 )에 대종을 새로 만들어 설치해서 나라의 각종 행사에 종을 울렸습니다 이 종이 파괴된 것은 임진왜란때 왜군이 도성을 점령해서 처참하게 유린했을 때였습니다 광해 11년에 1층 규모의 작은 종루를 짓고 페쇄된 원각사의 종을 옮겨 그대로 이어져온 것을 중건한 것은 고종 32년 1895년의 일입니다.
이 때 현판을 고종이 직접 써서 걸었으니 그 이름이 보신각이고 이후부터 우리는 그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또한 1950년 발발한 6.25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휴전후에 중건했습니다 참 굴곡의 한반도의 역사를 보는듯 합니다
지금의 종각이 세워진 것은 1980년인데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과정에서 옛 종루의 초석이 발견된 것을 토대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누각을 새로 지은 것입니다. 그 때 발견된 주춧돌은 서울 역사박물관에 옮겨졌습니다 오래된 종은 소리가 흩어지고 맑지못하여 1985년 새로 주조하여 교체하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종로구의 종모양 로고도 새로 만든 대종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연말의 마지막날 타종뿐만 아니라 국경일 삼일절에도 보신각의 종을 타종하는데 그 횟수는 33회 입니다.왜 33번을 타종하는 것일까요?
조선에 통금이 생긴 것은 1396년 (태조 5년 )인데 밤 10시에 한양의 8대문을 모두 닫고 28번의 타종을 했으니 인정이라 합니다.
조선은 철저한 성리학의 나라지만 또한 음양오행의 천체의 운행을 중시했습니다 하늘을 동서남북의 사궁으로 가르고 각 궁을 다시 7등분하니 28개의 별자리 수가 나타납니다 그 별자리 수 대로 타종한 것이지요 우주의 일월성신께 28번의 인정을 고하여 성 안의 임금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이 평안한 밤을 보낼수 있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제 새벽이 밝아와 오경삼점이 되면 , 지금으로 말하면 새벽 4시에 도성 팔대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33번의 타종을 하니 파루라고 합니다
이것은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받들고 불교를 박해한 나라였으나 나라의 큰일이나 백성들의 생활 전반 깊숙이 불교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중 관세음보살에 향한 믿음은 왕실에서 민초들까지 대단했습니다 그 관세음보살은 오직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33천으로 분신하여 언제나 백성 곁에 있으니 그 뜻을 기려 33번의 타종을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뜻을 받든 제석천이 이끄는 33천 하늘에 종을 울려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비니 파루입니다. 이 뜻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받들어져 타종을 33번 합니다 옛날의 종소리는 고요한 나라 조선의 도성 밖 까지 울려 백성들은 시간을 짐작하고 오늘도 부처님의 가피 아래 평안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종소리는 어디까지 울릴까요? 에밀레종 소리는 신라 전체에 울렸다지만 우리는 티비를 통해 듣습니다. 어느 시인은 독립이 되면 머리로 종을 쳐서 박살이 나도 좋으리라고 피를 토한 절절함을 드러내었습니다.
만약 진정한 한반도의 통일이 온다면 온 몸으로 종을 감싸안고 33천에 울리는 타종 소리에 마음을 싣고 창천을 날라 올라가도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진정 오기를 기도하고 또 기원하며 잠시 보신각의 종소리의 뜻을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