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51]대중가요에도 그에 걸맞는 사연들이?
지난 일요일, 인근 면에 사는 ‘복숭아 킬러’ 빙(氷)형에게 선별작업중 가려진 복숭아 B품을 가져가시라고 전화를 했다. 흔쾌한 대답과 함께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불감청고소원. 그는 고교동창이지만, 55년생으로 형뻘. ‘갈뫼’(가을산)라는 호를 지어주니 너무 고마워해 민망할 정도였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빙형은 전공이 토목․건설쪽인데, 술을 단 한잔도 마시지 못한 ‘희한한 체질’의 소유자(어느 때는 부럽기까지 하다). 퇴직 후 탯자리 운암면 선거리(신선이 산다는 仙居) 시목(감나무골이라는 柿木)마을에서 보약 ‘경옥고’를 제조하며 나처럼 대부분 홀로 산다(100% hand-made. 500g 5만원. 거저다). 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 약초반을 다니며 제조법을 배웠다고 한다. 경옥고는 <지황+소나무 밑둥에서 기생하는 봉령+꿀+인삼 원래 4가지에 빙형이 구기자 추가>로 만드는 보약중 보약으로, 조선왕조실록에 500번도 넘게 나오는 기록을 보면, 임금(특히 장수한 영조가 장복)과 삼정승이나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있단 말인가. 참 좋은 세상이 됐지만, 무슨무슨 카르텔이 횡행해 ‘개천에도 용이 난다’는 속담은 이제 물건너 간 듯도 하다.
아무튼 “우천,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 노래가 세상에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가” 묻는데, 내가 어찌 알겠는가? 하기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연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 그는 노래교실도 다니고 장구도 배우는 등 열정이 대단해 옥정호 가요제에도 나간 바 있다. “동아일보에서 시행하는 ‘수남장학금’과 관련이 있다네” 그 신문에서 20년 동안 청춘을 불사른 나로서도 완전히 ‘듣보잡’이었다. 부리나케 검색해 보니 너무나 감동적인 사연이 숨어 있었다. 1950년 당시 D일보 총무국장인 남편(이름 水南)이 납북을 당했다 한다. 아내 이주현 여사는 홀로 노점상과 좌판을 전전하여 어렵게 3남매를 키운 후, 72세에 ‘38년 청상의 한’을 원고지 1000장에 담은 수기를 신문사에 연재해 자서전을 펴냈다고 한다. 그 사연이 경향신문 1981년 4월 28일자에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잔잔한 휴먼스토리가 게재된 것. 할머니가 얼마의 돈을 D일보에 기탁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남장학금’이 만들어져 몇 년 동안인지 확인은 안되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해마다 주었다는 것. 그 기사를 본 가수 조용필이 저자의 허락을 받아 노래로 만든 것이 바로 <일편단심 민들레야>였다. 작사 이주현. 작곡 조용필.
“어, 그 노래는 내 십팔 번인데,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재밌네” “우천 십팔 번이었어? 인우(최규록) 친구도 십팔 번이던데” “맞아. 부르기가 조금 쉽거든.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르니까 화를 내더군” “근데 노랫말이 솔찬히 야해, 직설적이여” “어떤 점이?” “생각해봐.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그 여름밤 어인 ‘광풍’/낙엽 따라 가시었나/행복했던 장미인생/비바람에 꺾이니/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잖아” “싱겁긴. 뒷얘기를 듣고도 그렇게 풀이하면 안되지. 노랫말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남편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과 자식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깃들어 있잖아” “그렀네. 우리 언제 노래방에 가서 그 노래나 불러보세” “좋아. 임실에도 노래방 있을 걸”
우리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으나, 퍼득 떠오르는 조용필의 또다른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떠올랐다. 소설가를 꿈꾸던 양인자(1945-) 님은 신문 신춘문예에 계속 낙선하면서도 ‘당선소감’을 미리 노트에 써놓은 당찬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그 소감이 1936년생 천재적인 대중가요 작곡가 김희갑 선생의 눈에 띄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로 환골탈태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별로 없을 듯하다. 가수조차 장황한 노랫말을 모두 외우지 못한 채 취입하면서 가사를 보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팩트인지는 모르지만. 하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김국환의 <타타타>, 양희은의 <하얀 목련> 이동원-박인수의 <향수>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300여곡의 작사와 작곡을 한 명콤비 음악인 부부. 지난 60여년 동안 금슬좋은 부부의 삶과 음악을 조명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을 지난해 말 방영했다던가. 조용필은 그 노래로 탄자니아정부로부터 킬리만자로 산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문화훈장을 받았다던가. 정작 작사가 양인자 님은 아프리카를 가본 적도 없는데,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에서 ‘킬산 정상’에서 얼어죽은 표범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던가. 당시 노랫말의 내레이션은 파격적인 시도였으나, 가왕(歌王) 조용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철학적인 가사가 신선하여 대중에게 전율(戰慄)과 충격을 주었다던가.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노랫말은 도도한 ‘천재 문학소녀’의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독보적인 전각예술가 진공재 거사는 산, 하이에나, 사랑, 고독, 바람, 이슬, 묻지 마라, 고흐 등의 키워드를 돌에 새기고, 외우기도 힘든 내레이션을 붓으로 써 멋진 족자를 만들어냈다던가.
어느 노래든 한 곡이 만들어지고,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는 뒤안에는 아름답든 슬프든 사연이 있게 마련. 북망산을 가보라. 사연 없는 무덤이 한 개라도 있던가. 가수 김성환의 <약장수>가 그렇고, 한때 운동권 노래처럼 불렸든 <부용산>, 안치환의 <지리산에 오시려거든>도 그렇다. 다음 편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