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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그동안 강녕들 하셨는지요??
곡성댁은 급성 외이도염을 앓고 있으나 어차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질병은 아니오라
카페에 뜸하였던 건 순전히 저의 게으름 때문이오니 소녀를 죽여주시옵소서~~^^(근다고 진짜 죽이는건 아니시겠지요? ㅋ)
저의 엄살에 속아서 걱정하여 주신 우리 광전방 식구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옵니다~~
며칠동안 귀가 아프다~안들린다~하여 딩굴딩굴 하느라 사실 별로 글로 전할 일도 없어서
그래도 안부는 전해야겠다 싶어서 막상 글은 쓰는데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입니다 ㅋㅋ
음~~ 오늘은 곡성댁이 사람 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1976년산이니께~~그러니까 방년 34세......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편모슬하에 1남1녀중 장녀로 살아왔습니다...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 둘을 키우며 산다는게 얼마나 힘들었을지....이제야 좀 알것도 같습니다^^
가끔 어려운 형편때문에 한달 두달씩 친척집에 맡겨지곤 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눈치가 보이고 괜히 서러웠던 기억도 납니다만
훈장처럼 따라붙는 "애비없는 자식"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리려 노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항상 웃고 명랑하며 인사성 밝은.....바른 사람..
남보다 공부도 더 잘하려고 노력했으며 가끔 우울해지는 기분을 떨치기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때면 좋았던 기억보다는 우울한 기억이 더욱 많지요..
항상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곤했는데 방학이 되면 그조차 어려우니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집 한구석에 박혀있던 백과사전을 방학내내 읽고 또 읽고...나중엔 아무 부분이든 책을 펼치면 그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책을 읽으면 머리속에 잡생각이 없어지고 이런저런 상상속에서 우울한 기분을 없앨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소공녀가 되어 어디선가 부자 아빠가 나타날것만 같고........
또 어떤 날은 퀴리부인이 되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하고~~^^
사춘기에 접어들고 ........
여전히 명랑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르는...알아서는 안되는....우울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위해 노력하는 내 자신을
가증스러워 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ㅎㅎ......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남보다 뛰어나다는 오만에 빠져 독선적이고 무엇이든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했던것 같습니다..
물론 그 시절엔 몰랐지만요 ㅋㅋㅋ
소위 특목고 진학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저에게 진학실패는 엄청난 자존심의 상처로 다가왔고
어려운 가정형편상 일반 인문계 진학이 염치없기도 했던지라
돈도 벌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이른바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었구요...
그 곳에서는 일도 힘들어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하여 집이 가까우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일부러 일면식도 없는 대전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 한 나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나중에 먼가 될 아이에서 공순이로...
머리에 무스바르고 화장을 하던 아이들은 불량학생으로만 알고 가까이 하지 않던 제가...
이제는 그들속에 섞여있는 그 밥에 그 나물 신세가 되었지요.....
그런데 생활 하다보니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곳의 아이들은 비록 표현이 거칠고 사나워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또한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지요...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모인 곳이다보니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안 불쌍한 사람들이 없더라구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더라구요..
그 곳의 아이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상처입은 고슴도치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거지요.....
그렇게 물설고 낯설은 외지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 온 사람들이 지금 제 인생에도 가장 소중하고 진실한 친구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고있던지간에요^^
암튼 거기서도 우연한 기회로 소위 말하는 "짱"먹고 살았었는데...이때에도 어지간히 대장노릇을 좋아하긴 했나봅니다 ㅋ
수업이라해봐야 달랑 네시간이고 그나마 대부분 다들 엎어져서 자기때문에 제대로 된 공부는 해본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저에게 깨달음을 준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리라던 굳은 다짐은 이미 물건너가버렸고
순전히 수능시험을 보는 사람에게는 이틀간의 휴가를 준다는 말에 수능시험에 응시한 저는 과거의 기억만으로
시험문제를 풀고 또 절반은 찍고...어찌됐던 생각지도 않았던 점수덕에 고향 광주에 있는 전문대에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사회복지과.....
순전히 내 의지가 아닌 점수에 맞춘 선택이었습니다..
별로 적성에 맞지도 않는 것 같았지만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있는 봉사활동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힘 없는 자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도태된 자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저에게 그것은 새로운 충격이었고
단순히 결과만을 평가하는 세상의 논리에 익숙한 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진로를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결정하고 막 졸업했을 즈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무렵 엄마는 동네에서 작은 통닭가게를 하셨는데 쓰러지시게 되자 이마저도 정리를 해야했습니다....
어차피 내 소유의 가게도 아니고 세들어서하는 가게인지라 처분한다고 해서 남는 것도 없었으니...
지금은 많이 좋아지셔서 말씀도 잘하시고 뒤뚱거리는 걸음이지만 걸을수있으니 참으로 감사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당장 치료비는 엄마의 형제들이 해결해 주셨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했지요....
장사를 하시면서 지인들에게 백마넌,이백마넌씩 빌린 돈들도 엄마가 쓰러지게 되자 독촉이 들어오고...
23살인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던 그 때....
당장 내일 출근을 하는데 차비가 없는 그 심정..
봉지쌀을 사들고 하루하루 쌀 떨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
수십년을 알아온 엄마의 친구까지도 단돈 백마넌때문에 막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하는 심정...
평생 풍족하게 살아온 기억은 없지만 이렇게 비참했던 때는 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나....막막함과 두려움때문에...하루에도 열두번씩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는 정말...죽는게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죽는다면 몸도 못 가누는 엄마가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은 시기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하여 취직을 했습니다...
약국이었죠...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의약분업 전이라서 조제도 하고 ㅋㅋㅋ
약국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점점 하는 일은 많아져서 재고관리에 주문까지...
의약분업이 시행되고부터는 전산업무에 수백가지로 늘어난 약품들의 이름과 성분과 위치까지...
약사님은 제가 없으면 약을 못 찾으셨거든요 ㅋㅋㅋ(환갑이 넘으셨습니다 ㅜ.ㅜ)
13시간 근무에 휴일이라곤 매주 일요일,여름휴가3일,추석과 구정 이틀씩...........
근무하는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않고 열심히 일했죠...
근무여건 따져서 이직을 할수있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당장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5년동안 미용실 한 번 다니지 못할정도로 여유없이 생활한 결과
빚도 다 갚고 조금이나마 저축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던 어둠의 터널을 어느덧 벗어나고 있더군요...
이때 얻은 자신감은 아마도 제 평생동안을 지탱해 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장여사(저는 엄마를 그러케 부릅니다~ㅋㅋ)도 건강을 많이 회복해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고
발음도 많이 똑똑해져서 조금 느리다 뿐이지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없어졌구요..
이제는 더는 바랄것이 없다 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단지 나와 우리 가족만......
여전히 세상은 나에게 비정하고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타협할 마음이 전혀 없었으며 단지 나와 내 가족만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웠습니다...
그렇게 살다가......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죠....
그저 선해보이는 인상에.....날 배려해주는 마음에 끌려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나 똑같은 일상에... 책임감에... 많이 지쳤던것도 같습니다...
결혼 초기.......무던히도 많이 싸웠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크고 작은 갈등들이 다 제 자격지심으로 인해 부풀려지고 터졌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은 말투나 행동들이 다 저를 무시하거나 저의 집안을 무시해서 그런것 같이 느껴져 분노했으며
여전히 나는 내 고집대로 내 생각대로 이 사람을 끌고가려고하는 독불장군이었던것이죠....
이 사람 성격도 만만치가 않아서 4개월만에 헤어지기로 했었답니다.....
처음엔 이혼녀라는 딱지가 제게 붙은것 자체만으로도 어이가 없고
이 모든 상황이 그의 탓인것만 같아 그를 저주하고 미워하며 방황도 했습니다.....
간간히 생일때면 축하한다는 문자가 온다거나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다거나하는 문자가 오기도 했지만
철저히 무시하곤 했었더랬죠.....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던 길에 문득 그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사람도 행복해졌으면......."하고요...
그 사람의 잘못만 생각하고 보려고 했던 제가 나의 잘못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정말 진리인것 같습니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후로 연락이 뜸했었던 남편의 전화를 처음으로 받게 되었고
무작정 어스름 새벽에 집까지 찾아온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원래도 쪼끄만 사람이었지만 그 뒷모습이 어찌나 초라해보이던지.......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를 깨달은 2년여의 시간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것이지요...
다시 만난 우리에게 장여사가 해 준 말씀은"서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살아라"였습니다....
가끔 영감탱이가 괘씸하게 생각되거나 미울때면 전 꼭 이 말을 생각합니다...
"그래~약은 넘 같았으면 나를 만나 데꼬 살겠어??
능력이 있어서 돈을 잘 벌어오거나 그렇다고 살림솜씨가 똑 부러지거나 그렇다고 예쁘거나...
하다못해 친정 배경이라도 든든하면 말도 안해~
뭐 볼게 있다고 한 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그래도 마누라랍시고 데꼬 살겠어??" 하고요^^
워낙 애교없고 살갑지 못한 사람이라 그렇지...어디든 저와 함께 하려고하고
자기 용돈인데도 불구하고 천원짜리 하나 쓰는데도 저와 상의하고
어쩌다 회식자리에 어울려서 늦는 날이면 제앞에서는 당당한척하지만 나중에 들은 말로는
마누라 무서워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초조해 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흐뭇하기도 했답니다 ㅋㅋ
그 사람을 꺾으려고 했을때는 부러지고 말았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을때는 휘어져 주더군요...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는 눈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는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대장이 싫습니다...참모가 더 좋습니다..
내 뜻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뜻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4년의 시간이 다시 지난 지금.....
생활이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까지 다시 찾아 이제는 세상을 둘러 볼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 첫 발이 바로 여기입니다^^
글을 쓸 게 없어서 주절주절 거린다고 말했지만 어쩌면은 지금 이 글은 제가 세상에 내미는 첫번째 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또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저에게 약점이나 치부가 되지 않으며 내 자신을 오픈할만큼 당당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친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일겁니다...
우리 식구들중에 언제든 마음에 어렵고 힘든 고민이 있을때....
여러분이 지금 제 글을 읽고있는것처럼 들어줄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아직 사람이 덜 된 것도 같습니다 ㅋㅋㅋ
첫댓글 광전 본부 곡성댁 님의 일기 입니다.정말 사람 사는 모습을 행복이 가득하게 그려 주셧기에..자게 판에도 올림니다.여러분 도 행복에 맘껏 취해보시길 바람니다
모두 모두 함께 손 잡고 나아가야지요.^^ 이른 나이에 세상을 향해 마음 열으신 것, 존경스럽고 축하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을 만들어 주시는 분 같아 넘 좋아요 ^^
곡성댁님의 따뜻한 맘과 삶이 물씬물씬 풍겨납니다..이런 분들이 모여서 언소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내가 뿌듯해진다는^^
하도 감동적인 내용이라 우리 식구들 다 읽혔습니다. 그리고 댓글도 달았는데 다시 한 번 달아 봅니다. "곡성댁을 청와대로 !!, 쥐박이는 언소주 광전방에서 순화교육 3년을!! "
곡성댁님 글이 넘 감동입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__)
아웅..정말 감동적입니다.. 아는지인에게 님의글솜씨를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칠뻔했던 이글을 읽어서 님에대한 남다른 애정이 더욱 갖어지게 되네요..책하나 내세요..^^ 글 너무 잘쓰신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하네요. 감동입니다. 진솔한 삶이 묻어나는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