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성북동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를 읽었단다.
이번으로 서울편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4권에서는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겸재정선미술과 허준박물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들 유명한 동네이고 장소여서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곳에 깃든 역사는 모르고 있었단다.
먼저 나온 성북동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유명한 시 때문에 알고 있는 동네이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성북동은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동네로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에 위치하여 성북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
(13)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타동네 사람들은 성북동이라고 하면 번듯한 외국 대사관저와 높직한 축대 위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부촌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이 전화를 걸 때 “여기는 성북동인데요”라는 대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이 집들은 1970년 12월 30일, 삼청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지바른 남쪽 산자락을 개발해 ‘꿩의 바다’라는 길을 중심으로 들어선 신흥 저택들이다. 성북동에는 이곳 외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온 묵은 동네들이 따로 있다.
==========================
원래는 사람들 거주를 금지하던 곳이었는데,
18세기 영조 때부터 살기 시작했고
성북둔이라는 둔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근현대로 오면서 이곳에 별장과 별서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이곳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하여 복사꽃 마을로 부르기도 했다는구나.
성북동과 관련된 인사들인 이태준, 김환기, 박태원, 한용운, 윤이상, 김광섭 등의 일화도 들려주었단다.
그리고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 김자야라는 분이
법정 스님께 기증하여 길상사로 다시 태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길상사도 이곳 성북동에 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백석 평전>을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단다.
왜냐하면 김자야라는 분이 바로 백석과 사랑에 빠졌던 진향이라는 기생이었거든..
본명은 김영한이었고…
자야라는 이름도 백석이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하는구나.
대원각의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의 자야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아니?
==========================
(121-122)
일선에서 물러난 김자야는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 그러다 1987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불현듯 대원각을 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법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법정은 주지를 맡아본 경험이 없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이후 자야가 10년을 두고 부탁하자 법정은 마침내 이 곳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이자 ‘맑고 향기롭게’ 운동의 근본 도량으로 삼기로 했고,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야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이 주어졌다.
당시 대원각의 재산은 시가 1천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기자간담회 때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야는 “1천억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멋지시구나.
1. 선정릉과 봉은사
서울 한양도성 밖에는 왕릉이 많이 있단다.
그중에 선정릉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선릉은 강남 근처에 있는 왕으로 2호선 지하철 역으로 유명하고,
정릉은 아빠가 알기로는 서울 북쪽 국민대학교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왜 함께 선정릉이라고 부르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릉은 성북구에 있는 정릉이 아니고,
선릉 옆에 함께 있는 정릉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선릉역 말고 선정릉역이라는 지하철도 있다고 하는구나.
ㅎㅎ 아빠가 시골 촌놈 티를 팍팍 냈구나.
선정릉은 그럼 누구의 릉이냐…
먼저 선릉은 성종과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릉이라고 하는구나.
보통 부부는 합장해서 하나의 릉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릉은 각각 떨어져서 조성했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두 개의 릉을 합쳐서 선릉이라고 부른대..
예전에 이곳에 정릉까지 포함해서 묘지가 일단 세 개가 있으니,
누군가 잘못 알고 삼릉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하는구나.
여긴 엄연히 릉은 선릉과 정릉, 두 개가 있어 삼릉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구나.
그럼 정릉은 누구의 릉이냐면, 바로 중종의 릉이란다.
왕릉들이 누구의 왕릉인지는 외워도 시간이 지나면 늘 헛갈리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도 그래서 문화재청장 시절에
왕릉을 부를 때 왕의 이름과 같이 부를 것을 제안했다고 하더구나.
성종대왕 선릉, 중종대왕 정릉, 세종대왕 영릉, 정조대왕 건릉 이렇게 말이야…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시 국회의원과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음, 왜 그랬을까. 이름 조금 길어지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국회의원과 전문가들 중에 유홍준 님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을 수도…
…
선정릉 다음으로는 봉은사를 소개를 해주었단다.
강남 한복판에 왠 절이 있나, 싶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곳은 그저 한양도성 밖의 마을이었던 것이란다.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 할 때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세웠던 절이라고 하는구나.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사라질 뻔 했는데
당시 주지 스님인 영암 스님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는구나.
2. 강서구와 망우리
다음은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소개해주었단다.
이 두 곳은 너희들과 함께 외가댁을 갈 때 늘 이정표만 보던 곳이란다.
아빠는 그 이정표들을 볼 때마다
왜 이곳에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을까, 생각하고
한번도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단다.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인데,
겸재 정선은 그곳에서 양천현 현령으로 일한 적이 있고,
허준은 그의 관향(管餉), 즉 시조의 고향이 그곳이었다는 인연이 있다고 하는구나.
책에서는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의 관람기와
겸재 정선과 허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대부분 새로운 사실들인데,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넘어갈게.
허준이 <동의보감>을 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하더구나.
첫째는 병을 고치기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방법을 중요시했고,
둘째는 처방은 요점만 간추려서 하고,
셋째는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대.
허준의 배려심을 느껴지는구나.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의 마지막은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이었단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오래 전에는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렀단다.
이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석, 조봉암, 안창호의 가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묻혀 계신단다.
예전에는 서울 곳곳에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1933년 도시 계획을 하면서 망우리 한 곳에 보였고,
그렇게 이장하면서 연고 없는 분들의 합동묘들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누나도 그런 합동묘에 계셔서 따로 묘지가 없다고 하는구나.
안타까운 일이구나.
유럽에는 그 나라의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공원을 관광 코스로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망우리 역사문화공원도 그런 곳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쓰시고,
희생하신 분들을 한번 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게 말이야.
이곳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는 어린이날을 지정하신 방정환 님도 잠들어 계신대.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지정했는데,
노동절과 겹쳐서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다가
1937년 일제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고,
해방 후 5월 5일로 어린이날로 다시 지정했다고 하는구나.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드신 분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구나.
몸이 허약하셔서 1931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셨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구나.
….
여기까지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았단다.
서울은 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행사가 있을 때만 주로 가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탐방으로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가끔씩 역사탐방 하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편 총 4권의 각 챕터에 나와 있는 장소들을
책과 함께 가면 더 좋을 것 같구나.
자,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책의 끝 문장: 우리는 홍어 대신 코다리(명태)회를 무친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계속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김하듯 답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책제목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페이지 : 368 page
책무게 : 634 g
펴낸날 : 2022년 10월 25일
책정가 : 22,000원
읽은날 : 2023.05.05~2023.05.07
글쓴날 : 2023.05.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