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온몸에 기가 빠져나간 듯 앉아 있는 이 여성,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울트라 마라톤 대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바클리 마라톤(일명 '자멸의 경주')을 여성으로는 처음 완주한 재스민 패리스(40)다. 그녀의 공식 기록은 59시간 58분 21초로 60시간 컷오프를 1분 19초 차이로 간신히 피했다고 영국 BBC가 23일(현지시간) 전했다. 패리스는 대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완주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수천명이 전날 미국 테네시주 프로즌 헤든 주립공원에서 열린 이번 대회 마지막날 중계를 소셜미디어로 지켜보며 패리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다리는 풀들에 긁힌 상처들로 가득했다.
러너스 월드에 따르면 첫 여성 완주자를 포함해 올해 완주자가 5명이나 쏟아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58시간44분 59초에 완주한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 이호르 베리스가 우승, 59시간 15분 38초의 존 켈리와 59시간 30분 32초의 재러드 캠벨(이상 미국), 59시간 38분 42초의 그레이그 해밀턴(뉴질랜드) 등이 패리스에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켈리는 7차례 시도 가운데 세 번째 완주, 캠벨은 네 번째 완주였다. 캠벨은 역대 어느 참가자 가운데 완주 기록이 가장 많았다.
한 해 대회에서 완주자가 다섯 명이나 나온 것은 역대 가장 많았던 3명의 완주자를 경신한 것이었다. 2012년에 처음 나왔고, 지난해 타이 기록이 작성됐다. 올해 7명이 마지막 다섯 번째 루프(loop)에 나선 것도 올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클리 마라톤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m)를 두 차례 오르내릴 표고 차를 달린다. 길도 루트도 제대로 없어 숨겨놓은 포스트를 찾아야 하며 암흑 천지를 개구리 울음 소리 들으며 달려야 한다.
1968년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암살해 99년형을 언도받은 제임스 얼 레이가 1977년 테네시주 브러시 마운틴 주립 교도소를 탈옥한 뒤 54시간 만에 경찰에 붙들렸던 일에 착안해 만들어진 대회다. 얼 레이가 달아난 거리는 19km에 불과했다. 낮에는 항공기 수색을 피해 숲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개리 '라자루스 레이크' 캔트렐이 친구 칼 헨에게 얼 레이가 웃기는 죄수라고 말했다. 그러다 "나라면 적어도 160km는 달아났겠다"고 조롱했다. 헨이 "그럼 뛰어보든가? 지도도 없이 길 없는 숲속을 달려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
늘 만우절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 개최된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매년 35명만 출전이 허용된다. 매년 대회 개최 장소를 바꾼다. 누구도 익숙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2018년 대회에서는 단 한 명도 완주하지 못했다. 1989년에 160km로 코스가 늘어난 이후 1995년 첫 완주에 성공한 마크 윌리엄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완주한 사람은 20명에 불과할 정도로 악명 높다.
대회 참가자들은 "왜 내가 바클리에서 뛰도록 허락받아야 하는지"를 1.6달러 참가 신청비와 함께 적어 제출해야 한다. 사양 편지를 받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달림이들은 또 완주하지 못한 이들에게 기부하기 위해 흰셔츠, 양말, 또는 자동차 번호판 같은 것들을 가져가야 한다.
참가자들은 9~14개(매년 숫자가 달라진다) 체크포인트에서 책을 찾아내야 한다. 등번호에 해당하는 책의 페이지에는 다음 달리는 루트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이를 암기하거나 메모한다. 2014년 다큐멘터리 '바클리 마라톤, 젊음을 좀먹는 레이스'를 보면 캔트렐은 노란색 게이트 옆에서 달림이들을 기다리며 서 있다.
경주는 한밤중부터 정오 사이에 시작되는데 보통 한 시간 전에 고둥을 불어 알린다. 그리고 캔트렐이 담뱃불을 붙이면 달림이들이 일제히 달려나간다. 대회 코스임을 알려주는 어떤 표식도 없다. 달림이들은 오직 머릿속에 집어넣은 기억에 의지해 달린다. 다섯 루프로 나눠 뛰는데 홀수 루프는 시계방향으로, 짝수 루프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됐다. 맨처음 네 번째 루프를 마친 이가 마지막 루프를 어느 방향으로 뛸지 결정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이를 따른다.
영국 더비셔주 해드필드 태생인 패리스는 2022년 이 대회에 처음 출전했는데 첫 세 루프만 돌았을 뿐이다. 한때 이 대회는 어울리지 않게 "펀 런(Fun Run)"이란 이름으로 열렸다. 하지만 당시에도 60마일(96km) 대회였다. 2006년에는 40시간으로 컷오프했는데 완주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패리스는 2001년 이후 여성으로는 처음 네 번째 루프를 완주한 기록을 남겼다.
여성으로 이전에 가장 좋은 대회 기록은 2001년 대회 수 존스턴이 작성했다. 무려 30명 넘는 경쟁자들이 첫 번째 책(2마일, 3.2km에 불과했다)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존스턴은 66마일(106km)를 완주했다. 바클리 대회는 유일한 완주자가 경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달리기도 한다.
자녀가 둘인 패리스는 2019년 1월 페니 웨이를 달리는 268마일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젖먹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12시간이나 코스 기록을 단축해 놀라움을 안겼다. 그녀는 더비셔주에서 스코틀랜드와의 경계까지 달리는 몬테인 스파인 레이스를 83시간 12분 23초에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