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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한상봉과 함께하는 수요묵상
●1독서: 2열왕 2,1.6-14 ● 복음: 마태 6,1-6.16-18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묵상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202항에서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면서, ‘일부 시급한 요구들에만 대응하는 복지계획들은 임시방편일 뿐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 말한다. 그래서 ‘시장과 금융 투기의 절대적 자율성을 거부하고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들에 맞서 싸움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 25,35-36) 라고 하셨는데, 이는 단순히 베푸는 사회복지만을 강조한 게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당장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이상 굶주려 죽는 사람이 없고, 물 부족으로 고통받지 않으며, 집 없는 사람들이 제 집에서 살고,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를 조성할 의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은 애써 외면해 온 게 사실이다. 노동자사목이 이주노동자사목으로, 이주노동자사목이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이주사목으로 대체되고, 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위해 헌신하기보다, 대형시설을 갖춘 장애인 수용시설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이런 노력들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복지활동에 주력하고, 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거나 기업이나 부자들에게 불편한 일은 피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만 하다. 눈살 찌푸릴 만한 일도 발생하곤 했다. 더 많은 예산 지원과 더 많은 부지, 더 큰 수용시설을 추구하는 것은 비록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더 많은 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논리와 닮았다. 교회는 자신의 가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빈곤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존재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이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교회를 희망한다.
-야곱의 우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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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평화방송 '교황 따라하기 10가지'를 강의하시는 차동엽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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