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의 효성과 성덕의 정성이 이어진 관음사
백제 최초로 만들어진 사찰 관음사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는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관음사가 있다. 관음사는 백제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사찰이며, 분서왕 4년(301)에 옥과 출신의 처녀 성덕이 세운 절이다. 절 이름은 성덕이 ‘금동관세음보살상’을 모셔와 절을 완성하고, 그 이름을 ‘관음사’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다. 관음사에는 백매 선사가 쓴 『관음사사적』(1729)이 전해지는데, 「심청전」의 근원설화로 알려진 원홍장이야기와 처녀 성덕의 관음사 창건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관음사는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진나라 황후가 된 효녀 원홍장 백제 때 대흥(지금의 충남 예산 지역)이라는 고을에 원량이라는 장님과 원홍장이라는 어린 딸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홍장은 아름다웠으며, 심성 또한 고와 어릴 적부터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효녀였다. 어느 날, 원량은 길에서 홍법사의 법당을 짓는 일을 맡은 성공(性空)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성공 스님은 부처님의 뜻이라며 원량에게 우리 절의 큰 시주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의 말에 몸 둘 바를 몰랐던 원량은 “저는 가난하여 먹고 살 양식도 없는데, 어떻게 시주하겠습니까? 다만 효성 지극한 딸이 있으니 그 아이라도 데려가서 보탬이 되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스님은 기뻐하면서 돌아갔고, 원량은 자신이 했던 말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원량은 딸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다.약속은 약속인지라 홍장은 스님을 따라 홍법사로 향했다. 며칠째 걷기를 반복하다가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소랑포 부두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멀리서 두 척의 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홍장이 있는 나루터에 멈추었다. 그리고 배 위에 있던 사자가 다가와 홍장의 얼굴을 보고, 황후마마라며 절을 하였다. 홍장이 놀라서 어쩔 줄 모르자, 사자는 자신은 진나라 사람이고, 황후가 돌아가셨는데, 황제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새 황후가 백제에서 태어나 장성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하여 황제의 명으로 예물을 가지고 모시러 왔다는 것이다. 홍장은 스님에게 예물을 모두 드리고, 사자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홍장은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지만, 홀로 남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장인을 시켜 자신의 원불(願佛)로 관음보살상을 만들게 하였다. 그 후 관음보살상을 배에 싣고 백제국으로 보내며, 인연이 있는 곳에 닿아 봉안되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돌배에 탄 관음보살상을 발견한 성덕 곡성 옥과(현재 곡성군 옥과면)에 성덕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하루는 성덕이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수평선을 바라보니 돌배 하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배속에 빛이 가득했고, 안에는 관음보살상이 앉아 있었다. 성덕은 엎드려 절을 하고, 관음보살상을 업었더니 깃털처럼 가벼웠다. 성덕은 관음보살상을 모실 인연의 땅을 찾아 숱한 들과 마을을 지났다. 지금의 곡성군 오산면에 있는 고개를 지날 때 갑자기 관음보살상이 태산처럼 무거워서 한 발 짝도 뗄 수가 없었다. 성덕은 그곳에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절을 세워 그 이름을 ‘관음사’라 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관음사를 품고 있는 산을 ‘성덕산’이라 이름 짓고 그녀의 덕을 기렸다고 한다.
관음의 화신으로 형상화된 원홍장과 성덕 관음사에 얽힌 설화는 관음사 창건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각하고, 원홍장의 효성과 성덕의 정성이 이어져 관음사가 창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설화에서 원홍장과 성덕은 모두 관음의 화신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관음사와 관음보살의 신성화를 통해 불교의 대중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으로 보인다. 한편 원홍장에 관한 이야기는 그 구조와 내용이 「심청전」과 유사하여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의 배경설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출처] 홍장의 효성과 성덕의 정성이 이어진 관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