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하트-하트재단
이사장 오지철
(글·사진_ 김신기)
새봄을 맞아 오지철 이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재 오 이사장은 사회복지단체인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발달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등을 위한 뜻있는 일을 수행 중이다.
동시에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원장을 맡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
오 이사장은
이민주(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과의 인연이 있었다. 1975년 조선무역을 창업한 이민주 회장은 심장이 뛰는 곰인형인‘하트 투 하트 베어’를 히트시켰고, 이를 계기로 수익 일부를 심장병 어린이에게 기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봉사와 나눔을 위해‘하트-하트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어느 날, 이민주 회장이 재단 이사장직을 제안했어요. 사연은 이랬죠. 2016년까지 30년 동안 이회장의 부인인 신인숙 씨가 이사장을 맡으며 재단의 기반을 닦고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다 2017년 김영주 전 산업부 장관에게 넘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김 이사장이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선임됐죠. 더 이상 이사장을 맡기가 곤란해지면서 저에게 제안을 하게 됐던 거예요. 오랜 시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문화, 예술 쪽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하트하트 오케스트라’美 케네디 센터 공연, 가장 기억에 남아
어느덧 이사장으로 취임한지도 2년이 흘렀다는 오 이사장에게 특별히 기억나는 일에 대해 물었다.
“2018년 9월에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미국 공연을 갔습니다. 그때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 센터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때까지 발달장애 오케스트라는 없었어요. 케네디 센터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하니, 호의적이지 않더군요.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도 무슨 미국 수도에서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공연이냐고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밀어붙였고, 결국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웃음).”
오 이사장은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케네디 센터에 세우기 위해 설득을 거듭했다고 한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미국 주류 사회에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게 설득의 핵심 내용이었다.
“연주는 48분간 진행됐어요. 미국 현지 주민들이 90% 이상이었죠. 클래식 공연이 끝나고 아리랑으로 무대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앙코르가 터져 나왔고, 그때 미국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전주가 나오니깐 공연을 보러 온 모든 이들이 일어났어요. 울고 난리가 났죠. 나중에 알았는데, 영상으로 촬영을 해두었더군요. 현재는 유튜브(YouTube)에서도 볼 수 있답니다.”
2006년 창단한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 탄생했다. 8명의 단원들로 시작된 오케스트라에는 현재 약 30명이 활동 중이다. 작년 한해 연주만 110회를 했고, 지금까지 누적 연주횟수만 900회가 넘는다.
하트-하트재단, 실명예방사업, 촉각북 제작 등 다양한 사업 전개 중
하트-하트재단은 오케스트라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전개 중이다. 그 중 대표 사업은‘실명예방사업’.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예방 가능한 실명을 퇴치하기 위한 안보건체계 구축사업을 전개 중이며, 또한, ‘다문화가정 지원사업’도 전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문화 가정이 어느덧 100만이 넘어섰어요. 다문화 시대가 열린 것이죠.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은 인도주의적 의미뿐만 아니라 인구절벽, 저출산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역사를 보면 가장 융성한 시대가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였습니다. 가장 포용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시대죠. 통일신라 때 이미 아라비아와 무역을 했고,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도 무역상이었어요. 한국사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려면 다문화를 포용해야 합니다.”
오 이사장은 한국화약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차관직까지 역임한 후, 법무법인‘율촌’고문, 한국케이블TV 방송협회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TV조선 대표이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해온 문화행정가다.
이처럼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면서도 모두‘인정’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초심(初心)’을 지키려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오 이사장은 이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서울고 교훈이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 지키자’입니다. 또 고(故) 김원규 초대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디서나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라’는 말도 항상 떠올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어떤 일을 맡든지 최선을 다하게 됐고, 끝까지 책임을 지게 됐던 것 같네요(웃음).”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 45년 경력 ‘문화행정가’
남다른‘책임감’을 가진 오 이사장이었기에 종심(從心)을 넘긴 나이에도 다양한 단체의 수장직을 성공적으로 맡아올 수 있었다. 특히, 그는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계 원로 모임인 광화문문화포럼 회장이기도 하다.
“광화문문화포럼은 문화, 예술인, 학자, 법조인, 언론인, 의료인, 기업인 등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범(汎)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창의성과 정체성을 개발하고 확립해 문화국가를 이룩하는데 필요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 공론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죠.”
특히,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광화문문화포럼은 광화문문화 예술상을 제정, 초대 수상자로 대한민국 대표 지성인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을 선정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그는 신영무, 이여성 고등학교
동문들과 함께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회가 닿는다면 서울고 재학생들을 위한 ‘멘토’역할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재학생들을 위한 멘토를 한 적이 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하고 싶네요. 후배들 중에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거나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조언을 들려달라고 요청하자 오 이사장은 ‘책임감’과 ‘평생 공부’이야기를 꺼냈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생 공부’를 하라고 하고 싶어요. 여기서 ‘공부’는 존경할만한 사람들의 행동을 본받는 것도 포함되죠. 배움엔 끝이 없어요. 책 읽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천재들을 살펴보면 독서광이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천재가 아니더라도 독서는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
이어 오 이사장은 이순재 선배님 이야기를 꺼냈다.
“이순재 선배님을 뵐 때마다 엄청난 독서량에 놀라요. 또 지금까지도 좋은 대본을 보면 공부 삼아 외우는 훈련을 하신다고 해요. 명품 배우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닌 거죠. 80대가 넘으셨는데도 러브콜을 받으시니 대단합니다.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를 우리 모두 본 받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