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연중 제16 주일
-조재형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작년까지는 신문사에서 주방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제가 혼자서 주방 일을 하고,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고추, 오이, 상추의 모종을 심었는데 돌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방 자매님은 수시로 텃밭에 나가서 물을 주고, 졸대를 세워 주고, 잡초를 뽑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사 직원이 먹고도 남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신문사에 있을 때는 물을 주고 있지만 외부 출장 일이 많아서 올해는 모종들이 많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들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땅과 모종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땅에 거름을 주고, 모종에 물을 주면서 잘 키우는 사람의 정성이 문제였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비슷합니다.
거짓과 쾌락과 비판의 거름을 주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는 온갖 악취가 풍기기 마련입니다. 나눔과 희망과 격려의 거름을 주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는 사랑의 꽃이 피기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지난 6월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하면서 첫 미사에서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주제로 강론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고, 아껴주고, 격려한다면 성지순례라는 나무에서 기쁨과 희망의 열매가 열릴 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짜증내고,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내면 성지순례라는 나무에서갈등과 분노의 열매가 열릴 거라고하였습니다
성지순례의 목표는 ‘멈춤, 만남, 변화’입니다. 일상의 삶을 멈추고 성지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났다면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행객으로 순례를 갔다면 순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순례자로 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례의 여정 중에 분심과 짜증이 생기곤 합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의 습관과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날씨가 덥다고, 자유시간이 적다고, 물건 구입할 시간이 없다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감사의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마칠 수 있는 것은 매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동 중에 묵주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기도 시간이 길어지면 불평의 말들이 줄어드는 것을 봅니다. 오직 기도만이 불평과 불만의 마음을 이해와 사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는 가능성의 나라입니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는 나라는 아닙니다. 지금 부족한 사람도, 지금 잘못한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가능성을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누룩은 아주 작은 양이지만 빵을 커다랗게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 시작은 비록 작을지라도 끝은 아주 풍요로울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작은 겨자씨는 자라면 새들이 깃들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도 그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생명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출발합니다. 커다란 코끼리도 그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정자와 난자의 만남입니다. 우리모두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움이 함께하면 가능성은 현실이 되고,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읽으면 ‘아메리카 원주민과 손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파란 늑대와 검은 늑대가 있단다.”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파란 늑대와 검은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대답합니다. “응, 그건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파란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파란 늑대가 이기고, 검은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검은 늑대가 이긴단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말을 곧 이해합니다. 착한 일을 하고, 겸손하면 나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나쁜 일을 하고, 교만하면 나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적과의 동침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걱정도 되고, 힘들게 만들어 놓은 공동체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넘어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버림받은 이들, 잘못한 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관대함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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