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고 한다. 매사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도움이나 파장이 생겨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무심코 하거나 재미 삼아서 한 말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말로서 말 많다고 한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한다. 말은 말을 좋아하여 끝없이 이어가려는 속성이 있다. 지칠 줄을 모르고 재미까지 동반한다. 넘치는 말장난에 우쭐해지기까지 하지만 큰 착각이다. 가슴에 담아두고 입을 꾹 다물 수는 없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고마운 일은 고마우며 서운한 것은 서운하다 눈치껏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없는 말을 만들어서 아는 척 분란을 일으킨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다. 말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것은 신용의 문제이다. 자신이 한 말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남의 말이라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는 크나큰 일깨움이기도 하다. 말조심이 필요한 때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문제는 처음의 의사에 반하거나 전달되면서 군더더기가 달라붙어 엉뚱해진다. 호랑이가 고양이가 된다. 더구나 말은 항상 자신에게 불리하기보다는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말에 담긴 뜻이 다의적일 수가 있어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다의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과대포장하고 고깝게 여기기도 한다. 남이 내 말을 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나는 남 말하기 좋아한다. 책임 없는 말일수록 신바람에 빨리 퍼져 나간다. 군중심리일수록 입맛에 당기도록 변형되어 세찬 바람을 타고 날개를 단다. 얼굴 뜨겁고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어둠 속이나 복면처럼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 용기가 아닌 만용에서 막말을 마구 쏟아낸다. 책임감을 위해 신용을 담보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 실명제가 생겼다. 얼굴을 내놓은 만큼 최선을 다하게 된다. 자존심이 걸려있어 은연중 눈치를 보게 된다. 말은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신빙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달콤한 말만으로는 실없는 짓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