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乙巳) 원단(元旦)이다. 을유생(乙酉生) 해방둥이로 태어났기에 우리 나이로 여든하나에 접어든다. 백세 시대를 감안해도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기에 하루에 비유하면 석양이 깃든 황혼녘의 삶에 접어들었지 싶다. 아무리 너그럽게 셈을 해도 지난날에 비해 앞으로 남은 세월이 훨씬 적은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한다.
올 한 해의 바람을 생각해 본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터수이기에 내외가 무탈하고 건강하며 손주가 보람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원으로 족하다. 특히 최근 들어 병치레가 잦은 아내가 나보다 건강해 병원 출입을 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하기야 아내 운운하지만 나 자신도 그 밥에 그 나물인 격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부는 닮게 마련일까? 하지만 어쩌랴!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하는 얘기이다.
언젠가 아내가 푸념했다. 자기는 오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는데 그중 어느 누구도 병을 얻어 수술대에 올라갔던 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병원에 입원하여 전신 마취를 여섯 차례나 했었다며 푸념과 자탄(自歎)을 늘어놓을 때 무척 가슴이 아파 쩔쩔 맸었다. 이 같은 병치레는 나를 잘못 만나 치루는 업보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뜨끔할 뿐 아니라 마음이 무거워 쩔쩔 매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내만 병원을 드나들었던 게 아니고 나 역시 엇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부부가 전생에 지은 업보가 가볍지 않았었지 싶다. 왜냐하면 법화경(法華經)인가 아니면 다른 경(經)에서 봤던 것 같은 다음의 일깨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일 전생(前生)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欲知前生事 : 욕지전생사), 금생(今生)에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今生受者是 : 금생수자시), 내생(來生)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欲知來生事 : 욕지내생사), 금생에서 행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今生作者是 : 금생작자시).”
현대 첨단 과학의 산물인 다양한 가전제품이나 정밀기기도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로 폐기 처분한다. 물론 전지전능한 신이 점지해주셨다고 하지만 우리 인간도 적지 않은 세월이 자나면서 노화는 절대로 피해 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런 이치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상(異狀) 경고였을까?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노화 때문이었던지 건강 문제로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중단을 당했던 경우를 세 차례나 겪어야 했다.
그 첫 번째가 지천명(知天命)의 중반 무렵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재진 결과 흡연을 계속하면 폐기종(肺氣腫)에 걸릴 고위험군(高危險群)에 해당한다는 소견이었다. 그 때문에 당장 흡연을 중단하라는 강력한 경고에 따라 30년 이상 즐기던 끽연(喫煙)과 영영 결별을 고했었다. 두 번째 강제 퇴역을 당한 사연이다. 어느 날 벼락 치듯이 두 차례에 걸쳐 지나간 가벼운 뇌졸중(2016년과 2018년) 때문에 즉시 금주(禁酒)하라는 의사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가볍게 두 차례의 뇌졸중이 지나 갔어도 아무런 장애 징후가 없어 이전과 다름없는 일상생활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의사의 단호한 등산 중지 경고였다. 동네 뒷산일지라도 정상에 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12km 되는 산길로 대략 2~3시간 소요되는 노정을 일주일에 5~6회씩 거의 25년째 반복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여태까지 살면서 같은 곳을 가장 많이 오갔던 곳은 내 젊음을 바쳤던 대학에 31년을 드나들었다, 그 다음이 지금도 오르내리는 마산(馬山)의 신마산(新馬山) 밤밭 고개에서 덕동으로 걸쳐 자리한 청량산(淸凉山) 등산길이다. 혹자는 그들보다 자기 집을 더 많이 드나들었다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여태까지 그렇게 오래 살았던 집이 없다.
지난 해 오월 초였다. 등산을 할 때 마다 왼쪽 뒤꿈치가 조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끝내 걷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 병원을 찾아 가 자초지종을 주워섬겼더니 족저근막염(足底筋膜炎)이라며 즉각 등산을 중지하고 수영을 하라는 엄명을 하며 전문치료제를 발바닥에 주사해 주었다. 그렇게 석 달을 쉬다가 좀이 쑤셔서 도저히 등산을 중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보다 훨씬 걷기 쉬운 임도를 시험 삼아 걸으며 테스트 했다. 그러다가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아 늦여름 무렵에는 다시 산 정상을 오가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지엄한 의사의 충고를 통째로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젊은 날 재직했던 일터에서 물러나며 정했던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정신적 건강을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다, 다행이 컴퓨터를 전공했기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이나 하등의 문제가 없다.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폭우나 폭설이 내리지 않으면 날씨와 상관없이 매주 5~6회씩 동네 뒷산 정상을 오르내리기로 하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키며 매번 등산화 끈을 조여 매면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거듭 다짐을 하고 있다.
이들 두 가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은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한계 즉 건강이 무너졌다는 얘기가 된다. 언제까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건강히 허락되는 날까지 쉬지 않을 각오이다. 이런 나를 지켜보며 아내가 말참견을 더러 한다. “제발 나이에 맞게 등산도 줄이고 아울러 침침한 눈 비벼가며 컴퓨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도 대폭 줄이라.”고. 하지만 이게 노년을 살아가는 내 삶의 방식인 것을 어찌 쉬 버리거나 궤도 수정을 단행할 수 있겠는가!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