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친구들과 청주로 나들이
문득 돌아보니 3월이 등뒤로 돌아앉는다.
이미 제 얼굴 들여다 봐달라고 졸라댄지가 한참인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직은 칙칙하고 회색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겨울 끝자락이어서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침잠의 시간을 보낸 듯 하였어도 늘상은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고
덕분에 불어오는 봄바람에 인사를 나눌 처지는 못되었다.
계절을 건너간다는 것과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는 것이 이미 별개의 일들로 나뉘어져 버린 지금
세월의 끝자락에 매달린 우리네 인생이 마치 긴 겨울 끝에도 간신히 매달려 살아남는 마른 나뭇잎 같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촘촘하게 짜여져 끊어질새라 달려온 세월이 무상하고 무겁기 까지 하여 어디론가 휘리릭 날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중국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쉴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친구들을 꿰어 또다시 길을 나섰다.
콧바람 맞을 생각에 절로 신바람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참 대단한 에너자이저 라는 서방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암튼 우여곡절 끝에 서울팀은 약속한 장소에 잘 모여 출발하였다는 전언을 듣고 뒤이어 친구의 차량에 동승하여
함께 다녀온 중국의 그랜드캐넌 태항산에 대해 이런저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하는 동안 수없이 오르내리던 계단에
너무나 힘이 들어 팅팅 부어터진 꼬락서니를 마주 대하며 마구 웃어젖혀도 좋았던 기억인지라 새삼스럽게 추억하여도 좋았다.
와중에 시간 여유가 충분한고로 새로 난 도로를 탐험하며 놀멘놀멘으로 청주로 달려간다.
** 뉴욕에서 날아온 친구
사십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도 여전히 친구임을 확인하는 것, 어렵지 않다.
변한 얼굴과 몸매로 만나도 한 울타리 여고 친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것이 친구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 경숙이가 작년 한 해가 저물 무렵 친정엄마를 여의고 한국으로 찾아들었고 수소문 끝에 급하게 이리 저리 연락이 되어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도 "아, 쟤....경숙이구나" 싶도록 여고 시절 느낌 그대롤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채 퇴색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101세 되신 시아버님의 영면으로 다시 부랴부랴 한국으로 찾아들었다.
들어와 시아버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만남의 즐거움을 갖기를 원했으나 이미 중국 태항산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에 있었던 까닭에 이른 만남을 갖지 못하고 돌아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더니만
화요일에 다시 전화가 걸려와 경숙이 내외가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안성 무설재까지 찾아들었다.
" 나 말이야 오늘 너희 집에서 자려고 해...아침에 산에도 가고, 꼭 그러고 싶었었어"
"그럼 그래야지...잘 왔어"
그렇게 찾아든 경숙이와 그의 남편-목사님-과 함께 오래도록 밀리고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먹고 마시고 희희낙락.
하룻밤 만리장성이 아쉬울 지경이나 그래도 잠은 자야하는 고로 나이가 아니인지라 날밤은 새우지 못한 채
다양한 일로 피곤 했던 각자의 몸을 뉘이고 바쁘게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후에
경숙이가 그렇게 원하던 무설재 앞쪽으로 보이는 산으로 산책을 나섯다.
말이 산책이지 산으로 오르는 것이니 거의 트레킹 수준이긴 하지만 워낙 산을 좋아하는 경숙이 내외는
틈만 나면 산으로 오르는 산사람들 답게 이게 웬떡이냐 싶은지 가벼운 트레킹 코스를 정말 좋아해서 나 역시 흡족하더라는.
급하게 짐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안성의 명물 "가마솥 들밥짐"으로 고고고.
외국에서 찾아드는 친구들이 정말로 좋아했던 만큼 역시나 경숙이네 부부는 그야말로 탄성에 탄성을 지르며
맛나게도 먹어주어
함께 먹으면서도 보는 내내 흐뭇하였고 누룽지까지 싹싹이요 반찬이 거덜날 지경으로 봄나물에 취한 우리의 식탐은 굿굿굿.
식사후에도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들밥집 쥔장이 커피 대신 건네준 복숭아 차를 마시며 짧은 소회를 다시한번 되짚었다.
한참을 더 나머지 이야기 끝에 뒷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터미널에 가서 티켓까지 건네고 나니
아쉬운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주간 부터 강행군을 한 탓에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내가 좋아서 다닌 길이요
친구가 좋아서 청주로 날아갔으며 친구가 좋아서 찾아온 경숙이까지의 일정이 사실은 참으로 빡빡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상이 있기에 또 우리는 날마다를 살아낼 힘을 갖는 것이 아닌가 싶고
아직은 친구들이 건강하게 잘 있어주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오. 늘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