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묘기지권 판례>
원주에 있는 임야 한 필지, 면적이 14,257㎡나 되는 꽤 큰 땅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공동소유자 중 한 사람을 B라고 해보겠습니다. B는 어느 날 소송을 걸었습니다. 상대는 그 땅에 조상님 묘를 모시고 있던 종중 사람들, 그중 종손 격인 C였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1733년 무렵, 거의 300년 전에 이 종중의 시조 묘가 그 땅에 들어섰습니다. 그 후로도 1980년대 후반까지 여러 묘가 더 들어왔고, C와 그 가족들이 봉분을 관리하며 수십 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땅의 소유권이 B에게 넘어갔고, B가 "여기 내 땅인데 묘 다 치워주세요"라며 소송을 낸 겁니다.
B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등기부에 자기 이름이 박혀 있고, 매매대금도 다 치른 내 땅인데, 왜 남의 조상 묘가 그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느냐는 거죠.
그런데 1심도, 2심도, 대법원까지도 전부 B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게 "분묘기지권"이라는 다소 낯선 권리입니다. 남의 땅에 묘를 썼는데, 그 묘를 20년 동안 평온하게,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봉분 형태로 관리해왔다면, 땅의 소유권자가 아니더라도 그 자리를 계속 쓸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습니다. 마치 지상권처럼, 등기도 필요 없이 말이죠.
C는 바로 이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나는 이 묘들을 20년 넘게 관리해왔다. 그러니 이 자리를 계속 쓸 권리가 있다"고요.
이건 새로 만든 법 조항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어진 우리 사회의 관습이 법적 효력을 인정받은 겁니다. 조상을 모시는 문화, 묘를 신성하게 여기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워낙 깊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법원이 이 관습에 법적 지위를 줘온 거죠. 이미 1950년대부터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해왔고, 그게 60년 넘게 흔들림 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2017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관습이 시대에 안 맞으니 이제 그만하자"는 의견도 일부 대법관들 사이에서 나왔지만, 다수 의견은 "이 관습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결국 B는 패소했고, C는 묘를 그대로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알아둬야 할 중요한 기준선이 하나 있습니다. 2001년 1월 13일입니다. 이날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이날 이후 허락 없이 남의 땅에 설치된 묘에 대해서는 이 시효취득 관습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이전부터 있던 묘만 보호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그 이후에 몰래 설치된 묘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분묘기지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임야나 농지를 매수하실 땐 등기부등본과 지적도만 볼 게 아니라, 현장에 직접 가서 묘가 있는지, 언제부터 설치됐고 누가 관리해왔는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다행히 묘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손해만 보는 건 아닙니다. 시효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했더라도, 땅 주인이 지료(땅을 쓰는 대가)를 청구하면 그때부터는 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또 다른 판단입니다. 공짜로 영원히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결국 묘를 무조건 치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그 땅의 점유 내력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