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미륵사지 석탑은 미륵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 관련 불탑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미륵삼존을 모시기 위해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서원 금당 앞에 있는 이 석탑도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산>(430.2m)산행
미륵산 정상은 장군봉이라고도 부른다. 농구장 절반 크기일 정도로 넓다. 화강암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전망데크와 휴식을 위한 벤치가 조성되어 있다. 조망은 북쪽으로만 뚫려 있다. 낭산산성이 있는 낭산산을 비롯해 멀리 논산, 여산 금강 물줄기 따라 늘어선 작은 산들까지 조망된다. 하산길은 크게 두 갈래길이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미륵사지에 바로 도착할 수 있다. 냉정약수터 코스는 험하지 않다. 반면 사자암 코스는 계단이 많아 쉽지 않지만 미륵사보다 먼저 지었다는 고찰 사자암을 만날 수 있다.
하산길이 사납다. 바위와 소나무 뿌리가 엉켜 있어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3분 거리에 있는 전망바위는 등잔암 또는 거북바위라고도 부른다. 바위 위에 둥근 구멍이 여럿 있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압권이다. 발 아래쪽으로 미륵사지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한반도 지형의 금마저수지와 계백장군의 혼이 깃든 황산벌을 비롯해 광활한 평야지대를 적시는 금강과 군산 앞바다까지 보인다.
절벽의 사자암 경치 압도적
사자암師子巖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약 100m 안쪽에 있다. 8부 능선 아슬아슬한 암벽에 세워져 있다. ‘사자동천獅子洞天’이라는 암각이 어울리는 천혜의 절경이다. 사자암과 사자동천의 한문 표기가 다른 것은 기록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백제 시대 초기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선화공주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온다. 수령을 헤아릴 수 없는 느티나무 너머로 탁 트인 풍광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미륵사지로 가는 내리막은 계단의 연속이다. 올라오기는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15분이면 연수원 갈림길이다. 우측 숲을 따라 가면 곧이어 미륵사지다.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당간석
당간은 사찰에서 행사나 의식을 치를 때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깃발인 당을 달아 두는 길쭉한 깃대이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받쳐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주로 사찰 입구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공간임을 알렸다. 후대 남회랑 안마당에 약 90m 간격으로 서 있는 당간지주 2기는 크기와 형태, 제작 기법이 서로 같다. 현재 당간은 사라지고 지주만 남아 있는데,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할 때 탑 안에서 나온 석재가 당간 형태임을 보아 당간은 돌로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주의 높이는 약 4.5m이고, 바깥 면에는 가장자리와 중앙에 띠가 있다. 지주의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지주 아래에는 기단이 있으며, 기단 각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 동원 구층석탑
1992년 복원한 화강석 석탑으로 탑의 높이는 27.8m이다. 동원탑지 발굴로 기단석, 옥개석, 노반석이 출토되면서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백제 무왕 당시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는 3탑 3금당 가람배치로 금당(중금당, 동금당, 서금당) 앞에 각각 탑이 세워졌었는데 현재는 서금당 앞의 서탑만 전해진다. 동원 구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서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고증, 복원되었으며, 2층 기단에 9층의 탑신부와 상륜부로 이루어져있다.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탁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