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이주하려는 많은 사람이 이주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 바로 일거리다. 성공하기 위해 지역, 특히나 시골로 이주하는 것도 아닌데 입에 풀칠할 만한 일이 그렇게 없겠느냐고 하는데, 생각보다 없다.
펜션, 게스트하우스, 어려울까?
사진제공 : 김진주
왜 그 많은 사람이 제주에 이주하여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타 지역에서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차피 제주에 이주하여 살 집이 필요하고 예쁘게 꾸민 방 하나를 내어주고 숙박비로 생활비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일자리를 구해 제주로 내려오면서 ‘정 할 것이 없으면 숙박업이라도 하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5년 전에도 만만치 않을 일이지만 게스트하우스가 수 백 개가 넘고 또 수시로 생기고 있는 제주에서 이제 ‘저렴한 숙박업’은 더는 ‘생활비나 벌어볼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제주에서 농사짓는 건 어떨까
여유 있게 ‘생활비나 벌어볼까나’라고 생각을 할라치면 우선 여유자금이 필요할듯하다. 시골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도시와는 조금 다른 경제생활이 가능한 곳이 바로 시골이다. 제주의 시골이 ‘깡촌’과는 다를 거라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글을 읽는 많은 분 중 대다수는 제주여행지 특히나 중문, 서귀포와 제주 시내를 진짜 제주로 생각할 것이다.
제주는 도농복합사회이다. 농촌에서 보자면 멀어도 한 시간이면 대형마트가 있는 시내에 도달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보자면 밤 8시가 되어도 동네 집들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가로등조차 없는 깜깜한 곳이 바로 농촌이다. ‘생활비나 벌어볼까나’라는 생각으로 농촌에서 일거리를 찾자면 가능한 몇 가지 일이 있다. 농촌 일당을 버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인데 도시 출신의 신출내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을 맡기지 않는다.
감귤을 하루 수확하는 일, 새벽에 일을 나가 저녁 대여섯 시에 마감을 하게 되는데 베테랑은 몇 kg 정도를 수확하게 될까? 놀라지 마시라. 자그마치 600kg이다. 감귤 1상자가 보통 10kg이니 자그마치 60상자의 귤을 베테랑 한 명이 수확한다. 6만 원이라는 일당을 받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를 많이 구부리지 않아도 되고(농사일에는 허리 구부리며 하는 일이 많다. 고추 따기 같은) 나무에 올라가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산에 심어져 있는 단감나무는 직접 나무에 올라가 수확해야 한다) 몸을 써야 하는 일이라 고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도 반짝 그때뿐이다. 감귤을 급하게 수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많은 농가에서는 부부가 매일매일 부지런히 수확하게 된다. 인부가 많이 필요한 마늘 일은 어떨까?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 종자를 심거나, 마늘을 수확하는 일인데 노동강도로는 아마도 최고일듯하다. 이러하니 마늘 인부들은 대개 제주도 전역의 할머니들이 인력회사를 통해 동원되고 일당은 대개 5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농사일을 낭만으로 생각하다가는 5천 평의 감귤밭, 나무 하나에 빼곡하게 달린 귤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마늘밭 1만 평은 어떨까?
제주 도시에서 생활하기
농사일을 빼고 다른 일은 없을까? 거꾸로 한번 물어보자. 그렇다면 왜 우리 부모들은, 아니 농촌의 자식들은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올라가는 걸까? 농사일을 제외하고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주의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떨까? 양질의 일자리는 많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다양한 일자리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도시다. 제조업 등 이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제주다 보니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고 삼차산업의 서비스직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많다 보니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공무원이다. 한 통계를 보면 제주의 전체 직장인 중 50%가 공무원이라고 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지만,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최근 사교육비 증가율 1위를 기록한 곳이 제주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경제구조에서 어떻게 사교육비 지출을 많이 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감귤 산업에 있는 듯하다. 직접 감귤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홀어머니도 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감귤농사라는 것.
누구나 감귤밭 정도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지라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잠시 농장에서 일해도 1년에 부업치고는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귀농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과수원 1평에 평균 20만 원을 잡고 2천 평 되는 작은 감귤밭을 하나 산다고 하면 비용이 4억이다. 이 정도가 되면 ‘생활비나 벌어볼까나’의 수준을 넘어버린다. 거기다 집 지을 땅과 집 짓는 비용까지 하자면.. 돈 없는 사람은 귀농을 못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도시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생활비’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시다. 하지만 제주로 이주하려는 대다수의 사람은 ‘도시’에서 아등바등하기 싫어서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다. ‘돈’과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돈’과의 단절이 어려운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결국 제주에서도 ‘품’을 팔아서 돈을 벌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자영업 비율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데 제주에 이주하는 사람 중에 자영업 비율은 더 높을듯하다. 게스트하우스, 카페, 음식점 등 모든 것이 자영업이고 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한다. 초기에 자본이 필요하고 또 경험이 필요한 것이 바로 자영업인데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서 수 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일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그렇다면 과연 제주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일까? 조금 두루뭉수리로 대답하는 것이지만, 여행객만을 상대로 하지 않고 지역민도 상대하는 일, 살아가면서 기본이면서 필요한 일, 어쩔 수 없이 투잡을 가져야 한다면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좋을 듯하다.
내가 직접하고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목수’일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이주한 사람뿐 아니라 지역민에게도 필요한 일이자 재능이다. 돈을 충분히 받으면서도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집을 짓는 분야는 여러 명의 다양한 역할이 필요한데 경험이 많은 목수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또 대신하기도 한다. 이마저도 일이 없다면 집을 짓지 않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동향의 이주선배는 10년 전 이주하여 마을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일이 없을 때는 육지의 일과 병행을 하며 살아오고 있다. 만약 목수가 아니었으면 시골 마을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며 살 수 있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창의적인 일,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이 제주에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오름에 올라서도 할 수 있는 일. 육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내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 그것은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보다 글 쓰는 일은 다양하게 널려 있다. 물론 글 쓰는 일로 부업을 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수기공모, 신춘문예, 방송 모니터링, 기고 등. 보통사람들은 ‘나는 글재주가 없어서’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도전해볼 만 하다. 글재주를 타고 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회사에 다니며 지역신문에 ‘제주정착일기’를 연재하였다. 한편에 3만 원 정도의 짠 원고료였지만 나를 알리고 현재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시작했다. 물론 지역신문이 새로 창간하여 지면이 남아돌았고 새로운 필진을 구한다는 것을 기자 후배가 귀뜸을 해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은 남아돌고 뭔가 재밌는 것이 없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져서 웹진에 원고를 쓰고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운이 좋아서 된 일이긴 하지만 제주라는 공간은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여기에 경제적 여유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분명 기회는 있다고 본다. 분명 수 많은 사람이 제주에 이주하고, 그중에는 이주해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는 사람도 다수이지만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면 아마 삶은 조금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