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려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눈비는 없었다. 청년회 농업경영인 조기축구회 소속 회원들은 아침일찍 중학교운동장에 모여 기원제 제삿장 보러 가는 팀, 달집짓는 팀, 행사장 준비 팀 등으로 편을 갈라 부산하게 서둘렀다.
나는 제삿장을 보러 가는 팀에 속해 주한형님과 함께 시장에 갔다. 돼지머리는 어제 돼지를 사놓았으므로 해결됐고 건포에 과일에 기타 등등 제사와 면민 다과회에 필요한 장을 보았다. 푸짐했다.
오전에 장을 보고 점심때쯤 운동장으로 갔는데 우와 높이 4미터 둘레 10여미터의 대형 달집이 운동장 가에 둥그러니 서 있었다. 여기에 든 나무는 1톤화물차 8대 분량이다. 청솔가지와 대나무와 낙엽송과 산판하고 남은 굽은 소나무등걸로 채운 것이다. 이 나무들은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도맡아서 해 놓은 것이다. 애 많이 썼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부풀었다. 마음은 벌써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제물을 한켠에 잘 놔두고 책상 등을 정리하는데 합세해 정리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짬뽕은 맛 있었다.
점심먹고 운동장에 들어가 깃발접수대를 차리고 앉았다. 2시쯤 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다과상으로 모시고 가 고기와 막걸리와 떡과 과일을 드시게 했다. 시끌벅적 서서히 흥이 돋기 시작했다. 때맞춰 등장한 백전풍물패의 풍물소리는 더욱 흥겨웠다. 술 한잔씩 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풍물패와 엉켜 벌써부터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더러는 깃발접수대로 찾아와 미리 뽑은 소원문(1, 農爲本國 大有之年-농업이 근본인 나라, 대풍년이 드는 해 2, 家給人足 長樂無極-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요로워 그 즐거움이 끝이 없기를 3, 달하 백전 환히 밝혀 주소서 4, 액운은 싹 물러가고 만복은 오라 5, 힘찬 전진 희망찬 백전 6, 화합협력 백전발전 7, 날이 날마다 좋은 날 8, 우리모두 부자됩시다 9, 무병장수 다복하소서 10, 달님이시여 대풍년을 내리소서 12, 비나이다 비나이다 백전발전 비나이다 등)에서 한 구절을 지정하거나 자신의 소원을 말해주며 깃발을 써달라고 했다. 천으로 된 깃발 한 개 값은 10만원이었다. 단체장 귀빈 동네이장님 등등 많은 분들이 오셨다. 내 친구 재범이는 언제 서예공부를 했는지 농위본국을 폼나게 썼다. 나도 오래전부터 겨울마다 붓글을 틈틈이 쓰지만 한문은 여전히 서툴다. 그래도 사람들은 필체가 보기드물다며 칭찬을 무지하게 많이 했다. 부끄럽다. 더 노력해야 겠다.
깃발은 만들어져 착착 달집에 꽂혀 나갔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멋졌다. 좋은 글귀들처럼 우리 소원이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애초 깃발 값이 비싸 한 20개 예상했는데 포목은 금시 바닥이 났다. 예비로 한지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낭패볼 뻔했다. 가끔은 할머니들이 오셔서 만원 줄테니 한지에 이름을 써달라고 하셨다. 달집에 넣겠다는 것이다. 대개 자녀이거나 손자손녀의 이름이었다. 돈은 놔두고 그냥 달집에 넣고 가시라며 이름을 적어 드렸다. 그 이름들이 기억은 나지만 여기 남기는 것은 그러므로 혼자만 알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잘되면 부모은공인줄 알았으면 좋겠다. 달집 안에는 부모님의 마음이 베인 하얀 한지가 가득 들어찼다. 더러는 미리 준비해온 부모님들의 소원문도 보였다. 가족의 건강을 비는 내용이었다. 다들 잘 되었으면 부자 됐으면 좋겠다.
쟁글쟁글하던 풍물소리가 갑자기 더 커졌다. 기원제 지낼 시간이 된 모양이다. 깃발접수도 끝났고 나는 접수대에서 물러나 부랴부랴 기원젯상 차리는 일을 도우고 상을 달집앞으로 옮겼다. 상머리에 돼지머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축관은 동백의 강정안님이 맡으셨으며 진행은 대안 김주한 형님이 맡았고 제관은 청년회장 강대수님과 백상현 군의원님, 김병렬 면장님께서 맡으셨다. 초헌 아혼 종헌 제례가 끝나고 모여 있던 3백여명의 면민들은 합동으로 절을 하며 풍년과 백전발전 그리고 가족들의 평화를 빌었다.
기원제가 끝나고 음복을 하고 이어 흥겨운 풍물놀이가 진행됐고 모여든 사람들은 풍물패를 따라 돌며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오후 5시경 드디어 대미를 장식할 달집태우기가 시작됐다. 기관단체장님들께서 미리 점화해 놓은 점화봉을 들고 달집을 한바퀴 돌고나서 달집속으로 점화봉을 던져넣었다. 잠시후 히로시마 원폭사진을 연상케 하는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달집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은 수십미터를 솟구쳐 올랐다. 누군가 나중에 물라드리에서도 그 불길을 보았다고 했다. 달집 타는 모습을 보고 그해 풍흉을 점쳤다던가. 이만치 활활 탔으니 올해는 풍년이 틀림없을 거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아울러 백전인들도 다 복 받을 것이다. 달집이 활활 타오르자 풍물패는 더욱 신명나게 풍물을 쳤다. 달집을 함께 따라 돌며 사람들은 그리고 나도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북을 두드리며 많은 기도를 했다. 그 가운데는 우리 백전카페가 잘되라는 기도도 분명 있었다.
하여간 그날따라 지축을 흔든 풍물소리, 뻥뻥 대나무 터지는 소리, 무섭게 솟구쳐 타오른 달집의 기세에 올해 액운은 전부 싹 도망갔으리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였을 게다. 그날 떠오른 대보름달은 참말 휘영찼다. 오줌이 찔끔 나올만큼.
달집이 한창 타오를 때 우리 방의 재업형님 호근형님을 봤고 서울향우회원님들께서도 오셔서 흥을 돋웠다. 하여간 주최한 사람들은 고생했지만 처음 행사치고 꽤나 멋진 행사였다고 자평한다. 그날밤 나는 백전 총각들과 어울려 밤이 늦도록 막걸리에 빗자루기타에 음주가무를 즐기며 거의 날밤을 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깃발값도 한 3백만원 가까이 들어와 이날 접수를 맡은 나는 더더욱 신났던 것이다. 돈이 좋긴 좋은가 보다.
어제밤에 임원들이 모여 결산할 때 갔었는데 행사경비 제하고 남는 돈은 백전면에 기탁하여 백전면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기로 결정했다. 역시 멋진 형님들이시다.
그리고 형님들은 카페회원님들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한다며 날더러 대신 전하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감사합니다. 더불어 이 글을 볼리는 만무하지만 청년회원님 농업경영인연합회원님 자율방범대원님 조기축구회원님(난 이 모든 단체의 회원이다) 이번 행사하시느라 애많이 쓰셨습니다.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께 함께 감사드립니다.
첫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으니 이제 잘 하면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는 연레행사가 될 가능성도 높다. 8.15경축행사와 함께 고향사람들이 함께모여 치루는 멋진 고향행사가 되리라 나는 믿으며 그걸 위해 나도 가능한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겠다. 올해 마음으로만 오신 동문님들 내년에 만사 제쳐놓고 꼭 오셔요, 오셔서 나쁜 건 다 태우시고 좋은 꿈만 달 가득 받아가세요. 아쉬운대로 보름행사 소식 전합니다. 사진은 현상되면 몇장 올려드릴께요. 복 많이 받으세요. 할말을 다 하려면 해묵서이 부진이나(글을 써자면 바다가 먹물이라도 모자라나) 이만하고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