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체제안에서 부대끼며 살 수 밖에 없다.
자본의 잉여(쓰레기)나 자본축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정권의 잇따른 모든 사고들은 배도 불러오지 못할 사과로 허기를 달랬건만 지금은 그것 조차도 남의 탓으로 돌리면 해결될 성 싶다.
살기 어려워 도시를 떠나 시골 삶을 택했지만 지구에서의 삶이 아닌 이상 어딜가나 그 기에서 그 기까지이다.
쓰레기 투기는 아무리 시골 삶이라 하더라도 내집 앞에 쓰레기 버리는 행위를 참을 수 없기에 좋은 말로 달래보아도, 앞 사람이 버리고 간 쓰레기라고 하니 고스란히 쓰레기 치우는 일은 시골 삶의 몫이다.
일본의 해양오염수 투기도 괜찮다고 세금을 들여 홍보하지만 마치 시골 삶이 치우는 쓰레기처럼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가져갔으면 좋겠는 데 이것 역시 마치 동네 행님 심기를 거스리면 안되는 모습을 보이니 우리들 모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곳곳에서 뚜드려 맞는 인생이지만 자본주의 시대는 애초에 가진 자의 권리이므로 최대한 그에 맞게 잘 비비고 시골 삶도 잘 축소하여 살아가는 各自道生(각자도생)의 비법을 잘 연마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죽지 않고 살아갈 방법으로 선택하였던 소량 다품종의 규모라고 하기까지도 아닌 작업공간을 상실한 후 나만의 최대한의 공간을 마련하였읍니다. 여기에는 쿠바의 유기농운동과 죽은 줄 알았던 생명역동농법과 퍼머칼쳐까지도 살아 있지요.
獨居老人(독거노인)이 된 이후 욕심을 자제할려고 농사규모도 줄이고 또 줄여 넓은 면적이 필요한 겨울작물 麥류는 포기하지만 공간을 잘 만들면 같은 겨울작물인 마늘이나 양파공간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유공비닐 멀칭폭도 줄이고 밀식에 대한 보상으로 햇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투명비닐로 밀감밭사이에 꾸미기로 하고 잡초를 제거하여 양파의 살 공간을 마련하였읍니다.
앞으로 살게될 양파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