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지하철역 앞에서*
김정웅
모든 보이는 것들에게는 잠재된
속도가 있다고 말하던 너는
그날 나름 과속했지
느리게만 보이는 구름도 사실
그 안에 수많은 수증기 입자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부딪히며
깨지고 증발하고 있다는 걸
아느냐고 묻는 너는,
분명 느렸지
우리가 그때 유독 느린 슬픔이나 절규 등의
속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
정작 우리 사이의 거리를 재지 못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거주하던, 스스로 건축하고 갇힌 감옥에서
세상의 시계는 이상하게 빨리 움직였고
내가 가진 또 다른 결이 나도 모르게
과속하고 돌아올 때도
우리의 속도는 역시나 최저였지
우리가 스쳐간 수많은 역이
우리의 안에서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지만
역이 달리고 있는 건지
열차가 폭주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안내 방송은 그대로야
-다음에 정차할 역은 시청, 시청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내릴 차례야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에게는 오래전 승차권이 없고
너는 내릴 생각이 없고
반복되는 플래시백, 그 집요함의 끝은
다음 역
선로 위의 미세한 바람이 열차를 흔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섭동으로 잠시
기울며 정차하고 있었겠지
언젠가 따로 하차할지라도
여전히,
후숙이 덜 된 변명이 많은 사람도
지하철은 언제나 탑승할 수 있겠지만
그때처럼,
어색하게 급하게 잘못 나온 지하철 출구로
예전의 열차가 빠르게 따라오고 있지만
늘어진 테잎처럼 유행이 지난 노래를
계속 듣던 너를 이제는 찾을 수 없고
손끝에서는 익숙한,
녹이 슨 의자 냄새가 느껴지고.
*동물원 3집의 타이틀 곡
---애지 가을호에서
김정웅
2019년 『애지』 등단
제10회 『애지』 문학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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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의시인들
김정웅의 시청 앞 지하철역 앞에서*
애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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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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