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천(直指川) 가는 길
최 순 태
내가 살던 고향 김천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 불린다. 삼산이란 유명한 고찰인 직지사가 터를 잡은 황악산과 김천과 구미에 걸친 금오산, 대덕산을 이른다. 이수는 김천을 가로지르는 직지천과 감천이다.
김천시의 오지인 우리 동네는 지금도 시내버스가 직접 오지 않고, 옆 동네인 문산 마을로 가야 하루 세 번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어린시절엔 아예 우리 마을 근처로 오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농로를 따라 1km 남짓 걸어서 허리에 책보자기를 메고 초등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초등학교에 다니던 6년은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약 5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논과 밭 옆으로 흐르는 개울둑을 따라 걷다보면 직지천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 징검다리는 개울을 이용하여 학교에 가는 인근 3개동의 학생들이 가마니에 모래와 자갈을 가득 채워 만들어 놓은 다리이다.
물을 건너 다시 농로를 한참 걸으면 내가 다니던 김천중, 고등학교가 나온다. 봄이 되면 길 양옆으로 화사하게 핀 각종 꽃에 벌과 나비들이 단물을 빨아먹거나 꽃가루를 다리에 잔뜩 묻혀 우리들이 잘 먹는 꿀을 만들기도 한다.
농사일을 돕는 소들이 아무렇게나 싸 놓은 소똥을 반기는 동물도 있다. 바로 쇠똥구리다. 그들은 앞발로 부지런히 똥을 끌어 모아 동그랗게 만들어 겨우내 먹을 양식을 저장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아침과 갔던 동일한 길로 집으로 오면서 냇물 속을 보니 피리, 먹지 등이 물에 가득하다. 냇물 안 모래에 다슬기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 고기를 잡고 다슬기를 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하천부지에 사과밭이 있었는데 과수원을 지나다 손으로 작동하는 작두펌프에서 나오는 지하수의 물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간혹 냇가를 지나는 아저씨들이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이 물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난 물이라고 할 정도로 물맛이 좋았다.
학교 졸업 후 그곳에 가보지 않아 그 과수원이 지금도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다슬기가 살 만큼 1급수가 흐르던 냇물도 이제는 환경오염과 개발로 다시 다슬기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린시절 그러한 환경에서 지낸 일은 감히 도시의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호사(好事)다.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내가 걸어 다니던 농로는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변하여 그 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살던 배천마을 옆 동네인 거문들(금평마을)은 우리 집 선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할머니의 친정동네인 이 마을에 심부름을 갈 때 우리 산을 통해서 많이 드나들었다. 그 마을로 가는 다른 길이 하나 더 있다. 지금은 체육시설단지를 통하여 가는 길이다.
오늘날에는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가 어릴 때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결과적으로 어린시절 많은 걷기운동을 통하여 체력단련이 되어 나는 어지간한 거리는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닌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진 것 같다.
도시생활을 하다 고향에 가려면 농로를 한참 걸어가야 한다. 도시에서 길을 걸을 때 답답하고, 매연 때문에 길을 걸어가는 자체가 고통이었으나, 우리 마을로 통하는 농로를 걷는 순간 청량함과 상쾌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공기가 좋다.
최근에는 농로길 옆에 김천종합 체육센터가 들어서서 흙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농로도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예전만큼 산뜻한 공기를 맞볼 수 없으나, 인근에 공장 같은 오염원이 없어서 동네 앞 공기는 좋은 편이다.
그나마 고향집 뒤편의 농토는 개발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여서 청정지역이나, 농로 대부분이 시멘트로 포장을 하여 자연미가 떨어진다. 포장을 하면 편리하기는 하나 그나마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여 운동부족이 상당하리라 생각된다.
요즈음 우리 고향에서는 소를 키우는 집이 거의 없어서 어릴 때 소를 몰고 산에 가서 풀을 뜯기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여름철이면 동네 근처 골짜기에 있던 찬물 샘에 몸을 담그면 더위로 인해 생긴 땀띠가 사라졌다.
내가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산 아래 전답이 있는 농가에서 일을 할 때 여우가 사람들에게 모래를 뿌리는 등 사람을 공격한 일도 있었으나, 지금은 멧돼지, 고라니 외에는 거의 멸종되어 아련한 추억 속 동물이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당숙과 함께 산길을 가며 버섯과 산나물을 뜯던 일이 생각난다. 버섯은 독버섯이 많아 우리들은 표고나, 달걀버섯 등과 같이 잘 알고 검증된 버섯만 채취하였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개발이란 미명하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지금 예전의 흔적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우리 동네로 향하는 농로 왼쪽에는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서서 시멘트로 만들어진 흉측한 시설들만 가득하다.
그 옛날의 상쾌한 공기는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호젓하게 걷던 오솔길은 큰 도로로 바뀌었다. 마을 옆 산은 반 동강이 나서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옛날과 같은 오솔길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자연은 한번 훼손하면 회복하기가 어려우니 지금이라도 개발을 할 때 되도록이면 원형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댓글 우리들의 옛 고향이 다들 그렇게 많이 변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자연처럼 사람들도 변하고 헤어지고.....
고향의 향수 간직하며 그걸 행복으로 간직해 봅시다. 잘 읽었습니다.
고향의 옛 풍경과 걸어 다니던 길, 길을 가며 보고 느끼신 바를 그림처럼 올려놓은 재미 있는 고향 이야기와 향수에 젖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세월따라 변해가는 환경은 어쩔수가 없지만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아할 것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농고를 지나 현 김천대학(?)이 있는 쪽으로 쑥 등을 뜯으려고 많이 갔엇지요. 그림같이 아름다웠던 풍경과 골뱅이가 새까맣게 깔려 있었던 맑은 덤붕이 그리워 한 번 찾아갔더니 건물들만 들어서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덕분에 잠시 향수에 젖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중학교까지 김천서 살았습니다. 참 살기 좋은 곳으로 기억됩니다. 동그라미c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곳에 당시 구읍못이라고 불렀던 곳에서 낚시도 하고 말밤도 주운 기억이 납니다. 두분 고향분을 여기서 만나 반갑습니다.
너무나 많이 변해 온 지나간 날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글..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직지천 가는 길이 학교 가는 길이었군요... 등하교 때 아름다운 길을 지나시면서 많은 아름다운 추억도 남기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징검다리도 건너고, 냇가에 물고기도 잡으며, 꽃도 보고 곤충들도 관찰하며...등하교 시간이 놀이 시간이기도 했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직지천을 따라 등하교 하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신작로, 오솔길 따라 왕복 이십여리 길을 9년간 학교에 다녔기에 공감하는 바 큼니다. 그 길은 우리들의 자연학습장이였지요. 유년의 향수가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도시화를 함으로써 자연이 훼손되는 모양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억의 오솔길은 시멘트로 포장되거나 더 넓은 길에 묻히고 추억어린 논과 논길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지만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길에 대해 쓰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교길이 5km 추억은 아름답지만 당시는 무척 힘든 시절이 되었겠습니다. 저도 비슷한 학교길을 다녔습니다. 아름다운 고향을 생각하며 좋는글 쓰고있어 고향이 많이 그립겠습니다. 잔잔한 서정적인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칙지천 따라 걷던 모습이 상상됩니다. 시대가 변하고 산천이 변했지만 마음 속에 그려진 옛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은가 봅니다. 삼산 이수의 고장 김천에 대한 해설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향길을 따라 소년 시절로 돌아간 선생님의 추억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