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책소개>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황인찬, 서수연이 지은
깊은 휴식 같은 시 그림책
『백 살이 되면』
백 년을 쉬고 온 이에게 “잘 쉬었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아주 개운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황인찬 시인의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중 한 편의 시, ‘백 살이 되면’이 그림책에 담겨 나왔다. 몹시 피로한 일상에서 따듯하고 긴 휴식을 마치기까지, 한 편의 이미지 서사가 평화로이 흘러간다. 흘러가면서 문득문득 한없이 평온해진 자의 귀여움과 반짝거림이 드러난다. 오래 머물고 싶도록 위로가 되는 그림책이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
“백 살이 되면 좋겠다” 그림책의 첫 문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시작은 아슬아슬하다. 누군가는 죽음을 연상할지도 모를 과감한 문장들이 성큼 다가온다. 시의 문장들은 그 뒤로도 망설임 없이 담백한 마음을 전한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면”, “물방울이 풀잎을 구르는 소리” “젖은 참새가 몸을 터는 소리” “이불 속에서 듣다가 나무가 된다면 좋겠다” 푹신한 이불 속에서 몸 한번 일으키지 않고 귀만 열어놓고 빛의 온기를 듬뿍 받는 휴식. 깊은 휴식의 끝은 여전히 한낮이고, 부드러운 오후의 빛 속에서 온 가족이 내 침대를 둘러싸고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누군가 잘 쉬었냐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웃으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공감이 간다. 잘 쉬고 나서의 현실도 따듯한 색깔이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
황인찬 시인은 이 시가 수상작으로 정해지기 전부터 그림책을 염두에 두고 시를 지었다. 단단한 문장들의 합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들리고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공백에 그림의 자리를 넉넉하게 갖추어 놓았다.
흙으로, 나무로, 밝고 짙은 오렌지 빛 상상 속으로
연한 에메랄드 빛 바탕에 첫 문장만 단정하게 놓여 있다. 도입에서 한숨 여유를 둔 그림은 오렌지와 블루, 화이트, 여러 빛깔들의 다채로운 조합으로 생생한 휴식의 풍경을 만들어간다. 인물이 뒤척이던 침대의 나무색 구조물은 다음 장면에서 자연스레 흙바닥으로 변모하며 점점 더 깊이, 얼핏 유년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는 자연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 본 적 없는 데를 오래 거닐다 온 사람의 평화로운 잠”을 떠올렸다는 서수연 작가의 말처럼, 이어지는 그림들은 잘 계획되어 있으면서도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그림은 시와 합을 맞추다가도 때로 의도적인 어긋남으로 시가 상상한 세계를 더 생생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서수연의 첫 그림책이다. 그가 매일 밤 퇴근 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개인작업 ‘퇴근드로잉’처럼 유니크하고 인상적인 그림들에, 이번에는 이야기가 읽히는 흐름을 갖추었다. 여러 차례 그림의 이야기를 정돈한 다음, 유화와 오일파스텔, 색연필, 연필 등 습식과 건식 재료를 함께 사용하여 무겁다가도 가벼운, 부드러우면서도 까슬한 느낌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한낮이기를
시간에 맞추어 사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가끔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설렐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는 늘 수시로 시계를, 핸드폰을, 데스크톱 하단의 시간 표시를 보며 다급한 일정을 가늠한다. 그러면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대체로 이 시간을 잘 지나면 다가올 포상인, 주말에 대한 것들. 그렇지만 주말이 느리게 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이 그림책은 한 달도, 일 년도 아니고 무려 백 살이 되면 좋겠다고 한다. 백 년 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상상만으로도 아득하고 자유롭다. 그리고 이 ‘상상만’의 세계를 차곡차곡, 붉은 머리 소년의 발걸음이 채우고 있다. 소년의 투명한 몸은 오래 평화롭게 거닐고, 그가 백 년 동안 쉬고 돌아온 곳에는 여전한 한낮의 따듯함이 있다. 멋진 상상은 언제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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