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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침신대 신대원 91학번(11기)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용구목사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 6-2단계: 믿음
230317(금요심야)
히 6:1-2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딤전3:15,마7:24-27). 집과 같은 건물이 올라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것이 집의 터를 제대로 잡는 일입니다. 집의 터는 반석이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모래 터 위에 집을 세우게 된다면, 그 집이 아무리 멋진 집으로 지어진다 하여도, 결국 어느 한 순간 흔들리다가 넘어져 송두리째 무너지고야 말 것입니다.
신앙의 터 닦기 오늘 4번째 시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잡아야 할 신앙과 교회의 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입니다.
(마 16:15-16)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둘째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인 성경말씀입니다.
(엡 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셋째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들입니다.
(히 6:1-2)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이 히브리서 6:1-2을 보시면 “회개와 믿음, 침례들과 안수, 부활과 심판”이라고 하는 6개의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들도 우리들의 신앙과 교회의 기초가 되는 교훈의 “터”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본문의 도입부인 히브리서 5:12-13절에 보시면 이 6개의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어린아이에게 생명과 평생건강의 기초를 다져주는 젖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생명을 유지하고 평생건강의 튼튼한 기초를 잘 다지려면 어머니의 건강한 젖을 풍성하게 먹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과 교회가 올바르고도 굳세게 성장해 가려면 이 6개의 기초 터전 위에 굳게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6개의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잘 다져놓아야만 할 기초 터전들입니다. 이 기초가 잘 다져져야 신앙과 교회의 올바른 성숙과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가 쓰여 질 당시의 초대교회에는 이 6개의 도(진리)의 기초가 잘 다져지지 않았기에, 마땅히 선생이 되어 참된 성장과 부흥을 맛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의 신앙과 교회가 계속하여 유아단계에서만 머무르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었습니다.
(히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그 시대나 이 시대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교회를 몇 십 년 다니고 신앙생활을 몇 십 년 한 후에 비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는 간증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이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들”에 관한 말씀들 중 두 번째 주제인 “믿음”에 관하여 찬찬히 잘 살펴보며 우리들의 신앙상태를 잘 점검해 보고, 진정한 구원과 건강한 성장의 기초 터를 잘 다져가기 원합니다.
2. 믿음
히브리서 기자가 지적한 첫 번째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회개”였고, 두 번째 기본진리는 “믿음”입니다.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과』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기독교진리의 초보들 중 첫 번째는 “회개”이고 회개 한 이후에는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회개”한 이후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히 6:1-2)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회개”에 이어 기독교의 가장 초보적인 진리는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산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기독교는 오직 믿음,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서 행함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짖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고 하면 무슨 행위구원론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율법주의에 빠지면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아무리 잘 못 살아도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구원받고 천국에는 간다고 하는 아주 무책임한 설교자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행함이 뒷받침 되는 살아있는 믿음, 실제적인 믿음이었지, 머리로만 동의하는 피상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눅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어떠한 진리에 대하여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과,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머리로는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실제적인 행동으로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찰스 피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죄인들에게는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충고를 주어야 한다. 여기서도 역시 죄인들에게 믿음을 설명해주어야만 하며 무엇이 믿음이며 또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복음을 믿습니다.’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끔 교육을 받아왔을 뿐, 그가 그 복음을 믿지 않으며, 믿음에 대한 증거를 전혀 알지 못하며 결국 그의 믿음은 증거가 따르지 않는 인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기들이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란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찰스 피니. 진정한 부흥. 홍성철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1.p.281.)
실제로 많은 이들이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믿는다고 우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도 천국에 갈 수는 있다.”는 식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발생한 매우 위험한 발언임을 아셔야 합니다.
지식과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어떠한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지식일 뿐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아닌 지식을 믿음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예수님에 관하여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도 그리고 언젠가 재림하실 것도 믿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같은 말을 하고서 자신은 이제 예수님을 믿는다고 착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될 수 있어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마음 밖에 놓고 아무리 믿는다고 고백해도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상의 말씀들처럼 참 믿음은 예수님을 밖에 세워두지 않고 마음 속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14:6).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요11:25). 그리고 예수님이 영생이십니다(요일5:20).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인다는 말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요 1:11-12)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예수님이 왕이심을 의미)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왕으로 영접한다는 의미)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5: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롬 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구주가 아니다!)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구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영접하지 말고 반드시 주님으로 영접하며 예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리차드 백스터가 말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두 관계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의 고난을 인정하고 용서와 영광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과 구원방법에 순복하는 것이다.”(리차드 백스터. 성도의 영원한 안식. 김기찬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p.79)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대답해 보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신한다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표어는 ‘황제이든지 아무것도 아니든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황제나 왕이나 군주가 아니시라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이다.”(찰스 스펄전. 칼빈주의 5대 교리 설교. 서울: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3. p.139.)
복음주의 신학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믿음, 실로 믿음뿐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은 그 자체에 복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롬10:3). 또한 이 믿음의 대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롬1:4)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7)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평생에 걸친 순종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고도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여 복종하지 않으면서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존 스토트. 로마서 강해. 정옥배 역. 서울: IVP, 1996. p. 58.)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마6:24).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믿음은 이런 선택과 결단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고백한 것이 나오는데, 믿음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진리가 현대 교회에 와서는 얼버무려졌습니다. 이 진리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밝히 증거하는 설교자들이 매우 드뭅니다. 따라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 나오는 게리 콜린스의 탄식은 절대로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설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은 기꺼이 우리의 죄 된 행동들을 버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주권에 굴복시키는 것임을 일러주는 데는 실패했다.”(게리 콜린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최건호 역. 서울: 오상출판사. 1994. pp.39-40.)
아더 핑크는 <현대교회를 장악한 거짓복음>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시대(1886-1952)의 ‘복음주의’는 철저하게 표면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나오도록 호소하는 기초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안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의 거룩보다 훨씬 더 크며,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진노보다 훨씬 더 크다는 균형을 잃은 슬픈 양상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알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들이 치명적으로 빠져 있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할 자기를 드러내는 멋진 찬양, 유머 있는 익살, 재미있는 일화 등은 도입되었지만, 오직 복음만이 효과적으로 비출 수 있는 어두운 배경은 의도적으로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것이 부정적인 면의 한쪽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더욱 심한 것은 복음이 현대의 싸구려 복음전도자들에 의해 값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은 단지 죄인의 눈에 먼지를 날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혼은 전혀 의심받지 않고 사용되는 마귀의 마취제로 잠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통’ 설교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치명적으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길이 사람에게는 옳은 길로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의 기적으로 간섭하지 않을 경우, 그 길을 따르는 자는 결국 그 끝이 사망의 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늘(천국)을 향해 가는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후에 지옥에서 깨어날 때 참혹한 환멸을 갖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자를 사악함 가운데서 편하게 만드는 하늘로부터 전해진 좋은 소식인가요? 미친 듯이 쾌락을 추구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믿기만’ 하면 장차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을 주고자 주어진 것인가요? 혹자는 대부분의 ‘복음전도자들’이 복음을 제시하는 방식에 - 오히려 왜곡시킨 방식에 - 비추어 그렇게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회심한 자들’의 삶을 바라 볼 때,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영적 분별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단지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죄(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히 용서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실권 없는 명목상의 왕인 영국 여왕이나 일왕처럼 예수님을 명목상의 왕으로 섬기고 있는 자들이 그토록 많은 것입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그토록 많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사셨습니다(행20:28, 벧후2:1, 계5:9).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어찌 하든지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자신의 실제적인 주님으로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6가지입니다. 그 중 가장 시급히 회복되어져야 할 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입니다. 찰스 스펄젼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교리들을 그릇되게 전파할 때에는 사람들을 구원할 만한 권한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찰스 스펄젼. 사람 낚는 어부. 민명구 역. 서울: 기독지혜사. 1988. p.251.).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기본진리인 회개와 믿음에 관한 진리에 딱 들어 맞는 말입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에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달려 있습니다. 이 진리들이 회복되어야 신자들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되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 두 가지 진리가 모든 교회 안에서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 진리들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큰 비극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경고하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7:13-27절의 말씀입니다.
(마 7:13-27)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 진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넓은 길로 다니다가 멸망 받게 됩니다. 또 교리적이고 전통적인 교회는 물론이요, 성령운동을 하고 영성운동을 하는 지도자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버림받게 됩니다.
집을 세운다는 말은 주일성수, 십일조, 성경읽기, 기도, 성가대와 교회학교 봉사, 구역활동, 전도와 새신자 양육 등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것들은 집을 짓는 것처럼 수고로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회개하고 믿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헛수고입니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참 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1. 교회와 신앙의 터는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십니다.
2. 우리는 성경,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교훈 위에 서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견고히 해야 합니다.
1] 회개 2] 믿음 3] 침례들 4] 안수 5] 부활 6] 심판
4.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재건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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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침신대 신대원 91학번(11기)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용구목사